여행종합Home >  여행종합
-
행주산성, 밤이 더 아름답다
[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낮의 행주산성은 역사로 기억되지만, 밤의 행주산성은 풍경으로 먼저 다가온다. 해가 기울면 덕양산 능선 위로 바람이 먼저 차오르고, 성곽길 끝에서는 한강 물빛이 천천히 불을 밝힌다.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강과 성과 노을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곳의 밤은 이미 봄 나들이의 충분한 이유가 된다. 고양특례시가 3월 14일부터 10월까지 매주 둘째·넷째 주 토요일마다 행주산성 야간 개장을 운영한다. 관람 시간은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이며, 입장 마감은 오후 9시다. 관람료는 무료다. 주차는 제1·제2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고, 오후 6시 이후 야간 개장을 위해 들어오는 차량은 무료 주차가 가능하다. 다만 장맛비나 태풍, 폭설 같은 기상 상황에 따라 운영 시간이 바뀌거나 취소될 수 있다. 행주산성의 밤이 특별한 이유는 단지 조명이 켜지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곳은 한강 북안의 덕양산을 감싸고 선 토축산성으로, 남쪽으로는 한강이 흐르고 동남쪽으로는 창릉천이 돌아 자연 해자의 구실을 한다. 국가유산포털은 행주산성을 사적 제56호로 소개하며,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어진 성곽 유적으로 설명한다. 지정일은 1963년 1월 21일, 면적은 35만4732㎡다. 낮에는 국가유산의 결이 먼저 보이지만, 밤에는 이 산성이 왜 강과 평야를 굽어보는 자리에 세워졌는지가 몸으로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행주산성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따라붙는 이름은 역시 행주대첩이다. 이곳은 임진왜란 3대 대첩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행주대첩의 현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행주산성 공식 안내에는 권율 장군 동상, 충장사, 행주대첩비, 대첩기념관 같은 주요 지점이 소개돼 있다. 관람객은 대첩문에서 시작해 권율 장군 동상을 지나 충장사와 덕양정을 둘러보고, 정상부 쪽에서 한강과 도심 풍경을 함께 조망하게 된다. 산성 전체 둘레는 약 1㎞ 안팎이라 너무 길지 않으면서도, 천천히 걸으면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 머물기 좋다. 이 길의 진짜 매력은 역사 공부가 산책으로 바뀌는 순간에 있다. 권율 장군의 이름과 대첩의 기억은 교과서에서 익숙하지만, 실제 현장에 서면 그 무게는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산성 아래로 펼쳐진 강, 사방으로 트인 시야, 성을 감싼 경사와 절벽은 왜 이 자리가 전쟁의 거점이었는지를 말없이 설명한다. 그리고 해가 지면 분위기는 다시 달라진다. 전적지의 긴장감 위로 노을빛이 앉고, 한강 건너 불빛이 하나둘 켜지면 행주산성은 엄숙한 유적지이면서 동시에 매혹적인 야경 명소가 된다. 역사와 풍경이 서로의 배경이 되는 곳, 행주산성의 밤은 바로 그런 두 겹의 표정을 갖고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 둘째·넷째 토요일만 열린다는 점도 오히려 여행의 리듬을 만든다. 늘 열려 있는 공간보다, 날짜를 맞춰 찾아가야 하는 장소는 약간의 기대를 더 품게 한다. 특히 3월부터 10월은 강바람이 가장 걷기 좋은 계절과 겹친다. 초봄에는 노을이 부드럽고, 초여름에는 강빛이 길어지며, 가을에는 공기가 맑아 멀리까지 조망이 열린다. 주말 저녁, 과하게 붐비는 상업시설 대신 역사 유적의 산책길에서 한강 야경을 본다는 경험은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행주산성 주변 동선도 야간 나들이의 밀도를 높여준다. 공식 관광 정보에는 행주서원, 행주나루, 행주역사공원 같은 주변 명소가 함께 소개된다. 또 행주산성 문화관광 해설 코스에는 대첩기념관과 충훈정, 권율 장군 동상 등이 순서대로 연결돼 있어 낮 시간 탐방과 저녁 야경 코스를 자연스럽게 묶기 좋다. 행주산성 일대가 단지 ‘사진 찍고 내려오는 곳’이 아니라, 이야기와 풍경이 함께 쌓이는 생활권 문화유산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뜻이다. 행주산성은 대단히 화려한 곳은 아니다. 케이블카도 없고, 거대한 상업시설도 없다. 대신 천천히 걸을 길이 있고, 오래 남은 이야기가 있고, 강을 바라보는 높은 자리가 있다. 그래서 이곳의 야간 개장은 더 반갑다. 어둠이 내린 뒤에도 서둘러 문을 닫지 않고, 사람들에게 조금 더 머물 시간을 허락하기 때문이다. 도시의 밤이 대개 소비의 시간이라면, 행주산성의 밤은 되새김의 시간에 가깝다. 한강 바람을 맞으며 걷다 보면 과거의 전장과 현재의 도시, 그리고 내 눈앞의 야경이 한 장면 안에서 겹쳐진다. 그 순간 행주산성은 단순한 유적지를 넘어, 지금의 계절을 가장 조용하게 누릴 수 있는 전망대가 된다.
-
싱가포르, 디즈니 바다를 열다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디즈니 크루즈 라인의 여덟 번째이자 최대 규모 신규 크루즈 ‘디즈니 어드벤처호’가 3월 3일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크루즈 센터에 입항하며 아시아 시장 공략을 본격 시작했다. 4일에는 싱가포르에서 명명식을 열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등 유명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공적 취항을 기념했다. 물대포 환영식과 눈부신 불꽃놀이로 환영받은 이 크루즈는 디즈니·픽사·마블이 100년 넘게 쌓아온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한 다채로운 공간과 이벤트로 여행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전달한다. 크루즈 내에서는 디즈니 시어터 공연과 23인조 오케스트라, 세계적인 가수 임다미와 제드 마델라의 무대가 어우러져 마법 같은 순간을 창출한다. 특히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크루즈 대부로 공식 명명식을 주관하며 이 배와 승객들에 행운을 기원했다. 해상 롤러코스터 ‘아이언사이클 테스트 런’과 브로드웨이 스타일 뮤지컬 ‘리멤버’ 등 가족 모두를 위한 풍성한 즐길 거리가 가득하다. 디즈니 어드벤처호는 7가지 몰입 테마 구역으로 구성되어 ‘빅 히어로’의 샌프란소쿄 거리 등 세계관을 생생히 재현했으며, 전 연령층의 취향을 고려한 키즈 클럽과 성인 전용 바, 라운지도 마련됐다. 디즈니 익스피리언스 부문은 이 선박을 시작으로 전 세계 크루즈 사업 확장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며, 2031년까지 총 5척의 신규 선박 추가 건조를 계획하고 있다. 디즈니 어드벤처호는 가족 단위 여행객은 물론 온 가족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테마 여행의 새 지평을 여는 의미 있는 선박이다. 아시아 최초의 디즈니 크루즈 모항으로서 현지 관광산업 활성화와 글로벌 크루즈 시장 경쟁력 강화를 동시에 기대케 한다.
-
영월 청령포, 사람 몰리자 먼저 점검했다
[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강물 건너 닿는 작은 땅,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가 다시 사람들로 가득 찼다. 영화 한 편이 불러낸 관심은 단순한 재방문 열풍을 넘어 실제 여행 수요로 이어졌고, 영월의 봄은 예상보다 빠르게 북적이기 시작했다. 관광객이 몰리자 행정도 한발 먼저 움직였다. 추억보다 먼저 챙긴 것은 안전이었다. 강원특별자치도는 3월 6일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흥행으로 방문객이 급증한 영월 청령포 나루를 대상으로 유도선 사업장 특별안전 점검에 나선다고 밝혔다. 청령포는 올해 설 연휴에만 1만641명이 찾았고, 삼일절 연휴인 2월 28일부터 3월 2일까지도 1만4800여명이 방문했다. 현장에 인파가 집중되면서 청령포 나루와 청령포를 오가는 2대의 도선이 쉴 새 없이 운항했고, 안전관리를 위해 매표가 조기 마감되기도 했다. 이번 점검에서는 인명구조 장비와 안전 장비의 적정 비치 여부, 도선의 승선 정원 준수 여부, 관련 법규 이행 실태 등을 중점적으로 살핀다. 점검 결과 위반 사항이 확인되면 유선 및 도선 사업법에 따라 개선 명령 등 행정조치가 뒤따를 예정이다. 강원도는 재난 위험 요소가 있는 관광 현장에 대해 선제 대응을 강화하겠다는 방침도 함께 내놨다. 청령포가 이렇게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단종의 유배지라는 역사성에 더해, 최근 영화 흥행이 장소의 기억을 새로 소환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영월군은 설 연휴 청령포 방문객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5배 이상 늘었다고 밝혔고, 장릉 역시 크게 주목받으며 단종 서사를 따라가는 역사 여행 수요가 함께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관광객 증가에 맞춘 대응도 잇따르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영월군은 이미 3월 초 청령포 등 주요 관광지 인근 음식점 100여 곳을 대상으로 위생 점검에 들어갔다. 관광객 급증에 따른 식중독 예방과 가격 표시 점검 등, 여행 만족도를 좌우하는 생활 현장 관리까지 범위를 넓힌 것이다. 관광은 결국 풍경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안전과 위생, 현장 운영의 촘촘함이 함께 받쳐줘야 다시 찾는 여행지가 된다. 청령포는 원래도 영월을 대표하는 역사 관광지다. 영월군 안내에 따르면 이곳은 청령포 관리 및 운영, 도선 운행, 매표와 시설관리가 별도로 이뤄질 만큼 체계적인 현장 관리가 필요한 곳이다. 강을 건너 들어가는 공간 구조 자체가 특별한 체험이 되지만, 동시에 안전관리의 밀도가 관광 경쟁력이 되는 현장이기도 하다. 이번 특별점검은 단순한 일회성 대응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영화가 불러온 관심을 실제 관광 자산으로 연결하려면, 무엇보다 현장이 흔들리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청령포가 지금 필요한 것은 ‘많이 오는 관광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안심하고 찾는 관광지’라는 신뢰를 쌓는 일이다. 영월의 봄 관광이 반짝 흥행에 그치지 않으려면, 그 시작 역시 도선의 속도보다 안전의 기준이 먼저여야 한다. 영화가 한 장소를 다시 살려내는 순간은 흔치 않다. 그러나 그 관심을 오래가는 여행으로 바꾸는 일은 결국 현장의 몫이다. 청령포가 지금 보여주는 장면은 분명하다. 사람은 늘었고, 풍경은 다시 주목받고 있으며, 행정은 그 사이를 메우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강물 위 도선 한 척이 오가는 짧은 시간이, 영월 관광의 다음 계절을 가를 수도 있다.
