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조선 왕실 수라상으로 향하던 여주쌀이 500여 년의 시간을 건너 파인다이닝 식탁에 올랐다. 밥 한 그릇에 머물지 않았다. 누룽지는 송로버섯을 만났고, 쌀가루는 튀김옷이 됐으며, 볶은 쌀은 아이스크림으로 변신했다. 익숙한 여주쌀 한 톨이 다섯 가지 미식으로 펼쳐진 순간이다.
여주시 농산업 공동브랜드 활성화센터는 지난 8월 31일 서울 롯데월드타워 한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비채나에서 ‘대왕님표 여주쌀 × 비채나’ 쇼케이스를 열었다. 왕실 진상미의 역사를 현대 미식과 연결해 대왕님표 여주쌀의 프리미엄 식재료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한 자리다.
주인공은 전광식 셰프가 개발한 ‘진상 오미(進上 五味)’였다. 같은 여주쌀을 사용했지만 다섯 접시의 맛과 식감, 조리법은 모
두 달랐다.
첫 번째 ‘노을’은 황금빛 여주쌀 누룽지에 송로버섯을 더했다. 밥상에서 가장 친숙한 누룽지를 파인다이닝의 첫 접시로 끌어올렸다. 오래된 쌀 조리법과 현대 미식의 향이 만난 메뉴다.
‘윤슬’은 남한강 수면에 햇살이 반짝이는 모습을 담았다. 은빛 전갱이에 바삭한 여주쌀 김부각을 곁들여 부드러움과 바삭함의 대비를 살렸다. 음식의 이름부터 여주의 풍경을 떠올리게 했다.
세 번째 ‘소담’에서는 쌀이 다시 밥으로 돌아왔다. 곤드레와 여주쌀로 밥을 지어 화려한 기교보다는 쌀 자체의 맛과 향에 집중했다. ‘작지만 넉넉하다’는 이름처럼 여주의 들녘을 담백한 한 그릇에 옮겼다.
‘자운(紫雲)’은 가지와 새우에 여주쌀 튀김옷을 입혔다. 보랏빛 가지 위로 쌀가루가 바삭하게 부풀어 오른 모습을 ‘보랏빛 구름’으로 표현했다. 쌀이 밥이라는 익숙한 형태에서 벗어나 조리 재료로 영역을 넓히는 장면이다.
마지막 ‘설미(雪米)’에서는 변신의 폭이 가장 커졌다. 볶은 여주쌀과 두유로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쫀득한 쌀우메기 위에 올린 뒤 생강청과 여주쌀 튀밥을 곁들였다. 한식의 주식인 쌀이 코스 마지막을 장식하는 디저트가 됐다.
이날 쇼케이스에는 여주시와 가온소사이어티 관계자, 언론·방송 관계자, 미식·식품산업 종사자, 인플루언서와 유튜버 등 약 40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다섯 메뉴를 직접 맛보며 여주쌀의 역사와 브랜드 스토리도 함께 살폈다.
여주시가 주목한 것도 이 ‘경험’이다. 좋은 쌀이라는 설명을 반복하기보다 셰프의 접시 위에서 맛과 형태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줬다. 앞으로 파인다이닝과 특급호텔, 외식업계, 유통 등으로 접점을 넓혀 여주쌀을 셰프와 미식업계가 선택하는 프리미엄 식재료로 키운다는 구상이다.
이충우 여주시장은 “조선 왕실의 진상미로 이름난 여주쌀이 미쉐린 스타 셰프의 손을 거쳐 새로운 미식으로 탄생했다는 점에서 매우 뜻깊다”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프리미엄 쌀 브랜드로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상휘 여주시 농산업 공동브랜드 활성화센터장은 “이번 프로젝트는 여주쌀을 단순히 알리는 것을 넘어 소비자가 새로운 방식으로 만나고 경험하게 하는 데 의미가 있다”며 파인다이닝과 호텔, 외식, 유통 등으로 프로모션 접점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왕실 수라상을 향하던 쌀이 이제 도시의 파인다이닝 코스를 채웠다. 누룽지에서 밥, 튀김옷을 지나 아이스크림까지 이어진 ‘진상 오미’는 여주쌀의 500년 역사를 과거에 머물게 하지 않았다. 한 톨의 쌀이 얼마나 다른 맛으로 변할 수 있는지 보여준 이번 실험은 대왕님표 여주쌀의 다음 시장이 어디인지도 선명하게 보여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