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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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수

-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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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많이 와서 

산앳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 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사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늬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 옆 은댕이 예데

가리 밭에서

하로밤 뽀오햔 흰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이득한 녯날 한가하고 즐겁든 새월로부터

실 같은 봅비는 속을 타는 듯한 녀름볕 속을 지나서 들쿠레

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늬 하로밤

아베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베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여났다는 먼 녯적 큰마니가

또 그 집등색이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 넘엣 마을까지 들

렸다는

먼 녯적 큰아버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112.jpg [트래블아이=·사진 김가인 기자 (시인, 문학박사)] 마른장마가 지속되는 요즘이다. 열대야는 없는 올해 여름이지만 가끔 내리는 소나기가 반가운 오늘이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하는 여름이면 우리네 입맛은 밥을 점점 멀리하게 된다. 밥상에 오르던 뜨끈한 밥이 싫어지는 계절. 여름에는 여러 가지 시원한 음식들로 더위를 식히는데 그러한 음식 중 하나가 국수.

 

백석의 <국수>에 등장하는 국수는 동치미 국물에 김치가재미를 넣어 먹는 겨울 국수이다. 백석 시인이 살았던 이북의 여러 음식들 중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함흥냉면은 한국전쟁 후 피난민들에 의해 널리 확산되었다. 쫄깃한 면발에 국물이 자작자작한 비빔냉면은 집나간 입맛을 불러올 만한 담백함과 식감, 매콤함으로 사람들을 사로잡는 여름 대표음식이 되었다.

 

시인 백석은 평안도에서 태어나 함경도에서 교사생활을 했고 신문사에 근무했다. 평안도와 함경도를 여행하며 만난 서민들의 음식을 묘사한 시와 산문이 많은 이유에는 이러한 배경이 존재한다. 평안도 모밀국수와 함흥냉면의 재료인 가자미와 회국수에 대한 산문도 있다.

 

나는 정말이지 그대도 잘 아는 함경도 함흥 만세교 다리 밑에 님이 오는 털게 맛에 헤가우손이를 치고 사는 사람입네. 하기야도 내가 친하기로야 가재미가 빠질겝네. 회국수에 들어 일미이고 식 혜에 들어 절미지

 

산문 동해193867일자 동아일보

 

장수를 기원하며 긴 면발을 자르지 않고 먹는 국수로 여름 입맛을 찾아가는 사람들. 부추, 열무, 김치 등 여름 채소로 건강을 찾아 먹는 국수 요리들이 있어 제철 채소를 섭취한다. 또한, 분단의 역사 속에서 북쪽의 음식문화를 접하는 방법으로 함흥냉면, 평양냉면을 먹고 코다리회냉면, 간재미회 냉면과 국수를 즐기는 사람들.

백석의 <국수>를 읽는 동안 여름의 나,는 겨울에 미리 가 있는 것이다.

<국수> 동치미 국물과 김치간재미 국수를 말아먹는 겨울의 풍경과 만나 더운 여름을 식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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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인 시인의 시가 있는 풍경] ① 백석의 '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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