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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금옥의 두 번째 행복한 인도여행기(1)...프롤로그
    [트래블아이=손금옥]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이 이런 생각이지 않았을까요? 세계일주배틀 인도를 내품에 수상자가 되었음을 확인하고, 전 너무 기뻐서 집이 떠나갈듯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고 나니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하며 혹시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봐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 타지마할 잡기 놀이 (사진=손금옥) 처음 응모할때만 해도 워낙 이런 종류, 돈(?)이 되는 이벤트는 대상자를 정해놓고 시작한다는 말을 들어 별로 기대 안했긴 했습니다. 물론 조금 바랬다면 제 여행배낭이 망가져 다시 사야 하니까 배낭이나 아님 백화점 상품권 정도 타면 좋겠다 하는 기대는 했죠. 근데 응모하면서 그정도 기대는 누구나 할 수 있는거 아닙니까? 아무튼 자고 일어났더니 세상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몇시간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서 친구 몇 명에게 문자를 날려 대충의 상황 설명을 해줬습니다. 친구들, 아주 솔직해서 저에게 어떤 자만심도 갖게 하지 않더군요. - 니가 얼마나 잘 썼길래? 그렇습니다. 저도 발표를 보고 막 기쁘기만 했던 약 1시간 후부터 궁금해지기 시작했던 터였습니다. 응모 게시판에서 몇 개의 비밀글이 아닌것들을 열어봤는데 네이버 파워블로그, 수십개국 여행하고 올려진 화려한 사진과 멋진 글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전 일일 방문자수 보통 200명 안팍, 변방의 블로거였고 - 그나마 요새 약 3달간 제대로된 포스팅을 하나도 안해서 100명도 못찍고 있는 중 - 제 블로그 여행기는 오직 인도에 대한 여행기뿐이고, 그마저도 모두 허접합니다. ▲ 제트 에어웨이즈 비즈니스석 내부, 내 좌석 앞에 있는 개인용 스크린, 영화와 음악감상이 가능. 왼쪽 파란불이 들어오는좌석모양 버튼은 좌석 경사를 조절 할 수 있는데 직관적으로 되어 있어 매우 편리함. 좌석이 일자로 펴져 침대처럼 누울 수 있다는 것과, 여독을 풀 수 있도록 안마기능을 시행할 수 있는 물결무늬 버튼이 가장 좋았음. 스튜어디스들의 외모도 모델급이고 필요한걸 주문하기도 전에 달려오는 친절함으로, 개인적으로 여행할 일이 생긴다면 다시 이용해보고 싶었음. 혹시 실수로 이름이 바뀐게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제 이름이 흔한 것도 아니어서 그럴 가능성도 희박하고, 아무튼 뽑힌 이유가 저도 궁금해서 미치겠는 겁니다. 일정과 준비사항 때문에 담당자분과 이멜 몇번 주고받고, 전화 통화 한 번 했습니다. 근데 괜히 이런걸 물어봐 담당자분이 "제가 실수했네요. 댁이 아닌데 잘못 뽑았어요." 할 거 같아 묻지도 못하고 뭘까? 뭘까? 하면서 저혼자 고민을 했었더랬죠. 관계자분 뵙고 말씀도 들었지만 이분들이 뭘 원하고 절 뽑으셨었는지는 솔직히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글을 보고 뽑으셨다면 제가 뽑히진 않았을게 확실하고, 그것에 대한 기대도 크게 없으셨던 듯 합니다. 다만 인도를 가고 싶다고 다른 누구보다 더 많이 징징거린게 통한 거라고 생각할겁니다. ▲ 델리 인드라 간디 공항 내부 모습, 바닥은 카펫으로 깔려있고, 무빙워크가 설치되어 있는, 2년전과는 너무나 다른 깔끔한 모습. 이제 60일, 길다면 길고 또 짧다면 짧은 기간의 두번째 인도여행을 시작하려 합니다. 첫번째 인도여행 후 그리움을 삭히려 블로그를 시작했고, 인도가 그리워질 즈음 우연히 광고를 보고 응모한 글이 또 우연히 평범한 사람들의 자유롭고 행복한 여행 이라는 사이트 여행 이벤트 방향과 맞았고, 그것이 저를 또, 두번째 인도여행의 인연으로 이끌었네요. 속된 말로 운대가 맞은거 뿐입니다. ▲ 인도 입국심사장 모습 제 첫 여행이 그랬듯, 아마 인도에 가서도 계획대로 될 가능성이 50% 미만일 겁니다. 그렇지만 분명한건 누구를 위한 여행이 아닌 제가 행복한 여행을 할거란 사실입니다. 전문가처럼 잰 체 하지도 않을거고, 제 느낌을 강요하지도 않을 겁니다. 제 사랑하는 똑딱이 디지털카메라는 저와 함께, 화려한 무언가가 아닌 사소한 일상과 인도 사람들을 담을 겁니다. 그 인도 특유의 강렬함이 만만치 않을걸 알기에 첫번째 여행때보다 오히려 걱정이 더 많이 되지만, 여행의 순간 만큼은 한국에서의 고민 따위는 모두 던져 버릴 겁니다. 이렇게 시작되는 저의 두번째 인도여행, 지켜봐 주세요. ▲ 함께 웃어 보아요
    • 세계일주
    • 여행블로거
    2018-09-13
  • [전북] 전주 한옥마을에서 한국의 미를 발견하다
    [트래블아이=이금희] 풍남동과 교동 일대에 자리한 전주 한옥마을은 예향 전주의 멋과 풍류를 한껏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약 700여 채의 한옥이 밀집되어 있는 한옥마을 고샅길을 거닐다 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 전주한옥마을 전경 다양한 체험시설도 들어서 있어 이 골목 저 골목 기웃거리다 보면 하루가 짧다. 전주한옥생활체험관에서는 공예와 다례 등 전통생활을 체험할 수 있고 전주전통술박물관에서는 술도 빚어볼 수 있다. 갤러리인 교동아트센터와 <혼불>의 작가 최명희와 관련한 유품을 모아놓은 최명희 문학관, 마지막 황손 이석이 살고 있는 승광재를 돌아보는 일도 즐겁다. 한지공예품과 한지제작도구, 고문서, 고서적 등 한지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전주한지박물관도 들러볼 만하다. 한옥마을 초입에 자리한 경기전(慶基殿)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임금의 영정)을 봉안한 곳으로 400년 된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대나무 등이 우거져 있어 한나절 산책하기에도 좋다. 경기전 맞은편의 전동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름다운 건물로 영화 ‘편지’의 촬영 무대가 되기도 했다. 조선시대 3대 음식의 하나로 꼽히는 전주비빔밥, 담백하면서도 산뜻한 맛을 자랑하는 콩나물국밥은 전주의 대표적 먹을거리기도 하다. 위치 : 전라북도 전주시 풍남동, 교동 문의전화 : 전주시 한스타일관광과 063)281-5046
    • 세계일주
    • 여행블로거
    2018-09-06
  • [호주]강혜진의 시드니를 수식하는 방법②...안락함이 주는 이질감
    [트래블아이=강혜진] 지금 당신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호주의 수도가 어디야?” 그가 3초간 망설인다면 그는 70%의 사람이다. 30%의 사람만이 “캔버라” 라고 힘주어 말할 것이다. 이게 다 호주의 큰 도시를 떠올리면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하얀 곡선의 오페라하우스, 그리고 모두의 입에 붙어있는 시드니라는 도시의 환영 때문이다. 시드니는 호주의 정신적 중심이자 가장 규모가 큰 도시이다. 실재 수도인 캔버라보다 훨씬 더 ‘수도적인 이미지의 도시’ 맞다. ▲ 시드니 스카이라인 나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눈을 감고 조용히 단어들을 곱씹어서 나열 해본다. 시드니를 수식할 만한 단어를 찾고 있는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시드니는 처음과 마지막에 위치한다. 40일의 간극을 가진 같은 도시가 얼마나 다르게 수식될 지 나조차도 궁금하다. 검은 밤을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리는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다음도시 멜버른으로 가고 있다. 8시간 동안 시드니의 편린들을 정리할 수 있을까?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셔츠에 레깅스를 신고 서울을 떠나왔는데 시드니 공항엔 찬 기운이 가득하다. ▲ ▲ 영화 뮤리엘의 웨딩(1994) : 감독 P.J.호건 주연 토니콜렛 아니 분명 호주에는 겨울이 없다고 그랬던 것 같은데 이 무서운 공기는 무엇이란 말인가. 캐리어를 찾자마자 가죽재킷을 꺼내 입는다. 그리고는 차가운 아침 시드니의 공기 한 모금을 가득 마셨다. 구름 없이 맑은 하늘에 날숨을 내뱉자 한 영화의 타이틀 시퀀스가 떠오른다. “Sydney, City of Brides" 대표적인 호주출신배우 토니콜렛 주연의 영화 ‘뮤리엘의 웨딩’이다. 결혼을 하고 싶은 못생기고 매력 없는 뮤리엘에게 시드니는 본래의 루저같은 자신을 잊고 새 출발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래서 그토록 원하던 신부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도시이다. 뮤리엘처럼 ‘신부’가 되고 싶진 않지만 시드니는 나에게도 분명 강렬한 희망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 근저에는 오랜만에 타지 체험에 더군다나 가늠하기 힘든 수많은 인종이 뒤섞여 있는 도시의 생경함이 목까지 차오른다. 이곳을 어서 조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좀처럼 해보지 않았던 씨티사이트싱 버스를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 하버브릿지 성수기가 아니라 그런지 버스에는 기사와 나 밖에 없다. "How could you define Sydney to me?" 아마도 이민 2, 3세대일 유색인종의 버스기사는 나에게 말한다. “Sydney is, the city you can be what you want to be" 차창 밖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선착장 중 하나인 시드니의 중심 업무 지역 '달링하버'가 펼쳐졌다. 잿빛 컨벤션 건물들과 어우러진 선착장의 고요한 풍경이 웅장하고 정갈하다. “That's...so great." 시드니의 씨티싸이트싱 버스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시드니 중심부를 다니는 RED line과 본다이 쪽을 가는 BLUE line. Red line에는 시드니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가득하다. ▲ 센트럴파크 우선 90여분에 걸쳐 한 바퀴를 돌고 구미가 당기는 지역에 내려서 천천히 감상하는 것이 좋다. 오페라 하우스를 볼 수 있는 서큘러 키가 가장 유명한 관광 포인트이다. ‘시드니는 오페라하우스다. 시드니는 하버브릿지다.’ 사실 수많은 명소들만으로 시드니를 수식하기 충분하다. ▲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city station 구간에서 Blue line 으로 갈아탔다. 본다이는 시드니에서 가장 가까운 해변도시이다. 사진을 찍으면서 시원한 바람을 쐬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갔다. 이 해변도시는 상당한 규모의 고급빌라들이 즐비해있다. 테라스에는 선글라스를 낀 사람들이 주스를 마시면서 태닝을 하고 있었다. 그래,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질감의 경험”이다. 시드니가 나에게 줬던 가장 큰 이질적인, 이국적인 이미지는 바로 “안락함”이다. 서울에서는 이와 같은 무아지경에 이르는 편안함의 장면을 목격하기 힘들다. 꼭 값비싼 집과 펜션에서만의 안식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센트럴 파크, 오페라하우스부근, 록스 광장, 심지어 거대한 쇼핑센터 퀸 빅토리아 빌딩에서도 시드니는 편안한 표정으로 누워있거나 걸어 다니는 장면들로 가득하다. 그 누구도 좀처럼 서두르지 않고, 밀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시드니의 무드. 드디어 첫 번째 수식어를 정했다 ! 안락함. 4시간째 달리던 그레이하운드 버스가 첫 번째 휴게소에 도착했다. 너무 달아서 나에겐 둘도 없는 호주의 국민과자 TIM TAM과 따뜻한 라테를 샀다. 차가운 밤에 버스 라이트 근처에서 나의 라떼 연기와 다른 승객들의 담배연기가 모락모락 올라가고 있었다. 이쯤오니 다시 뮤리엘이 떠오른다. 개봉당시 이 영화는 기존의 로맨틱코미디와는 다른 감정과 캐릭터, 스토리라인으로 독보적인 영화로 평가되었다. ▲ Queen Victoria Building 쇼핑센터 영화감독 호건은 젊은 여성의 삶에서 완전무결한 환상과 불현듯 엄습하는 음침한 몰락 사이의 간극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 스산한 기운이 우리를 더 웃게 하고 울게 한다. 내가 선별한 첫 번째 수식어는 더할 나위 없이 영롱한 ‘안락함’이라는 단어이지만, 물론 그 극에 가까운 단어들도 이질감 없이 이 도시를 수식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이 도시를 더욱 매력적으로 수식하고 기억하는 방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시드니 역시 독보적인 도시이다. 멜버른 까지 몇 시간이 남았을까?