-
양평역에서 걸어서 ‘바르비종’으로…양평군립미술관, 160만이 다녀간 이유
[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양평에 가면, 풍경이 먼저 말을 건다. 남한강 물길이 반짝이고 산자락이 뒤에서 등을 받친다. 그런데 이 동네가 ‘그림 같은 곳’에서 그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양평군립미술관이 그 중심에 서 있다. 2025년 말 기준 누적 관람객이 160만 명을 넘겼다. “지방 미술관은 어렵다”는 말을, 이곳은 15년 동안 차근차근 반박해왔다. 양평은 인구 대비 예술인이 많이 사는 곳으로 자주 언급된다. 어떤 이는 파리 근교 예술가 마을에 빗대 ‘한국의 바르비종’이라 불렀다. 미술관은 그 말의 구심점처럼 지역 예술가와 여행자를 이어주는 역할을 자처한다. 특히 경의중앙선 양평역에서 걸어서 닿을 수 있다는 접근성이 크다. 차가 없어도 반나절 문화 산책이 가능하다. 미술관은 전시실과 교육실, 어린이 체험 공간, 도서실과 수장고까지 갖췄다. 내부가 단정하게 짜여 있어 가족 관람객도 부담이 적다. 야외에는 ‘빗물’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시선을 붙잡는다. 일본 조형 작가 세키네 노부오가 설계하고, 양평의 돌을 쌓아 만든 작품이다. 미술관 앞마당에서부터 “전시는 이미 시작됐다”는 느낌이 든다. 올봄의 하이라이트는 전국 미술대학 유망작가전 ‘무엇이 보이는가’다. 3월 14일부터 5월 10일까지, 서울·경기·인천권 대학을 포함한 여러 학교에서 추천된 59명의 젊은 작가가 120점을 선보인다. 제목은 단순하지만 질문은 크다. 무엇을 보고, 어떻게 말할 것인가.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요즘’이라는 단어가 구체적인 표정으로 바뀐다. 회화와 설치, 다양한 매체가 한 전시장 안에서 서로 다른 속도로 현실을 비추고, 관람객은 그 틈에서 자기 시선을 점검하게 된다. 여행 코스는 어렵지 않다. 전시를 보고 난 뒤 조금만 걸으면 남한강변이 열린다. 미술관에서 받은 자극을 강바람에 식히며 산책하기 좋다. 더 욕심이 나면 ‘더그림’이나 ‘이함캠퍼스’로 이어가도 되고, 시간이 넉넉하다면 두물머리까지 하루를 늘려도 된다. 양평의 장점은 “문화가 자연을 가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전시를 보고 나와도, 풍경이 바로 다음 페이지처럼 이어진다. 양평군립미술관이 ‘가볼 만한 곳’으로 자리 잡은 이유는 화려한 한 방이 아니라, 문턱을 낮추는 꾸준함이었다. 역에서 걸어 들어가 전시를 보고, 강변으로 흘러나오는 동선까지—이곳은 여행자에게 “문화가 있는 쉬는 법”을 제안한다. 3월, 양평에서 가장 근사한 질문은 어쩌면 이것이다. 당신은 오늘, 무엇이 보였나. [여행정보] 주소: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문화복지길 2 문의: 031-775-8515 운영시간: 10:00~18:00 (매주 월요일 휴무) 이용요금: 성인 1,000원, 청소년 700원 홈페이지: https://www.ymuseum.org/home/
-
책장을 넘기는 건물…파주 미메시스아트뮤지엄
[트래블아이=문소지 기자] 미메시스아트뮤지엄을 보고 나오면 이상한 착각이 든다. 전시를 한 번 본 게 아니라, 전시를 두 번 보고 나온 것 같다는 느낌. 작품을 보고, 다시 건물을 봤기 때문이다. 파주 출판도시의 가장 조용한 구간에 서 있는 이 미술관은 ‘빛·건축·예술’이 한 덩어리로 움직이는 공간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관람은 눈만이 아니라 몸 전체로 시작된다. 설계자는 세계적인 건축가 알바루 시자(Álvaro Siza). ‘건축의 마지막 거장’이라는 말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단단한 콘크리트를 마치 종이처럼 휘게 만들고, 그 곡선을 따라 시간의 빛이 스민다. 외부에서는 회백색 덩어리 두 개가 날개처럼 좌우로 벌어져, 멀리서 보면 책장을 넘기는 장면 같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직선과 곡선이 맞물리며 ‘정지된 조각’이 아니라 ‘움직이는 장면’이 된다. 실내는 더 극적이다. 새하얀 전시공간은 자연광을 끌어들여, 아침과 오후가 서로 다른 표정을 만든다. 같은 벽, 같은 바닥인데도 빛의 각도가 바뀌면 공간의 깊이가 달라진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작품을 보기 전에 빛을 보게 되고, 빛을 보다 다시 작품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 미술관의 조명은 계절이다”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미메시스는 2005년 열린책들이 만든 예술 전문 브랜드이기도 하다. 1층 북카페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만으로도 이곳의 성격이 읽힌다. 바쁘게 소비하기보다, 천천히 감각을 정리하는 장소. 그래도 ‘기억’을 남기고 싶다면 포토 스폿을 따라가보자. 미메시스의 얼굴, 날개, 캔버스, 전망대, 중심이라 불리는 다섯 지점은 건축의 특징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3층에서 두 날개의 중심부를 내려다보면 곡면과 직각, 예각이 겹쳐진 기하학이 한 프레임에 담긴다. 3월 22일까지 이어지는 기획전 ‘DRAMA’는 서동욱·서상익·윤미류 세 작가의 작품을 통해, 회화 속 인물이 감정과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탐구한다. 인물의 표정과 거리, 배치가 만든 긴장감이 건축의 선과 만나면서 전시는 더 ‘입체’가 된다. 작품이 공간을 바꾸고, 공간이 작품의 리듬을 바꾼다. 연계 여행은 가볍게 잡는 편이 좋다. 미술관의 여운이 긴 편이라, 열화당책박물관·지혜의숲·헤이리예술마을을 ‘가까운 다음 장’처럼 붙이면 딱이다. 파주는 멀리 가서 얻는 감동이 아니라, 가까이서 오래 바라봐서 생기는 감동을 아는 도시다. 미메시스아트뮤지엄의 매력은 “멋있다”에서 끝나지 않는다. 콘크리트는 차갑다는 편견이 곡선 앞에서 풀리고, 전시는 조명으로 만든다는 상식이 자연광 앞에서 흔들린다. 전시를 보고도 건축이 더 오래 남는 날, 여행은 한 겹 더 깊어진다. 3월, 파주에서 ‘건물 자체가 작품’인 미술관을 찾는다면 이곳이 가장 설득력 있다. [여행정보] 주소: 경기 파주시 문발로 253문의: 031-955-4100 운영시간: (동절기) 10:00~18:00 / (하절기) 10:00~19:00, 월·화요일 휴무이용요금: 성인 10,000원 / 청소년(14~18세) 7,000원 홈페이지: www.mimesisartmuseum.co.kr
-
“나도 그리겠네” 했다가 멈춘다…양주 장흥계곡, 장욱진 미술관
[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처음엔 누구나 방심한다. “저 정도 선은 나도 그을 수 있겠다”는 마음의 소리가 슬쩍 새어 나온다. 그런데 한 걸음만 더 가까이 가면, 그 단순한 선 위로 까치가 날고 소가 울고, 집 안에 사람 냄새가 스민다. 장욱진을 다시 만나는 순간은 늘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그는 산과 나무, 새와 달을 과감히 간추렸고, 덜어낸 자리에서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남겼다. 군더더기 없는 글이 오래 남듯, 그의 그림도 오래 남는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은 장흥계곡의 품에 들어앉아 있다. 일영봉·형제봉·수리봉이 둘러싼 산자락, 매표소를 지나면 드넓은 조각공원이 먼저 길을 연다. 공원은 ‘전시장으로 들어가기 전의 전시’ 같다. 석현천 위 아치형 구름다리를 건너 미술관에 닿는 동선도 인상적이다. 건물은 호랑이가 산속에서 편안히 누운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장욱진의 대표작 ‘호작도’에서 모티프를 얻었다는 설명을 듣고 나면, 그 곡선이 갑자기 생명처럼 느껴진다. 미술관 내부는 한 번에 읽히지 않는다. 1층은 중정을 중심으로 작은 방들이 이어지고, 2층은 다락방처럼 아늑하다. 무심코 걷다 보면 특별함을 놓치기 쉽다. 이곳은 눈높이를 잠깐 ‘하늘에서 내려’야 비로소 보이는 미술관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건축 모형이 전시돼 있어 공간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꼭 멈춰야 할 작품이 있다. 장욱진이 덕소 작업실 부엌에 그려두었던 벽화를 떼어내 전시장으로 옮긴 ‘식탁’과 ‘동물가족’ 앞이다. 크지 않은 화면인데도, 이상하게 시간이 늦게 간다. 오래 머물러도 아깝지 않다. 여행자에게 장흥은 “산책이 다 해주는 동네”다. 미술관을 나와 계곡 쪽으로 천천히 걸으면 바람 소리와 물소리가 그림의 여운을 붙잡아준다. 길 건너편 양주시립민복진미술관은 추가요금 없이 함께 볼 수 있어, 하루 일정이 자연스럽게 ‘두 개의 미술관’으로 확장된다. 조금 더 욕심이 나면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 장흥자생수목원, 권율장군묘까지 묶어도 좋다. 봄의 장흥은 멀리 나가지 않아도, 충분히 멀리 온 기분을 준다. 장욱진의 그림은 대단한 기술을 과시하지 않는다. 대신 “삶을 어떻게 단순하게 바라볼 것인가”를 묻는다. 장흥계곡 한복판의 미술관은 그 질문을 조용히 건네는 장소다. 3월, 산과 물 사이에서 한 줄의 선을 오래 바라보다가 돌아오는 길. 그날의 여행은 ‘많이 본 날’이 아니라 ‘깊게 본 날’로 기억될 것이다. [여행정보] 주소: 경기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193 문의: 031-8082-4245 운영시간: 10:00~18:00, 월요일 휴무 이용요금: 성인 5,000원 / 어린이 1,000원 홈페이지: www.yangju.go.kr/changucchin/index.do
-
산속에 숨은 ‘음악 미술관’…과천 K&L뮤지엄
[트래블아이=문소지 기자] 과천의 ‘뒷골’은 이름부터 한 발 물러서 있다. 우면산·관악산·청계산 능선이 빙 둘러친 골짜기. 도시 소음이 끝나는 지점에서 K&L뮤지엄은 느린 속도로 관람객을 맞는다. 건물은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는 단정하지만,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공기가 달라진다. 이곳의 전시는 눈으로만 보지 않는다. 귀가 함께 걷는다. K&L 컬렉션의 바탕에는 ‘음악’이 있다. 전시장 벽면에는 바그너의 오페라 ‘발퀴레’가 흐르고, 관람객은 화면과 소리 사이를 오가며 작품을 읽게 된다. 조용한 공간에서 음악은 배경이 아니라 길잡이다. 그림의 색이 소리에 반응하고, 조각의 질감이 리듬을 타는 듯하다. “미술관이 이렇게 또렷해질 수 있나” 싶은 순간이 몇 번씩 온다. 올해는 개관 3주년. 이를 기념해 24명의 국내외 작가 작품을 모은 ‘K&L 뮤지엄 소장품전’이 4월 12일까지 이어진다. 소장품전은 미술관의 성격을 가장 정직하게 드러낸다. 어떤 작가를 선택했고, 어떤 결을 오래 붙잡아왔는지—그 축적이 한 전시로 드러난다. 거창한 설명 없이도 “이 미술관은 이런 세계를 좋아한다”는 말이 전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읽힌다. 여행자에게 좋은 이유는 ‘속도’다. K&L은 붐비는 동선이 아니라, 감상을 천천히 이어가도록 짜인 곳이다. 더 깊게 보고 싶다면 큐레이터 팀이 직접 진행하는 프라이빗 투어를 예약해도 좋다. 작품을 ‘많이’ 보는 대신, 몇 점을 ‘오래’ 보게 만드는 방식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아니라, 오래 볼수록 보이는 것이 생긴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전시를 본 뒤에는 2025년 문을 연 자매 공간 K&L 라이브러리로 발길을 돌려보자. 달리·피카소·미로·고야 등 19~20세기 스페인 거장들의 판화를 집중 조명하는 전시가 이어지고, 음료와 와인을 곁들일 수 있어 ‘관람의 여운’을 부드럽게 늘려준다. 미술관 관람객에게는 할인 혜택도 있다. 산으로 둘러싸인 자리에서 음악과 작품을 마주하고, 책과 판화로 한 번 더 숨을 고르는 코스. 하루가 과하게 채워지지 않으면서도 밀도가 남는다. 연계 여행도 어렵지 않다. 가까운 렛츠런파크 서울, 국립과천과학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을 묶으면 “산속의 미술관—도시의 문화시설”을 오가는 반나절 일정이 된다. 과천은 의외로 ‘문화가 촘촘한 도시’다. K&L은 그 촘촘함을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보여주는 곳이고,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다. 큰 미술관이 주는 스펙터클이 아니라, 작은 미술관이 주는 ‘집중’이 필요할 때가 있다. K&L뮤지엄은 그 집중을 음악으로 도와준다. 산이 둘러싼 뒷골에서, 눈과 귀가 동시에 열리는 경험. 4월 12일까지 이어지는 소장품전은 봄의 속도를 늦추기에 딱 맞는 이유가 된다. [여행정보] 주소: 경기 과천시 뒷골2로 19 문의: 0507-1421-8116 운영시간: 10:00~18:00, 월요일 휴무 이용요금: 성인 6,000원, 청소년 3,000원 홈페이지: https://www.kandlmuseum.com
-
TV가 숲이 됐다…용인 백남준아트센터 ‘TV정원’
