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표준시
전국날씨날씨 불러오는 중…
2010.5~현재 · 누적 방문자 집계 중

이 기사를 다른 언어로 읽어보세요

트래블아이에서 저장한 영어·일본어·중국어 번역본을 언어별 주소로 불러옵니다.

인터뷰

[인터뷰] 대한민국 최대 바이크 렌탈전문점 '바이크클럽' 노민영 대표

열정으로 달린 17년...“사업의 출발과 끝은 고객과의 신뢰”

최치선 기자
[인터뷰] 대한민국 최대 바이크 렌탈전문점 '바이크클럽' 노민영 대표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열일곱 살, 오토바이를 좋아했던 한 청년은 작은 시작을 선택했다. 시간이 흘러 서른넷이 된 지금, 그는 의정부를 대표하는 바이크 문화공간이자 대한민국 최대의 단일 바이크 렌탈 전문점 '바이크클럽'을 이끌고 있다. 150여 대의 해외 최신 모델과 인기 모델을 갖춘 압도적인 규모, 라이더들이 먼저 찾는 신뢰, 그리고 멈추지 않는 도전. 노민영 대표의 이야기는 성공보다 '꾸준함'이 얼마나 큰 힘을 갖는지 보여준다.

 

바이크샵.jpg
의정부 바이크클럽 본사 (사진=트래블아이)

의정부 바이크클럽 본사 사무실에서 만난 노민영 대표는 첫인상부터 강렬했다. 훤칠한 체격과 모델을 연상시키는 외모, 자신감 있는 말투가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두 시간 동안 이어진 인터뷰에서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 것은 겉모습이 아니었다. 열일곱 살부터 서른네 살이 된 지금까지 한 분야를 놓지 않고 달려온 끈기와 책임감이었다.

 

“중학생 때 바이크를 처음 접했어요. 그 순간 자유라는 감정을 알게 됐죠.”

 

당시 노 대표에게 일상은 학교와 학원, 시험점수의 반복이었다. 학생은 공부만 해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숨이 막힐 때쯤 바이크를 만났다. 잠시 흔들렸던 중학교 시절을 지나 검정고시로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에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지만, 이미 벌어진 기초의 차이를 따라잡기는 쉽지 않았다.

 

노민영 대표메인.png
바이크클럽 노민영 대표 (사진=트래블아이)

고등학교 1학년 때 그는 아버지에게 바이크 한 대를 사달라고 부탁했다. 350만원을 주고 구입한 중고 혼다 CBR은 그의 인생을 바꿨다. 부품을 교체하거나 잔고장이 생길 때마다 센터를 찾았고, 그곳에서 사장과 직원들을 만났다. 어린 학생을 손님이 아닌 사람으로 대해준 이들과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어느새 센터의 가족이 됐다.

 

그러던 어느 날 매출이 줄어 걱정하는 센터 사장을 보며 자신이 도울 방법을 찾았다.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뤘던 그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중고거래 사이트에 매장 안에서 팔리지 않던 바이크를 올렸다. 오랫동안 자리를 차지하던 바이크들이 한 대씩 팔려나갔다. 그 경험은 어린 노민영에게 시장을 보는 눈을 열어줬다.

 

첫 거래는 폐차 직전의 바이크였다. 3만원에 구입해 24만원을 들여 수리한 뒤 60만원에 판매했다. 총 27만원을 투자해 두 배가 넘는 금액을 손에 쥔 순간, 그는 바이크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자신의 미래가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후 중고 바이크를 매입해 수리하고, 다시 판매하는 일을 반복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무렵에는 기본 정비부터 매입, 상품화, 판매에 이르는 전 과정을 익혔다. 사업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를 교실이 아닌 현장에서 끝낸 셈이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본격적으로 사업에 나선 것은 고등학교 3학년이던 열일곱 살 때였다. 센터 사장이 의정부 창고를 정리한다는 말을 듣고, 자신이 모은 1000만원 가운데 800만원을 투자해 장비와 시설을 인수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굉장히 컸어요. 기술도 배웠고 온라인 판매로 돈도 벌어봤으니까요. 그런데 직접 운영해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헬멧.jpg
(주)바이크클럽 렌탈샵에 비치된 헬멧(사진=트래블아이)

이전에는 공간을 무료로 사용하며 판매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사업장이 생기자 매달 60만원의 월세를 비롯해 세금과 전기료, 가스비, 수도요금까지 모두 책임져야 했다. 열정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현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바이크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했고, 미래를 그릴 수 있었다. 하루하루 일하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그렇게 17년을 달리는 동안 휴가다운 휴가도 한 번 가지 않았다. 군 입대도 사업장이 안정될 때까지 미뤘다. 고등학생이 인수한 창고를 제대로 된 사업체로 안착시킨 뒤에야 군복을 입었다.

 

스물한 살에 만난 멘토도 성장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아버지뻘이었던 멘토는 모르는 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노 대표의 태도를 눈여겨봤다. 질문할 때마다 답을 아끼지 않았고 자신이 가진 기술을 기꺼이 전해줬다. 독학과 현장 경험, 멘토의 가르침이 더해지며 노 대표의 정비 실력도 빠르게 깊어졌다.