    • 세계일주
    • 여행블로거
    2018-09-03
  • [필리핀] 낭만과 열정의 섬 '보라카이' 추억 만들기(1)
    [트래블아이=최은원] 지난 여름 2박 4일 동안 떠났던 보라카이 여행. 그 후유증으로 수업을 이틀이나 빠졌다. 보라카이가 어떤 곳이었기에 다녀온 이후 며칠 동안 넋이 나간 채 있어야 했을까. 마지막 여행지로 나는 보라카이와 보홀 두 군데 중 고심했다. 보홀에는 귀여운 타르시어(눈이 큰 조그만 원숭이 오직 보홀에서만 서식한다)가 있고 보라카이는 아름다운 화이트 비치가 있다. 보라카이. 이름만 들어도 연상되는 에메랄드 코랄 빛 바다와 뜨거운 햇빛 그리고 낭만적인 해변썬셋. 나는 무한한 기대감과 로망을 품고 며칠의 고심 끝에 결국 보라카이의 아름다운 산호바다에 손을 들었다. 나의 이번 보라카이 여행메이트는 나의 마닐라 여행 메이트였던 R과 나의 룸메 Kaylee 그리고 학교 배치메이트인 Stacy 이렇게 3사람이다. 나와 R이 이번 여행의 모든 계획을 짜기로 하였다. 떠나기 1달 전부터 분주했다. 우리는 한국 여행사가 몰려있다는 말을 듣고 말라테에 3번 정도 찾아갔지만 번번이 헛수고만 하고 돌아왔다. 결국 R과 나는 인터넷으로 항공 예약과 리조트 예약을 하기로 하였다. 항공편은 갈 때는 세부 퍼시픽으로 990페소, 올 때는 제스트에어로 1990페소에 예약했다. 마침 세부퍼시픽에서 마닐라-보라카이행 비행기 프로모션이 있어서 올 때보다 2배 가까이 저렴하게 갈 수 있었다. ▲ 보라카이 화이트 비치 풍경 항공권 예매를 할 때 간혹 저렴한 가격의 프로모가 뜬다. 비행기 시일을 앞두고 누군가가 비행기를 취소했거나 아니면 타는 사람이 없어 비행기 좌석이 남을 때 이러한 프로모 좌석이 뜨곤 한다. 리조트는 한국 중계사이트를 통해 파라다이스 가든 리조트라는 곳에서 2박을 예약했다. 2인 1실 1박이 7만 원 정도인데, 풀장도 있고 뷔페 조식도 포함해서다. 그래서 1인당 세금 포함해서 총 15만 원 정도에 모든 예약을 마칠 수 있었다. 보라카이를 갈 때는 깔리보공항을 통해서 가는 방법과 까띠끌란 공항을 통하는 방법, 2가지가 있다. 까띠끌란행 비행기는 보라카이로 가는 선착장에서 가까워서인지 훨씬 비싸다. 반면 깔리보를 통해서 가는 편도비행기 삯은 까띠끌란보다 대략 2000페소 정도 더 비싸다. 대신에 비행기에서 내리고 약 2시간가량을 버스나 벤을 타고 선착장까지 간 다음에 가야한다. R과 나는 비행기 값을 아끼기 위해 깔리보행으로 예약했다. 21일 토요일 6시 비행기와 24일 화요일 새벽 5시 30분 비행기이다. 가장 저렴한 값으로 맞췄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걱정되는 것들이 많았다. 우선 보라카이로 들어가는 배의 막차와 첫차 시간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갔기 때문에 운이 나쁘다면 돌아오는 마지막 날은 공항 주변에서 노숙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R은 이러한 것조차도 다 경험으로 생각하는 매우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그녀 덕분에 마닐라와 보라카이에서의 여행이 매우 익사이팅했다. ▲ 보라카이 화이트비치 풍경 고대하고 고대했던 5월 21일 아침. 아뿔싸. R의 몸 상태가 좋지 않다. 새벽까지 친구들과 함께 클럽에서 열정을 불사르고 돌아왔다는 그녀의 몸은 열로 뜨끈뜨끈하다. 결국 공항까지 버스로는 무리라고 판단하여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다. R은 자신의 뛰어난 체력만을 믿고 자만했던 자신을 저주했다. 학교에서 공항까지는 택시로 30분 정도 소요하고 택시비는 240페소 정도 나왔다. R의 상태만 빼면 평이한 출발이다. 공항에서 우리는 예상치 못했던 비용인 터미널 요금 200페소를 내야만 했다. 국내선이니까 200페소이지, 한국으로 돌아갈 때는 750페소나 내야한다. 필리핀 정부는 정말 떠나는 그 순간까지 우리에게서 돈을 짜내려는 거 같다. 비행기 시간보다 2시간 정도 일찍 도착한 우리는 주변의 작은 면세점을 둘러보고는 공항 안에 ‘팬케이크 하우스’로 들어갔다. 딱히 배가 고픈 것은 아니었지만, R의 상태가 좋지 않아 푹신푹신한 소파에서 쉬게 할 생각이었다. R은 테이블에 얼굴을 묻은 채 뻗어버렸고, 나는 참치샌드위치와 블랙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총 합쳐서 250페소 정도가 나왔다. 예상치 못한 금액을 계속 쓰게 되어서 조금 걱정되었지만, 샌드위치가 너무 맛있었기 때문에 나는 만족스러웠다. 약간의 휴식 이후 기운을 차린 R은 다시 생기를 찾기 시작했다. 나와 R은 비행기를 타러 플랫폼으로 갔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작은 국내선 비행기. 내가 팔라완에서 탔던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비행기를 타는 순간은 항상 긴장된다. 여행에 대한 긴장과 비행기의 안전성에 대한 긴장까지 다양하고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교차하는 순간이 바로 지금이다. 1시간의 짧은 비행 후 우리는 깔리보 공항에 도착했다. 깔리보 공항에는 보라카이 선착장까지 운행하는 벤을 타라는 호객꾼들로 가득했다. 깔리보 공항에서 선착장까지 가는 벤은 200페소이고 2시간가량 걸린다. 벤을 타고 가는 2시간 내내 차창 밖은 어두워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흔한 가로등조차 없는 산길을 지나가는데, 밤하늘의 별들이 쏟아질 정도로 많이 보였다. 선착장에 도착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마침 가이드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중국인 아주머니 덕분에 무사히 배를 탈 수 있었다. 이곳에서 우리는 환경세 75페소, 배 삯 50페소 그리고 터미널 요금으로 50페소를 냈다. 배로는 10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거리였다. 어두운 저녁인데 불구하고 물이 맑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배에서 내린 후에는 선착장에서 대기하고 있는 트라이시클을 타고 리조트로 갔다. R 과 내가 묵게 될 리조트인 파라다이스 가든 리조트는 생각보다 좋았다. 다만 우리는 트리플을 예약했는데, 트리플이 아닌 더블룸을 배정 받아서 황당했다. 그 점만 제외한다면 조식이나 부대시설은 만족스러웠다. 기대감으로 뜬 눈 새운 다음날 아침, 우리는 대충 씻고서는 7시 30분 경 조식 뷔페에 갔다. 실내가 아닌 야외에서 즐기는 아침 만찬은 새로웠다. 다행히도 R은 원래의 쌩쌩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침을 먹자마자 우리 일행은 아침바다를 보러 나갔다. 보라카이는 길이가 7km 밖에 안되는 작은 섬이다. 스테이션1,2,3으로 모두 3개의 구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스테이션1은 고급 리조트와 조용한 비치가 있고 스테이션 2에는 쇼핑단지인 Dmall을 비롯하여 각종 레스토랑과 바, 카페가 모여 있다. 스테이션3는 저렴한 숙소와 리조트가 모여 있는 곳이다. 스테이션 3에서 스테이션 1까지는 걸어서 약 30분 정도 걸렸다. 우리는 보라카이에 있는 동안 이 거리를 10번도 넘게 왕복했다. 이곳에 오기 전 우리의 모토는 보라카이에 6년 산 사람보다 보라카이의 속속 들이에 대해 잘 알자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떠날 즘에 우리는 모든 가게, 술집이 어디 있는지 지도를 보지 않아도 잘 찾아갈 경지까지 올랐다. 아침 9시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햇빛이 강해서 우리 모두는 챙이 넓은 모자와 썬글라스를 챙기고 산책을 나갔다. 상아빛 하얀 모래사장과 에메랄드 빛 바다는 내가 이곳에 오기 전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하얀 모래사장은 곱고 푹신푹신했다. 비치에서 한창 화보촬영을 한 우리는 비치에서 나와 Dmall로 향했다. 스테이션1과 2 사이에는 로드샵들이 즐비한 쇼핑단지인 Dmall이 있다. 이곳에서 우리는 다양한 샵들을 구경하였다. 수많은 비치웨어를 파는 옷가게와 보라카이 기념품 샵들이 즐비해 있었다. 또한 가이드북에서 보았던 레스토랑과 까페들이 우리의 발걸음을 잡았다. 간단히 둘러 본 후에 우리는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스테이션 3부터 스테이션 1까지 걷고 Dmall을 구경하고 나니 점심시간은 금방이었다. Dmall에 위치한 유명 스페인 음식 전문점인 올레(olle)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었다. 이곳에서 790페소 콤보를 시켰는데, 5가지 메뉴를 우리가 고를 수 있었다. 우리는 5가지 메뉴로 조개구이와 그라탕, 오징어튀김, 미트 볼, 갈릭머쉬룸을 주문했다. 4명이 먹기에는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비키니 수영복을 위해서 점심을 적당히 먹기로 하였다. 스테이션 3에서 1까지 왕복한 후 우리는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찝찝한 마음에 수영을 하고 싶었지만, 지글지글한 태양 아래서 수영을 하는 것은 거의 자살행위라고 판단하여 리조트 내의 수영장에서 수영복을 입고 만나기로 했다. 1시간 뒤 파라다이스 가든 리조트 야외 풀장에서 모인 우리는 한 바탕의 포토타임을 가진 뒤, 풀장에 뛰어들었다. 세상에! 풀장은 생각보다 엄청 깊었다. 1m 57cm 정도인데, 인공폭포가 내리는 곳은 수심이 2m가 넘어서 발조차 닿지 않았다. 우리가 기대했던 명품복근의 멋진 외국남은 없었지만, 우리는 누구의 의식이나 시선에 상관없이 초등학생으로 돌아간 것처럼 물 장난치며 신나게 2시간 동안 풀장에서 놀았다. 물장난 치고 씻고 나자 다시 배가 고팠다. 비키니를 입겠다고 점심도 적게 먹지 않았던가. 우리는 간식을 먹으러 다시 Dmall까지 걸어갔다. Dmall에서 발견한 완소 수제버거집인 Bite버거. 우리는 제일 큰 햄버거인 트리플X버거를 주문했다. 4명이 나눠 먹어도 배가 부른 이 거대한 햄버거 하나 가격은 겨우 340페소. 레모네이드 2잔과 함께 주문하니 400페소 가량 나와서 일행 4명에서 깔끔하게 100페소씩 내고 나왔다. (계속)
    • 세계일주
    • 여행블로거
    2018-09-02
  • [스페인] 유럽의 발코니 네르하, 불현듯 찾아온 여행의 감동
    [트래블아이=강혜진] 스페인 남부의 대도시 세비야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가는 작은 해변마을 네르하. 네르하는 일상을 정지시키고 오로지 휴식만을 위해 그곳을 방문한 각국의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 많은 사람들 중 한국인은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눈을 돌려도 의식할 사람 하나 없는 것이 어쩌면 이곳의 매력이다. 그들은 이미 그 자유로움에 익숙해진 듯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투명한 에메랄드 빛 바다에서 수영을 했다. ▲ 스페인 네르하 풍경 지금 이 금빛 모래와 여유로운 중년부부가 은은한 파스텔 톤 파라솔에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하고, 샤.. 샤.. 하는 파도소리만 가득한 그곳의 바다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차가운 바다에 몸을 담근다. 온 몸에 힘을 빼고 바다에 몸을 맡겼다. 파란색 하늘을 마주했다. 귀가 바닷물에 잠겨서 작은 소음들도 들리지 않았다. 간간히 아이들이 까르르 거리는 은은한 소리만이 울렸다. 아 이 불현듯 찾아온 여행의 감동. 이 나라를 여행하기 위해서 20권이 넘는 책들을 정독하고, 수많은 책자와 영화, 미술 집들을 보았다. 하지만 이러한 ‘봐야할 것을 보고가자’의 여행일정만이 가득하다면, 그것은 흡사 숙제가 되어 나를 괴롭힌다. 다음 종착지도 떠오르지 않을 만큼 지금 이 순간 내가 끌리는 어떤 풍경에 몸을 맡기자. 뭐 어때, 다시오면 돼. 설사 그게 어려운걸 알면서도 이렇게 쿨하게 생각해버렸다. 못보고 간 것은 그때를 위해 남겨둔 것이라고. 이 때 나는 처음으로 이 낯선 나라 스페인에 있다고 느꼈다.