[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용인 기흥구에 들어서면 길 이름부터 낯익다. ‘백남준로’. 그 끝에서 백남준아트센터는 거울을 겹겹이 두른 얼굴로 서 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건물은 풍경을 비추고, 풍경은 다시 관람객을 비춘다. 2026년은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백남준 서거 20주기. 아트센터는 이 시간을 단순한 추모가 아니라, 그의 예술을 “누구나 접근 가능한 공공재”로 다시 읽는 계기로 삼는다. 백남준은 1963년 텔레비전의 내부 회로를 변조한 작품으로 미디어 아티스트의 길을 열었다. 브라운관은 그에게 화면이 아니라 조형 재료였다. 영상은 조각과 설치를 만나 입체가 되었고, 기술은 예술의 문법이 되었다. 스스로 비디오 신디사이저를 개발하며 ‘편집 가능한 시간’을 손에 쥐었고, 음악과 신체, 우연과 놀이를 끝까지 실험했다. 그가 남긴 것은 작품만이 아니라 “새로운 감각의 사용법”이었다. 관람의 첫 장면은 1층에서 시작된다. 대표작 ‘TV정원’은 화면이 빛을 내뿜는 대신 식물과 함께 숨을 쉰다. 관객은 조용히 걷다가, 어느 순간 스피커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와 초록의 질감에 발을 멈춘다. 2층에는 백남준의 뉴욕 작업실을 재현한 ‘메모라빌리아’가 있다. 낡은 메모, 기계 부품, 비디오 장비들이 그대로 놓여 있어, 거장의 작업이 실은 수많은 ‘손의 흔적’ 위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3월 19일부터는 자그레브 현대미술관과 공동기획한 전시 ‘불연속의 접점들’이 문을 연다. 불연속처럼 보이는 역사와 미디어의 흐름이 어떻게 다시 연결되고, 어떤 방식으로 오늘의 감각에 닿는지 묻는 자리다. 개막일에는 공연도 예정돼 전시의 ‘첫 호흡’을 현장에서 함께할 수 있다. 전시장을 다 보고도 아쉽다면, 온라인에 구축된 방대한 비디오 아카이브로 집에서도 계속 이어볼 수 있다. 낯설었던 현대미술은 여기서 ‘설명’보다 ‘체험’으로 가까워진다. 백남준아트센터의 가장 좋은 계절은, 사실 “산책이 가능한 달”이다. 센터 앞에서 경기도박물관과 경기도어린이박물관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으면 봄빛이 전시의 여운을 밖으로 꺼내준다. 미술관 여행은 대단한 지식이 아니라, 천천히 보는 습관에서 시작된다. 화면이 조각이 되고, 소리가 풍경이 되는 곳. 3월, 용인에서 백남준을 만나는 일은 ‘예술을 이해하는 여행’이 아니라 ‘감각을 새로 켜는 여행’이다. [여행 정보] 주소: 경기 용인시 기흥구 백남준로 10 운영: 10:00~18:00(입장마감 17:00) / 월요일 휴관 문의: 031-201-8500 관람료: 무료
-
3월에 가기 좋은 곳: 안산 경기도미술관 20주년 산책
[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3월의 안산은 바람이 먼저 연해진다. 화랑유원지로 들어서면 호수 가장자리를 따라 걷는 발걸음이 느려지고, 정중앙에 자리한 경기도미술관이 시야를 채운다. 제2주차장 쪽에서 미술관을 바라보면 거대한 반투명 유리벽과 경사진 지붕을 떠받치는 구조물이 배의 돛대처럼 서 있다. 물가에 정박한 배처럼, 이 건물은 지난 20년 동안 ‘정원 한복판의 미술관’으로 시민의 시간을 받아왔다. 미술관 문을 열고 들어서면 1층 로비의 프로젝트 갤러리가 먼저 관람객을 맞는다. 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회화는 멈칫하게 만든다. 이상남 작가의 ‘풍경의 알고리듬’은 하얀 바탕 위로 원과 직선이 교차하며 삶의 리듬과 사회의 풍경을 동시에 껴안는다. 또 하나의 상징은 어린이 벽화 ‘5만의 창, 미래의 벽’이다. 수많은 아이들의 꿈과 손길이 모여 완성된 화면은 “이곳이 지역의 미술관”임을 단번에 보여준다. 올해 미술관은 개관 20주년을 맞아 특별전 ‘흐르고 쌓이는’(3월 26일~6월 14일)을 연다. 소장품 125점을 꺼내 지난 시간을 되짚고, 앞으로 무엇을 질문할지 제시하는 전시다. 수장고의 작품은 흔히 ‘보관된 과거’로 오해되지만, 미술관이 꺼내어 다시 걸어두는 순간 현재가 된다. 전시는 그 단순한 사실을 정면으로 보여준다. 익숙한 작품도, 처음 보는 작품도 결국 한 가지 방향으로 관람객을 끌고 간다.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무엇이 쌓였나”라는 질문이다. 20주년은 전시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3월에는 야외조각공원을 무대로 한 봄봄봄 프로젝트 ‘폼폼폼’이 먼저 관람의 리듬을 열고, 관객 참여형 전시 ‘지모마커넥트’ 등 연중 다섯 개 전시가 순차적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산책하듯 들어왔다가, 참여하듯 머물다 나가게 만드는 구성이다. 미술관은 조용히 ‘여행의 방식’을 바꾼다. 보는 것에서, 걷는 것으로. 걷는 것에서, 질문하는 것으로. 여행 팁도 있다. ‘경기도미술관 전시안내’ 앱을 내려받으면 실내·외 상설 작품 해설을 음성·화면·수어로 확인할 수 있어, 동행의 속도와 취향이 달라도 각자 편하게 관람을 이어갈 수 있다. 전시를 본 뒤에는 연계 코스를 붙이기 좋다. 안산산업역사박물관에서 도시의 산업 시간을 훑고, 김홍도미술관에서 ‘안산의 예술 뿌리’를 만나거나, 대부도 방향으로 넘어가 경기해양안전체험관에서 바다 안전을 체험하는 동선도 무리가 없다. 경기도미술관의 20년은 거창한 기념이 아니라, 시민이 일상 속에서 예술을 ‘한 번 더’ 만난 횟수의 합이다. 화랑호수의 물빛이 흔들리는 오후, 유리 돛대 아래에서 작품을 보고 나오면 산책의 결이 달라진다. 3월에 안산을 간다면, 이 미술관은 “전시를 보러 가는 곳”을 넘어 “하루의 속도를 바꾸는 곳”이 된다. [기본정보] 위치: 경기 안산시 단원구 동산로 268(화랑유원지) 운영: 10:00~18:00(마지막 입장 17:00), 월요일 휴관(공휴일 예외) 관람료: 무료(전시에 따라 변동 가능) / 문의: 031-481-7000
-
달이 붉게 물든 밤, 경주 안강은 한마음이 됐다…칠평천 달집태우기 여행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강바람이 먼저 달을 데려온다. 경주 안강읍 칠평천 둔치에 서니, 사람들의 숨결이 모여 밤의 온도를 조금씩 올리고 있었다. 정월대보름(3월 3일) 밤, 달은 유난히 붉어졌고—그날 안강은 ‘동네 축제’라는 말을 새로 증명했다. 안강읍 애향단체 안맥회(회장 이해성)가 마련한 ‘제19회 시민 한마음 문화축제’에는 읍민 1000여 명이 모였다. 달집태우기를 중심에 두고 척사대회(윷놀이), 읍민 재능기부 색소폰 연주, 축하공연, 떡국 나눔이 촘촘히 이어졌다. 행사장 한쪽에서는 국물이 끓는 김이 피어올랐고, 다른 한쪽에서는 윷판의 환호가 터졌다. 아이들은 불빛을 따라 뛰었고, 어른들은 “올해는 덜 아프자” “집안이 평안하자” 같은 말로 서로의 소원을 대신 적어주었다. 행사의 뼈대는 ‘기원제’였다. 관공서와 기관·사회단체장, 주민들이 함께 모여 지역의 안녕과 건강을 빌었다. 이어 달집 앞에 걸린 소원문이 바람에 흔들릴 때, 누군가는 손을 모으고 누군가는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둥근 달을 매개로 공동체가 다시 연결되는 순간이다. 정월대보름이 농경사회에서 풍년과 마을의 평안을 빌던 세시풍속이었다면, 오늘의 달집태우기는 ‘이웃의 안부를 확인하는 의식’에 가깝다. 한 번 끊어진 관계를 다시 잇는 건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같은 떡국 그릇을 나누는 일부터 시작되니까. 올해는 하늘의 사건도 행사의 분위기를 밀어 올렸다. 보름달이 붉게 보이는 ‘붉은 달’ 현상이 겹치며, 칠평천 둔치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더 자주 하늘로 향했다. 달집의 불꽃이 위로 치솟고, 그 뒤편에서 달빛이 어둠의 결을 바꿔놓는 장면은 사진보다 기억에 오래 남는다. 무엇보다 눈에 띈 건 안전이었다. 건조하고 바람 센 날이 잦아 산불 위험이 커진 요즘, 안맥회와 여러 사회·자생단체가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소방·경찰·지자체가 협조해 비상 대응체계를 갖췄다. 불을 다루는 축제일수록 ‘괜찮겠지’ 대신 ‘확인하자’가 먼저여야 한다는 걸, 현장은 알고 있었다. 안맥회는 1989년 설립된 안강읍 대표 애향단체다. 50세 이상 회원들로 구성된 특우회도 위문금 전달, 연탄 나눔, 환경정화 등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해성 회장은 “참여와 협조 덕분에 안전하고 뜻깊게 마무리했다”고 했고, 주낙영 경주시장은 “안강의 달집태우기가 지역 대표 전통문화 행사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말은 짧았지만, 그날 둔치에 모인 사람들의 표정이 이미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여행자는 보통 ‘볼거리’를 찾아 움직이지만, 안강의 대보름은 ‘사람’을 보러 가는 자리였다. 달집이 타오르는 몇 분 동안, 각자의 근심은 불꽃 속으로 접혀 들어가고 대신 “잘 지내자”는 인사가 남는다. 경주가 천년의 시간을 품은 도시라면, 안강의 대보름은 오늘의 시간을 서로에게 건네는 방식이었다. 내년에도 달은 뜰 것이다. 다만 그 달을 함께 바라보는 사람이 곁에 있느냐가, 여행의 감도를 바꾼다.
-
지하철 내려 보라빛 파도 속으로…안양에서 ‘홈 개막전’ 하루 여행
[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토요일 오후, 안양에서 가장 빠르게 ‘축제 모드’로 바뀌는 곳은 경기장이다. 지하철역에서 사람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회색 도시 한복판이 어느새 보라빛 응원으로 물든다. 3월 8일 오후 4시30분, 안양종합운동장. FC안양의 2026시즌 첫 홈경기가 제주SK FC를 상대로 열린다. 안양의 홈경기는 ‘90분’만 보고 돌아가기엔 아깝다. 경기 시작 전부터 선수들과 함께하는 미니 풋살, 선착순 캡슐드로우 응모권, 셀프 포토부스가 관람객을 붙잡는다. 바람이 차더라도 푸드트럭 앞 대기 줄이 먼저 길어진다. 이곳에서의 간식은 배를 채우는 일 이상이다. 낯선 사람과도 메뉴를 고르며 말을 트게 하고, 응원가 한 소절을 외우게 만든다. FC안양은 개막전에서 대전하나시티즌과 1-1로 비기며 출발했다. 원정에서 보여준 조직력이 단단했다는 평가가 따라붙었고, 그래서 홈 개막전의 기대는 더 커졌다. 지난해 구단 역사상 처음 K리그1 무대에 올라 잔류에 성공한 뒤, 올해는 ‘버티기’가 아니라 ‘올라가기’를 목표로 전력을 다듬고 있다. 첫 홈경기에서 승점 3점을 가져오면, 그날의 안양은 단지 이긴 팀의 도시가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도시”가 된다. 여행자라면 동선을 이렇게 잡아도 좋다. 낮에는 평촌중앙공원에서 몸을 풀 듯 걷고, 해 질 무렵 경기장으로 이동한다. 경기가 끝나면 안양역 쪽 번화가나 중앙시장 골목으로 발길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스포츠는 멀리 가야 만나는 이벤트가 아니라, 도시 생활의 리듬을 바꾸는 ‘가까운 여행’이 된다. 홈 개막전의 매력은 승패만이 아니다. 같은 도시를 살아도 서로 모르던 사람들이, 같은 장면에 동시에 숨을 멈추는 경험이다. 3월 8일 안양종합운동장에서는 그 ‘동시성’이 가장 큰 볼거리다. 첫 함성이 터지는 순간, 안양의 주말은 경기장 바깥까지 넓어진다.
-
[최치선의 포토에세이] 1500년 시간을 건너온 빛, 무령왕릉 왕관 장식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어둠 속에서 한 점의 빛이 피어난다. 공주 국립공주박물관 전시실에서 마주한 이 장식은 단순한 금속 공예품이 아니다. 1500년의 시간을 건너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난 백제 왕실의 숨결이다. 이 유물은 백제 제25대 왕인 무령왕의 능에서 출토된 왕관 장식 가운데 하나다. 금으로 만든 나뭇가지 모양의 장식은 왕관에 꽂아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치 나무가 하늘로 뻗어 오르듯 펼쳐진 형태는 백제 장인의 섬세한 손길을 그대로 보여준다. 금속은 얇지만, 그 선은 놀라울 만큼 힘이 있다. 1971년 여름, 공주 송산리 고분군에서 우연히 발견된 무령왕릉은 한국 고고학의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도굴되지 않은 채 완전한 형태로 발견된 왕릉은 백제 문화의 정수를 세상에 드러냈다. 왕과 왕비의 관식, 금제 장신구, 청동 거울, 목관과 장례 의식까지 수많은 유물이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에서도 이 왕관 장식은 백제 미학을 상징하는 작품이다. 나뭇잎과 불꽃을 닮은 문양이 반복되며 왕권의 상징성과 자연의 생명력을 동시에 담아낸다. 금빛으로 빛나는 이 장식은 왕의 권위를 드러내는 장식물이면서도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 했던 백제인의 미의식을 보여준다. 백제는 화려함보다 균형을 택했던 나라였다. 과장되지 않지만 우아하고, 단순하지만 깊이가 있는 미감. 무령왕릉의 유물들은 그 조용한 아름다움을 증명한다. 전시실의 조명 아래에서 이 왕관 장식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왕이 잠시 왕관을 벗어 두고 떠난 자리 같은 느낌이 든다. 금빛 문양 사이로 흐르는 시간의 그림자가 천천히 움직인다. 공주는 그렇게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는 도시다. 금강의 물결과 공산성의 성벽, 그리고 박물관 유리 진열장 속 작은 유물 하나가 한 시대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 보인다.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생각한다. 1500년 전 이 왕관을 만들던 장인은 지금 이 빛을 상상했을까.
