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서동휘 기자] 트럭의 문이 열리자 화장지와 세제 옆으로 달걀, 두부, 콩나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장을 보러 읍내까지 나가기 어려운 주민에게는 마트가 마을로 찾아온 셈이다. 이제 이 차에는 생필품만 실리지 않는다. 응급꾸러미로 어르신의 안전을 확인하고, 병원에서 돌아온 주민에게 밑반찬도 전한다. 고창의 이동마트 ‘고창동네점빵’이 장보기와 돌봄을 함께 배달하고 있다.
고창동네점빵은 고창지역자활센터가 위탁 운영하는 이동형 판매사업이다. 슈퍼마켓이 멀고 버스 운행도 드문 농촌마을을 정기적으로 찾아가 식료품과 생활용품을 판매한다. 고령인구 비율이 40%를 넘는 고창에서는 정류장까지 걷거나 무거운 물건을 들고 버스를 타는 일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지난 4월 처음 운행한 점빵 차량 2대는 두 달 동안 180여 개 마을을 찾았다. 초기 매출은 약 1900만원을 기록했다. 차량에는 화장지와 주방세제, 과자 같은 생활용품부터 달걀과 두부, 콩나물 등 신선·냉동식품까지 실린다. 마을 주민의 수요를 미리 조사해 부피가 크거나 들고 오기 힘든 물건도 품목에 반영했다.
운영지역은 상점과 대중교통 접근성이 낮은 마을을 중심으로 정한다. 방문 날짜를 주민이 미리 알 수 있도록 읍·면과 마을에 일정을 안내한다. 기다리던 차가 정해진 날 들어와야 냉장고를 살피고 필요한 물건을 준비해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농산물과 고창 업체의 상품도 함께 판매해 주민이 쓴 돈이 지역 안에서 다시 돌도록 했다.
점빵의 가장 큰 변화는 판매 이후에 시작됐다. 고창군 사회복지과 통합돌봄팀과 손잡고 돌봄 대상자에게 응급꾸러미를 전달한다. 물품을 건네는 짧은 시간에 주민의 건강과 생활 상태도 자연스럽게 살필 수 있다. 평소 마을을 오가는 차량과 인력이 복지 사각지대를 발견하는 생활 속 관찰자가 되는 셈이다.
고창군종합노인복지관과는 퇴원환자 밑반찬 배송을 맡았다. 병원 치료를 마쳤어도 거동이 불편하거나 식사 준비가 어려운 주민에게 반찬을 전하며 일상 복귀를 돕는다. 장보기와 배달, 안부 확인이 하나의 이동 동선에서 이뤄져 별도의 서비스 차량을 반복해서 보내는 수고도 줄일 수 있다.
차량을 움직이고 상품을 진열하며 주민을 만나는 일은 자활참여자들의 일자리가 된다. 지역에 꼭 필요한 서비스를 직접 운영하며 안정적인 일 경험을 쌓는 것이다. 주민은 가까운 곳에서 물건과 돌봄을 받고, 지역업체는 새로운 판매처를 얻는 선순환 구조다.
사업이 뿌리내리려면 정해진 방문 주기와 적정한 가격, 신선식품 관리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주민의 구매 요청이나 건강 이상 신호를 복지기관에 신속하게 연결하는 협업도 중요하다. 고창군은 지역 기관과의 연계를 넓혀 생활권 안에서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늘릴 계획이다.
오수목 고창군 사회복지과장은 “고창동네점빵은 생필품을 판매하는 이동형 매장을 넘어 자활 일자리와 지역경제, 통합돌봄을 연결하는 생활복지의 새로운 모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촌에서 한 대의 트럭은 가게이면서 일터이고, 때로는 이웃의 안부를 살피는 복지창구가 된다. 고창동네점빵이 싣고 가는 것은 물건만이 아니다. 필요한 사람이 있는 곳까지 먼저 찾아가는 농촌생활복지의 새로운 방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