    • 세계일주
    • 여행블로거
    2018-08-30
  • [일본] 나비부인의 배경이 된 나가사키 구라바엔
    [트래블아이=김민수] '나가사키' 하면 히로시마와 더불어 원폭의 이미지가 크다. 또한 영화 군함도의 배경이 된 하시마 섬이 있는 곳이다. 하시마는 나가사키 항에서 불과 18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우리에게는 슬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지만 정작 나가사키에 가면 일본에서 두번째로 개항을 시도한 도시답게 세련된 건축물을 많이 볼 수 있다. 게다가 나가사키 항은 일본의 3대 미항으로 불릴만큼 야경이 아름답다. 지금까지 가장 유럽다운 일본으로 불리는 이유다. 이렇게 나가사키는 유럽의 흔적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이면서 오페라 '나비부인'의 모티브로도 알려진 구라바엔으로 가보자. ▲ 구라바엔으로 가는 길 양쪽에 즐비한 기념품 상점들이 파는 기념품. 구라바엔으로 향하는 길 양쪽으로는 아기자기한 기념품들로 구색을 갖춘 상점들이 즐비하다. 갖가지 음식들과 장식품들은 관광객들의 시선을 한번에 사로잡는다. 기념품들을 뒤로 하고 언덕을 향해 올라가면 since 1974라는 간판과 함께 구라바엔이 시작된다. 일본을 여행하다보면 참 좋은 것이 다른 곳에서는 찾기 힘든 한글 안내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홀로하는 여행이라 해도, 초행길이라 해도, 일본어를 몰라도 그다지 큰 어려움은 없다. 나가사키 시내를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한 구라바엔은 '움직이는 보도'를 통해 제1게이트에서 미쯔비시 제 2독하우스 입구까지 올라갈 수 있다. 짧지 않은 거리를 올라가는 동안 왼쪽으로 볼 수 있는 나가사키의 전경이 예술이다. 드디어 미쯔비시 제2 독하우스에 도착했다. 이곳은 미쯔비시 조선소에 배가 수리하기 위해 들어왔을 때 승무원들이 휴식을 취하면서 숙박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종합시설이다. ▲ 일본 역사상 가장 인기있는 사람 중 한명인 사카모토 료마의 사진 구라바엔의 가장 위쪽에 자리하고 있어 전망을 보기에도 그만이다. 이층 베란다에 서면 나가사키항이 훤히 내려다 보이고 조선소까지도 보인다. 실내에는 그 당시 사용되었던 집기와 의상들을 전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일본 역사상 가장 인기있는 사람 중 한명인 사카모토 료마의 사진이다. 도쿠가와 막부를 종식시키고 메이지유신을 일으키는데 공을 세운 영웅으로 지금까지 소설, 만화, 게임으로 일본인들 곁에서 함께하고 있다. 저 멀리 보이는 하얀석상이 푸치니, 아이를 안고 있는 여성이 오페라 나비부인에서 나비부인의 역할로 유명해진 미우라 타마키(일본 최초의 오페라 가수란다)이다. 그녀는 30년 동안 전세계를 돌며 나비부인의 역할을 하면서 일본을 세계에 알리는데 크게 일조했다. 이렇게 당시 모습들을 둘러보고 돌아나오면 푸치니와 미우라 다마키의 동상이 있다. 구라바엔을 이야기하면서 나비부인을 빼놓을 수 없듯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게한 푸치니와 그 빛을 강렬하게 만들어준 미우라 다마키도 잊지말라고 이곳에서 여행자들을 맞는다. 이 동상들을 자꾸 바라보고 있으면 작곡자와 배우의 모습이 아니라 멀리 떠난 핀커튼을 꿈에서라도 보고자 염원하는 나비부인과 타국에 두고 온 사랑하는 여인을 그리워하는 장교 핀커튼으로 보인다. 지금은 이것이 나가사키 3대 비극 중 하나로 유명하다. 유럽식 건물에 맞게 아름다운 화단정원으로 장식되어 있다. 지금도 그 주인공들이 살아있으면서 가꾸고 있을 것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1859년 나가사키시에 무역회사(글로버상회)를 설립한 토마스 글로버(Thomas Blake Glover)의 대저택으로 19세기 서양식 건물의 특징들이 남아있다. 글로버 주택에는 많은 살림살이들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보이는 작은 그릇들도 모두가 글로버 부부가 이곳에서 사용하던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일본의 향기보다는 글로버가 가지고 온 유럽의 향기가 더욱 짙은 것 같다. 거실에는 글로버와 그의 부인 쓰루의 사진이 걸려 있다. 쓰루 부인이 바로 나비부인의 모델이 되었는데 그녀는 늘 나비문양이 새겨져 있는 기모노를 즐겨 입었다고 한다. 그 모습이 외국인들에게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고 해서 나비부인이 되었다. 글로버는 73세가 될때까지 이곳에서 부인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는데 안타깝게도 그들의 아들인 구라바 도미사부로는 세계 2차대전 당시 스파이로 몰리게 되어 자살을 했다. 그 이후 이 모든 것들이 국가로 환수되었다. 구라바엔을 주의깊게 돌아보다 보면 하트 모양의 바닥돌을 볼 수 있다. ▲ 하트가 조각된 바닥돌 구라바엔에는 3개의 하트가 있다. 이 바닥돌을 밟으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좋은 일이 생긴다. 아직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 등 여러가지 설이 전해진다. 만약 무엇인가를 바라고 있는 사람이라면 입구부터 눈을 크게 뜨고 다니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둘러볼 곳은 나가사키 전통 예능관이다. 전통 춤과 축제를 보여주는 동영상과 모형 등의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어 다양한 그들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나가사키의 유명한 축제 '나가사키쿤치'에서 사용되는 용과 함께 다른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거리상으로는 우리나라가 중국과 더 가깝지만 어떤 측면에선 일본이 오히려 더 중국의 문화와 유사한 부분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게 하기도 한다. 이렇게 구라바엔을 둘러보고는 올라가는 길에 미처 보지 못했던 기념품 가게들을 한번 들러보는 것도 좋다. ▲ 오구라 성당 (26성인 순교자 성당) 한가지 더 구라바엔에서 내려오다 보면 흰색의 오래된 목조 성당이 보인다. 바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성당으로 오우라성당 혹은 26성인 순교자 성당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전체 인구의 1%라는 적은 수의 가톨릭 신자가 존재하는 일본에서 국보로 지정될 만큼 큰 의미를 가진 곳이다.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꼭 둘러보기를 권한다.
    • 세계일주
    • 여행블로거
    2018-08-14
  • [아일랜드] 'pacusona's you love:europe...아일랜드로 출발
    [트래블아이=박선아 기자] 아일랜드로 출발하는 날, 아침부터 왠지 묘한 기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마중 나와준 가족들, 친구들과 함께 공항에서 점심을 먹을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가는 날까지 사랑받는 구나.' 하며 행복해 했는데 눈물의 포옹과 안녕을 고하고 게이트로 들어서는 순간, '아 이제 혼자구나.' 하는 느낌이 알알하게 느껴졌다. ▲ 자, 이제 떠나는거야! 한 번도 혼자 공항에 들어서 본 적이 없던 나였기에 그렇게 즐거운 면세점도 낯설게만 느껴졌고 앞으로 혼자서 해나가야 할 많은 일들에 먹먹함이 다가왔다. 비행기에 탑승 한 후, 친구들이 마중나와 준 선물들과 편지들을 조심스레 뜯어 보았다. 조금씩 읽어 내려가는 동안 비행기는 땅을 벗어나 하늘로 향하고 있었고 그 떨리는 순간에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훔치고야 말았다. ▲ 떨리는 마음으로 비행기를 기다리기 옆에 앉은 엄마아빠 나이뻘의 부부는 무거운 짐을 한가득 들고 타더니 비행기가 뜨자마자 눈물을 훔치는 내게 껌을 내밀며 어디를 가는지 무엇을 하러 가는지에 대해 물으셨다. 내 얘기에 그 분들 역시 자식에 대한 걱정과 소망같은 것들을 늘어놓으셨고 암스테르담까지의 긴 여정에도 엄마 아빠와 함께 있는 듯한 느낌으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분명 철저하게 혼자 되었다고 느꼈지만 '지구에서 아주 혼자인 존재는 없나보다' 하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겁먹지 말고 너무 이 악물고 도전하듯 살지도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는 사이 비행기는 환승 장소인 암스테르담 공항에 도착했다. ▲ 비행기들을 보며 해맑게 좋아하고 있던 작은 아이 아일랜드는 아쉽게도 직항이 없다. 그래서 암스테르담이나 파리를 경유해야만 한다. 내가 선택한 경유지는 암스테르담. 그 간단한 경유조차도 처음이라 몇번을 외국인들에게 서툰 영어로 물어가며 확인하고 불안해했는지 모른다. 커다랗던 비행기에서 아일랜드의 작은 저가항공기로 옮겨타고 나서야 한 시름이 놓였다. 경유를 하는 과정에서도 프랑스의 예쁜 커플, 작은 꼬마 그리고 나처럼 유학길에 오른 한국인까지 많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 아일랜드는 직항이 없어 경유를 해야만 한다 굳이 여행의 기록이 아닌 출발의 기록을 먼저 적어보는 이유는 아마도 이때의 그 낯설고 두려운 느낌과 동시에 다가오는 설렘이 그 긴 여행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후의 일들도 여러 사건과 사고가 뒤를 잇지만, 그래도 역시 처음 혼자가 되어 비행기를 타고 하루를 보내는 그 시간을 잊을 수가 없다. ▲ 비가 많이 오는 아일랜드, 무게가 많이 나가는 레인부츠이기에 신고 탔더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 유럽 저가항공사의 비행기들은 상당히 작고, 비행기 안에서의 모든 서비스에 돈을 지불해야 한다. 나는 처음부터 열정적으로 치열하게 무언가를 해내겠다고 마음먹진 않았다. 일을하고 공부를 할 계획으로 가는 워킹홀리데이였고 우리 집이 살림살이가 넉넉해서 놀고 먹을 처사도 아니었지만, 마음 만이라도 여유롭고 즐겁게 먹고 싶었다. 한국에서의 대학생으로써의 삶이라던가, 그동안 지나온 치열하고 열정적이어야만 했던 삶들을 돌아봤을 때, 주어진 기회 그리고 정해진 시간 속에서 너무 애쓰고 싶지 않았다. 유럽 아닌가?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의 여유와 느긋함을 나 역시 느끼고 싶었고 일을 하고 공부를 하겠지만 경쟁자가 옆에 있듯 눈에 불을 켜고 이를 악물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아주 베짱이 같은 삶도 아니었다고 얘기하고 싶다. 아일랜드에 도착하고 하룻밤을 보내고 나니 내 앞에 펼쳐진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다음 편에서 이어가고싶다.