-
-
행주산성, 밤이 더 아름답다
- [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낮의 행주산성은 역사로 기억되지만, 밤의 행주산성은 풍경으로 먼저 다가온다. 해가 기울면 덕양산 능선 위로 바람이 먼저 차오르고, 성곽길 끝에서는 한강 물빛이 천천히 불을 밝힌다.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강과 성과 노을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곳의 밤은 이미 봄 나들이의 충분한 이유가 된다. 고양특례시가 3월 14일부터 10월까지 매주 둘째·넷째 주 토요일마다 행주산성 야간 개장을 운영한다. 관람 시간은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이며, 입장 마감은 오후 9시다. 관람료는 무료다. 주차는 제1·제2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고, 오후 6시 이후 야간 개장을 위해 들어오는 차량은 무료 주차가 가능하다. 다만 장맛비나 태풍, 폭설 같은 기상 상황에 따라 운영 시간이 바뀌거나 취소될 수 있다. 행주산성의 밤이 특별한 이유는 단지 조명이 켜지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곳은 한강 북안의 덕양산을 감싸고 선 토축산성으로, 남쪽으로는 한강이 흐르고 동남쪽으로는 창릉천이 돌아 자연 해자의 구실을 한다. 국가유산포털은 행주산성을 사적 제56호로 소개하며,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어진 성곽 유적으로 설명한다. 지정일은 1963년 1월 21일, 면적은 35만4732㎡다. 낮에는 국가유산의 결이 먼저 보이지만, 밤에는 이 산성이 왜 강과 평야를 굽어보는 자리에 세워졌는지가 몸으로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행주산성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따라붙는 이름은 역시 행주대첩이다. 이곳은 임진왜란 3대 대첩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행주대첩의 현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행주산성 공식 안내에는 권율 장군 동상, 충장사, 행주대첩비, 대첩기념관 같은 주요 지점이 소개돼 있다. 관람객은 대첩문에서 시작해 권율 장군 동상을 지나 충장사와 덕양정을 둘러보고, 정상부 쪽에서 한강과 도심 풍경을 함께 조망하게 된다. 산성 전체 둘레는 약 1㎞ 안팎이라 너무 길지 않으면서도, 천천히 걸으면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 머물기 좋다. 이 길의 진짜 매력은 역사 공부가 산책으로 바뀌는 순간에 있다. 권율 장군의 이름과 대첩의 기억은 교과서에서 익숙하지만, 실제 현장에 서면 그 무게는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산성 아래로 펼쳐진 강, 사방으로 트인 시야, 성을 감싼 경사와 절벽은 왜 이 자리가 전쟁의 거점이었는지를 말없이 설명한다. 그리고 해가 지면 분위기는 다시 달라진다. 전적지의 긴장감 위로 노을빛이 앉고, 한강 건너 불빛이 하나둘 켜지면 행주산성은 엄숙한 유적지이면서 동시에 매혹적인 야경 명소가 된다. 역사와 풍경이 서로의 배경이 되는 곳, 행주산성의 밤은 바로 그런 두 겹의 표정을 갖고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 둘째·넷째 토요일만 열린다는 점도 오히려 여행의 리듬을 만든다. 늘 열려 있는 공간보다, 날짜를 맞춰 찾아가야 하는 장소는 약간의 기대를 더 품게 한다. 특히 3월부터 10월은 강바람이 가장 걷기 좋은 계절과 겹친다. 초봄에는 노을이 부드럽고, 초여름에는 강빛이 길어지며, 가을에는 공기가 맑아 멀리까지 조망이 열린다. 주말 저녁, 과하게 붐비는 상업시설 대신 역사 유적의 산책길에서 한강 야경을 본다는 경험은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행주산성 주변 동선도 야간 나들이의 밀도를 높여준다. 공식 관광 정보에는 행주서원, 행주나루, 행주역사공원 같은 주변 명소가 함께 소개된다. 또 행주산성 문화관광 해설 코스에는 대첩기념관과 충훈정, 권율 장군 동상 등이 순서대로 연결돼 있어 낮 시간 탐방과 저녁 야경 코스를 자연스럽게 묶기 좋다. 행주산성 일대가 단지 ‘사진 찍고 내려오는 곳’이 아니라, 이야기와 풍경이 함께 쌓이는 생활권 문화유산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뜻이다. 행주산성은 대단히 화려한 곳은 아니다. 케이블카도 없고, 거대한 상업시설도 없다. 대신 천천히 걸을 길이 있고, 오래 남은 이야기가 있고, 강을 바라보는 높은 자리가 있다. 그래서 이곳의 야간 개장은 더 반갑다. 어둠이 내린 뒤에도 서둘러 문을 닫지 않고, 사람들에게 조금 더 머물 시간을 허락하기 때문이다. 도시의 밤이 대개 소비의 시간이라면, 행주산성의 밤은 되새김의 시간에 가깝다. 한강 바람을 맞으며 걷다 보면 과거의 전장과 현재의 도시, 그리고 내 눈앞의 야경이 한 장면 안에서 겹쳐진다. 그 순간 행주산성은 단순한 유적지를 넘어, 지금의 계절을 가장 조용하게 누릴 수 있는 전망대가 된다.
-
- 여행종합
- 테마여행
-
행주산성, 밤이 더 아름답다
-
-
싱가포르, 디즈니 바다를 열다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디즈니 크루즈 라인의 여덟 번째이자 최대 규모 신규 크루즈 ‘디즈니 어드벤처호’가 3월 3일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크루즈 센터에 입항하며 아시아 시장 공략을 본격 시작했다. 4일에는 싱가포르에서 명명식을 열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등 유명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공적 취항을 기념했다. 물대포 환영식과 눈부신 불꽃놀이로 환영받은 이 크루즈는 디즈니·픽사·마블이 100년 넘게 쌓아온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한 다채로운 공간과 이벤트로 여행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전달한다. 크루즈 내에서는 디즈니 시어터 공연과 23인조 오케스트라, 세계적인 가수 임다미와 제드 마델라의 무대가 어우러져 마법 같은 순간을 창출한다. 특히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크루즈 대부로 공식 명명식을 주관하며 이 배와 승객들에 행운을 기원했다. 해상 롤러코스터 ‘아이언사이클 테스트 런’과 브로드웨이 스타일 뮤지컬 ‘리멤버’ 등 가족 모두를 위한 풍성한 즐길 거리가 가득하다. 디즈니 어드벤처호는 7가지 몰입 테마 구역으로 구성되어 ‘빅 히어로’의 샌프란소쿄 거리 등 세계관을 생생히 재현했으며, 전 연령층의 취향을 고려한 키즈 클럽과 성인 전용 바, 라운지도 마련됐다. 디즈니 익스피리언스 부문은 이 선박을 시작으로 전 세계 크루즈 사업 확장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며, 2031년까지 총 5척의 신규 선박 추가 건조를 계획하고 있다. 디즈니 어드벤처호는 가족 단위 여행객은 물론 온 가족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테마 여행의 새 지평을 여는 의미 있는 선박이다. 아시아 최초의 디즈니 크루즈 모항으로서 현지 관광산업 활성화와 글로벌 크루즈 시장 경쟁력 강화를 동시에 기대케 한다.
-
- 여행종합
- 해외여행
-
싱가포르, 디즈니 바다를 열다
-
-
영월 청령포, 사람 몰리자 먼저 점검했다
- [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강물 건너 닿는 작은 땅,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가 다시 사람들로 가득 찼다. 영화 한 편이 불러낸 관심은 단순한 재방문 열풍을 넘어 실제 여행 수요로 이어졌고, 영월의 봄은 예상보다 빠르게 북적이기 시작했다. 관광객이 몰리자 행정도 한발 먼저 움직였다. 추억보다 먼저 챙긴 것은 안전이었다. 강원특별자치도는 3월 6일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흥행으로 방문객이 급증한 영월 청령포 나루를 대상으로 유도선 사업장 특별안전 점검에 나선다고 밝혔다. 청령포는 올해 설 연휴에만 1만641명이 찾았고, 삼일절 연휴인 2월 28일부터 3월 2일까지도 1만4800여명이 방문했다. 현장에 인파가 집중되면서 청령포 나루와 청령포를 오가는 2대의 도선이 쉴 새 없이 운항했고, 안전관리를 위해 매표가 조기 마감되기도 했다. 이번 점검에서는 인명구조 장비와 안전 장비의 적정 비치 여부, 도선의 승선 정원 준수 여부, 관련 법규 이행 실태 등을 중점적으로 살핀다. 점검 결과 위반 사항이 확인되면 유선 및 도선 사업법에 따라 개선 명령 등 행정조치가 뒤따를 예정이다. 강원도는 재난 위험 요소가 있는 관광 현장에 대해 선제 대응을 강화하겠다는 방침도 함께 내놨다. 청령포가 이렇게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단종의 유배지라는 역사성에 더해, 최근 영화 흥행이 장소의 기억을 새로 소환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영월군은 설 연휴 청령포 방문객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5배 이상 늘었다고 밝혔고, 장릉 역시 크게 주목받으며 단종 서사를 따라가는 역사 여행 수요가 함께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관광객 증가에 맞춘 대응도 잇따르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영월군은 이미 3월 초 청령포 등 주요 관광지 인근 음식점 100여 곳을 대상으로 위생 점검에 들어갔다. 관광객 급증에 따른 식중독 예방과 가격 표시 점검 등, 여행 만족도를 좌우하는 생활 현장 관리까지 범위를 넓힌 것이다. 관광은 결국 풍경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안전과 위생, 현장 운영의 촘촘함이 함께 받쳐줘야 다시 찾는 여행지가 된다. 청령포는 원래도 영월을 대표하는 역사 관광지다. 영월군 안내에 따르면 이곳은 청령포 관리 및 운영, 도선 운행, 매표와 시설관리가 별도로 이뤄질 만큼 체계적인 현장 관리가 필요한 곳이다. 강을 건너 들어가는 공간 구조 자체가 특별한 체험이 되지만, 동시에 안전관리의 밀도가 관광 경쟁력이 되는 현장이기도 하다. 이번 특별점검은 단순한 일회성 대응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영화가 불러온 관심을 실제 관광 자산으로 연결하려면, 무엇보다 현장이 흔들리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청령포가 지금 필요한 것은 ‘많이 오는 관광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안심하고 찾는 관광지’라는 신뢰를 쌓는 일이다. 영월의 봄 관광이 반짝 흥행에 그치지 않으려면, 그 시작 역시 도선의 속도보다 안전의 기준이 먼저여야 한다. 영화가 한 장소를 다시 살려내는 순간은 흔치 않다. 그러나 그 관심을 오래가는 여행으로 바꾸는 일은 결국 현장의 몫이다. 청령포가 지금 보여주는 장면은 분명하다. 사람은 늘었고, 풍경은 다시 주목받고 있으며, 행정은 그 사이를 메우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강물 위 도선 한 척이 오가는 짧은 시간이, 영월 관광의 다음 계절을 가를 수도 있다.
-
- 여행종합
- 테마여행
-
영월 청령포, 사람 몰리자 먼저 점검했다
-
-
양평역에서 걸어서 ‘바르비종’으로…양평군립미술관, 160만이 다녀간 이유
- [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양평에 가면, 풍경이 먼저 말을 건다. 남한강 물길이 반짝이고 산자락이 뒤에서 등을 받친다. 그런데 이 동네가 ‘그림 같은 곳’에서 그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양평군립미술관이 그 중심에 서 있다. 2025년 말 기준 누적 관람객이 160만 명을 넘겼다. “지방 미술관은 어렵다”는 말을, 이곳은 15년 동안 차근차근 반박해왔다. 양평은 인구 대비 예술인이 많이 사는 곳으로 자주 언급된다. 어떤 이는 파리 근교 예술가 마을에 빗대 ‘한국의 바르비종’이라 불렀다. 미술관은 그 말의 구심점처럼 지역 예술가와 여행자를 이어주는 역할을 자처한다. 특히 경의중앙선 양평역에서 걸어서 닿을 수 있다는 접근성이 크다. 차가 없어도 반나절 문화 산책이 가능하다. 미술관은 전시실과 교육실, 어린이 체험 공간, 도서실과 수장고까지 갖췄다. 내부가 단정하게 짜여 있어 가족 관람객도 부담이 적다. 야외에는 ‘빗물’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시선을 붙잡는다. 일본 조형 작가 세키네 노부오가 설계하고, 양평의 돌을 쌓아 만든 작품이다. 미술관 앞마당에서부터 “전시는 이미 시작됐다”는 느낌이 든다. 올봄의 하이라이트는 전국 미술대학 유망작가전 ‘무엇이 보이는가’다. 3월 14일부터 5월 10일까지, 서울·경기·인천권 대학을 포함한 여러 학교에서 추천된 59명의 젊은 작가가 120점을 선보인다. 제목은 단순하지만 질문은 크다. 무엇을 보고, 어떻게 말할 것인가.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요즘’이라는 단어가 구체적인 표정으로 바뀐다. 회화와 설치, 다양한 매체가 한 전시장 안에서 서로 다른 속도로 현실을 비추고, 관람객은 그 틈에서 자기 시선을 점검하게 된다. 여행 코스는 어렵지 않다. 전시를 보고 난 뒤 조금만 걸으면 남한강변이 열린다. 미술관에서 받은 자극을 강바람에 식히며 산책하기 좋다. 더 욕심이 나면 ‘더그림’이나 ‘이함캠퍼스’로 이어가도 되고, 시간이 넉넉하다면 두물머리까지 하루를 늘려도 된다. 양평의 장점은 “문화가 자연을 가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전시를 보고 나와도, 풍경이 바로 다음 페이지처럼 이어진다. 양평군립미술관이 ‘가볼 만한 곳’으로 자리 잡은 이유는 화려한 한 방이 아니라, 문턱을 낮추는 꾸준함이었다. 역에서 걸어 들어가 전시를 보고, 강변으로 흘러나오는 동선까지—이곳은 여행자에게 “문화가 있는 쉬는 법”을 제안한다. 3월, 양평에서 가장 근사한 질문은 어쩌면 이것이다. 당신은 오늘, 무엇이 보였나. [여행정보] 주소: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문화복지길 2 문의: 031-775-8515 운영시간: 10:00~18:00 (매주 월요일 휴무) 이용요금: 성인 1,000원, 청소년 700원 홈페이지: https://www.ymuseum.org/home/
