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강화에서 다시 다리를 건너 교동도로 들어갔다. 섬의 서쪽으로 길을 따라가자 난정저수지 앞에 보리밭이 펼쳐졌다. 초록으로 시작했을 계절은 어느새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보리 이삭은 한쪽으로 몸을 기울였다가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 움직임이 멀리서 밀려오는 잔물결처럼 보였다.
밭 가장자리에는 커다란 액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액자 안으로 붉은 풍차와 저수지, 물 건너 낮게 엎드린 섬이 들어왔다. 풍경을 담으라고 만든 틀이었지만, 막상 그 앞에 서니 사진보다 오래된 기억 하나가 먼저 걸렸다. 어린 날 뛰어다니던 들판과 여름을 기다리던 마음, 이름조차 흐려진 누군가의 뒷모습이었다.
난정저수지는 농업용수를 공급하려고 만든 곳이다. 주민들은 물가의 빈 땅에 보리를 심고 길을 내어 정원으로 가꿨다. 늦여름에는 이 자리에 해바라기가 피어난다. 한 계절이 물러난 곳에 다시 다른 계절을 심는 것이 섬사람들의 시간이었다.
보리밭 사이를 걸으며 이삭 몇 개를 손끝으로 스쳤다. 잘 익은 보리는 말이 없었고, 뭉게 구름이 수놓아진 하늘은 낮게 내려와 들판을 오래 바라봤다. 여행은 아름다운 장소를 기억하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때로는 그곳에서 문득 떠오른 사람을 잊지 않는 일이기도 했다.
돌아서는 순간 다시 바람이 불었다. 보리밭이 한꺼번에 고개를 숙였다. 작별 인사 같았다. 나는 대답하지 못한 채 한참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떠나온 뒤에도 액자 속 붉은 풍차는 돌아가지 않고, 마음 한가운데서 오래도록 바람을 기다렸다.

![[최치선의 포토에세이] 보리밭에 걸어둔 한 장의 그리움](https://hodabgpnhciikfrpzais.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article-photos/legacy-live/7e3eada4b169b8fdd3ca9bdc6d6a4088c14e9d01.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