    • 세계일주
    • 여행블로거
    2018-08-14
  • [아일랜드] 'pacusona's you love : europe...도전
    [트래블아이=박선아] 대학교 2학년이 끝나갈 무렵, 삶에 대한 회의가 밀려왔다. '분명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긴 한데, 이력서에 스펙이라 적을 수 있는 일들은 늘어가고만 있는데, 왜 이렇게 나의 머리와 마음 속에는 갈수록 황폐한 사막만이 늘어가는 것일까?'라는 생각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 지인들의 따뜻한 응원과 격려속에 시작된 유럽에서의 긴 여행 결국 그렇게 삭막하고 메마른 상태를 견디지 못한 나는 어딘가로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다. 집안에선 갑작스런 나의 결정에 무척 당황하는 눈치였고 그 눈치는 '죽이되든 밥이되든 알아서 해라.' 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모아 놓은 돈이 넉넉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제서야 모으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러한 현실에서 자연스레 워킹홀리데이를 알아보게 되었고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등의 나라를 찾아보다가 낯설지만 신비로운 이름 '아일랜드' 를 발견하게 되었다. ▲ 아일랜드에 가기위한 짐싸기, 1주일간 방에 저렇게 펼쳐놓고 짐을 싸고 빼기를 반복했다. 워킹홀리데이 협정이 시작된지 얼마되지 않은 나라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나라이기도 했다. 나는 '미개척지'라는 매력적인 조건에 주저없이 그곳으로 결정했고 급하게 준비하고 훌쩍 낯선 나라 '아일랜드'를 향해 떠났다. 1주일간 방에 저렇게 펼쳐놓고 짐을 싸고 빼기를 반복했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일랜드에서의 삶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긴 휴식이었다. 나는 아일랜드에서 일을 하고 공부를 하기도 했지만 1년가까이의 삶을 통틀어 긴 여행이라고 본다. 여러 집을 옮겨다니며 그 집의 허드렛 일을 했고, 학교를 다녔지만 공식 학교가 아닌 어학원이었다. 그리고 중간 중간 아일랜드 주변의 유럽국가들을 여행하며 그렇게 방랑자처럼 떠도는 삶을 살았다. ▲ 혹시몰라 철저하게 준비했던 상비약들 늘 배낭하나와 트렁크하나가 나의 재산의 전부였고, 그렇게 가벼웠던 떠돌이의 삶은 한국에서의 안락하고 평온한 삶보다 위험천만했지만 농도짙었던 내 삶의 큰 부분이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처음에 트래블아이로부터 기사를 쓸 것을 권유받았을 땐, '내가 뭘 한게 있다고 기사까지..' 라고 생각했지만, 그 길고 길었던 휴식에서 일어났던 소소한 이야기들을 다른 이들과 나눠보는 것도 꽤 재밌는 일이 될 수 있을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주 거창하진 않지만, 누구나의 삶에 한번쯤 깃들 수 있는 짧지만 긴 여행이야기를 하고 싶다. 앞으롤 쓸 이야기들의 전체적인 백그라운드는 아일랜드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그에 더불어 중간중간 프랑스, 스코트랜드, 영국, 독일, 스페인, 스웨덴, 핀란드 등의 유럽국가들의 여행이야기도 약방의 감초처럼 써볼 생각이다. 기사를 쓰기위해 그간의 사진들을 정리하며 기억들을 더듬으니 마치 내가 아직도 유럽에 있는 것처럼 설렌다. 그렇게 소중한 나의 작은 설렘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소통하고 싶다. 국장님께서 글에 대한 제목을 정하라고 하셨을 때, 여러가지를 떠올렸다. '좌충우돌 여행기' '유럽에서의 1년' 등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결정지은 기사의 큰 이름은 'pacusona's you love : europe(파쿠소나의 유럽)' 으로 결정지었다. 유럽에서는 유난히 사랑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고 나도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알알하게 사랑받아 돌아온 것 같다. 유(you) 럽(love)이라는 이름과 꼭 어울리는 일이 아닐까? 앞으로 하나 둘 올라갈 나의 여행기에서 독자분들도 유럽에서 느끼는 찐한 사랑과 나의 그리고 우리의 삶을 느끼도록 열심히 글을 써내려나가고 싶다. ('pacusona's you love : europe(파쿠소나의 유럽)을 연재하는 박선아 씨는 OO대에 재학중인 대학생입니다. 대학생 여행전문기자를 찾던 중 오하은 기자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는데 일을 하면서 1년동안 유럽을 여행했다는 한마디에 무조건 시작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계속해서 트래블아이는 제2, 제3의 파쿠소나 같은 자유여행자들의 다양하고 특별한 이야기들을 담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었던 재미와 놀라움 그리고 감동이 있고 세계의 생생한 현장이 들어 있을 것입니다.- 편집자 주)
    • 세계일주
    • 여행블로거
    2018-08-14
  • [미국] 캠핑카 여행...미국, 어디까지 가봤니?
    [트래블아이=윤두석] 어느덧 누렇게 변해가는 옥수수 밭, 미국의 시골 ‘아이오와’에도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유난히도 짧게만 느껴졌던 올 해 여름 이 곳 아이오와에서, 미국인 식구들과 함께 했던 ‘캠핑이야기’를 다시금 떠올려본다. 미국인들의 여행 문화 중에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캠핑' 문화이다. ▲ 한국인 입양아이자 방송국 동료인 Nick의 백인 가족캠핑에 초대되었다. 광활한 면적을 자랑하는 미국의 땅덩어리에는 울창한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국립공원들이 있고, 각 국립공원들은 합법적으로 텐트를 치고 야영을 즐길 수 있는 'Camp Ground'를 포함하고 있다. 우리가 찾아 간 곳은 Iowa 주 북부 지역에 위치한 Lehigh라는 곳으로, 울창한 숲과 아름다운 호수가 어우러져있는 끝내주는 Camp Ground였다. 때문에 많은 가족들이 주말마다 캠핑을 즐기러 이 곳을 방문하고 있고, 특히 한적한 숲 속에 위치한 까닭에 말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캠핑장이었다. ▲움직이는 콘도로 불리는 캠핑카 RV 차량, 그리고 우리가 머문 텐트 사진에 보이는 큰 차가 바로 캠핑 전용 차량인 ‘RV 캠핑카’이다. 이 거대한 차 안에는 3개의 침대와 화장실, 부엌, 샤워장 등 숙식을 위한 시설들이 준비되어 있었으며, TV, DVD, 전제렌지, 토스트 등 가전제품들까지 완비되어 있었다. 말 그대로 ‘움직이는 콘도’나 다름없었다. ▲ 'The Beach'라는 이름의 바닷가처럼 아름다웠던 호수 캠핑 준비를 마친 우리는 근처에 있는 ‘The Beach’ 라는 호수로 향했다. ‘비치’라는 이름에 걸맞게 해변가를 방불케 하는 고운 백사장과 파란색의 맑고 깨끗한 수질의 호수였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물에 들어가서 더위를 피해 시원한 물놀이 시간을 즐겼다. 저녁 시간이 되자 모두가 바빠졌다. 남자들은 불을 피우고, 그릴 위에 바비큐를 굽고 있었고, 여자들은 테이블을 준비하고 이런저런 음식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미국의 식사문화가 우리와 크게 다른 점 중 하나가 ‘뷔페식’ 문화가 일상이라는 것이다. 준비해놓은 음식들을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으면, 줄을 서서 한 사람씩 차례대로 접시에 먹을 만큼 덜어간다. 뜨끈뜨끈한 쌀밥 대신 빵 밖에 없었다는 거와 물 대신 탄산 음료수를 먹는 다는 것. 그들과 함께 너무 맛있고 즐거운 식사 시간을 가졌지만, 보글보글 끓는 찌개와 따뜻한 밥 한 공기, 그리고 상추에 싸서 먹는 삼겹살 고기가 너무 그리웠다. 저녁을 먹고는 다함께 가벼운 게임을 즐겼다. ▲ 테이블 위에 여러가지 음식들을 준비해 놓고, 뷔페식으로 먹을만큼 접시에 담아서 먹는다. ▲ 캠핑의 꽃, 캠프 화이어. 꼬챙이에 머쉬멜로우를 꽂아 녹여먹기도 했다. ‘프리즈비’라는 원반던지기 게임을 함께 했고, ‘빈백’ 이라는 콩주머니 게임도 함께 즐겼다. 놀이가 단순하고 실력이 크게 중요하지 않아서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어울리는 게임이었다. 마침내 해가 저물었고, 모두가 캠프 파이어 주위에 원을 만들어 앉았다. 저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웃음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꼬챙이에 머쉬멜로우를 꽂아 녹여먹기도 했고, 야식으로 옥수수를 삶아먹기도 했다. 밤 하늘엔 쏟아질 듯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고, 너무나 평화롭고 또 아름다웠던 밤이었다.
    • 세계일주
    • 여행블로거
    2018-08-04
  • [노르웨이] 대자연이 준 아름다운 선물, 내 생애 특별했던 겨울 여행
    [트래블아이=권영빈] 대자연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나라 노르웨이. 바쁜 일상에 지치고 회색도시에 질려버린 한국인들에게 노르웨이는 마치 천국 같은 이미지로 다가 올 것이다. 그래서 인지 수많은 한국인들이 노르웨이를 여행하고 싶어 하거나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 데칼코마니를 연상케 하는 송네피오르드 풍경 나 역시도 천국 같은 노르웨이에서 대자연을 느끼며 마음을 가다듬고 싶었다. 그리던 어느 추운 겨울날. 나는 ISFIT이라는 국제학생축제에 초청되어 노르웨이로 가는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그렇게 노르웨이에서 내 생애 가장 특별했던 겨울 여행이 시작 됐다. 30시간 걸려 노르웨이 트론헤임에 도착했다. 주위는 모델 같이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로 가득했고 그 어느 곳에도 쓰레기 하나 버려져 있지 않았다. 이 때문인지 노르웨이 대한 내 첫인상은 ‘천국’ 그 자체였다. ▲ 트론헤임의 밤축제 풍경 ▲ 송네피오르드에서 맞이한 석양 (사진=권영빈) 언제나처럼 계획 같은 것 없이 시작된 여행이었기에 그냥 천천히 트론헤임을 거닐며 여유롭게 자유를 만끽했다. 트론헤임은 노르웨이 3대 도시이자 대학도시이지만 인구가 겨우 30만밖에 되지 않아 도시의 복잡함과 활기를 느낄 수는 없었다.대신 여유와 평화로 가득 찬 곳이었다. 마침 한 겨울이라 온도가 영하 20도에 육박하였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 별로 춥지 않았기에 자유롭게 트론헤임 구석구석을 돌아 볼 수 있었다.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동화 같은 풍경 덕분에 내 카메라는 쉴 틈이 없었다. 비록 우리나라보다 4배나 높은 물가 때문에 항상 식빵으로 끼니를 때워 배를 허전했지만 마음은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워지는 순간들이었다. ▲ 트론헤임 전경 ▲ 트론헤임에 위치한 성당의 아름다운 모습. 트론헤임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나는 버스로 14시간을 달려 노르웨이 제2의 도시 베르겐에 도착했다. 베르겐은 우리나라의 경주와 같은 곳으로 노르웨이의 과거 수도이자 전통문화의 도시이다. 과거 한자동맹의 중심지여서 수많은 유럽 무역상들이 드나들었던 역사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또한 그 당시 건축물들이 잘 보존돼 있어 마치 중세의 유럽 항구도시에 온 느낌을 받았다. ▲ 베르겐 시내 풍경 건축물 하나하나에 역사의 고결함이 스며들어 있었고 이를 보존하기 위한 노르웨이 인들의 노력도 정말 대단했다.내가 베르겐은 온 이유는 단지 베르겐을 관광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최대의 피오르드인 송네피오르드 보기 위해서였다. 바로 송네피오르드 여행의 관문 도시가 베르겐이다. 성수기인 여름에는 많은 외국인들이 피오르드를 관광하지만 겨울에 피오르드를 여행하는 외국인은 거의 없다. 또한 나처럼 여행사 도움 없이 직접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거의 전무하다. 이 때문인지 피오르드 여행 내내 다른 외국인들을 만날 수 가 없었다. 그래서 좀 외롭고 쓸쓸하기도 했지만 이 덕분에 오랜만에 혼자 많은 생각을 하며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다. 베르겐에서부터 시골열차를 타고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기차역인 뮈르겔을 지나자 진짜 천국이 나타났다. ▲ 송네피오르드 풍경 거대한 피오르드 속에 자리 잡은 그림보다도 더 예쁜 마을인 플룸이었다. 피오르드를 보기위한 페리 탑승시간을 기다리며 흰 눈에 덮인 알록 달록한 집들과 아름다운 강을 따라 거닐었다. 나도 모르게 잃어가던 내의 순수함과 꿈을 다시 생각났고 나의 메말라가던 감성이 촉촉이 적셔져 갔다.얼마 후 본격적인 피오르드를 보기 위해 페리를 탔다. 200인승 페리에 고작 5명밖에 탑승하지 않아 마치 이 거대한 페리가 내 것 같이 느껴졌다. 피오르드는 역시 대단했다. 그 위대한 대자연의 예술 작품 앞에서 나는 넋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 송네피오르드 풍경 본래 피오르드는 산이 물에 비치는 거울효과로 유명한데 직접 보니 마치 마법에 걸린 느낌이 들었다. 또한 피오르드 중간 중간 수줍게 자리 잡은 작은 마을들이 나를 더욱 설레게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아름답지 않을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만큼 피오르드는 아름다웠고 이를 간직한 노르웨이는 축복받은 나라였다.한 달간의 노르웨이 겨울 여행에서 돌아오니 어느새 나의 모국에는 봄이 찾아왔다. 그 어느 때 보다도 길었고 추웠던 겨울을 보냈기에 이번 봄은 정말 반갑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오늘 캠퍼스를 거니니 우리나라의 봄도 노르웨이의 겨울만큼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이 아름다운 봄을 느끼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고 순수해 지길 바란다.