-
- 여행종합
- 테마여행
-
양평역에서 걸어서 ‘바르비종’으로…양평군립미술관, 160만이 다녀간 이유
-
-
책장을 넘기는 건물…파주 미메시스아트뮤지엄
- [트래블아이=문소지 기자] 미메시스아트뮤지엄을 보고 나오면 이상한 착각이 든다. 전시를 한 번 본 게 아니라, 전시를 두 번 보고 나온 것 같다는 느낌. 작품을 보고, 다시 건물을 봤기 때문이다. 파주 출판도시의 가장 조용한 구간에 서 있는 이 미술관은 ‘빛·건축·예술’이 한 덩어리로 움직이는 공간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관람은 눈만이 아니라 몸 전체로 시작된다. 설계자는 세계적인 건축가 알바루 시자(Álvaro Siza). ‘건축의 마지막 거장’이라는 말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단단한 콘크리트를 마치 종이처럼 휘게 만들고, 그 곡선을 따라 시간의 빛이 스민다. 외부에서는 회백색 덩어리 두 개가 날개처럼 좌우로 벌어져, 멀리서 보면 책장을 넘기는 장면 같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직선과 곡선이 맞물리며 ‘정지된 조각’이 아니라 ‘움직이는 장면’이 된다. 실내는 더 극적이다. 새하얀 전시공간은 자연광을 끌어들여, 아침과 오후가 서로 다른 표정을 만든다. 같은 벽, 같은 바닥인데도 빛의 각도가 바뀌면 공간의 깊이가 달라진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작품을 보기 전에 빛을 보게 되고, 빛을 보다 다시 작품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 미술관의 조명은 계절이다”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미메시스는 2005년 열린책들이 만든 예술 전문 브랜드이기도 하다. 1층 북카페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만으로도 이곳의 성격이 읽힌다. 바쁘게 소비하기보다, 천천히 감각을 정리하는 장소. 그래도 ‘기억’을 남기고 싶다면 포토 스폿을 따라가보자. 미메시스의 얼굴, 날개, 캔버스, 전망대, 중심이라 불리는 다섯 지점은 건축의 특징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3층에서 두 날개의 중심부를 내려다보면 곡면과 직각, 예각이 겹쳐진 기하학이 한 프레임에 담긴다. 3월 22일까지 이어지는 기획전 ‘DRAMA’는 서동욱·서상익·윤미류 세 작가의 작품을 통해, 회화 속 인물이 감정과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탐구한다. 인물의 표정과 거리, 배치가 만든 긴장감이 건축의 선과 만나면서 전시는 더 ‘입체’가 된다. 작품이 공간을 바꾸고, 공간이 작품의 리듬을 바꾼다. 연계 여행은 가볍게 잡는 편이 좋다. 미술관의 여운이 긴 편이라, 열화당책박물관·지혜의숲·헤이리예술마을을 ‘가까운 다음 장’처럼 붙이면 딱이다. 파주는 멀리 가서 얻는 감동이 아니라, 가까이서 오래 바라봐서 생기는 감동을 아는 도시다. 미메시스아트뮤지엄의 매력은 “멋있다”에서 끝나지 않는다. 콘크리트는 차갑다는 편견이 곡선 앞에서 풀리고, 전시는 조명으로 만든다는 상식이 자연광 앞에서 흔들린다. 전시를 보고도 건축이 더 오래 남는 날, 여행은 한 겹 더 깊어진다. 3월, 파주에서 ‘건물 자체가 작품’인 미술관을 찾는다면 이곳이 가장 설득력 있다. [여행정보] 주소: 경기 파주시 문발로 253문의: 031-955-4100 운영시간: (동절기) 10:00~18:00 / (하절기) 10:00~19:00, 월·화요일 휴무이용요금: 성인 10,000원 / 청소년(14~18세) 7,000원 홈페이지: www.mimesisartmuseum.co.kr
-
- 여행종합
- 테마여행
-
책장을 넘기는 건물…파주 미메시스아트뮤지엄
-
-
“나도 그리겠네” 했다가 멈춘다…양주 장흥계곡, 장욱진 미술관
- [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처음엔 누구나 방심한다. “저 정도 선은 나도 그을 수 있겠다”는 마음의 소리가 슬쩍 새어 나온다. 그런데 한 걸음만 더 가까이 가면, 그 단순한 선 위로 까치가 날고 소가 울고, 집 안에 사람 냄새가 스민다. 장욱진을 다시 만나는 순간은 늘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그는 산과 나무, 새와 달을 과감히 간추렸고, 덜어낸 자리에서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남겼다. 군더더기 없는 글이 오래 남듯, 그의 그림도 오래 남는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은 장흥계곡의 품에 들어앉아 있다. 일영봉·형제봉·수리봉이 둘러싼 산자락, 매표소를 지나면 드넓은 조각공원이 먼저 길을 연다. 공원은 ‘전시장으로 들어가기 전의 전시’ 같다. 석현천 위 아치형 구름다리를 건너 미술관에 닿는 동선도 인상적이다. 건물은 호랑이가 산속에서 편안히 누운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장욱진의 대표작 ‘호작도’에서 모티프를 얻었다는 설명을 듣고 나면, 그 곡선이 갑자기 생명처럼 느껴진다. 미술관 내부는 한 번에 읽히지 않는다. 1층은 중정을 중심으로 작은 방들이 이어지고, 2층은 다락방처럼 아늑하다. 무심코 걷다 보면 특별함을 놓치기 쉽다. 이곳은 눈높이를 잠깐 ‘하늘에서 내려’야 비로소 보이는 미술관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건축 모형이 전시돼 있어 공간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꼭 멈춰야 할 작품이 있다. 장욱진이 덕소 작업실 부엌에 그려두었던 벽화를 떼어내 전시장으로 옮긴 ‘식탁’과 ‘동물가족’ 앞이다. 크지 않은 화면인데도, 이상하게 시간이 늦게 간다. 오래 머물러도 아깝지 않다. 여행자에게 장흥은 “산책이 다 해주는 동네”다. 미술관을 나와 계곡 쪽으로 천천히 걸으면 바람 소리와 물소리가 그림의 여운을 붙잡아준다. 길 건너편 양주시립민복진미술관은 추가요금 없이 함께 볼 수 있어, 하루 일정이 자연스럽게 ‘두 개의 미술관’으로 확장된다. 조금 더 욕심이 나면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 장흥자생수목원, 권율장군묘까지 묶어도 좋다. 봄의 장흥은 멀리 나가지 않아도, 충분히 멀리 온 기분을 준다. 장욱진의 그림은 대단한 기술을 과시하지 않는다. 대신 “삶을 어떻게 단순하게 바라볼 것인가”를 묻는다. 장흥계곡 한복판의 미술관은 그 질문을 조용히 건네는 장소다. 3월, 산과 물 사이에서 한 줄의 선을 오래 바라보다가 돌아오는 길. 그날의 여행은 ‘많이 본 날’이 아니라 ‘깊게 본 날’로 기억될 것이다. [여행정보] 주소: 경기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193 문의: 031-8082-4245 운영시간: 10:00~18:00, 월요일 휴무 이용요금: 성인 5,000원 / 어린이 1,000원 홈페이지: www.yangju.go.kr/changucchin/index.do
-
- 여행종합
- 테마여행
-
“나도 그리겠네” 했다가 멈춘다…양주 장흥계곡, 장욱진 미술관
-
-
산속에 숨은 ‘음악 미술관’…과천 K&L뮤지엄
- [트래블아이=문소지 기자] 과천의 ‘뒷골’은 이름부터 한 발 물러서 있다. 우면산·관악산·청계산 능선이 빙 둘러친 골짜기. 도시 소음이 끝나는 지점에서 K&L뮤지엄은 느린 속도로 관람객을 맞는다. 건물은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는 단정하지만,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공기가 달라진다. 이곳의 전시는 눈으로만 보지 않는다. 귀가 함께 걷는다. K&L 컬렉션의 바탕에는 ‘음악’이 있다. 전시장 벽면에는 바그너의 오페라 ‘발퀴레’가 흐르고, 관람객은 화면과 소리 사이를 오가며 작품을 읽게 된다. 조용한 공간에서 음악은 배경이 아니라 길잡이다. 그림의 색이 소리에 반응하고, 조각의 질감이 리듬을 타는 듯하다. “미술관이 이렇게 또렷해질 수 있나” 싶은 순간이 몇 번씩 온다. 올해는 개관 3주년. 이를 기념해 24명의 국내외 작가 작품을 모은 ‘K&L 뮤지엄 소장품전’이 4월 12일까지 이어진다. 소장품전은 미술관의 성격을 가장 정직하게 드러낸다. 어떤 작가를 선택했고, 어떤 결을 오래 붙잡아왔는지—그 축적이 한 전시로 드러난다. 거창한 설명 없이도 “이 미술관은 이런 세계를 좋아한다”는 말이 전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읽힌다. 여행자에게 좋은 이유는 ‘속도’다. K&L은 붐비는 동선이 아니라, 감상을 천천히 이어가도록 짜인 곳이다. 더 깊게 보고 싶다면 큐레이터 팀이 직접 진행하는 프라이빗 투어를 예약해도 좋다. 작품을 ‘많이’ 보는 대신, 몇 점을 ‘오래’ 보게 만드는 방식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아니라, 오래 볼수록 보이는 것이 생긴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전시를 본 뒤에는 2025년 문을 연 자매 공간 K&L 라이브러리로 발길을 돌려보자. 달리·피카소·미로·고야 등 19~20세기 스페인 거장들의 판화를 집중 조명하는 전시가 이어지고, 음료와 와인을 곁들일 수 있어 ‘관람의 여운’을 부드럽게 늘려준다. 미술관 관람객에게는 할인 혜택도 있다. 산으로 둘러싸인 자리에서 음악과 작품을 마주하고, 책과 판화로 한 번 더 숨을 고르는 코스. 하루가 과하게 채워지지 않으면서도 밀도가 남는다. 연계 여행도 어렵지 않다. 가까운 렛츠런파크 서울, 국립과천과학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을 묶으면 “산속의 미술관—도시의 문화시설”을 오가는 반나절 일정이 된다. 과천은 의외로 ‘문화가 촘촘한 도시’다. K&L은 그 촘촘함을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보여주는 곳이고,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다. 큰 미술관이 주는 스펙터클이 아니라, 작은 미술관이 주는 ‘집중’이 필요할 때가 있다. K&L뮤지엄은 그 집중을 음악으로 도와준다. 산이 둘러싼 뒷골에서, 눈과 귀가 동시에 열리는 경험. 4월 12일까지 이어지는 소장품전은 봄의 속도를 늦추기에 딱 맞는 이유가 된다. [여행정보] 주소: 경기 과천시 뒷골2로 19 문의: 0507-1421-8116 운영시간: 10:00~18:00, 월요일 휴무 이용요금: 성인 6,000원, 청소년 3,000원 홈페이지: https://www.kandlmuseum.com
-
- 여행종합
- 테마여행
-
산속에 숨은 ‘음악 미술관’…과천 K&L뮤지엄
-
-
TV가 숲이 됐다…용인 백남준아트센터 ‘TV정원’
- [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용인 기흥구에 들어서면 길 이름부터 낯익다. ‘백남준로’. 그 끝에서 백남준아트센터는 거울을 겹겹이 두른 얼굴로 서 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건물은 풍경을 비추고, 풍경은 다시 관람객을 비춘다. 2026년은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백남준 서거 20주기. 아트센터는 이 시간을 단순한 추모가 아니라, 그의 예술을 “누구나 접근 가능한 공공재”로 다시 읽는 계기로 삼는다. 백남준은 1963년 텔레비전의 내부 회로를 변조한 작품으로 미디어 아티스트의 길을 열었다. 브라운관은 그에게 화면이 아니라 조형 재료였다. 영상은 조각과 설치를 만나 입체가 되었고, 기술은 예술의 문법이 되었다. 스스로 비디오 신디사이저를 개발하며 ‘편집 가능한 시간’을 손에 쥐었고, 음악과 신체, 우연과 놀이를 끝까지 실험했다. 그가 남긴 것은 작품만이 아니라 “새로운 감각의 사용법”이었다. 관람의 첫 장면은 1층에서 시작된다. 대표작 ‘TV정원’은 화면이 빛을 내뿜는 대신 식물과 함께 숨을 쉰다. 관객은 조용히 걷다가, 어느 순간 스피커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와 초록의 질감에 발을 멈춘다. 2층에는 백남준의 뉴욕 작업실을 재현한 ‘메모라빌리아’가 있다. 낡은 메모, 기계 부품, 비디오 장비들이 그대로 놓여 있어, 거장의 작업이 실은 수많은 ‘손의 흔적’ 위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3월 19일부터는 자그레브 현대미술관과 공동기획한 전시 ‘불연속의 접점들’이 문을 연다. 불연속처럼 보이는 역사와 미디어의 흐름이 어떻게 다시 연결되고, 어떤 방식으로 오늘의 감각에 닿는지 묻는 자리다. 개막일에는 공연도 예정돼 전시의 ‘첫 호흡’을 현장에서 함께할 수 있다. 전시장을 다 보고도 아쉽다면, 온라인에 구축된 방대한 비디오 아카이브로 집에서도 계속 이어볼 수 있다. 낯설었던 현대미술은 여기서 ‘설명’보다 ‘체험’으로 가까워진다. 백남준아트센터의 가장 좋은 계절은, 사실 “산책이 가능한 달”이다. 센터 앞에서 경기도박물관과 경기도어린이박물관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으면 봄빛이 전시의 여운을 밖으로 꺼내준다. 미술관 여행은 대단한 지식이 아니라, 천천히 보는 습관에서 시작된다. 화면이 조각이 되고, 소리가 풍경이 되는 곳. 3월, 용인에서 백남준을 만나는 일은 ‘예술을 이해하는 여행’이 아니라 ‘감각을 새로 켜는 여행’이다. [여행 정보] 주소: 경기 용인시 기흥구 백남준로 10 운영: 10:00~18:00(입장마감 17:00) / 월요일 휴관 문의: 031-201-8500 관람료: 무료
