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서동휘 기자] 암막 커튼을 젖히는 순간, 오래된 미군기지의 시간이 한 편의 영화처럼 돌아가기 시작한다. 빛바랜 사진 속 장병들의 일상과 낡은 막사, 1950년대 미국 극장을 옮겨놓은 매표소가 관람객을 분단의 현장으로 이끈다. 파주 민통선 안 캠프그리브스에 새로운 역사문화공간 ‘더 그리브스’가 문을 열었다.
캠프그리브스 홍보관 더 그리브스 내부(제공=경기관광공사)
경기도와 경기관광공사는 지난 1일 캠프그리브스 안에 있던 창고를 리모델링한 홍보전시관 ‘더 그리브스(The Greaves)’를 공식 개관했다. 유물을 진열장에 늘어놓는 방식에서 벗어나 오프닝과 하이라이트, 엔딩으로 이어지는 영화식 구성으로 캠프의 과거와 현재를 풀어냈다.
첫 공간은 1950년대 미국 영화관 입구다. 작은 매표소와 매점, 복고풍 간판과 소품이 실제 상영을 기다리는 극장처럼 꾸며졌다. 전쟁과 분단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곧바로 꺼내기보다 익숙한 영화관 풍경으로 관람객의 긴장을 풀어준다.
암막 커튼 너머 하이라이트 공간에서는 분위기가 달라진다. 미군 주둔 당시 촬영한 사진이 기다란 필름 프레임을 따라 펼쳐지고, 막사 생활과 훈련, 휴식시간 등 기지 안의 평범한 하루가 이어진다. 영화관 의자에 앉으면 빔프로젝터 영상으로 부대 연혁과 캠프의 옛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역사책 속 문장이 사람의 얼굴과 생활 장면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캠프그리브스 홍보관 더 그리브스 내부(제공=경기관광공사)
마지막 엔딩 공간은 관람객이 직접 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곳이다. 실제 극장을 떠올리게 하는 무대와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으며 전시의 여운을 남길 수 있다. 관람을 마친 뒤에는 캠프그리브스의 주요 전시관과 평화정원, 카페 등을 함께 돌아보며 민통선 안에 남은 미군기지의 흔적을 살필 수 있다.
캠프그리브스는 DMZ 남방한계선에서 약 2㎞ 떨어진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미군기지 가운데 하나다. 1953년부터 미 육군 제2사단 506연대가 주둔했고 2004년 철수했다. 2007년 반환된 뒤 2013년 역사·문화 체험시설로 개방됐으며, 미군이 사용한 건축물을 보존해 평화관광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김영옥 경기도 DMZ정책과장은 “캠프그리브스의 역사적 배경에 영화관이라는 문화 요소를 접목했다”며 “역사를 배우는 유익함과 레트로 감성의 즐거움을 함께 전하는 새로운 명소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캠프그리브스 홍보관 더 그리브스 내부(제공=경기관광공사)
‘더 그리브스’는 전쟁의 흔적을 멀리서 바라보게 하지 않는다. 극장 문을 열고, 의자에 앉고, 필름 속 사람들과 눈을 맞추게 한다. 과거 군사기지였던 공간이 평화와 기억을 전하는 무대로 바뀌면서 캠프그리브스 여행에도 새로운 장면이 더해졌다. 운영시간은 화요일부터 일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며 월요일과 법정공휴일은 문을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