    • 세계일주
    • 여행블로거
    2018-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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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금옥의 두 번째 행복한 인도여행기(1)...프롤로그
    [트래블아이=손금옥]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이 이런 생각이지 않았을까요? 세계일주배틀 인도를 내품에 수상자가 되었음을 확인하고, 전 너무 기뻐서 집이 떠나갈듯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고 나니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하며 혹시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봐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 타지마할 잡기 놀이 (사진=손금옥) 처음 응모할때만 해도 워낙 이런 종류, 돈(?)이 되는 이벤트는 대상자를 정해놓고 시작한다는 말을 들어 별로 기대 안했긴 했습니다. 물론 조금 바랬다면 제 여행배낭이 망가져 다시 사야 하니까 배낭이나 아님 백화점 상품권 정도 타면 좋겠다 하는 기대는 했죠. 근데 응모하면서 그정도 기대는 누구나 할 수 있는거 아닙니까? 아무튼 자고 일어났더니 세상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몇시간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서 친구 몇 명에게 문자를 날려 대충의 상황 설명을 해줬습니다. 친구들, 아주 솔직해서 저에게 어떤 자만심도 갖게 하지 않더군요. - 니가 얼마나 잘 썼길래? 그렇습니다. 저도 발표를 보고 막 기쁘기만 했던 약 1시간 후부터 궁금해지기 시작했던 터였습니다. 응모 게시판에서 몇 개의 비밀글이 아닌것들을 열어봤는데 네이버 파워블로그, 수십개국 여행하고 올려진 화려한 사진과 멋진 글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전 일일 방문자수 보통 200명 안팍, 변방의 블로거였고 - 그나마 요새 약 3달간 제대로된 포스팅을 하나도 안해서 100명도 못찍고 있는 중 - 제 블로그 여행기는 오직 인도에 대한 여행기뿐이고, 그마저도 모두 허접합니다. ▲ 제트 에어웨이즈 비즈니스석 내부, 내 좌석 앞에 있는 개인용 스크린, 영화와 음악감상이 가능. 왼쪽 파란불이 들어오는좌석모양 버튼은 좌석 경사를 조절 할 수 있는데 직관적으로 되어 있어 매우 편리함. 좌석이 일자로 펴져 침대처럼 누울 수 있다는 것과, 여독을 풀 수 있도록 안마기능을 시행할 수 있는 물결무늬 버튼이 가장 좋았음. 스튜어디스들의 외모도 모델급이고 필요한걸 주문하기도 전에 달려오는 친절함으로, 개인적으로 여행할 일이 생긴다면 다시 이용해보고 싶었음. 혹시 실수로 이름이 바뀐게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제 이름이 흔한 것도 아니어서 그럴 가능성도 희박하고, 아무튼 뽑힌 이유가 저도 궁금해서 미치겠는 겁니다. 일정과 준비사항 때문에 담당자분과 이멜 몇번 주고받고, 전화 통화 한 번 했습니다. 근데 괜히 이런걸 물어봐 담당자분이 "제가 실수했네요. 댁이 아닌데 잘못 뽑았어요." 할 거 같아 묻지도 못하고 뭘까? 뭘까? 하면서 저혼자 고민을 했었더랬죠. 관계자분 뵙고 말씀도 들었지만 이분들이 뭘 원하고 절 뽑으셨었는지는 솔직히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글을 보고 뽑으셨다면 제가 뽑히진 않았을게 확실하고, 그것에 대한 기대도 크게 없으셨던 듯 합니다. 다만 인도를 가고 싶다고 다른 누구보다 더 많이 징징거린게 통한 거라고 생각할겁니다. ▲ 델리 인드라 간디 공항 내부 모습, 바닥은 카펫으로 깔려있고, 무빙워크가 설치되어 있는, 2년전과는 너무나 다른 깔끔한 모습. 이제 60일, 길다면 길고 또 짧다면 짧은 기간의 두번째 인도여행을 시작하려 합니다. 첫번째 인도여행 후 그리움을 삭히려 블로그를 시작했고, 인도가 그리워질 즈음 우연히 광고를 보고 응모한 글이 또 우연히 평범한 사람들의 자유롭고 행복한 여행 이라는 사이트 여행 이벤트 방향과 맞았고, 그것이 저를 또, 두번째 인도여행의 인연으로 이끌었네요. 속된 말로 운대가 맞은거 뿐입니다. ▲ 인도 입국심사장 모습 제 첫 여행이 그랬듯, 아마 인도에 가서도 계획대로 될 가능성이 50% 미만일 겁니다. 그렇지만 분명한건 누구를 위한 여행이 아닌 제가 행복한 여행을 할거란 사실입니다. 전문가처럼 잰 체 하지도 않을거고, 제 느낌을 강요하지도 않을 겁니다. 제 사랑하는 똑딱이 디지털카메라는 저와 함께, 화려한 무언가가 아닌 사소한 일상과 인도 사람들을 담을 겁니다. 그 인도 특유의 강렬함이 만만치 않을걸 알기에 첫번째 여행때보다 오히려 걱정이 더 많이 되지만, 여행의 순간 만큼은 한국에서의 고민 따위는 모두 던져 버릴 겁니다. 이렇게 시작되는 저의 두번째 인도여행, 지켜봐 주세요. ▲ 함께 웃어 보아요
    • 세계일주
    • 여행블로거
    2018-09-13
  • [전북] 전주 한옥마을에서 한국의 미를 발견하다
    [트래블아이=이금희] 풍남동과 교동 일대에 자리한 전주 한옥마을은 예향 전주의 멋과 풍류를 한껏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약 700여 채의 한옥이 밀집되어 있는 한옥마을 고샅길을 거닐다 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 전주한옥마을 전경 다양한 체험시설도 들어서 있어 이 골목 저 골목 기웃거리다 보면 하루가 짧다. 전주한옥생활체험관에서는 공예와 다례 등 전통생활을 체험할 수 있고 전주전통술박물관에서는 술도 빚어볼 수 있다. 갤러리인 교동아트센터와 <혼불>의 작가 최명희와 관련한 유품을 모아놓은 최명희 문학관, 마지막 황손 이석이 살고 있는 승광재를 돌아보는 일도 즐겁다. 한지공예품과 한지제작도구, 고문서, 고서적 등 한지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전주한지박물관도 들러볼 만하다. 한옥마을 초입에 자리한 경기전(慶基殿)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임금의 영정)을 봉안한 곳으로 400년 된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대나무 등이 우거져 있어 한나절 산책하기에도 좋다. 경기전 맞은편의 전동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름다운 건물로 영화 ‘편지’의 촬영 무대가 되기도 했다. 조선시대 3대 음식의 하나로 꼽히는 전주비빔밥, 담백하면서도 산뜻한 맛을 자랑하는 콩나물국밥은 전주의 대표적 먹을거리기도 하다. 위치 : 전라북도 전주시 풍남동, 교동 문의전화 : 전주시 한스타일관광과 063)281-5046
    • 세계일주
    • 여행블로거
    2018-09-06
  • [호주]강혜진의 시드니를 수식하는 방법②...안락함이 주는 이질감
    [트래블아이=강혜진] 지금 당신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호주의 수도가 어디야?” 그가 3초간 망설인다면 그는 70%의 사람이다. 30%의 사람만이 “캔버라” 라고 힘주어 말할 것이다. 이게 다 호주의 큰 도시를 떠올리면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하얀 곡선의 오페라하우스, 그리고 모두의 입에 붙어있는 시드니라는 도시의 환영 때문이다. 시드니는 호주의 정신적 중심이자 가장 규모가 큰 도시이다. 실재 수도인 캔버라보다 훨씬 더 ‘수도적인 이미지의 도시’ 맞다. ▲ 시드니 스카이라인 나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눈을 감고 조용히 단어들을 곱씹어서 나열 해본다. 시드니를 수식할 만한 단어를 찾고 있는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시드니는 처음과 마지막에 위치한다. 40일의 간극을 가진 같은 도시가 얼마나 다르게 수식될 지 나조차도 궁금하다. 검은 밤을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리는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다음도시 멜버른으로 가고 있다. 8시간 동안 시드니의 편린들을 정리할 수 있을까?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셔츠에 레깅스를 신고 서울을 떠나왔는데 시드니 공항엔 찬 기운이 가득하다. ▲ ▲ 영화 뮤리엘의 웨딩(1994) : 감독 P.J.호건 주연 토니콜렛 아니 분명 호주에는 겨울이 없다고 그랬던 것 같은데 이 무서운 공기는 무엇이란 말인가. 캐리어를 찾자마자 가죽재킷을 꺼내 입는다. 그리고는 차가운 아침 시드니의 공기 한 모금을 가득 마셨다. 구름 없이 맑은 하늘에 날숨을 내뱉자 한 영화의 타이틀 시퀀스가 떠오른다. “Sydney, City of Brides" 대표적인 호주출신배우 토니콜렛 주연의 영화 ‘뮤리엘의 웨딩’이다. 결혼을 하고 싶은 못생기고 매력 없는 뮤리엘에게 시드니는 본래의 루저같은 자신을 잊고 새 출발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래서 그토록 원하던 신부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도시이다. 뮤리엘처럼 ‘신부’가 되고 싶진 않지만 시드니는 나에게도 분명 강렬한 희망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 근저에는 오랜만에 타지 체험에 더군다나 가늠하기 힘든 수많은 인종이 뒤섞여 있는 도시의 생경함이 목까지 차오른다. 이곳을 어서 조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좀처럼 해보지 않았던 씨티사이트싱 버스를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 하버브릿지 성수기가 아니라 그런지 버스에는 기사와 나 밖에 없다. "How could you define Sydney to me?" 아마도 이민 2, 3세대일 유색인종의 버스기사는 나에게 말한다. “Sydney is, the city you can be what you want to be" 차창 밖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선착장 중 하나인 시드니의 중심 업무 지역 '달링하버'가 펼쳐졌다. 잿빛 컨벤션 건물들과 어우러진 선착장의 고요한 풍경이 웅장하고 정갈하다. “That's...so great." 시드니의 씨티싸이트싱 버스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시드니 중심부를 다니는 RED line과 본다이 쪽을 가는 BLUE line. Red line에는 시드니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가득하다. ▲ 센트럴파크 우선 90여분에 걸쳐 한 바퀴를 돌고 구미가 당기는 지역에 내려서 천천히 감상하는 것이 좋다. 오페라 하우스를 볼 수 있는 서큘러 키가 가장 유명한 관광 포인트이다. ‘시드니는 오페라하우스다. 시드니는 하버브릿지다.’ 사실 수많은 명소들만으로 시드니를 수식하기 충분하다. ▲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city station 구간에서 Blue line 으로 갈아탔다. 본다이는 시드니에서 가장 가까운 해변도시이다. 사진을 찍으면서 시원한 바람을 쐬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갔다. 이 해변도시는 상당한 규모의 고급빌라들이 즐비해있다. 테라스에는 선글라스를 낀 사람들이 주스를 마시면서 태닝을 하고 있었다. 그래,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질감의 경험”이다. 시드니가 나에게 줬던 가장 큰 이질적인, 이국적인 이미지는 바로 “안락함”이다. 서울에서는 이와 같은 무아지경에 이르는 편안함의 장면을 목격하기 힘들다. 꼭 값비싼 집과 펜션에서만의 안식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센트럴 파크, 오페라하우스부근, 록스 광장, 심지어 거대한 쇼핑센터 퀸 빅토리아 빌딩에서도 시드니는 편안한 표정으로 누워있거나 걸어 다니는 장면들로 가득하다. 그 누구도 좀처럼 서두르지 않고, 밀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시드니의 무드. 드디어 첫 번째 수식어를 정했다 ! 안락함. 4시간째 달리던 그레이하운드 버스가 첫 번째 휴게소에 도착했다. 너무 달아서 나에겐 둘도 없는 호주의 국민과자 TIM TAM과 따뜻한 라테를 샀다. 차가운 밤에 버스 라이트 근처에서 나의 라떼 연기와 다른 승객들의 담배연기가 모락모락 올라가고 있었다. 이쯤오니 다시 뮤리엘이 떠오른다. 개봉당시 이 영화는 기존의 로맨틱코미디와는 다른 감정과 캐릭터, 스토리라인으로 독보적인 영화로 평가되었다. ▲ Queen Victoria Building 쇼핑센터 영화감독 호건은 젊은 여성의 삶에서 완전무결한 환상과 불현듯 엄습하는 음침한 몰락 사이의 간극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 스산한 기운이 우리를 더 웃게 하고 울게 한다. 내가 선별한 첫 번째 수식어는 더할 나위 없이 영롱한 ‘안락함’이라는 단어이지만, 물론 그 극에 가까운 단어들도 이질감 없이 이 도시를 수식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이 도시를 더욱 매력적으로 수식하고 기억하는 방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시드니 역시 독보적인 도시이다. 멜버른 까지 몇 시간이 남았을까?