-
- 여행종합
- 테마여행
-
TV가 숲이 됐다…용인 백남준아트센터 ‘TV정원’
-
-
3월에 가기 좋은 곳: 안산 경기도미술관 20주년 산책
- [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3월의 안산은 바람이 먼저 연해진다. 화랑유원지로 들어서면 호수 가장자리를 따라 걷는 발걸음이 느려지고, 정중앙에 자리한 경기도미술관이 시야를 채운다. 제2주차장 쪽에서 미술관을 바라보면 거대한 반투명 유리벽과 경사진 지붕을 떠받치는 구조물이 배의 돛대처럼 서 있다. 물가에 정박한 배처럼, 이 건물은 지난 20년 동안 ‘정원 한복판의 미술관’으로 시민의 시간을 받아왔다. 미술관 문을 열고 들어서면 1층 로비의 프로젝트 갤러리가 먼저 관람객을 맞는다. 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회화는 멈칫하게 만든다. 이상남 작가의 ‘풍경의 알고리듬’은 하얀 바탕 위로 원과 직선이 교차하며 삶의 리듬과 사회의 풍경을 동시에 껴안는다. 또 하나의 상징은 어린이 벽화 ‘5만의 창, 미래의 벽’이다. 수많은 아이들의 꿈과 손길이 모여 완성된 화면은 “이곳이 지역의 미술관”임을 단번에 보여준다. 올해 미술관은 개관 20주년을 맞아 특별전 ‘흐르고 쌓이는’(3월 26일~6월 14일)을 연다. 소장품 125점을 꺼내 지난 시간을 되짚고, 앞으로 무엇을 질문할지 제시하는 전시다. 수장고의 작품은 흔히 ‘보관된 과거’로 오해되지만, 미술관이 꺼내어 다시 걸어두는 순간 현재가 된다. 전시는 그 단순한 사실을 정면으로 보여준다. 익숙한 작품도, 처음 보는 작품도 결국 한 가지 방향으로 관람객을 끌고 간다.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무엇이 쌓였나”라는 질문이다. 20주년은 전시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3월에는 야외조각공원을 무대로 한 봄봄봄 프로젝트 ‘폼폼폼’이 먼저 관람의 리듬을 열고, 관객 참여형 전시 ‘지모마커넥트’ 등 연중 다섯 개 전시가 순차적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산책하듯 들어왔다가, 참여하듯 머물다 나가게 만드는 구성이다. 미술관은 조용히 ‘여행의 방식’을 바꾼다. 보는 것에서, 걷는 것으로. 걷는 것에서, 질문하는 것으로. 여행 팁도 있다. ‘경기도미술관 전시안내’ 앱을 내려받으면 실내·외 상설 작품 해설을 음성·화면·수어로 확인할 수 있어, 동행의 속도와 취향이 달라도 각자 편하게 관람을 이어갈 수 있다. 전시를 본 뒤에는 연계 코스를 붙이기 좋다. 안산산업역사박물관에서 도시의 산업 시간을 훑고, 김홍도미술관에서 ‘안산의 예술 뿌리’를 만나거나, 대부도 방향으로 넘어가 경기해양안전체험관에서 바다 안전을 체험하는 동선도 무리가 없다. 경기도미술관의 20년은 거창한 기념이 아니라, 시민이 일상 속에서 예술을 ‘한 번 더’ 만난 횟수의 합이다. 화랑호수의 물빛이 흔들리는 오후, 유리 돛대 아래에서 작품을 보고 나오면 산책의 결이 달라진다. 3월에 안산을 간다면, 이 미술관은 “전시를 보러 가는 곳”을 넘어 “하루의 속도를 바꾸는 곳”이 된다. [기본정보] 위치: 경기 안산시 단원구 동산로 268(화랑유원지) 운영: 10:00~18:00(마지막 입장 17:00), 월요일 휴관(공휴일 예외) 관람료: 무료(전시에 따라 변동 가능) / 문의: 031-481-7000
-
- 여행종합
- 테마여행
-
3월에 가기 좋은 곳: 안산 경기도미술관 20주년 산책
-
-
달이 붉게 물든 밤, 경주 안강은 한마음이 됐다…칠평천 달집태우기 여행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강바람이 먼저 달을 데려온다. 경주 안강읍 칠평천 둔치에 서니, 사람들의 숨결이 모여 밤의 온도를 조금씩 올리고 있었다. 정월대보름(3월 3일) 밤, 달은 유난히 붉어졌고—그날 안강은 ‘동네 축제’라는 말을 새로 증명했다. 안강읍 애향단체 안맥회(회장 이해성)가 마련한 ‘제19회 시민 한마음 문화축제’에는 읍민 1000여 명이 모였다. 달집태우기를 중심에 두고 척사대회(윷놀이), 읍민 재능기부 색소폰 연주, 축하공연, 떡국 나눔이 촘촘히 이어졌다. 행사장 한쪽에서는 국물이 끓는 김이 피어올랐고, 다른 한쪽에서는 윷판의 환호가 터졌다. 아이들은 불빛을 따라 뛰었고, 어른들은 “올해는 덜 아프자” “집안이 평안하자” 같은 말로 서로의 소원을 대신 적어주었다. 행사의 뼈대는 ‘기원제’였다. 관공서와 기관·사회단체장, 주민들이 함께 모여 지역의 안녕과 건강을 빌었다. 이어 달집 앞에 걸린 소원문이 바람에 흔들릴 때, 누군가는 손을 모으고 누군가는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둥근 달을 매개로 공동체가 다시 연결되는 순간이다. 정월대보름이 농경사회에서 풍년과 마을의 평안을 빌던 세시풍속이었다면, 오늘의 달집태우기는 ‘이웃의 안부를 확인하는 의식’에 가깝다. 한 번 끊어진 관계를 다시 잇는 건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같은 떡국 그릇을 나누는 일부터 시작되니까. 올해는 하늘의 사건도 행사의 분위기를 밀어 올렸다. 보름달이 붉게 보이는 ‘붉은 달’ 현상이 겹치며, 칠평천 둔치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더 자주 하늘로 향했다. 달집의 불꽃이 위로 치솟고, 그 뒤편에서 달빛이 어둠의 결을 바꿔놓는 장면은 사진보다 기억에 오래 남는다. 무엇보다 눈에 띈 건 안전이었다. 건조하고 바람 센 날이 잦아 산불 위험이 커진 요즘, 안맥회와 여러 사회·자생단체가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소방·경찰·지자체가 협조해 비상 대응체계를 갖췄다. 불을 다루는 축제일수록 ‘괜찮겠지’ 대신 ‘확인하자’가 먼저여야 한다는 걸, 현장은 알고 있었다. 안맥회는 1989년 설립된 안강읍 대표 애향단체다. 50세 이상 회원들로 구성된 특우회도 위문금 전달, 연탄 나눔, 환경정화 등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해성 회장은 “참여와 협조 덕분에 안전하고 뜻깊게 마무리했다”고 했고, 주낙영 경주시장은 “안강의 달집태우기가 지역 대표 전통문화 행사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말은 짧았지만, 그날 둔치에 모인 사람들의 표정이 이미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여행자는 보통 ‘볼거리’를 찾아 움직이지만, 안강의 대보름은 ‘사람’을 보러 가는 자리였다. 달집이 타오르는 몇 분 동안, 각자의 근심은 불꽃 속으로 접혀 들어가고 대신 “잘 지내자”는 인사가 남는다. 경주가 천년의 시간을 품은 도시라면, 안강의 대보름은 오늘의 시간을 서로에게 건네는 방식이었다. 내년에도 달은 뜰 것이다. 다만 그 달을 함께 바라보는 사람이 곁에 있느냐가, 여행의 감도를 바꾼다.
-
- 여행종합
- 축제여행
-
달이 붉게 물든 밤, 경주 안강은 한마음이 됐다…칠평천 달집태우기 여행
실시간 여행종합 기사
-
-
20주년 맞은 평창송어축제… 체험·전시·휴식 확대한 겨울 대표 축제
- [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강원 평창의 겨울을 대표하는 평창송어축제가 20주년을 맞아 한층 확장된 모습으로 돌아온다. 얼음낚시를 넘어 전시와 문화, 휴식 콘텐츠까지 품으며 체험형 겨울 축제로의 진화를 이어간다.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천 일원에서 열리는 '평창송어축제'가 2026년 1월 9일부터 2월 9일까지 32일간 진행된다. 20주년을 맞은 올해 축제는 체험과 문화 콘텐츠를 강화해 겨울 관광의 폭을 넓힌다는 계획이다. 매서운 추위와 맑은 수질을 바탕으로 성장해 온 평창송어축제는 단순한 계절 행사를 넘어 지역경제를 이끄는 대표 겨울 축제로 자리 잡았다. 2007년 시작된 이 축제는 2006년 수해로 침체된 지역을 살리기 위한 주민들의 자발적 움직임에서 출발했다. 산꽃약풀축제위원회를 개편해 송어를 중심으로 한 겨울 축제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 현재의 평창송어축제다. 초기에는 십시일반 모은 예산과 자원봉사로 운영됐지만, 해마다 규모가 커지며 지역 참여 기반의 축제로 성장했다. 축제는 매년 약 6000여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고, 2025년에는 약 931억 원의 경제 효과를 기록하며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해 왔다. 올해 축제는 이상 고온 영향으로 개막을 1월 1일에서 1월 9일로 조정했다. 장소는 예년과 같은 오대천 평창송어축제장이다. 먹거리촌은 기존 비닐하우스 대신 막 구조 건물로 개선돼 추위 속에서도 보다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다. 슬로건은 ‘겨울이 더 즐거운 송어 나라, 평창’. 얼음낚시와 텐트 낚시, 맨손 잡기, 실내 낚시 등 대표 프로그램을 유지하면서 전시와 휴식 콘텐츠를 확대했다. 텐트 낚시는 2인용 텐트 250동이 마련돼 가족 단위 방문객의 편의를 높였다. ‘황금 송어를 잡아라’ 이벤트는 얼음·텐트 낚시 참가자를 대상으로 진행되며, 황금 송어를 잡으면 순금 반 돈으로 제작된 기념패가 주어진다. 낚시 초보자를 위한 무료 낚시 교실도 운영된다. 여성 낚시 프로 최운정 씨가 상주하며 현장 자원봉사 도우미들과 함께 참가자를 돕는다. 맨손 잡기는 평일 2회, 주말 3회 진행돼 축제의 이색 장면을 만들어낸다. 겨울 레포츠도 강화됐다. 눈썰매와 스노우 래프팅, 수륙양용차 ‘아르고’ 체험에 더해 어린이용 회전 눈썰매가 새롭게 추가됐다. 20주년 기념 전시 ‘얼음 위에 쓴 희망의 서사시’는 축제의 성장 과정을 한눈에 보여준다. 1월 19일부터 25일까지는 포켓몬GO와 협업한 이벤트가 열려 축제장이 게임 속 겨울 모험 공간으로 변신한다. 진부 당귀를 활용한 족욕 체험과 K-찜질방, 보이는 라디오 등 휴식 콘텐츠도 마련됐다. 잡은 송어는 현장에서 회나 구이로 즐길 수 있다. 대형 송어구이 통은 먹거리촌의 상징적인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평창송어축제의 스무 해는 한 지역이 겨울을 관광 자산으로 만들어 온 시간이다. 얼음 위에서 시작된 이 축제는 체험과 문화, 휴식을 아우르는 겨울 여행의 장으로 확장되고 있다. 평창의 겨울은 여전히 차갑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해마다 더 단단해지고 있다.
-
- 여행종합
- 축제여행
-
20주년 맞은 평창송어축제… 체험·전시·휴식 확대한 겨울 대표 축제
-
-
‘2025 광화문 마켓’ 역대 최고 흥행...357만 명이 만든 마켓의 기록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서울의 겨울이 가장 빛난 자리, 광화문광장이 다시 기록을 썼다. 서울관광재단은 지난해 12월 12일부터 31일까지 20일간 열린 ‘2025 광화문 마켓’이 총 357만 명의 방문객을 기록하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는 전년 대비 118% 증가한 수치로, 2022년 첫 개최 이후 최고 흥행이다. 올해 마켓은 ‘겨울동화 속 산타마을’을 주제로 꾸며졌다. 개막과 동시에 인파가 몰리며 운영시간은 매일 밤 10시까지 연장됐고, 마지막 날인 31일에는 다음 날 새벽 1시까지 특별 운영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크리스마스 시즌(12월 21~25일)에만 100만 명 이상이 찾으며 성탄 시즌 최고의 축제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현장은 참여형 콘텐츠로 살아 움직였다. 크리스마스 소원 분수대, 무료 네컷 사진, 산타클로스와의 사진 촬영, 소망 편지 보내기 등 체험 프로그램이 연일 이어졌다. 가장 큰 인기를 끈 것은 4곳의 포토존 스탬프 투어를 완료하면 탑승할 수 있는 ‘루돌프 회전목마’. 요정의 집, 산타마을 동화책, 행운의 목마, 거울 포토존 등 10곳이 넘는 포토존이 소셜 미디어를 달궜다. 경제적 성과도 뚜렷했다. 45개 부스에서 3개 시즌으로 운영된 135개 소상공인 팀과 기획부스는 하루 평균 약 4시간의 운영에도 총 1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부스 규모가 줄었음에도 부스당 평균 매출은 5400만 원으로, 전년 대비 87% 이상 증가했다. 축제가 지역 상권과 상생하는 모델임을 입증한 셈이다. 파트너십 역시 확장됐다. 월트 디즈니 코리아의 영화 ‘아바타: 불과 재’, 바버, 네스프레소 등 3개 브랜드가 협업해 특별 포토존과 체험 프로그램을 선보였고, 방문객과의 직접 소통으로 브랜드 가치를 자연스럽게 전달했다. 유엔난민기구, 옥스팜 코리아, 소상공인진흥공단, 해남문화관광재단, 안동시 등 민간·공공 파트너 부스도 참여해 공익과 지역 홍보를 동시에 펼쳤다. 올해는 ‘산타마을 초대전’이 확대돼 먹거리와 굿즈의 완성도를 높였다. 독일 전통 소시지와 비프파이를 선보인 ‘블루메쯔’, ‘웅파이’, 지역 농가와 협업한 ‘서로장터’, 초청 작가들의 콜라보 굿즈까지 더해져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풍성했다. 길기연 대표이사는 “357만 명이라는 역대 최고 방문객으로 축제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며 “광화문 마켓이 서울을 대표하는 겨울 축제로 더 성장하도록 다방면의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겨울동화가 현실이 된 광화문, 그 장면은 내년을 다시 기다리게 한다.
