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충북 괴산군 불정면 목도리, 낡은 나무문을 밀자 달큰하고 시큼한 술 익는 냄새가 걸어 나온다. 서까래와 격자창, ‘사입실’과 ‘외인출입엄금’이라 적힌 손글씨는 한 세기 전 풍경을 고스란히 붙잡고 있다. 세상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고두밥이 식고 누룩이 숨 쉬는 냄새만큼은 이 자리에서 한결같이 자리를 지켰다.
목도양조장의 역사는 건물과 가업을 나눠 살펴야 선명해진다. 현재 터에는 1920년 일본인 양조업자가 근대식 공장을 세웠다. 유증수 창업주는 1931년 괴산면에서 ‘대성사 양조장’을 열었고, 1937년 목도리 공장을 인수해 괴산주조주식회사 목도공장으로 확장했다. 1939년부터 한국인 경영의 술도가로 자리를 굳혔다. ‘건물은 1920년, 가업은 1931년’이라는 설명이 나오는 이유다.
양조장과 부속건물 5동(380.77㎡)은 2022년 8월 충청북도 등록문화유산 제2호가 됐다. 1939년 본관과 1959년 판매창고, 1969년 한옥 살림집이 정갈하게 남아 있다. 술밥을 찌던 증미장과 발효를 맡은 사입실, 왕겨를 벽에 채워 온도를 지킨 종국실도 원형을 간직했다. 장부와 옛 양조용 온도계, ‘목도’ 쇠도장, 360ℓ 항아리와 나무 냉각대는 이곳을 살아 있는 술 박물관으로 만든다. 냉각대에 남은 “밥을 잘 쪄야 술맛이 좋다!”는 낙서도 정겹다.
한때 술을 받으려는 줄이 길게 이어졌지만 1990년대 목도시장이 쇠퇴하면서 양조장도 폐업 직전까지 밀렸다. 창업주의 손녀 유기옥 대표와 영상의학과 전문의였던 남편 이석일 씨가 2013년부터 건물을 쓸고 닦아 다시 불을 지폈다.
그 뒤를 잇는 사람이 외증손 이정우 대표다. 경기도 연천경찰서에서 근무하던 그는 안정된 경찰공무원 생활을 내려놓고 2019년 괴산으로 돌아왔다. 부모 곁과 전문 교육기관에서 발효와 숙성을 익힌 뒤 2024년부터 4대째 운영을 맡았다. 쌀 씻기와 고두밥 찌기부터 발효, 거르기, 병입과 라벨 작업까지 전 과정을 직접 손으로 해낸다. 일주일 생산량은 약 300병. 등록문화유산 건물이라 대규모 자동화가 어렵지만 그 제약이 오히려 목도 술 고유의 속도를 지켜주는 파수꾼이 된다.
네 가지 술은 같은 양조장에서 태어나도 표정이 뚜렷하다. ‘목도생막걸리’(6.5도)는 쌀과 누룩의 순한 향이 먼저 오른다. 첫맛은 부드럽고 은근히 달다. 중간에는 산뜻한 산미와 곡물의 구수함이 퍼지고, 끝맛은 가볍게 마르며 옛 농주다운 담백함을 남긴다.
‘목도맑은술’(14도)은 찹쌀 비율을 높인 동동주풍 탁주다. 첫입에는 둥근 단맛과 고두밥 향이 감기고 중간부터 묵직한 질감과 알코올의 온기가 올라온다. 마지막에는 약주를 닮은 새콤함이 단맛을 정리한다. 달지만 거칠지 않은 ‘앉은뱅이술’이다.
감미료를 넣지 않은 ‘괴산백주’(15도)는 첫맛의 단맛을 낮추고 쌀의 담백함을 살렸다. 중간에는 누룩의 구수함과 잔잔한 신맛, 앙금의 농도가 겹친다. 끝에는 은근한 쌉쌀함과 따뜻한 여운이 길게 남는다. 화려한 단맛 대신 발효의 균형으로 승부한다.
약주 ‘느티’(15도)는 앙금을 걷어 맑게 여과하고 약 두 달 숙성한다. 한 번에 20병 안팎만 나올 만큼 손이 많이 간다. 1939년 조선주류품평회 수상작을 재현한 술로 깨끗한 쌀과 은은한 누룩 향, 차분한 단맛이 어우러진다. 맑은 산미와 숙성미가 퍼진 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여운을 남긴다.
목도양조장은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11시에서 오후 5시까지 문을 연다. 토·일요일 오후 2시에는 네 가지 술 무료 시음 행사도 열린다.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2’와 ‘수사반장 1958’ 촬영 흔적도 곳곳에 남아 있어 여행의 소소한 재미를 더한다.
이정우 대표는 “우리 술은 꾀를 부리지 않는 정직한 맛”이라고 정갈하게 전했다. 경찰 제복을 벗고 술독 앞에 선 선택은 단순히 직업을 바꾼 일이 아니라, 자칫 끊어질 뻔한 100년의 세월을 다음 100년으로 힘차게 잇는 발걸음이었다. 목도양조장의 술은 결코 빠르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한 잔 안에는 쌀과 누룩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기다린 이들의 깊은 시간이 함께 익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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