    • 세계일주
    • 여행블로거
    2018-09-03
  • [필리핀] 낭만과 열정의 섬 '보라카이' 추억 만들기(1)
    [트래블아이=최은원] 지난 여름 2박 4일 동안 떠났던 보라카이 여행. 그 후유증으로 수업을 이틀이나 빠졌다. 보라카이가 어떤 곳이었기에 다녀온 이후 며칠 동안 넋이 나간 채 있어야 했을까. 마지막 여행지로 나는 보라카이와 보홀 두 군데 중 고심했다. 보홀에는 귀여운 타르시어(눈이 큰 조그만 원숭이 오직 보홀에서만 서식한다)가 있고 보라카이는 아름다운 화이트 비치가 있다. 보라카이. 이름만 들어도 연상되는 에메랄드 코랄 빛 바다와 뜨거운 햇빛 그리고 낭만적인 해변썬셋. 나는 무한한 기대감과 로망을 품고 며칠의 고심 끝에 결국 보라카이의 아름다운 산호바다에 손을 들었다. 나의 이번 보라카이 여행메이트는 나의 마닐라 여행 메이트였던 R과 나의 룸메 Kaylee 그리고 학교 배치메이트인 Stacy 이렇게 3사람이다. 나와 R이 이번 여행의 모든 계획을 짜기로 하였다. 떠나기 1달 전부터 분주했다. 우리는 한국 여행사가 몰려있다는 말을 듣고 말라테에 3번 정도 찾아갔지만 번번이 헛수고만 하고 돌아왔다. 결국 R과 나는 인터넷으로 항공 예약과 리조트 예약을 하기로 하였다. 항공편은 갈 때는 세부 퍼시픽으로 990페소, 올 때는 제스트에어로 1990페소에 예약했다. 마침 세부퍼시픽에서 마닐라-보라카이행 비행기 프로모션이 있어서 올 때보다 2배 가까이 저렴하게 갈 수 있었다. ▲ 보라카이 화이트 비치 풍경 항공권 예매를 할 때 간혹 저렴한 가격의 프로모가 뜬다. 비행기 시일을 앞두고 누군가가 비행기를 취소했거나 아니면 타는 사람이 없어 비행기 좌석이 남을 때 이러한 프로모 좌석이 뜨곤 한다. 리조트는 한국 중계사이트를 통해 파라다이스 가든 리조트라는 곳에서 2박을 예약했다. 2인 1실 1박이 7만 원 정도인데, 풀장도 있고 뷔페 조식도 포함해서다. 그래서 1인당 세금 포함해서 총 15만 원 정도에 모든 예약을 마칠 수 있었다. 보라카이를 갈 때는 깔리보공항을 통해서 가는 방법과 까띠끌란 공항을 통하는 방법, 2가지가 있다. 까띠끌란행 비행기는 보라카이로 가는 선착장에서 가까워서인지 훨씬 비싸다. 반면 깔리보를 통해서 가는 편도비행기 삯은 까띠끌란보다 대략 2000페소 정도 더 비싸다. 대신에 비행기에서 내리고 약 2시간가량을 버스나 벤을 타고 선착장까지 간 다음에 가야한다. R과 나는 비행기 값을 아끼기 위해 깔리보행으로 예약했다. 21일 토요일 6시 비행기와 24일 화요일 새벽 5시 30분 비행기이다. 가장 저렴한 값으로 맞췄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걱정되는 것들이 많았다. 우선 보라카이로 들어가는 배의 막차와 첫차 시간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갔기 때문에 운이 나쁘다면 돌아오는 마지막 날은 공항 주변에서 노숙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R은 이러한 것조차도 다 경험으로 생각하는 매우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그녀 덕분에 마닐라와 보라카이에서의 여행이 매우 익사이팅했다. ▲ 보라카이 화이트비치 풍경 고대하고 고대했던 5월 21일 아침. 아뿔싸. R의 몸 상태가 좋지 않다. 새벽까지 친구들과 함께 클럽에서 열정을 불사르고 돌아왔다는 그녀의 몸은 열로 뜨끈뜨끈하다. 결국 공항까지 버스로는 무리라고 판단하여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다. R은 자신의 뛰어난 체력만을 믿고 자만했던 자신을 저주했다. 학교에서 공항까지는 택시로 30분 정도 소요하고 택시비는 240페소 정도 나왔다. R의 상태만 빼면 평이한 출발이다. 공항에서 우리는 예상치 못했던 비용인 터미널 요금 200페소를 내야만 했다. 국내선이니까 200페소이지, 한국으로 돌아갈 때는 750페소나 내야한다. 필리핀 정부는 정말 떠나는 그 순간까지 우리에게서 돈을 짜내려는 거 같다. 비행기 시간보다 2시간 정도 일찍 도착한 우리는 주변의 작은 면세점을 둘러보고는 공항 안에 ‘팬케이크 하우스’로 들어갔다. 딱히 배가 고픈 것은 아니었지만, R의 상태가 좋지 않아 푹신푹신한 소파에서 쉬게 할 생각이었다. R은 테이블에 얼굴을 묻은 채 뻗어버렸고, 나는 참치샌드위치와 블랙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총 합쳐서 250페소 정도가 나왔다. 예상치 못한 금액을 계속 쓰게 되어서 조금 걱정되었지만, 샌드위치가 너무 맛있었기 때문에 나는 만족스러웠다. 약간의 휴식 이후 기운을 차린 R은 다시 생기를 찾기 시작했다. 나와 R은 비행기를 타러 플랫폼으로 갔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작은 국내선 비행기. 내가 팔라완에서 탔던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비행기를 타는 순간은 항상 긴장된다. 여행에 대한 긴장과 비행기의 안전성에 대한 긴장까지 다양하고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교차하는 순간이 바로 지금이다. 1시간의 짧은 비행 후 우리는 깔리보 공항에 도착했다. 깔리보 공항에는 보라카이 선착장까지 운행하는 벤을 타라는 호객꾼들로 가득했다. 깔리보 공항에서 선착장까지 가는 벤은 200페소이고 2시간가량 걸린다. 벤을 타고 가는 2시간 내내 차창 밖은 어두워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흔한 가로등조차 없는 산길을 지나가는데, 밤하늘의 별들이 쏟아질 정도로 많이 보였다. 선착장에 도착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마침 가이드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중국인 아주머니 덕분에 무사히 배를 탈 수 있었다. 이곳에서 우리는 환경세 75페소, 배 삯 50페소 그리고 터미널 요금으로 50페소를 냈다. 배로는 10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거리였다. 어두운 저녁인데 불구하고 물이 맑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배에서 내린 후에는 선착장에서 대기하고 있는 트라이시클을 타고 리조트로 갔다. R 과 내가 묵게 될 리조트인 파라다이스 가든 리조트는 생각보다 좋았다. 다만 우리는 트리플을 예약했는데, 트리플이 아닌 더블룸을 배정 받아서 황당했다. 그 점만 제외한다면 조식이나 부대시설은 만족스러웠다. 기대감으로 뜬 눈 새운 다음날 아침, 우리는 대충 씻고서는 7시 30분 경 조식 뷔페에 갔다. 실내가 아닌 야외에서 즐기는 아침 만찬은 새로웠다. 다행히도 R은 원래의 쌩쌩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침을 먹자마자 우리 일행은 아침바다를 보러 나갔다. 보라카이는 길이가 7km 밖에 안되는 작은 섬이다. 스테이션1,2,3으로 모두 3개의 구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스테이션1은 고급 리조트와 조용한 비치가 있고 스테이션 2에는 쇼핑단지인 Dmall을 비롯하여 각종 레스토랑과 바, 카페가 모여 있다. 스테이션3는 저렴한 숙소와 리조트가 모여 있는 곳이다. 스테이션 3에서 스테이션 1까지는 걸어서 약 30분 정도 걸렸다. 우리는 보라카이에 있는 동안 이 거리를 10번도 넘게 왕복했다. 이곳에 오기 전 우리의 모토는 보라카이에 6년 산 사람보다 보라카이의 속속 들이에 대해 잘 알자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떠날 즘에 우리는 모든 가게, 술집이 어디 있는지 지도를 보지 않아도 잘 찾아갈 경지까지 올랐다. 아침 9시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햇빛이 강해서 우리 모두는 챙이 넓은 모자와 썬글라스를 챙기고 산책을 나갔다. 상아빛 하얀 모래사장과 에메랄드 빛 바다는 내가 이곳에 오기 전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하얀 모래사장은 곱고 푹신푹신했다. 비치에서 한창 화보촬영을 한 우리는 비치에서 나와 Dmall로 향했다. 스테이션1과 2 사이에는 로드샵들이 즐비한 쇼핑단지인 Dmall이 있다. 이곳에서 우리는 다양한 샵들을 구경하였다. 수많은 비치웨어를 파는 옷가게와 보라카이 기념품 샵들이 즐비해 있었다. 또한 가이드북에서 보았던 레스토랑과 까페들이 우리의 발걸음을 잡았다. 간단히 둘러 본 후에 우리는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스테이션 3부터 스테이션 1까지 걷고 Dmall을 구경하고 나니 점심시간은 금방이었다. Dmall에 위치한 유명 스페인 음식 전문점인 올레(olle)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었다. 이곳에서 790페소 콤보를 시켰는데, 5가지 메뉴를 우리가 고를 수 있었다. 우리는 5가지 메뉴로 조개구이와 그라탕, 오징어튀김, 미트 볼, 갈릭머쉬룸을 주문했다. 4명이 먹기에는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비키니 수영복을 위해서 점심을 적당히 먹기로 하였다. 스테이션 3에서 1까지 왕복한 후 우리는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찝찝한 마음에 수영을 하고 싶었지만, 지글지글한 태양 아래서 수영을 하는 것은 거의 자살행위라고 판단하여 리조트 내의 수영장에서 수영복을 입고 만나기로 했다. 1시간 뒤 파라다이스 가든 리조트 야외 풀장에서 모인 우리는 한 바탕의 포토타임을 가진 뒤, 풀장에 뛰어들었다. 세상에! 풀장은 생각보다 엄청 깊었다. 1m 57cm 정도인데, 인공폭포가 내리는 곳은 수심이 2m가 넘어서 발조차 닿지 않았다. 우리가 기대했던 명품복근의 멋진 외국남은 없었지만, 우리는 누구의 의식이나 시선에 상관없이 초등학생으로 돌아간 것처럼 물 장난치며 신나게 2시간 동안 풀장에서 놀았다. 물장난 치고 씻고 나자 다시 배가 고팠다. 비키니를 입겠다고 점심도 적게 먹지 않았던가. 우리는 간식을 먹으러 다시 Dmall까지 걸어갔다. Dmall에서 발견한 완소 수제버거집인 Bite버거. 우리는 제일 큰 햄버거인 트리플X버거를 주문했다. 4명이 나눠 먹어도 배가 부른 이 거대한 햄버거 하나 가격은 겨우 340페소. 레모네이드 2잔과 함께 주문하니 400페소 가량 나와서 일행 4명에서 깔끔하게 100페소씩 내고 나왔다. (계속)
    • 세계일주
    • 여행블로거
    2018-09-02
  • [스페인] 유럽의 발코니 네르하, 불현듯 찾아온 여행의 감동
    [트래블아이=강혜진] 스페인 남부의 대도시 세비야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가는 작은 해변마을 네르하. 네르하는 일상을 정지시키고 오로지 휴식만을 위해 그곳을 방문한 각국의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 많은 사람들 중 한국인은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눈을 돌려도 의식할 사람 하나 없는 것이 어쩌면 이곳의 매력이다. 그들은 이미 그 자유로움에 익숙해진 듯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투명한 에메랄드 빛 바다에서 수영을 했다. ▲ 스페인 네르하 풍경 지금 이 금빛 모래와 여유로운 중년부부가 은은한 파스텔 톤 파라솔에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하고, 샤.. 샤.. 하는 파도소리만 가득한 그곳의 바다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차가운 바다에 몸을 담근다. 온 몸에 힘을 빼고 바다에 몸을 맡겼다. 파란색 하늘을 마주했다. 귀가 바닷물에 잠겨서 작은 소음들도 들리지 않았다. 간간히 아이들이 까르르 거리는 은은한 소리만이 울렸다. 아 이 불현듯 찾아온 여행의 감동. 이 나라를 여행하기 위해서 20권이 넘는 책들을 정독하고, 수많은 책자와 영화, 미술 집들을 보았다. 하지만 이러한 ‘봐야할 것을 보고가자’의 여행일정만이 가득하다면, 그것은 흡사 숙제가 되어 나를 괴롭힌다. 다음 종착지도 떠오르지 않을 만큼 지금 이 순간 내가 끌리는 어떤 풍경에 몸을 맡기자. 뭐 어때, 다시오면 돼. 설사 그게 어려운걸 알면서도 이렇게 쿨하게 생각해버렸다. 못보고 간 것은 그때를 위해 남겨둔 것이라고. 이 때 나는 처음으로 이 낯선 나라 스페인에 있다고 느꼈다.
