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서동휘 기자] 남한산성을 내려와 나눔의 집으로 향하면 여행의 온도가 달라진다. 이곳은 풍경을 즐기거나 기념사진을 남기기 위해 찾는 장소가 아니다. 걸음을 늦추고 목소리를 낮춘 채, 한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오래 바라봐야 하는 경기도 광주의 다크투어 현장이다.
나눔의 집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은 1998년 8월 14일 문을 열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과 전쟁 범죄의 실상을 기록하고 증언하는 인권 박물관이다. 순수 민간의 성원으로 세워진 공간이라는 점은 기억을 지키려는 시민들의 오랜 노력을 보여준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위안부’라는 말이 단순한 역사 용어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일제강점기 수많은 여성이 속임과 강압으로 전쟁터에 끌려갔고, 인간의 존엄을 짓밟힌 채 긴 침묵 속에서 살아야 했다. 그 침묵을 깬 사람은 1991년 처음 공개 증언에 나선 김학순 할머니였다. 한 사람의 용기는 다른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세상 밖으로 이끌었다.
마당에 늘어선 할머니들의 흉상 앞에서는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굳게 다문 입술과 깊게 팬 주름에는 기록보다 더 긴 시간이 머물러 있다. 중앙에 선 소녀상과 피해 할머니들의 얼굴은 과거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조용히 말한다.
나눔의 집을 나설 때 마음은 가벼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무거움을 외면하지 않는 것 또한 여행이 해야 할 일이다.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고, 침묵 속에 묻힐 뻔한 목소리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 그것이 이곳을 다녀간 여행자에게 남겨진 가장 오래된 숙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