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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선의 포토에세이] 구름 사이, 아직 읽지 않은 책

최치선 기자
[최치선의 포토에세이] 구름 사이, 아직 읽지 않은 책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여수 예술랜드 미디어아트 조각공원, 높다랗게 쌓인 책더미 위에 앉은 아이를 올려다본다. 무릎 위에 종이를 얹고 펜을 쥔 채 조용히 고개를 숙인 모습이다. 무수한 사람들이 곁에서 셔터를 누르고 스쳐 지나가도, 아이의 침묵과 책은 쉬이 끝나지 않는다. 솔가지가 갯바람에 사각거리고, 흩어지는 뭉게구름 틈으로 청명한 하늘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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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소년 (사진=최치선 기자/트래블아이)

어릴 적에는 한 권의 책만 펼쳐도 세상 어디로든 닿을 수 있다고 믿었다. 굳이 멀리 떠나지 않아도 미지의 바다를 건넜고, 이름 모를 누군가의 하루 속을 유영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매번 분명한 목적지를 정해 길을 나서면서도, 정작 마음이 닿아야 할 자리는 자주 놓치곤 한다. 조각상 앞에 우두커니 발을 멈춘 이유도 그 때문이었을까. 아이가 종이 위에 꾹꾹 눌러쓰는 문장이 무엇인지는 끝내 읽어낼 수 없지만, 무언가를 가만히 오래 바라보는 순간이야말로 여행의 가장 깊은 한 페이지가 된다는 사실만큼은 알 것 같다.


시선을 돌리자 공원 한편에 거대한 손 조형물이 푸른 하늘을 향해 손바닥을 펼치고 있다. 저마다 돌아갈 일상과 걸어온 궤적은 다를지라도, 이 순간 같은 하늘 아래 나란히 서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묘한 위로가 번진다. 바람에 실려 가는 구름은 결코 한자리에 머물지 않지만, 그 하늘 아래서 무언가를 읽고 새겨 넣은 시간은 쉽게 흩어지지 않는 법이다.

사진 몇 장을 남기고 돌아서는 사이, 머리 위의 구름은 이미 다른 모양으로 흘러가 있다. 손 전망대 앞에는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여행자들이 길게 줄을 잇고, 아이는 여전히 높은 책더미 위에 홀로 앉아 있다.

공원을 빠져나와 바다 쪽으로 걸음을 옮기다 문득 뒤를 돌아본다. 우거진 나무에 가려 아이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찍어온 사진을 확대해 보아도, 아이가 내려다보던 종이 위에는 아무런 글자도 적혀 있지 않다. 채워지지 않은 그 새하얀 빈자리를, 나는 한참 동안 말없이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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