    • 세계일주
    • 여행블로거
    2018-08-30
  • [일본] 나비부인의 배경이 된 나가사키 구라바엔
    [트래블아이=김민수] '나가사키' 하면 히로시마와 더불어 원폭의 이미지가 크다. 또한 영화 군함도의 배경이 된 하시마 섬이 있는 곳이다. 하시마는 나가사키 항에서 불과 18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우리에게는 슬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지만 정작 나가사키에 가면 일본에서 두번째로 개항을 시도한 도시답게 세련된 건축물을 많이 볼 수 있다. 게다가 나가사키 항은 일본의 3대 미항으로 불릴만큼 야경이 아름답다. 지금까지 가장 유럽다운 일본으로 불리는 이유다. 이렇게 나가사키는 유럽의 흔적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이면서 오페라 '나비부인'의 모티브로도 알려진 구라바엔으로 가보자. ▲ 구라바엔으로 가는 길 양쪽에 즐비한 기념품 상점들이 파는 기념품. 구라바엔으로 향하는 길 양쪽으로는 아기자기한 기념품들로 구색을 갖춘 상점들이 즐비하다. 갖가지 음식들과 장식품들은 관광객들의 시선을 한번에 사로잡는다. 기념품들을 뒤로 하고 언덕을 향해 올라가면 since 1974라는 간판과 함께 구라바엔이 시작된다. 일본을 여행하다보면 참 좋은 것이 다른 곳에서는 찾기 힘든 한글 안내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홀로하는 여행이라 해도, 초행길이라 해도, 일본어를 몰라도 그다지 큰 어려움은 없다. 나가사키 시내를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한 구라바엔은 '움직이는 보도'를 통해 제1게이트에서 미쯔비시 제 2독하우스 입구까지 올라갈 수 있다. 짧지 않은 거리를 올라가는 동안 왼쪽으로 볼 수 있는 나가사키의 전경이 예술이다. 드디어 미쯔비시 제2 독하우스에 도착했다. 이곳은 미쯔비시 조선소에 배가 수리하기 위해 들어왔을 때 승무원들이 휴식을 취하면서 숙박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종합시설이다. ▲ 일본 역사상 가장 인기있는 사람 중 한명인 사카모토 료마의 사진 구라바엔의 가장 위쪽에 자리하고 있어 전망을 보기에도 그만이다. 이층 베란다에 서면 나가사키항이 훤히 내려다 보이고 조선소까지도 보인다. 실내에는 그 당시 사용되었던 집기와 의상들을 전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일본 역사상 가장 인기있는 사람 중 한명인 사카모토 료마의 사진이다. 도쿠가와 막부를 종식시키고 메이지유신을 일으키는데 공을 세운 영웅으로 지금까지 소설, 만화, 게임으로 일본인들 곁에서 함께하고 있다. 저 멀리 보이는 하얀석상이 푸치니, 아이를 안고 있는 여성이 오페라 나비부인에서 나비부인의 역할로 유명해진 미우라 타마키(일본 최초의 오페라 가수란다)이다. 그녀는 30년 동안 전세계를 돌며 나비부인의 역할을 하면서 일본을 세계에 알리는데 크게 일조했다. 이렇게 당시 모습들을 둘러보고 돌아나오면 푸치니와 미우라 다마키의 동상이 있다. 구라바엔을 이야기하면서 나비부인을 빼놓을 수 없듯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게한 푸치니와 그 빛을 강렬하게 만들어준 미우라 다마키도 잊지말라고 이곳에서 여행자들을 맞는다. 이 동상들을 자꾸 바라보고 있으면 작곡자와 배우의 모습이 아니라 멀리 떠난 핀커튼을 꿈에서라도 보고자 염원하는 나비부인과 타국에 두고 온 사랑하는 여인을 그리워하는 장교 핀커튼으로 보인다. 지금은 이것이 나가사키 3대 비극 중 하나로 유명하다. 유럽식 건물에 맞게 아름다운 화단정원으로 장식되어 있다. 지금도 그 주인공들이 살아있으면서 가꾸고 있을 것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1859년 나가사키시에 무역회사(글로버상회)를 설립한 토마스 글로버(Thomas Blake Glover)의 대저택으로 19세기 서양식 건물의 특징들이 남아있다. 글로버 주택에는 많은 살림살이들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보이는 작은 그릇들도 모두가 글로버 부부가 이곳에서 사용하던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일본의 향기보다는 글로버가 가지고 온 유럽의 향기가 더욱 짙은 것 같다. 거실에는 글로버와 그의 부인 쓰루의 사진이 걸려 있다. 쓰루 부인이 바로 나비부인의 모델이 되었는데 그녀는 늘 나비문양이 새겨져 있는 기모노를 즐겨 입었다고 한다. 그 모습이 외국인들에게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고 해서 나비부인이 되었다. 글로버는 73세가 될때까지 이곳에서 부인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는데 안타깝게도 그들의 아들인 구라바 도미사부로는 세계 2차대전 당시 스파이로 몰리게 되어 자살을 했다. 그 이후 이 모든 것들이 국가로 환수되었다. 구라바엔을 주의깊게 돌아보다 보면 하트 모양의 바닥돌을 볼 수 있다. ▲ 하트가 조각된 바닥돌 구라바엔에는 3개의 하트가 있다. 이 바닥돌을 밟으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좋은 일이 생긴다. 아직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 등 여러가지 설이 전해진다. 만약 무엇인가를 바라고 있는 사람이라면 입구부터 눈을 크게 뜨고 다니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둘러볼 곳은 나가사키 전통 예능관이다. 전통 춤과 축제를 보여주는 동영상과 모형 등의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어 다양한 그들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나가사키의 유명한 축제 '나가사키쿤치'에서 사용되는 용과 함께 다른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거리상으로는 우리나라가 중국과 더 가깝지만 어떤 측면에선 일본이 오히려 더 중국의 문화와 유사한 부분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게 하기도 한다. 이렇게 구라바엔을 둘러보고는 올라가는 길에 미처 보지 못했던 기념품 가게들을 한번 들러보는 것도 좋다. ▲ 오구라 성당 (26성인 순교자 성당) 한가지 더 구라바엔에서 내려오다 보면 흰색의 오래된 목조 성당이 보인다. 바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성당으로 오우라성당 혹은 26성인 순교자 성당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전체 인구의 1%라는 적은 수의 가톨릭 신자가 존재하는 일본에서 국보로 지정될 만큼 큰 의미를 가진 곳이다.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꼭 둘러보기를 권한다.
    • 세계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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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8-14
  • [아일랜드] 'pacusona's you love:europe...아일랜드로 출발
    [트래블아이=박선아 기자] 아일랜드로 출발하는 날, 아침부터 왠지 묘한 기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마중 나와준 가족들, 친구들과 함께 공항에서 점심을 먹을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가는 날까지 사랑받는 구나.' 하며 행복해 했는데 눈물의 포옹과 안녕을 고하고 게이트로 들어서는 순간, '아 이제 혼자구나.' 하는 느낌이 알알하게 느껴졌다. ▲ 자, 이제 떠나는거야! 한 번도 혼자 공항에 들어서 본 적이 없던 나였기에 그렇게 즐거운 면세점도 낯설게만 느껴졌고 앞으로 혼자서 해나가야 할 많은 일들에 먹먹함이 다가왔다. 비행기에 탑승 한 후, 친구들이 마중나와 준 선물들과 편지들을 조심스레 뜯어 보았다. 조금씩 읽어 내려가는 동안 비행기는 땅을 벗어나 하늘로 향하고 있었고 그 떨리는 순간에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훔치고야 말았다. ▲ 떨리는 마음으로 비행기를 기다리기 옆에 앉은 엄마아빠 나이뻘의 부부는 무거운 짐을 한가득 들고 타더니 비행기가 뜨자마자 눈물을 훔치는 내게 껌을 내밀며 어디를 가는지 무엇을 하러 가는지에 대해 물으셨다. 내 얘기에 그 분들 역시 자식에 대한 걱정과 소망같은 것들을 늘어놓으셨고 암스테르담까지의 긴 여정에도 엄마 아빠와 함께 있는 듯한 느낌으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분명 철저하게 혼자 되었다고 느꼈지만 '지구에서 아주 혼자인 존재는 없나보다' 하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겁먹지 말고 너무 이 악물고 도전하듯 살지도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는 사이 비행기는 환승 장소인 암스테르담 공항에 도착했다. ▲ 비행기들을 보며 해맑게 좋아하고 있던 작은 아이 아일랜드는 아쉽게도 직항이 없다. 그래서 암스테르담이나 파리를 경유해야만 한다. 내가 선택한 경유지는 암스테르담. 그 간단한 경유조차도 처음이라 몇번을 외국인들에게 서툰 영어로 물어가며 확인하고 불안해했는지 모른다. 커다랗던 비행기에서 아일랜드의 작은 저가항공기로 옮겨타고 나서야 한 시름이 놓였다. 경유를 하는 과정에서도 프랑스의 예쁜 커플, 작은 꼬마 그리고 나처럼 유학길에 오른 한국인까지 많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 아일랜드는 직항이 없어 경유를 해야만 한다 굳이 여행의 기록이 아닌 출발의 기록을 먼저 적어보는 이유는 아마도 이때의 그 낯설고 두려운 느낌과 동시에 다가오는 설렘이 그 긴 여행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후의 일들도 여러 사건과 사고가 뒤를 잇지만, 그래도 역시 처음 혼자가 되어 비행기를 타고 하루를 보내는 그 시간을 잊을 수가 없다. ▲ 비가 많이 오는 아일랜드, 무게가 많이 나가는 레인부츠이기에 신고 탔더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 유럽 저가항공사의 비행기들은 상당히 작고, 비행기 안에서의 모든 서비스에 돈을 지불해야 한다. 나는 처음부터 열정적으로 치열하게 무언가를 해내겠다고 마음먹진 않았다. 일을하고 공부를 할 계획으로 가는 워킹홀리데이였고 우리 집이 살림살이가 넉넉해서 놀고 먹을 처사도 아니었지만, 마음 만이라도 여유롭고 즐겁게 먹고 싶었다. 한국에서의 대학생으로써의 삶이라던가, 그동안 지나온 치열하고 열정적이어야만 했던 삶들을 돌아봤을 때, 주어진 기회 그리고 정해진 시간 속에서 너무 애쓰고 싶지 않았다. 유럽 아닌가?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의 여유와 느긋함을 나 역시 느끼고 싶었고 일을 하고 공부를 하겠지만 경쟁자가 옆에 있듯 눈에 불을 켜고 이를 악물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아주 베짱이 같은 삶도 아니었다고 얘기하고 싶다. 아일랜드에 도착하고 하룻밤을 보내고 나니 내 앞에 펼쳐진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다음 편에서 이어가고싶다.
