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표준시
전국날씨날씨 불러오는 중…
2010.5~현재 · 누적 방문자 집계 중

이 기사를 다른 언어로 읽어보세요

트래블아이에서 저장한 영어·일본어·중국어 번역본을 언어별 주소로 불러옵니다.

테마

제4회 제주4·3영화제 ‘불란지’ 본선 10편 확정

김보라 기자
제4회 제주4·3영화제 ‘불란지’ 본선 10편 확정

[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제주4·3의 깊은 상흔을 넘어 평화와 인권, 화해와 상생의 가치를 스크린에 새겨온 제주4·3영화제가 한층 더 확장된 시선과 깊어진 서사로 전 세계 관객과 만난다.


제주4·3평화재단은 올해 단편 경쟁 부문인 ‘불란지’ 공모에 역대 최다인 총 526편의 작품이 출품됐으며, 치열한 예선 심사를 거쳐 최종 본선 진출작 10편을 확정했다고 28일 밝혔다.
 
제2.jpg
제주4·3영화제 단편경쟁 본선진출작 '보물찾기' 한 장면 (제주=KMDb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불란지’는 어둠 속에서도 스스로 빛을 발하는 반딧불이를 뜻하는 제주어다. 칠흑 같은 역사적 비극과 어둠 속에서도 희망의 빛을 잃지 않고 평화와 인권의 숭고한 가치를 이어가겠다는 상징적 의미를 품고 있다.

 
 2024년 제2회 제주4·3영화제에서 역량 있는 창작자들을 발굴하고 4·3의 정신을 동시대적 영상 언어로 잇기 위해 처음 도입된 불란지 부문은 첫해 295편을 시작으로 지난해 341편, 올해는 전년 대비 무려 54.3%(185편) 폭증한 526편이 접수되며 불과 3년 만에 500편 고지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장르별로는 극영화 461편, 다큐멘터리 31편, 애니메이션 31편, 실험영화 등 기타 3편으로, 국내외 독립영화계의 뜨거운 관심과 위상을 입증했다.
 
제1.jpg
'우리는 외계인을 기억하고 있었다' 한 장면 (제공=KMDb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전문 심사위원단은 전체 출품작 가운데 80편을 1차로 엄선한 뒤, 치열한 개별 심사와 대면 토론을 거쳐 주제 의식과 영상 미학이 돋보이는 최종 10편의 본선작을 낙점했다. 최종 선정작은 ▲보물찾기(김은서) ▲우리는 외계인을 기억하고 있었다(이성만) ▲생존수영(문성원) ▲포효하는 잿더미들(안유리) ▲돈즈루보(이원식) ▲꿈엔들, 정암(김우식) ▲돌아온 자리(김진국) ▲갱년기 소녀 투쟁기(장서윤) ▲의주의 언어(장주선) ▲돔-류비(조정강) 등이다.


올해 본선 진출작들은 제주4·3이라는 특정 시공간적 사건에 매몰되지 않고, 강제동원과 국가폭력, 디아스포라(이주 공동체), 오늘날 개인이 감내하는 소외와 연대라는 보편적 인권의 문제로 지평을 크게 넓힌 것이 특징이다.

먼저 근현대사의 깊은 아픔과 기억의 전승을 다룬 작품들이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 김은서 감독의 극영화 '보물찾기'는 제주 동광리에 사는 여덟 살 소녀가 ‘노래하는 돌’을 찾아 나서는 순수한 여정을 통해 과거 제주4·3이 남긴 지울 수 없는 비극의 흔적과 마주하는 과정을 서정적이면서도 아프게 포착했다. 
 

이원식 감독의 다큐멘터리 '돈즈루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나라현의 거대한 지하 군사시설에 강제로 끌려가 노역을 강요당했던 조선인 강제동원의 처절한 역사적 자취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안유리 감독의 실험영화 '포효하는 잿더미들'은 홋카이도에서 사할린을 거쳐 제주에서 대마도(쓰시마)에 이르는 바다를 조망하며, 거친 파도 속에 묻힌 죽음들과 희미해진 목소리를 통해 제주4·3의 기억을 동아시아 전체의 집단적 기억으로 확장한다. 

 
또한 이성만 감독의 극영화 '우리는 외계인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1983년 엄혹했던 군사정권 시절 전라도의 한 시골 마을에서 홀연히 사라진 누나를 찾아 헤매는 소년들의 시선을 빌려, 국가의 일상적 감시와 통제, 그리고 폭력적 침묵의 공기를 날카롭게 들여다본다.