-
- 여행종합
- 테마여행
-
‘2025 광화문 마켓’ 역대 최고 흥행...357만 명이 만든 마켓의 기록
-
-
경기관광공사가 추천하는 노포 6선...오래된 가게들이 건네는 느린 위로
- [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전문 빠르게 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한 자리를 지켜온 가게들이 있다. 경기도 곳곳의 노포들은 단지 오래된 식당이나 빵집이 아니라, 지역의 기억과 손맛을 이어온 살아 있는 기록이다. 아침마다 오븐을 여는 김포의 제과점, 새벽부터 사골을 끓여내는 수원 시장의 순댓집, 70년을 견뎌온 파주의 중화요리 집, 색감 있는 면으로 동네 입맛을 지킨 안산의 칼국수집, 한옥에서 스키야끼를 내는 양평의 작은 공간, 가족의 삶이 깃든 이천의 전골집까지. 이들은 변화를 쫓기보다 자기 일상의 리듬을 지키며 손님을 맞는다. 접시에 담긴 한 그릇, 진열대의 빵 한 조각이 주는 위로는 시대를 버티게 하는 힘이다. 김포 사우동 ‘쉐프부랑제’는 오전 8시 오픈과 함께 갓 구운 빵 냄새로 동네를 깨운다. 전북 고창 출신 이병재 대표는 군산 이성당 등 여러 빵집을 거쳐 2002년 김포에 정착했다. 현재 100여 종의 빵을 만드는 이 집은 쌀단팥빵, 피칸이 듬뿍인 엘리게이터, 당근크림치즈파운드가 특히 인기다. 진열대는 오전 중에 빠르게 비는 편이라 가능한 한 일찍 방문하길 권한다. 사우프라자 지하주차장 이용이 편하고, 대중교통은 김포시청·사우역 인근에서 접근 가능하다. 수원 지동시장 ‘호남순대’는 새벽 4시부터 문을 연다. 1980년대 중반부터 이어져 온 이 집의 순댓국밥은 돼지뼈만으로 우려낸 진한 사골 육수가 특징이다. 순대곱창볶음은 당면과 채소가 어우러진 매콤한 맛으로 술안주와 식사 모두에 잘 어울린다. 시장의 소리와 냄새 속에서 한결같이 음식을 내놓는 광경은 오래된 시장의 정취를 전한다. 수원역·팔달문 인근이라 접근성이 좋고, 아침 시간대에 시장의 활기를 함께 느끼기 좋다. 파주 금촌 ‘덕성원’은 1954년 문을 연 뒤 70년 가까이 지역의 중화요리를 지켜왔다. 벽면의 흑백사진은 이 집의 긴 시간을 증언한다. 냉동 해산물을 쓰지 않는 원칙과 싱싱한 채소 고집은 짬뽕과 짜장을 오래 사랑받게 한 비결이다. 금촌역에서 도보로 5분 내외라 접근성이 좋고, 평일 브레이크타임을 피해 방문하면 여유롭게 식사할 수 있다. 안산 ‘이조칼국수’는 삼색면으로 유명한 곳이다. 흑미·콩가루·부추를 섞어 만든 면과 연안부두에서 공수한 조개로 우려낸 국물의 조화가 인상적이며, 보리밥은 칼국수가 나오기 전 입맛을 돋우는 존재다. 팥칼국수와 집에서 담근 김치는 계절 메뉴와 함께 이 집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주말 점심 시간대엔 대기 가능성이 있으니 시간을 고려해 방문하자. 양평 ‘사각하늘’은 북한강 인근 언덕 위 한옥에서 스키야끼와 다도 체험을 제공한다. 일본인 건축가가 한옥의 미를 살려 지은 공간에서 철판에 구운 채소와 얇은 소고기를 날달걀에 찍어 먹는 방식의 스키야끼를 맛볼 수 있다. 예약제로 운영하고 말차 체험을 병행하니 사전 예약은 필수다. 촛불과 자연광이 만드는 정적은 식사의 온도를 천천히 낮춰준다. 이천 ‘장흥회관’은 1982년부터 같은 자리에서 전골을 끓여온 곳으로, 창업주의 작은 시작이 가족의 삶과 맞물려 오늘까지 이어져왔다. 재료 준비와 국물 우림에 정성을 들이는 전골은 주문 시 미리 알리면 기다림 없이 맛볼 수 있다. 식사 후 이천시장의 소박한 풍경을 걸어보면 한 끼의 여운이 오래간다. 오래된 가게들이 건네는 느린 위로는 소중하다. 경기도 골목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 노포들은 그 자체로 여행지다.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다음 주말, 동네 오래된 가게 하나를 찾아보자. 익숙한 맛과 풍경이 하루를 더 든든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
- 여행종합
- 맛집여행
-
경기관광공사가 추천하는 노포 6선...오래된 가게들이 건네는 느린 위로
-
-
대한민국 겨울의 심장, ‘화천산천어축제’
- [트래블아이=문소지 기자] 차가운 겨울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계절, 강원도 화천이 다시 한번 대한민국 겨울의 심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매년 수많은 국내외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얼음나라 화천산천어축제’가 2026년 시즌의 문을 활짝 열 준비를 마쳤다. 1월 10일부터 2월 1일까지 23일간, 화천읍 화천천과 선등거리 일대는 오색찬란한 빛과 얼음의 향연으로 물들 예정이다. 축제 개막에 앞서 지난 12월 20일 저녁 6시, 화천읍 중앙로 일대의 선등거리에는 수많은 산천어등이 불을 밝히며 겨울밤을 환히 수놓았다. 이와 동시에 화천읍 서화산 다목적 광장에 조성된 실내얼음조각광장 또한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며 벌써부터 관광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다. 화천산천어축제의 핵심은 단연 '계곡의 여왕' 산천어와의 특별한 만남이다. 드넓게 펼쳐진 얼음판 위에서 즐기는 짜릿한 얼음낚시는 물론, 맨손으로 산천어를 잡는 이한치한(以寒治寒) 맨손잡이 체험은 화천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다. 온라인 사전 예약을 통해 편리하게 이용 가능하다. 미처 예약하지 못했더라도 현장 낚시터가 운영돼 아쉬움 없이 축제를 즐길 수 있다. 혹여 낮 시간 산천어와의 만남에 실패했더라도 밤낚시가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또한, 매년 10만 명이 넘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해 별도의 전용 낚시터와 편안한 쉼터를 마련해 국적을 불문하고 모두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축제의 장을 조성하고 있다. 산천어 체험 외에도 축제장 곳곳은 눈과 얼음을 만끽할 수 있는 다채로운 즐길 거리로 가득하다. 화천천을 가로지르는 눈썰매장은 40m 슬로프와 60m 얼음판을 시원하게 미끄러져 내려오며 잊지 못할 속도감을 선사한다. 전통 얼음썰매부터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가족형 얼음썰매까지, 추억 가득한 체험을 즐길 수 있다. 화천군은 매일 밤 꼼꼼한 정빙 작업을 통해 최상의 빙질을 유지하며 방문객들의 안전과 즐거움을 책임지고 있다. 회오리 모양 튜브를 타고 내려오는 ‘아이스 봅슬레이’는 스릴 넘치는 경험을 제공하며, 겨울 스포츠 존에서는 얼음 축구, 컬링, 피겨 스케이트 등 온몸으로 즐기는 겨울 스포츠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다. 축제장 상공을 가르는 하늘 가르기 체험은 지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며 방문객들의 오감을 만족시킨다. 특히 화천산천어축제는 세계 각국의 겨울 문화를 한곳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이색적인 기회를 제공하며 국내는 물론 외국인들에게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세계 3대 빙등 축제 중 하나로 꼽히는 중국 하얼빈 빙설대세계의 축소판이 서화산 다목적 실내 광장에 재현된다. 하얼빈 현지 최고 장인 30여 명이 직접 참여하여 얼음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이곳은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또한, 축제장 곳곳에 자리한 화려한 눈 조각 작품들은 삿포로 눈축제의 대형 조형물을 연상케 하며 환상적인 겨울 왕국을 연출한다. 핀란드 로바니에미 산타마을의 ‘리얼 산타’와 요정 ‘엘프’가 방문하는 산타우체국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선물하고, 캐나다 퀘백 윈터 카니발을 모티브로 한 선등거리 야간 페스티벌은 매 주말 밤을 화려하게 수놓으며 겨울밤의 낭만을 더한다. 화천산천어축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글로벌 축제로, 매년 해외 언론의 뜨거운 관심과 조명을 받고 있다. 2011년 CNN이 세계적인 여행 잡지 ‘론리 플래닛’을 인용하여 화천산천어축제를 ‘겨울철 7대 불가사의(7 wonders of winter)’로 소개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크게 상승했다. 지금은 연간 500건이 넘는 축제 관련 보도가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유럽 등지로 퍼져나가며 K-페스티벌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특히 화천군은 눈과 얼음을 경험하기 어려운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대상으로 ‘역발상 마케팅’을 펼쳐 성공을 거두었다. 현지 여행사들이 매년 수많은 단체 관광객을 화천으로 유치하며, 이는 매년 약 10만 명 안팎의 외국인 관광객 유치로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화천산천어축제의 성공 뒤에는 '안전과 타협하지 않는 원칙'이 자리 잡고 있다. 거대한 얼음판 위에서 동시에 수만 명이 오고 가는 만큼, 화천군과 (재)나라는 얼음판 컨디션 관리에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화천천 상류의 여수로를 통해 유속과 유량을 정교하게 조절하고, 얼음 두께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여 완벽한 빙질을 유지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다. 매일 수중 점검반이 투입되어 얼음 상태를 점검하며, 축제 상황실에서는 펌프 시설, 여수로, 배수로 등을 실시간 CCTV로 확인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 그러나 이 모든 축제의 성공 비결은 단순히 화려한 볼거리나 철저한 안전 관리뿐만이 아니다. 바로 축제를 '우리 모두의 축제'로 여기는 화천군민들의 남다른 애정과 강한 연대감이 바탕이 된다. 형식적인 참여를 넘어, 축제장 치안과 안전을 책임지는 경찰과 소방 공무원들, 깨끗한 환경을 조성하는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대학생 아르바이트생들까지, 이들 모두의 관심과 헌신이 모여 화천산천어축제를 더욱 빛나게 하고 있다. (재)나라 이사장으로서 축제를 총괄 지휘하는 최문순 화천군수는 “안전하고 즐거운 축제를 만들기 위해 단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며, “지난 1년간 이 축제를 기다려주신 관광객 여러분께 최고의 겨울 추억으로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한 의지를 밝혔다. 겨울의 한복판, 화천에서 펼쳐질 23일간의 짜릿한 얼음 여정을 기대해 본다.
-
- 여행종합
- 축제여행
-
대한민국 겨울의 심장, ‘화천산천어축제’
-
-
[최치선의 포토에세이] 제주 금오름의 비상
- 금오름 정상에 서면, 제주의 바람이 먼저 말을 건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곳에서는 풍경을 얻는다. 하늘을 가르는 패러글라이더의 곡선, 그 아래로 매달린 작은 인간의 실루엣이 바로 바람의 얼굴이다. 푸른 하늘을 캔버스 삼아 붉고 초록의 날개들이 천천히, 그러나 확신에 찬 궤적을 그린다. 발아래로는 억새가 물결친다. 가을을 닮은 은빛 억새는 금오름의 능선을 따라 숨을 고르듯 흔들리고, 그 너머로 제주의 바다는 끝없이 펼쳐진다. 육지와 바다, 하늘이 한 화면 안에서 겹겹이 포개지는 순간이다. 이곳에서는 풍경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시간마저 느리게 만드는 장치가 된다.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은 출발점이자 경계선이다. 땅을 박차는 순간, 사람은 중력을 잠시 내려놓고 바람에게 몸을 맡긴다. 날개 아래로 작아지는 오름과 마을, 점처럼 흩어지는 길들. 그 모든 것은 ‘멀어짐’이 아니라, 오히려 제주의 본질에 더 가까워지는 과정처럼 보인다. 금오름에서 바라본 하늘은 푸르렀고, 바다는 하늘을 닮아 파랗게 물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인간의 비행은, 제주의 자연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겸손해질 수 있는지를 조용히 일깨운다. 날아오르되 소유하지 않고, 바라보되 훼손하지 않는 여행. 금오름의 하늘은 오늘도 그런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
- 여행종합
- 국내여행
-
[최치선의 포토에세이] 제주 금오름의 비상
-
-
[우리술여행] 가평에서 만난 1인 양조가 정의현의 국도막걸리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가평 연인산과 명지산 자락, 물 맑은 하천을 끼고 자리한 국도양조장에는 유난히 고요한 시간이 흐른다. 이곳에서 정의현 대표는 지금도 혼자 막걸리를 빚는다. 쌀을 고르고, 네 번의 담금을 거쳐 술을 완성하는 전 과정이 그의 손을 거친다. 사람을 늘리기보다, 속도를 높이기보다, 그는 끝까지 ‘혼자 책임지는 방식’을 선택했다. “술은 결국 누가 어떻게 빚었는지가 남습니다. 손이 많아질수록 맛은 평균으로 가더라고요.” 정 대표의 말에는 지난 시간이 응축돼 있다. 가평산 멥쌀과 찹쌀, 우리밀로 만든 전통누룩, 토종 효모만을 사용하는 사양주. 인공감미료와 첨가물은 배제한다. 국도막걸리는 그렇게 가장 원초적인 방향으로만 나아간다. 11.5°는 요거트처럼 진득하고 농익은 단맛이 깊다. 9°는 균형과 매끄러움이 편안하고, 6°는 우유처럼 부드럽다. “얼음을 넣으면 술의 결이 또렷해집니다.” 이 고집은 우연에서 시작됐다. 스물넷, 고문헌을 바탕으로 빚은 전통주 연구가의 동동주 한 잔. 그날 이후 그는 15년을 전통주에 바쳤다. 민간 교육기관에서 전통주 공부를 시작해 전국의 술대회를 2년동안 섭렵한 그는 국립농업과학원에 들어가 전문연구원으로 8년간 전통주와 전통발효제, 한국와인연구에 매진했다. 또한 동시에 전북대 식품공학과에 진학해 석사학위를 받고 졸업했다. 정 대표는 그 시간 동안 전국의 술과 쌀을 몸으로 익혔다. “ 전문 연구원으로 일하며 대학을 다닐때에도 양조장과 제품의 구상을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쌀의 양조적성을 연구하면서 삼광쌀이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국도의 뼈대가 된 쌀이죠.” 본격적으로 양조장을 시작하기 위해 2019년 말에 연구원을 그만두고 가평으로 올라와 양조장을 준비한 정대표는 1년여간 직접 공사, 시공하며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만든 국도양조장을 21년 8월 오픈했다. 그렇게 시작한 국도막걸리는 가평을 찾는 여행자들에게 입소문을 타며 알려졌다. 그 결과 23년도 경기술페스타-경기주류대상에서 탁주 부문 대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상을 목표로 하진 않았어요. 다만 그간의 노력이 인정받는 것 같아 기뻤습니다.” 그 수상은 국도막걸리가 취향이 아닌 ‘완성도’로 인정받았다는 증명이었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정 대표는 양조장의 시작부터 술을 빚는 양조가에 머무르지 않고 직접 상품화를 시작했다. 국도(麴稻)라는 이름의 의미를 정리하고 로고 디자인을 기획하고, 병 라벨과 패키지 굿즈의 디자인까지 모두 직접했다. “술이 소비자에게 닿는 순간까지가 양조라고 생각합니다. 철학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려면 직접 할 수밖에 없었어요.” 가평군청과 가평농업기술센터의 지원으로 꾸준히 설비를 확장하고 지자체가 성심껏 준비한 지역 축제의 농민 장터를 통해 폭넓은 소비자와 만났다. 국도양조장의 성장에 지자체가 큰 도움이 되었다고 정 대표는 말했다. 국도막걸리를 꾸준히 찾는 이들 대부분은 가평을 여행하다 우연히 이 술을 만난 사람들이다. 로컬의 시간과 손맛이 전국으로 퍼져나간 셈이다. 정 대표는 앞으로 체험 양조장, 막걸리와 어울리는 스모크 하우스, 가평의 자두와 사과로 확장하는 증류주 구상까지 하고 있다. “막걸리는 아직 보여줄 게 많습니다. 이 술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끝까지 보고 싶어요.” 정의현 대표는 마지막으로 조용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2024년에 결혼한 아내의 도움이 정말 큽니다. 혼자 술을 빚고, 브랜드를 지켜오는 과정이 쉽지 않았는데 곁에서 묵묵히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큰 힘이 됩니다.” 1인 양조가의 고된 일상 뒤에는 이제 든든한 동반자가 함께하고 있다. 새해를 맞은 그는 또 하나의 목표를 밝혔다. “지금까지는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천천히 왔다면, 이제는 국도막걸리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생산량을 조금씩 늘리고, 유통도 단계적으로 확장해볼 생각입니다.” 혼자서 빚어온 술, 혼자서 지켜온 철학. 그리고 이제는 함께 나아갈 시간. 국도막걸리는 그렇게 또 한 번의 담금을 준비하고 있다.
