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2(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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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콜이 지나가자 열대의 태양이 하늘가운데를 향해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며 달려 오르고 있다. 꺽다리청년이 강변에서 보트를 흥정한다. 그는 이곳을 수시로 드나드는 모양으로 웬만한 사람들은 모두들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보트 한척이 20여명의 사람들을 싣고는 나루로 들어서고 있었다. 나루로 들어오는 보트에 탄 사람들은 제법 긴 푸른색 천막비닐 한 장으로 강변 쪽에서 보이지 않도록 일행모두의 상체 부분을 가리고 있었다.  

아랫부분만을 가린 거의 전라인 이 사람들은 강변의 깊은 정글 속 어디엔가 사는 인디오 원주민들인 듯하다. 길고 흰 수염의 앞에 앉은 노인이 양손으로 몸을 가린 천막을 꽉 움켜잡고서는 강변 마을의 사람들이며 건물들을 유심히 살핀다.
 
   
 
노인의 두리번거리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볼 때, 이들은 어떤 사정으로 모처럼의 바깥나들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뒤쪽으로 앉은 아낙들과 아이들은 천막을 잡은 손은 건성이었으며 드러나는 알몸은 아랑곳없이 강 이쪽편의 풍물과 사람들을 바라보기에 여념이 없다.
 
그런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바로 옆에서 이제 막 보트에 오르려 하던 나에게로 모아지고 있었다. 불과 2분정도의 보트로 기름통을 건네받는 짧은 시간이었으나 인디오들과 나와의 시선이 빠르게 교차되고 있었다.
 
모두를 향하여 손을 흔들며 활짝 웃어 주었다. 그들은 나의 웃음에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를 몰라 난감해 하는 듯 앞자리의 노인부터 당황해서 어정쩡해 하는 표현이 역력했다. 그중 가장 뒤쪽에 앉은 소녀와 시선이 부딪혔다.
 
소녀는 이제 16~18세정도로 보였으며 한순간 아무런 경계 없는 해맑은 웃음을 나에게 보내온다. 활짝 보조개까지 만들어내어 소리 없는 웃음을 웃은 소녀는, 다른 일행을 의식했음 인지 고개를 숙이며 수줍어하고 있었다. 그런 소녀가 몸을 가리라는 비닐엔 생각을 잊은 듯 비닐은 그녀의 무릎께에 떨어져 있었으며 여과 없이 드러난 봉긋한 젖가슴 역시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여분의 기름통을 건네받은 보트는 이내 강심을 향하여 달려 나가기 시작 했다. 달리는 보트에서 소녀가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본다.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준다.
 
   
 
생각해본다.
 
‘만약 저들이 허락 한다면 함께 깊은 정글의 원시림 속에서 태곳적 모습으로 더불어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를! 한동안을 머문 다음일지라도 다시 떠나올 때 아무런 흔적없이 떠나 올 수만 있다면 한번쯤 저 하얀 수염의 노인에게 말 해 볼 수도 있을 것 이다.’ 라는…….
 
자욱없이......, 흔적없이......, ......, ......,
 
잠시 동안의 꿈을 꾸고 있던 나를 꺽다리청년이 바라보고 있었던 듯 배낭을 보트에 옮겨 실으며 내게로 말을 건네 온다.
 
“쑨! 저 소녀는 자기네와 같은 모습의 동양 사람을 아마도 처음 보았을 것이다.” 라고……. 녀석은 마치 나의 속내를 읽은 듯싶다.
 
꺽다리청년과, 프랑스청년, 그리고 나를 실은 날렵한 보트는 세찬 물살을 양옆으로 뿜어내며 거의 날듯이 강을 거슬러 오르고 있었다. 두 나라의 강변으로 펼쳐지는 깊은 정글을 바라보며 조금 전 위쪽으로 사라져간 인디오들의 부락언저리를 속으로 어림잡아 본다.
 
국경이 바로 강 건너편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보트는 정글 숲의 가장자리를 따라 물살이 약한 곳을 골라가며 수km이상을 위쪽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프랑스청년은 시선이 부딪힐 적마다 방긋 거리며 웃고 있다. 그의 맑은 미소가 마음에 든다. 그를 보며 때론 여행(?)이 지치고 짜증스러울 때가 있지만 가능하면 나 역시도 내가 가진 원래의 웃음을 잃지 않아야겠다고 잠시 생각한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나는 나의 웃음을 이미 많이 잃어버리고 있었다.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한때 나는 자타가 인정하던 해맑은 웃음을 가지고 있었었다. 그 웃음을 찾을 것이다.
 
   
 
30여분가까이를 빠르게 달린 보트는 반대쪽 숲의 나루터에 배를 댄다. 바람을 가르던 속도가 정지되자 정글에서 뿜어져 나오는 후덥한 열기가 온몸으로 끼쳐 온다. 프랑스청년의 안내로 입국사무실로 향한다. 철문을 밀고 들어서는 우리에게 커다란 권총을 찬 프랑스정복경관의 첫마디인 “봉쥬르!”에 나는 잠시 당황한다. 산 너머 산이다. 아직 에스파뇰도 입술만 달싹여 간단한 몇 마디 생존단어와 숫자 몇 개만을 세는데 강하나 건너니 이제는 프랑스사람에다가 또 불어다.
 
무엇이 문제인지 입국심사는 꽤나 시간을 끌고 있었다. 집에 돌아온 마냥 말문이 터져 동안의 과묵함에서 벗어난 프랑스청년은 나를 위해 열심히 대리 설명을 해 주고 있었다. 여권을 페이지마다 살피고 기계로 확인을 하고, 남측인가, 북측인가를 묻고도 두어 번 이상을 안쪽의 사무실을 드나들고 나서야 입국도장을 찍어 주었다. 경관의 마지막 인사는 고맙게도 영어였다.
 
"have a nice trip!"
 
드디어 오래전부터 오고 싶었던 빠삐용의 유배지였었던 프랑스식민지 가이아나에 도착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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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땅 라틴아메리카일주-프렌치 가이아나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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