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서동휘 기자] 한여름 저녁, 안양 평촌중앙공원에 자리한 평화의 소녀상 앞에 시민 200여 명이 모였다. 누군가는 꽃을 들었고, 아이들은 종이 소녀상을 만들었다. 35년 전 세상 밖으로 나온 한 피해자의 용기 있는 증언은 이날 노래와 그림, 글과 디지털 작품으로 되살아났다.
안양시는 지난 14일 오후 7시 평촌중앙공원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제14차 세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식’을 열었다. 안양평화의소녀상네트워크가 주관하고 안양시가 후원한 행사로, 피해자들의 삶을 기억하고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다음 세대에 전하기 위해 마련됐다.
8월 14일은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 일본군‘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 공개 증언한 날이다. 오랜 침묵을 깨뜨린 증언은 국내외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계기가 됐다. 정부는 2017년 이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했으며 2018년부터 정부 기념식을 이어오고 있다. 올해는 김 할머니의 공개 증언 35주년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기념식에서는 지난 6월 8일부터 7월 31일까지 진행한 ‘위안부 피해 및 평화·인권 작품 공모전’ 수상자 5명에게 평화비상과 평화나비상을 수여했다. 사전 심사를 거쳐 선정된 시민 공연팀 2개 팀도 무대에 올라 노래와 연주로 추모와 연대의 마음을 전했다.
올해 공모전에는 생성형 인공지능 부문이 새롭게 마련됐다. 시와 산문, 회화, 사진, 캘리그라피에 디지털 창작을 더해 기억의 방식을 넓힌 것이다. 참가자들은 인공지능을 활용한 일러스트와 캠페인 포스터, 음악과 짧은 영상 등으로 피해자의 명예 회복과 평화의 메시지를 표현했다.
행사장에서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까지 공모전 출품작과 수상작을 공개했다. 오후 5시부터는 종이 소녀상 만들기 등 시민 참여 체험도 진행돼 어린이와 청소년이 역사를 어렵지 않게 마주하도록 했다. 기념식에 머물지 않고 전시와 공연, 체험을 연결한 열린 역사교육의 장이었다.
평촌중앙공원의 안양 평화의 소녀상은 시민들이 십시일반 모은 성금으로 2017년 세워졌다. 빈 의자와 맨발, 어깨 위의 작은 새에는 돌아오지 못한 피해자와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를 기억하려는 뜻이 담겼다. 도심의 공원을 오가는 시민과 마주하며 지난 9년 동안 안양의 대표적인 평화·인권 공간으로 자리를 지켜왔다.
최대호 안양시장은 “기림의 날은 피해자들의 고통을 기억하며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날”이라며 “안양 평화의 소녀상이 시민들의 힘으로 세워진 만큼 앞으로도 시민들과 함께 모두의 인권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기억은 과거에 머무는 일이 아니다. 다시는 같은 아픔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오늘의 삶을 바로 세우는 약속이다. 평촌중앙공원의 작은 소녀상 앞에 모인 시민들의 발걸음은 아픈 역사를 넘어 평화로운 내일로 향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