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서동휘 기자] 서울은 같은 자리에서도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내민다. 아침 햇살은 경복궁 단청을 깨우고, 한낮의 빛은 문래동 철공소 골목을 거칠게 가른다. 오후 청계천에는 윤슬이 흐르고, 낙산 성곽에 노을이 내려앉은 뒤 을지로 네온이 하루의 마지막 장면을 밝힌다. 9월 서울을 가장 아름다운 빛으로 기록하는 다섯 장의 시간표다.
사진은 여행을 마치고 남기는 기념품을 넘어 목적지를 고르는 이유가 됐다. 서울을 찾은 외국인 여행자들도 궁궐과 유명 관광지에 머물지 않고 시장과 철공소, 성곽길, 오래된 산업 골목까지 들어간다. 서울관광재단은 선선한 바람과 맑은 빛이 찾아오는 9월, 시간대에 맞춰 사진을 남기기 좋은 서울 명소 5곳을 추천했다.
◈오전 9시, 한복이 가장 빛나는 경복궁
경복궁은 문을 여는 오전 9시에 맞춰 들어가야 고요한 궁궐의 표정을 만날 수 있다. 인파가 몰리기 전 근정전 앞마당에 서면 사선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처마와 단청, 한복의 색을 부드럽게 살린다. 9~10월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입장은 오후 5시에 끝난다. 화요일은 휴궁일이다.
근정전 행각의 붉은 기둥은 그 자체로 자연스러운 액자가 된다. 기둥 사이 중앙에 인물을 세우고 낮은 위치에서 촬영하면 회랑이 뒤로 길게 이어지며 깊이감이 살아난다. 경회루에서는 연못 남서쪽 모서리가 좋은 자리다. 자세를 낮추면 하늘과 누각, 수면에 비친 반영을 한 화면에 담을 수 있다.
향원정과 취향교에서는 궁궐의 단정한 곡선과 연못 주변의 계절색을 함께 잡기 좋다. 교태전과 자경전 돌담길은 사람이 적고 기와지붕이 겹겹이 이어져 한복 스냅에 잘 어울린다. 규정에 맞게 한복 상·하의를 갖춰 입으면 내·외국인 모두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촬영 뒤에는 서촌이나 삼청동으로 걸음을 옮겨도 좋다. 한옥 골목과 작은 공방, 카페를 둘러보고 통인시장까지 연결하면 오전 여행이 한층 풍성해진다.
◈정오, 빛과 철이 부딪히는 문래동
해가 머리 위에 오르는 시간에는 문래동 창작촌이 선명해진다. 1960년대부터 이어진 철공소 사이로 예술가의 공방과 카페, 음식점이 들어서면서 낡은 산업 골목과 새로운 감각이 한 화면에 공존한다.
좁은 건물 틈으로 떨어지는 한낮의 빛은 강한 명암을 만든다. 녹슨 철문과 오래된 셔터, 금속 부산물로 만든 조형물을 배경으로 인물을 세우면 거친 질감의 거리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셔터 위 벽화와 작은 간판을 차례로 좇는 것도 문래동을 찍는 재미다.
다만 이곳은 사진 촬영장 이전에 철공인들이 일하는 생활 현장이다. 작업장 안으로 렌즈를 들이대거나 통행을 막는 촬영은 피해야 한다. 인물을 촬영할 때도 문을 가리지 않고, 작업 중인 사람의 얼굴이 들어간다면 먼저 동의를 구하는 것이 좋다.
◈오후 4시, 청계천 윤슬을 따라 걷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 청계천으로 향할 차례다. 빌딩 사이로 들어온 햇살이 수면에 반짝이는 물비늘을 만들고, 버드나무와 풀잎이 회색 도심에 초록빛을 더한다. 징검다리 중간에서 물길을 따라 카메라를 돌리면 고층 건물과 수변 산책로가 한 프레임에 겹친다.
다리 아래의 그늘과 햇빛 구간을 함께 활용하면 별도의 조명 없이도 극적인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조선시대 옛길의 흔적을 간직한 광통교에서는 돌다리의 전통적인 선과 현대적인 도심 풍경이 만난다.
해가 지면 광교 아래에서 ‘청계 소울 오션’이 시작된다. 9월부터 매일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청계천 물길에 미디어아트가 흐른다. 관람객이 QR코드로 직접 디자인한 인어가 화면 속을 헤엄치는 ‘인어가 헤엄치는 밤’도 12월 31일까지 운영된다. 관람은 무료지만 비가 내려 청계천 출입이 통제되면 전시도 중단된다.
◈해 질 무렵, 낙산 성곽에 번지는 노을
일몰 30분 전에는 낙산공원에 도착하는 것이 좋다. 한양도성 성곽 너머로 남산서울타워와 동대문 일대가 펼쳐지고, 낮은 햇빛이 성곽 돌 표면을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해가 진 직후 20~30분도 놓치기 아깝다. 하늘이 짙은 파란색으로 바뀌는 블루아워가 찾아오면 성곽 조명과 도심 불빛이 동시에 살아난다. 노을을 배경으로 실루엣을 찍었다면 같은 자리에서 조금 더 기다려 푸른 하늘과 성곽의 야경을 한 번 더 담을 수 있다.
낙산 성곽길은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서울 배경으로 알려지며 해외 여행자들의 발걸음도 늘었다. 공원은 24시간 개방되며 입장료는 없다. 촬영 뒤 대학로로 내려가 소극장 공연이나 오래된 다방을 찾으면 저녁 일정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밤 8시, 네온이 켜지는 을지로
하루의 마지막 촬영지는 을지로다. 인쇄소와 철물상, 공구상이 문을 닫은 뒤 오래된 간판 사이로 가게의 네온사인이 켜지면 골목 전체가 빈티지 영화 세트처럼 변한다.
네온사인을 인물의 옆이나 앞에 두면 별도의 조명 없이 얼굴에 붉고 푸른 색이 번진다. 배경을 조금 흐리게 촬영하면 간판과 자동차 불빛이 둥근 빛망울로 남아 시네마틱한 분위기가 살아난다. 가게 출입구와 좁은 통로를 막지 않고, 생활 공간을 향한 무분별한 촬영은 삼가야 한다.
사진을 찍은 뒤에는 노포에서 저녁을 먹거나 골목 안 LP바에서 음악을 들어도 좋다. 동대문 방향으로 걸으면 곡선형 외관과 조명이 돋보이는 DDP가 나타난다. 낡은 산업 골목과 미래적인 건축물을 한밤에 연달아 만나는 것도 을지로 여행의 묘미다.
서울에서 좋은 사진을 얻는 비결은 유명한 장소보다 빛의 시간을 고르는 데 있다. 경복궁의 아침, 문래동의 한낮, 청계천의 오후, 낙산의 노을, 을지로의 밤을 차례로 만나면 하루가 한 편의 화보가 된다. 카메라 배터리를 넉넉히 챙기고 걷기 편한 신발을 신는 것만으로 준비는 충분하다. 서울은 시간마다 새로운 장면을 꺼내 보인다.

![[특집] 아침 궁궐, 밤 골목…서울은 하루 종일 화보다](https://hodabgpnhciikfrpzais.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article-photos/legacy-live/7e833c5bb185ce4088e1953df02c6680514cd676.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