고향을 떠나 낯선 타국에 뿌리를 내려야 했던 디아스포라의 굴곡진 삶을 조명한 다큐멘터리들도 관객의 마음을 두드린다. 김우식 감독의 '꿈엔들, 정암'은 일제강점기 혹독한 탄압을 피해 만주로 집단 이주했던 조선인들이 황무지를 일궈 세운 ‘정암촌’의 역사와 그 후손들이 겪어낸 신산한 삶의 궤적을 담담하게 기록했다. 
 
김진국 감독의 '돌아온 자리'는 태평양 전쟁기 남태평양 팔라우로 강제동원됐다가 천신만고 끝에 고향 여수로 돌아왔으나, 또다시 여순사건이라는 역사의 광풍에 휘말려야 했던 한 개인의 기구한 생애를 통해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증언한다. 조정강 감독의 '돔-류비'는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에 정착한 고려인 공동체의 고유한 언어와 식문화, 일상의 풍경을 실제 촬영 영상 위에 섬세한 그림을 덧입히는 ‘로토스코핑(Rotoscoping)’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감각적이면서도 따뜻하게 복원해 냈다.

시대의 폭력뿐만 아니라 오늘날을 살아가는 개인이 마주한 사회적 제도와 정체성의 혼란, 삶의 투쟁을 응시한 작품들도 대거 포함됐다. 문성원 감독의 극영화 '생존수영'은 참사의 트라우마 속에서 부유하는 학생과 언제 잘릴지 모르는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기간제 교사의 만남을 통해, 무한 경쟁과 불합리한 제도적 모순 뒤에 가려진 현대인들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의주의 언어.jpg
의주의 언어('의주의 언어' 한 장면 (제공=KMDb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장주선 감독의 '의주의 언어'는 제3국에서 태어난 탈북민 2세 의주가 영어 말하기 대회를 준비하며 겪는 언어적 괴리와 혼란을 통해 소속감과 디아스포라 정체성의 다층적 단면을 조명한다. 장서윤 감독의 '갱년기 소녀 투쟁기'는 불과 24살의 나이에 조기폐경 판정을 받은 감독 자신의 신체적 변화와 내면의 파동을 위트와 유머가 번뜩이는 1인칭 자기 서사로 풀어내며 관객들에게 유쾌하면서도 깊은 자기긍정의 메시지를 던진다.

심사위원단은 이번 심사평을 통해 “제주4·3을 직접적인 소재로 삼은 작품을 넘어 식민 지배와 분단, 이주와 차별, 그리고 현대 사회 개인이 겪는 고립과 연대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4·3의 정신적 가치를 보편적 인권으로 확장한 수준 높은 작품들이 대거 출품됐다”며 “각기 다른 예술적 형식과 독창적인 미학적 시선을 통해 과거의 상처를 오늘의 살아있는 언어로 훌륭히 직조해 낸 10편을 본선작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치열한 예선을 뚫고 선정된 본선 진출작 10편은 오는 11월 22일부터 28일까지 일주일간 제주시 아라동에 위치한 제주콘텐츠진흥원 ‘비인(Be:in)’ 공연장에서 열리는 ‘제4회 제주4·3영화제’에서 일반 관객들에게 정식 상영된다. 영화제 기간 동안 전문 심사위원단의 본심을 거쳐 대상과 극영화상, 다큐멘터리상 등이 수여되며, 상영관을 찾은 관객들의 현장 투표를 합산해 가장 큰 공감을 얻은 작품에 수여하는 ‘관객상’도 함께 가려질 예정이다.

임문철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은 “도입 3년 만에 역대 가장 많은 526편의 작품이 불란지 공모에 응모해 주신 덕분에 그 어느 해보다 풍성하고 다채로운 시선의 이야기들을 관객들에게 선보일 수 있게 됐다”며 “이번 영화제를 통해 제주4·3의 아픈 기억이 단순한 과거의 박제된 역사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평화와 인권, 생명의 가치와 어떻게 맞닿아 숨 쉬고 있는지 깊이 공감하고 성찰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KEEP EXPLORING

이어서 읽을 여행기사

검색하거나 + 버튼을 눌러 같은 섹션의 기사를 계속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