-
- 여행종합
- 테마여행
-
[우리술여행] 가평에서 만난 1인 양조가 정의현의 국도막걸리
-
-
폐선 위를 달려 동굴 속으로…김해 낙동강에서 만나는 새해 여행의 장면들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낙동강 위를 가로지르는 레일바이크, 100년 가까운 시간을 품은 터널 속 와인동굴, 그리고 동화처럼 펼쳐지는 미디어아트 공간. 경남 김해의 대표 관광지 김해낙동강레일파크가 2026년 새해를 맞아 체험형 여행상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실제 기차가 오가던 폐선로를 재생한 이 공간은 산업 유산과 문화 콘텐츠를 결합해, ‘보고 타고 걷는’ 여행의 밀도를 높였다. 김해 생림면 낙동강변에 자리한 김해낙동강레일파크의 시작은 레일바이크다. 2010년 폐선된 철로를 따라 달리는 바이크는 강 위를 건너는 구간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만든다. 낙동강 철교를 지날 때면 발아래로 흐르는 강물과 맞은편 들녘이 한 프레임에 담긴다. 속도는 느리지만 풍경은 길게 남는다. 레일바이크를 마치고 나면 여정은 동굴로 이어진다. 생림터널을 리모델링한 와인동굴은 한때 기차가 숨을 고르던 공간이다. 지금은 산딸기를 활용한 와인과 식초, 지역 특산품이 전시·판매되는 문화 공간으로 변모했다. 서늘한 온도와 은은한 조명이 어우러져 사계절 내내 걷기 좋다. 최근 새 단장을 거치며 내부 연출을 강화해 가족 단위 방문객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도 늘고 있다. 동굴의 끝에는 또 하나의 반전이 기다린다. ‘디지털 케이브’라 불리는 미디어아트 공간이다. 반짝이는 빛과 울림 있는 소리, 움직이는 벽면이 이어지며 마치 동화 속 통로를 지나듯 공간이 전환된다. 영상과 조형이 결합된 이 공간은 사진 촬영 명소로도 입소문을 타고 있다. 국내 방송은 물론 해외 예능 프로그램에 소개되며 김해의 새로운 관광 장면으로 자리 잡았다. 2026년을 겨냥한 여행상품 구성도 눈길을 끈다. 주말 기준 성인 4인 이용 시 레일바이크·와인동굴·디지털 케이브를 모두 포함한 상품이 제휴 여행사 주중 요금으로 제공돼 가격 부담을 낮췄다. 짧은 이동 동선 안에서 서로 다른 체험을 연달아 즐길 수 있어 당일치기 여행이나 새해 첫 가족 나들이 코스로 적합하다. 김해낙동강레일파크는 단순한 관광시설을 넘어, 사라질 뻔한 철로를 여행의 무대로 되살린 공간이다. 강을 건너고, 동굴을 지나, 빛의 통로를 걷는 경험은 새해 여행에 어울리는 변화의 상징처럼 다가온다. 2026년, 김해에서 시작하는 이 짧고도 밀도 높은 여정이 일상의 속도를 잠시 늦춰줄지 모른다.
-
- 여행종합
- 국내여행
-
폐선 위를 달려 동굴 속으로…김해 낙동강에서 만나는 새해 여행의 장면들
-
-
[최치선의 포토에세이] 차갑게 빛나고, 꿈처럼 남은 밤
- 밤이 내려앉은 아침고요수목원은 낮의 식물원이 아니다. 어둠이 문을 닫자, 정원은 다른 이름을 얻는다. 오색별빛정원. 빛이 주인공이 되고, 나무는 별을 품은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파란 불빛이 줄기를 타고 오르면 나무는 하늘을 향해 뿌리를 내린 듯 보이고, 분홍과 보라의 빛은 땅 위에 피지 않는 꽃들을 대신해 조용히 흔들린다. 천천히 걷는다. 이곳에서는 발걸음마저 소리를 낮춘다. 빛의 숲은 서두르는 사람을 허락하지 않는다. 한 걸음마다 색이 바뀌고,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기억이 겹친다.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전날의 설렘, 누군가의 손을 처음 잡았던 밤, 말없이 위로받았던 순간들이 별처럼 켜졌다가 사라진다. 빛은 따뜻하다. 차갑게 반짝이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이야기처럼 나를 감싼다. 나무는 말을 하지 않지만, 충분히 말해준다. 괜찮다고, 오늘은 여기까지여도 좋다고. 길 끝에서 뒤돌아보면, 내가 걸어온 시간이 빛의 궤적으로 남아 있다. 오색별빛정원은 사진보다 느린 장소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보다,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는 그 짧은 시간에 더 많은 감동이 숨어 있다. 빛이 꺼진 뒤에도 마음 한편에서 오래도록 남아, 다시 어둠을 건너갈 힘이 되어준다. 그래서 이 밤을 기억한다. 별이 아니라, 사람이 빛나던 시간으로.
-
- 여행종합
- 국내여행
-
[최치선의 포토에세이] 차갑게 빛나고, 꿈처럼 남은 밤
-
-
도심에 눈이 내리다…울산 성남동, 겨울 축제로 거리를 채우다
- [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울산 중구 성남동 일대가 겨울이면 눈꽃으로 물든다. 매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 사이 열리는 울산 성남동 눈꽃축제는 인공눈 연출과 체험형 프로그램, 공연을 결합해 도심 속 겨울 풍경을 만들어온 지역 대표 축제다. 거리와 상권이 함께 호흡하는 이 축제는 계절의 변화를 체감하게 하는 생활형 관광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성남동 눈꽃축제의 중심은 ‘거리 경험’이다. 상점가와 보행로를 따라 조성된 트리숲과 인공눈 연출은 평소의 도심을 잠시 다른 공간으로 바꾼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참여하는 눈사람 만들기 체험은 축제의 가장 직관적인 장면이다. 손에 쥔 눈덩이가 완성될수록 거리에는 웃음과 사진 셔터 소리가 늘어난다. 무대 프로그램도 축제의 결을 단단하게 만든다. 크리스마스 합창대회와 지역 예술 공연은 성남동의 밤을 채우며, 지나치던 방문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공연은 전문성과 생활성이 공존한다. 동네 예술가의 무대와 참여형 합창이 이어지며, 관객은 자연스럽게 축제의 일부가 된다. 상권 연계는 성남동 눈꽃축제를 지속시키는 동력이다. 플리마켓과 푸드존은 거리의 체류 시간을 늘리고, 겨울철에 어울리는 먹거리는 축제의 감각을 완성한다. 지역 상점과 임시 부스가 함께 구성되며, 소비가 곧 지역 응원이 되는 구조다. 이는 단기 이벤트를 넘어 지역경제와 맞물린 축제 운영의 전형을 보여준다. 울산 도심의 접근성 역시 장점이다. 대중교통으로 쉽게 닿는 성남동은 외지 방문객에게도 부담이 적다. 낮에는 체험과 시장을, 밤에는 조명과 공연을 즐기는 동선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계절 축제가 도심 일상과 분리되지 않고 스며드는 방식이다. 최근 국내 도시들이 겨울철 관광 콘텐츠를 강화하는 흐름 속에서, 성남동 눈꽃축제는 ‘인공 연출’의 장점을 현실적으로 활용한다. 눈이 귀해진 겨울에도 안정적인 연출로 분위기를 만들고, 프로그램의 밀도를 높여 반복 방문을 유도한다. 화려함보다 지속성을 택한 선택이다. 성남동 눈꽃축제는 멀리 떠나지 않아도 겨울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거리 위에 내려앉은 눈과 음악, 먹거리와 체험이 이어지며 도심은 잠시 여행지가 된다. 계절이 남긴 흔적을 생활 속으로 끌어들인 이 축제는, 울산 겨울의 한 장면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
- 여행종합
- 테마여행
-
도심에 눈이 내리다…울산 성남동, 겨울 축제로 거리를 채우다
-
-
순천만국가정원, 크리스마스 6일의 기록
- [트래블아이=문소지 기자] 순천만국가정원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선보인 겨울 특별 프로그램 ‘산타가든 위크’가 정원을 하나의 이야기 공간으로 바꾸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빛과 정원, 체험과 나눔이 어우러진 6일은 연말 순천의 풍경을 새롭게 그려냈다. 순천만국가정원은 지난 20일부터 25일까지 운영한 겨울 특별 프로그램 ‘산타가든 위크(Santa Garden Week)’를 성황리에 마무리했다. 크리스마스를 전후한 6일 동안 정원은 산타의 이야기로 채워졌고, 연말 여행지로 순천을 찾은 발길이 이어졌다. 이번 프로그램의 중심은 호수정원이었다. 13m 대형 트리와 화이트트리 거리가 들어서며 겨울 밤의 표정을 완성했고, 네 가지 테마로 꾸민 ‘산타의 집’은 정원의 상상력을 확장했다. 레드존 식물원, 화이트존 시크릿어드벤처, 산타의 성을 콘셉트로 한 프랑스정원, 빛으로 물든 낙우송길까지 정원 곳곳에 스팟형 테마가 더해지며, 전체 공간이 하나의 크리스마스 서사로 이어졌다. 관람객들은 호수정원과 프랑스정원을 잇는 ‘산타가든 스티커 투어’를 따라 정원을 자연스럽게 걸었다. 동선마다 사진을 남길 수 있도록 연출된 장면들은 연말 ‘인생샷’ 명소로 입소문을 탔고, 가족과 연인 방문객의 발길을 붙잡았다. 낮에는 정원의 구조미가, 밤에는 조명과 장식이 분위기를 바꾸며 다른 표정을 보여줬다. 체험 프로그램도 풍성했다. 특별 운행된 산타버스와 크리스마스 회전목마, 오너먼트 만들기와 진저쿠키 포장 체험, 빨강·초록 소품 착용 방문객에게 선물을 건네는 ‘컬러패스 이벤트’가 이어졌다. 산타와 루돌프가 함께하는 게임 챌린지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참여형 이벤트는 축제의 리듬을 살렸다. 올해 눈길을 끈 대목은 나눔이었다. 처음으로 연말 기부를 목적으로 소정의 체험료를 받아 운영했고, 체험료 전액을 기부하는 방식으로 뜻을 모았다. 관람객들의 자발적 동참 속에 700만 원의 기부금이 모였고, ‘산타가든 위크 체험객 일동’ 명의로 연말 이웃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서울에서 가족과 함께 방문한 관람객은 “정원에서 산타와 사진을 찍고 눈 내린 풍경을 만난 순간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며 “연말 여행지로 순천을 선택한 이유가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크리스마스 당일 눈이 내리며 정원은 자연스럽게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완성했다. 행사 기간 순천만국가정원에는 약 8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관계자는 “산타가든 위크는 즐거움과 나눔을 함께 담은 겨울 축제였다”며 “앞으로도 계절마다 정원의 가치를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정원이 도시의 연말을 품은 이번 6일은, 순천의 겨울을 기억하게 하는 장면으로 남았다.
-
- 여행종합
- 축제여행
-
순천만국가정원, 크리스마스 6일의 기록







![[우리술 여행] '술시'에 취하다](https://traveli.net/data/news/2504/360x231/9694b59f6242384361664d79dd9632d9_Ub1aQxCVQAMsaFE5E.jpg)

















![[우리술 여행] 곡성의 토란이 술이 되다…양조장 ‘시향가’에서 만나는 특별한 향기](https://traveli.net/data/news/2504/360x231/154abc072437a1dd807cd2e456dff42d_MY55wltn9JaQTELu7WzuzRQ.jpg)
















![[펜션 여행]사랑하는 사람들과 단양에서, 프라이빗한 힐링 스팟 오무아무아](https://traveli.net/data/news/2503/360x231/9694b59f6242384361664d79dd9632d9_NytddiCBPzwfhG1l4QAbcSr.jpg)
![[서호주여행] 쿼카와 인생샷! 로트네스트 아일랜드, SNS 핫플 등극](https://traveli.net/data/news/2503/360x231/9694b59f6242384361664d79dd9632d9_R55WVnhFzXB.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