 

군 복무를 마친 뒤인 2014년, 그는 다시 한번 방향을 바꿨다. 단순히 바이크를 수리하고 판매하는 센터를 넘어 전문 렌탈서비스 사업에 도전했다. 좋은 상태의 바이크와 정직한 서비스로 고객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렌탈은 바이크의 상태를 최상으로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부분에는 자신이 있었어요.”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한 번 이용한 고객이 다시 찾아오기 시작했고, 입소문을 타고 신규 고객도 꾸준히 늘었다. 현재 의정부 바이크클럽에는 해외 최신 모델부터 국내외에서 꾸준히 사랑받는 인기 모델까지 150여 대의 바이크가 갖춰져 있다. 고객은 취향과 주행 목적에 맞는 다양한 기종을 선택해 경험할 수 있다. 2015년 법인을 설립한 뒤 매출은 해마다 성장했고, 거창한 광고보다 네이버 생활형 광고와 이용 고객들의 추천이 회사를 키웠다.

 

바이크11.jpg
바이크클럽 노민영 대표가 자신의 작업공간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사진=트래블아이)

 

바이크클럽의 대여상품은 스쿠터부터 네이키드, 스포츠, 클래식, 아메리칸, 어드벤처 투어러까지 폭넓다. 2025년형 BMW R1300GS 어드벤처와 혼다 골드윙·NT1100·X-ADV, 스즈키 GSX-S1000GT, 혼다 CBR650R E-클러치, 야마하 X-MAX 등 최신·인기 모델을 갖췄다. 주행거리는 무제한이며 헬멧, 부츠, 바이크 자켓 등 안전장비도 다양하게 갖췄다.

 

노 대표가 말하는 성장의 핵심은 ‘무결점 서비스’다. 렌탈을 마치고 돌아온 바이크에 문제가 발견되면 직원들과 함께 완벽하게 수리해 처음의 상태로 되돌린다. 보험이나 수리 견적도 당장의 이익보다 고객에게 유리한 방향을 먼저 고민한다.

“눈앞의 매출을 위해 무리수를 두면 결국 신뢰를 잃습니다. 멀리 보고 고객을 관리해야 서로 만족할 수 있어요.”

 

렌탈사업은 기술뿐 아니라 방대한 데이터도 남겼다. 특정 바이크가 장기간 운행됐을 때 어떤 장점이 있고 어떤 고장이 반복되는지, 어떤 부품의 위험이 큰지를 실제 이용 기록을 통해 파악할 수 있었다. 한두 번 시승해서는 얻을 수 없는 정보다. 이 데이터는 바이크를 정비하고 관리하는 바이크클럽만의 경쟁력이 됐다.

 

완성ChatGPT Image 2026년 8월 1일 오후 03_19_02.png
바이크클럽 전시장과 센터 및 본사 외관(사진=트래블아이)

 

현재 바이크클럽은 노 대표와 직원 4명이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운영하고 있다. 사업이 성장할수록 가장 어려운 문제는 기계가 아닌 사람과의 관계였다. 그는 조직관리와 소통을 앞으로 계속 풀어야 할 숙제로 꼽았다.

 

전국 가맹사업도 준비 중이다. 계획대로 진행되면 2027년 바이크클럽 가맹점 1호가 문을 열 전망이다. 전문 렌탈과 정비, 축적된 운영 시스템이 전국으로 확장되면 노 대표의 사업은 또 한 번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정작 자신이 바이크를 탈 시간은 줄었다. 좋아하던 산악바이크도 오래전부터 타지 못했다. 대신 헬멧 수집이 새로운 취미가 됐다. 세계적인 바이크대회 우승자가 착용했던 헬멧부터 희귀 모델까지 100개가 넘는다. 당구도 좋아했지만 지금은 손을 놓았다. 시간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예전과 같은 낭만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결혼 역시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사업 확장에 온 정신을 쏟고 있어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좋은 인연을 만나고, 사업도 자신이 그린 궤도에 오르면 부모님께 더 잘해드리고 싶다는 마음은 품고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 부모님께 걱정을 많이 끼쳐드렸어요. 지금은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손을 벌리지 않고 살고 있지만, 어릴 때는 정말 죄송한 일이 많았죠.”

 

 

노민영 대표는 자신을 아직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수출 실적도, 매년 늘어나는 매출도, 전국 가맹사업 계획도 그에게는 완성이 아닌 과정이었다. 다만 한 가지 원칙만은 사업을 시작한 열일곱 살 때부터 변하지 않았다.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입니다. 고객과의 신뢰가 무너지면 사업도 오래갈 수 없어요.”

 

완성ChatGPT Image 2026년 8월 1일 오후 03_23_33.png
노민영 대표가 BMW R 1300 GS Adventure를 타고 포즈를 취했다(사진=트래블아이)

 

한때 시험점수와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이크에 올랐던 소년은 이제 직원과 고객, 해외 파트너의 믿음을 책임지는 기업인이 됐다. 자유를 찾아 시작한 바이크는 직업이 됐고, 직업은 사업으로 성장했다. 열일곱 살 정비에서 출발한 노민영의 질주는 서른네 살인 지금도 멈추지 않고 있다. 그의 다음 목적지는 대한민국을 넘어 더 넓은 세계다.

 
#바이크렌탈#오토바이대여#오토바이리스#바이크클럽#노민영대표#의정부바이크클럽#오토바이렌탈#청년창업가#바이크수출#바이크프랜차이즈#바이크사업#열정의질주

KEEP EXPLORING

이어서 읽을 여행기사

검색하거나 + 버튼을 눌러 같은 섹션의 기사를 계속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