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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강화 여행] 용흥궁·강화성당·고려궁지로 이어지는 역사 산책

왕의 집에서 고려의 상처까지, 강화에서 시간을 걷다

김보라 기자
[강화 여행] 용흥궁·강화성당·고려궁지로 이어지는 역사 산책
용흥궁·© 최치선·트래블아이

[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강화읍의 역사는 거창한 문보다 오래된 골목에서 시작된다. 낮은 담장과 기와지붕 사이를 걷다 보면 조선 제25대 왕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살았던 용흥궁에 닿는다. ‘궁’이라는 이름과 달리 첫인상은 소박하다. 마당은 크지 않고, 건물도 화려한 장식보다 단정한 선을 품고 있다. 강화도령이라 불리던 한 청년이 이곳에서 평범한 삶을 살다가 하루아침에 왕이 됐다는 사실이 오히려 집의 고요를 더 깊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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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흥궁 현판(사진=트래블아이)

용흥궁은 철종이 즉위한 뒤 당시 강화유수 정기세가 옛집을 고쳐 지은 곳이다. ‘용이 일어난 집’이라는 뜻이 붙었지만, 팔작지붕 아래 펼쳐진 공간은 왕궁보다 한옥 살림집에 가깝다. 나무기둥과 마루, 담장 곁 접시꽃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면 왕의 권위보다 그가 왕이 되기 전 보냈던 시간이 먼저 다가온다. 경내 비각은 이곳이 철종의 옛집임을 조용히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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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흥궁 전경(사진=트래블아이)

용흥궁을 나와 골목을 따라 5분가량 걸으면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기와지붕과 단청, 처마의 곡선만 보면 사찰이나 향교처럼 보이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면 서양식 예배 공간이 펼쳐진다. 1900년 세워진 이 성당은 한옥과 바실리카 양식을 결합한 국내 초기 교회 건축의 대표작이다. 굵은 목재 기둥과 높은 천장, 좌우로 정돈된 의자, 부드럽게 내려앉는 불빛이 낯선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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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외관(사진=트래블아이)

 

외형은 한국의 전통을 따르고 내부는 서양 교회의 구조를 받아들였다. 전통을 지우고 새로운 문화를 세운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세계를 한 건물 안에 나란히 앉힌 셈이다. 범종과 십자가, 한옥과 예배당이 충돌하지 않고 공존하는 풍경은 강화가 오랫동안 외부 문물을 받아들이고 자기 방식으로 해석해 온 섬이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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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내부(사진=트래블아이)

성당에서 길 하나를 건너면 시간은 고려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궁지는 몽골의 침입을 피해 1232년 강화로 천도한 고려가 궁궐을 세웠던 자리다. 최우가 건설을 주도했고, 궁 뒤편 산을 송악이라 부르며 개경의 궁궐을 옮겨 놓으려 했다. 바다와 갯벌을 방패 삼아 버텨낸 고려의 항몽 의지가 이 땅에 스며 있다.

 

1270년 고려가 개경으로 돌아간 뒤 궁궐은 무너졌고, 조선시대에는 행궁과 관아, 외규장각이 들어섰다. 그러나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의 약탈과 방화로 다시 큰 상처를 입었다. 지금은 명위헌과 이방청, 복원된 외규장각이 남아 있지만, 넓은 빈터를 바라보면 사라진 건물보다 지나간 시간이 더 크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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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궁지 외규장각 (사진=트래블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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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국장도감의궤(正祖國葬都監儀軌)》 반차도(班次圖)(사진=트래블아이)

강화의 골목은 왕의 젊은 날과 동서 문명의 만남, 전쟁과 상실의 기억을 차례로 보여준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서는 순간에도 오래된 처마 끝에 걸린 시간은 쉽게 따라오지 않았다. 역사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시 바라보기를 기다리며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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