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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젤란의 십자가와 당시의 상황을 묘사한 그림을 볼 수 있다. | ||
세부섬의 시청 바로 앞에 위치한 마젤란 거리에 있는 산토리뇨 교회 옆의 작은 예배당 안에 자리 잡고 있죠. 십자가 아래에 있는 설명에 의하면 원래의 십자가는 예배당 중앙에 있는 나무로 된 십자가 안에 들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원래의 십자가는 마젤란이 죽은 뒤에 파괴되었거나 사라졌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세부의 여왕 주아나와 400여 명의 기독교 신자들이 필리핀에서 최초로 영세를 받았다고 합니다.

페르디난드 마젤란 [Ferdinand Magellan, 1480~1521.4.27]은 16세기 초 포르투갈 태생의 에스파냐 항해가로 인류 최초의 지구일주항해의 지휘자입니다. 마젤란해협과 태평양, 필리핀, 마리아나제도 등을 이름 붙인 사람이기도 합니다.
위의 지도는 신항로 시대(지금은 유럽 중심의 역사관이 바뀌어 이 용어는 잘 쓰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익숙한 용어를 쓰는 것을 이해해 주십시오)의 개척자(또는 침략자) 콜럼버스, 카보트, 바스코 다 가마, 카르티에 등의 항로를 나타낸 것으로 위의 붉은 색의 화살표를 잘 보면 마젤란의 항로가 지금의 필리핀을 거치고 있으며, 필리핀 제도에 마젤란 사망(1521)이라고 표시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젤란은 1521년 4월 세부섬의 왕 및 부하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고 에스파냐왕에게 충성할 것을 서약하게 하였으며, 27일에는 준비가 덜 된 채 막탄섬(세부의 옆 섬)의 토벌을 시작했으나 마젤란은 부하 12명과 함께 전사하였다고 하네요. 십자가에 새겨진 문구를 보고 잠시 짧은 영어로 해석해 보자면, ‘521년 4월 21일, 마젤란의 십자가 - 원래 이 지점의 페르디난도 마젤란에 의해 심어진 나무를 감싸고 있는 틴달로 나무로 만들어졌다. 라고 해석합니다만, 영어가 익숙하지 않아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십자가 위 천장 가득 그 당시의 일대기를 그린 듯한 그림이 가득하더군요. 원주민들이 세례를 받고 십자가를 세우는 그림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곳에는 어김 없이 있다는 복을 빌어주는 초도 있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세부에서 마젤란에 대한 평가는 상반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럽의 힘을 입어 세부 지역을 침략한 침략자의 모습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세부 지역에 크리스트교의 복음을 전파하고 선진국의 문물을 전해준 위대한 인물로 말이죠. 개인적으로 자연, 전통, 작은 것,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하고 대학교 시절 끊임없이 제국주의의 위험에 대해 배운 저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침략자로서의 마젤란의 입장이 많이 그려지지만, 이렇게 십자가를 기념하는 모습을 보면 지금의 그리고 과거의 세부인들이 마젤란을 어떻게 기억하는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궁금증이 일어납니다.

영어가 짧고 여행의 일정이 촉박하여 가이드를 해 준 세부인에게 그 사실을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언젠가 다시 만나면 이 사실에 대해 다시 한 번 기억하고 싶습니다. 우리를 가이드해 준 멋진 세부인 아비. 14살에 세례를 받고 가족들이 교회를 같이 다니고 있다는 이 청년은 나이도 저보다 10살이나 어린데 이 먼 곳까지 자동차를 가져와서 저희들을 가이드해주고 저희들의 짧은 영어를 귀담아 들어주던 멋진 청년으로 기억합니다.
이 마젤란 십자가 바로 앞에는 세부 시청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2006년 6월 9일 포르투갈의 지원으로 이 십자가가 세워졌다는 팻말도 보입니다. 마젤란의 고향인 포르투갈에서는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당연히 십자가를 세우는 것을 찬성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어떤 인터넷 홈페이지에 의하면, 이 십자가가 기적을 일으키는 힘이 있는 것을 알게된 원주민들이 십자가의 나무 조각을 떼내어 가는 일이 많아서 이렇게 십자가를 보호하는 정자를 세웠다고도 하더군요. 침략과 위대한 인물로서의 두 가지 면을 볼 수 있는 마젤란의 십자가 옆, 산토리뇨 성당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염원을 비는 초의 행렬을 보며 어느덧 저의 발걸음은 그 옆의 성당으로 향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