    • 세계일주
    • 여행블로거
    2018-08-14
  • [아일랜드] 'pacusona's you love : europe...도전
    [트래블아이=박선아] 대학교 2학년이 끝나갈 무렵, 삶에 대한 회의가 밀려왔다. '분명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긴 한데, 이력서에 스펙이라 적을 수 있는 일들은 늘어가고만 있는데, 왜 이렇게 나의 머리와 마음 속에는 갈수록 황폐한 사막만이 늘어가는 것일까?'라는 생각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 지인들의 따뜻한 응원과 격려속에 시작된 유럽에서의 긴 여행 결국 그렇게 삭막하고 메마른 상태를 견디지 못한 나는 어딘가로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다. 집안에선 갑작스런 나의 결정에 무척 당황하는 눈치였고 그 눈치는 '죽이되든 밥이되든 알아서 해라.' 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모아 놓은 돈이 넉넉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제서야 모으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러한 현실에서 자연스레 워킹홀리데이를 알아보게 되었고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등의 나라를 찾아보다가 낯설지만 신비로운 이름 '아일랜드' 를 발견하게 되었다. ▲ 아일랜드에 가기위한 짐싸기, 1주일간 방에 저렇게 펼쳐놓고 짐을 싸고 빼기를 반복했다. 워킹홀리데이 협정이 시작된지 얼마되지 않은 나라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나라이기도 했다. 나는 '미개척지'라는 매력적인 조건에 주저없이 그곳으로 결정했고 급하게 준비하고 훌쩍 낯선 나라 '아일랜드'를 향해 떠났다. 1주일간 방에 저렇게 펼쳐놓고 짐을 싸고 빼기를 반복했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일랜드에서의 삶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긴 휴식이었다. 나는 아일랜드에서 일을 하고 공부를 하기도 했지만 1년가까이의 삶을 통틀어 긴 여행이라고 본다. 여러 집을 옮겨다니며 그 집의 허드렛 일을 했고, 학교를 다녔지만 공식 학교가 아닌 어학원이었다. 그리고 중간 중간 아일랜드 주변의 유럽국가들을 여행하며 그렇게 방랑자처럼 떠도는 삶을 살았다. ▲ 혹시몰라 철저하게 준비했던 상비약들 늘 배낭하나와 트렁크하나가 나의 재산의 전부였고, 그렇게 가벼웠던 떠돌이의 삶은 한국에서의 안락하고 평온한 삶보다 위험천만했지만 농도짙었던 내 삶의 큰 부분이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처음에 트래블아이로부터 기사를 쓸 것을 권유받았을 땐, '내가 뭘 한게 있다고 기사까지..' 라고 생각했지만, 그 길고 길었던 휴식에서 일어났던 소소한 이야기들을 다른 이들과 나눠보는 것도 꽤 재밌는 일이 될 수 있을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주 거창하진 않지만, 누구나의 삶에 한번쯤 깃들 수 있는 짧지만 긴 여행이야기를 하고 싶다. 앞으롤 쓸 이야기들의 전체적인 백그라운드는 아일랜드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그에 더불어 중간중간 프랑스, 스코트랜드, 영국, 독일, 스페인, 스웨덴, 핀란드 등의 유럽국가들의 여행이야기도 약방의 감초처럼 써볼 생각이다. 기사를 쓰기위해 그간의 사진들을 정리하며 기억들을 더듬으니 마치 내가 아직도 유럽에 있는 것처럼 설렌다. 그렇게 소중한 나의 작은 설렘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소통하고 싶다. 국장님께서 글에 대한 제목을 정하라고 하셨을 때, 여러가지를 떠올렸다. '좌충우돌 여행기' '유럽에서의 1년' 등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결정지은 기사의 큰 이름은 'pacusona's you love : europe(파쿠소나의 유럽)' 으로 결정지었다. 유럽에서는 유난히 사랑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고 나도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알알하게 사랑받아 돌아온 것 같다. 유(you) 럽(love)이라는 이름과 꼭 어울리는 일이 아닐까? 앞으로 하나 둘 올라갈 나의 여행기에서 독자분들도 유럽에서 느끼는 찐한 사랑과 나의 그리고 우리의 삶을 느끼도록 열심히 글을 써내려나가고 싶다. ('pacusona's you love : europe(파쿠소나의 유럽)을 연재하는 박선아 씨는 OO대에 재학중인 대학생입니다. 대학생 여행전문기자를 찾던 중 오하은 기자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는데 일을 하면서 1년동안 유럽을 여행했다는 한마디에 무조건 시작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계속해서 트래블아이는 제2, 제3의 파쿠소나 같은 자유여행자들의 다양하고 특별한 이야기들을 담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었던 재미와 놀라움 그리고 감동이 있고 세계의 생생한 현장이 들어 있을 것입니다.- 편집자 주)
    • 세계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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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8-14
  • [미국] 캠핑카 여행...미국, 어디까지 가봤니?
    [트래블아이=윤두석] 어느덧 누렇게 변해가는 옥수수 밭, 미국의 시골 ‘아이오와’에도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유난히도 짧게만 느껴졌던 올 해 여름 이 곳 아이오와에서, 미국인 식구들과 함께 했던 ‘캠핑이야기’를 다시금 떠올려본다. 미국인들의 여행 문화 중에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캠핑' 문화이다. ▲ 한국인 입양아이자 방송국 동료인 Nick의 백인 가족캠핑에 초대되었다. 광활한 면적을 자랑하는 미국의 땅덩어리에는 울창한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국립공원들이 있고, 각 국립공원들은 합법적으로 텐트를 치고 야영을 즐길 수 있는 'Camp Ground'를 포함하고 있다. 우리가 찾아 간 곳은 Iowa 주 북부 지역에 위치한 Lehigh라는 곳으로, 울창한 숲과 아름다운 호수가 어우러져있는 끝내주는 Camp Ground였다. 때문에 많은 가족들이 주말마다 캠핑을 즐기러 이 곳을 방문하고 있고, 특히 한적한 숲 속에 위치한 까닭에 말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캠핑장이었다. ▲움직이는 콘도로 불리는 캠핑카 RV 차량, 그리고 우리가 머문 텐트 사진에 보이는 큰 차가 바로 캠핑 전용 차량인 ‘RV 캠핑카’이다. 이 거대한 차 안에는 3개의 침대와 화장실, 부엌, 샤워장 등 숙식을 위한 시설들이 준비되어 있었으며, TV, DVD, 전제렌지, 토스트 등 가전제품들까지 완비되어 있었다. 말 그대로 ‘움직이는 콘도’나 다름없었다. ▲ 'The Beach'라는 이름의 바닷가처럼 아름다웠던 호수 캠핑 준비를 마친 우리는 근처에 있는 ‘The Beach’ 라는 호수로 향했다. ‘비치’라는 이름에 걸맞게 해변가를 방불케 하는 고운 백사장과 파란색의 맑고 깨끗한 수질의 호수였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물에 들어가서 더위를 피해 시원한 물놀이 시간을 즐겼다. 저녁 시간이 되자 모두가 바빠졌다. 남자들은 불을 피우고, 그릴 위에 바비큐를 굽고 있었고, 여자들은 테이블을 준비하고 이런저런 음식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미국의 식사문화가 우리와 크게 다른 점 중 하나가 ‘뷔페식’ 문화가 일상이라는 것이다. 준비해놓은 음식들을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으면, 줄을 서서 한 사람씩 차례대로 접시에 먹을 만큼 덜어간다. 뜨끈뜨끈한 쌀밥 대신 빵 밖에 없었다는 거와 물 대신 탄산 음료수를 먹는 다는 것. 그들과 함께 너무 맛있고 즐거운 식사 시간을 가졌지만, 보글보글 끓는 찌개와 따뜻한 밥 한 공기, 그리고 상추에 싸서 먹는 삼겹살 고기가 너무 그리웠다. 저녁을 먹고는 다함께 가벼운 게임을 즐겼다. ▲ 테이블 위에 여러가지 음식들을 준비해 놓고, 뷔페식으로 먹을만큼 접시에 담아서 먹는다. ▲ 캠핑의 꽃, 캠프 화이어. 꼬챙이에 머쉬멜로우를 꽂아 녹여먹기도 했다. ‘프리즈비’라는 원반던지기 게임을 함께 했고, ‘빈백’ 이라는 콩주머니 게임도 함께 즐겼다. 놀이가 단순하고 실력이 크게 중요하지 않아서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어울리는 게임이었다. 마침내 해가 저물었고, 모두가 캠프 파이어 주위에 원을 만들어 앉았다. 저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웃음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꼬챙이에 머쉬멜로우를 꽂아 녹여먹기도 했고, 야식으로 옥수수를 삶아먹기도 했다. 밤 하늘엔 쏟아질 듯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고, 너무나 평화롭고 또 아름다웠던 밤이었다.
    • 세계일주
    • 여행블로거
    2018-08-04
  • [노르웨이] 대자연이 준 아름다운 선물, 내 생애 특별했던 겨울 여행
    [트래블아이=권영빈] 대자연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나라 노르웨이. 바쁜 일상에 지치고 회색도시에 질려버린 한국인들에게 노르웨이는 마치 천국 같은 이미지로 다가 올 것이다. 그래서 인지 수많은 한국인들이 노르웨이를 여행하고 싶어 하거나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 데칼코마니를 연상케 하는 송네피오르드 풍경 나 역시도 천국 같은 노르웨이에서 대자연을 느끼며 마음을 가다듬고 싶었다. 그리던 어느 추운 겨울날. 나는 ISFIT이라는 국제학생축제에 초청되어 노르웨이로 가는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그렇게 노르웨이에서 내 생애 가장 특별했던 겨울 여행이 시작 됐다. 30시간 걸려 노르웨이 트론헤임에 도착했다. 주위는 모델 같이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로 가득했고 그 어느 곳에도 쓰레기 하나 버려져 있지 않았다. 이 때문인지 노르웨이 대한 내 첫인상은 ‘천국’ 그 자체였다. ▲ 트론헤임의 밤축제 풍경 ▲ 송네피오르드에서 맞이한 석양 (사진=권영빈) 언제나처럼 계획 같은 것 없이 시작된 여행이었기에 그냥 천천히 트론헤임을 거닐며 여유롭게 자유를 만끽했다. 트론헤임은 노르웨이 3대 도시이자 대학도시이지만 인구가 겨우 30만밖에 되지 않아 도시의 복잡함과 활기를 느낄 수는 없었다.대신 여유와 평화로 가득 찬 곳이었다. 마침 한 겨울이라 온도가 영하 20도에 육박하였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 별로 춥지 않았기에 자유롭게 트론헤임 구석구석을 돌아 볼 수 있었다.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동화 같은 풍경 덕분에 내 카메라는 쉴 틈이 없었다. 비록 우리나라보다 4배나 높은 물가 때문에 항상 식빵으로 끼니를 때워 배를 허전했지만 마음은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워지는 순간들이었다. ▲ 트론헤임 전경 ▲ 트론헤임에 위치한 성당의 아름다운 모습. 트론헤임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나는 버스로 14시간을 달려 노르웨이 제2의 도시 베르겐에 도착했다. 베르겐은 우리나라의 경주와 같은 곳으로 노르웨이의 과거 수도이자 전통문화의 도시이다. 과거 한자동맹의 중심지여서 수많은 유럽 무역상들이 드나들었던 역사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또한 그 당시 건축물들이 잘 보존돼 있어 마치 중세의 유럽 항구도시에 온 느낌을 받았다. ▲ 베르겐 시내 풍경 건축물 하나하나에 역사의 고결함이 스며들어 있었고 이를 보존하기 위한 노르웨이 인들의 노력도 정말 대단했다.내가 베르겐은 온 이유는 단지 베르겐을 관광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최대의 피오르드인 송네피오르드 보기 위해서였다. 바로 송네피오르드 여행의 관문 도시가 베르겐이다. 성수기인 여름에는 많은 외국인들이 피오르드를 관광하지만 겨울에 피오르드를 여행하는 외국인은 거의 없다. 또한 나처럼 여행사 도움 없이 직접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거의 전무하다. 이 때문인지 피오르드 여행 내내 다른 외국인들을 만날 수 가 없었다. 그래서 좀 외롭고 쓸쓸하기도 했지만 이 덕분에 오랜만에 혼자 많은 생각을 하며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다. 베르겐에서부터 시골열차를 타고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기차역인 뮈르겔을 지나자 진짜 천국이 나타났다. ▲ 송네피오르드 풍경 거대한 피오르드 속에 자리 잡은 그림보다도 더 예쁜 마을인 플룸이었다. 피오르드를 보기위한 페리 탑승시간을 기다리며 흰 눈에 덮인 알록 달록한 집들과 아름다운 강을 따라 거닐었다. 나도 모르게 잃어가던 내의 순수함과 꿈을 다시 생각났고 나의 메말라가던 감성이 촉촉이 적셔져 갔다.얼마 후 본격적인 피오르드를 보기 위해 페리를 탔다. 200인승 페리에 고작 5명밖에 탑승하지 않아 마치 이 거대한 페리가 내 것 같이 느껴졌다. 피오르드는 역시 대단했다. 그 위대한 대자연의 예술 작품 앞에서 나는 넋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 송네피오르드 풍경 본래 피오르드는 산이 물에 비치는 거울효과로 유명한데 직접 보니 마치 마법에 걸린 느낌이 들었다. 또한 피오르드 중간 중간 수줍게 자리 잡은 작은 마을들이 나를 더욱 설레게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아름답지 않을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만큼 피오르드는 아름다웠고 이를 간직한 노르웨이는 축복받은 나라였다.한 달간의 노르웨이 겨울 여행에서 돌아오니 어느새 나의 모국에는 봄이 찾아왔다. 그 어느 때 보다도 길었고 추웠던 겨울을 보냈기에 이번 봄은 정말 반갑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오늘 캠퍼스를 거니니 우리나라의 봄도 노르웨이의 겨울만큼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이 아름다운 봄을 느끼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고 순수해 지길 바란다.
    • 세계일주
    • 여행블로거
    2018-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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