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서동휘 기자] 새하얀 백발이 성성한 노병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가슴팍에 빛나는 훈장을 단 채 서로의 거친 손을 맞잡은 이들의 눈가에는 이내 촉촉한 물기가 서렸다. 포탄이 빗발치던 전선에서 청춘을 바쳤던 영웅들이 76년이라는 긴 세월의 강을 건너 다시 한 번 한자리에 모인 순간이다. 전쟁의 참혹한 기억은 희미해졌을지언정, 조국을 지키겠다는 뜨거운 일념 하나로 버텨온 이들의 헌신을 기리기 위해 지역 사회가 정성 어린 감사의 무대를 마련했다.
세대를 뛰어넘은 평화의 하모니, 장내를 적시다
행사장은 엄숙하면서도 따뜻한 온기로 가득 찼다. 참전 유공자와 가족, 보훈 단체 관계자 등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기념식은 조국을 위해 산화한 호국영령들을 향한 묵념으로 시작됐다.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동안청소년수련관 주니어합창단의 무대였다. 앳된 목녀소리로 울려 퍼지는 평화의 멜로디가 장내를 감싸 안자, 한때 총을 들고 전장을 누비던 노병들은 눈시울을 붉히며 어린 학생들의 노래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을 겪지 않은 미래 세대와 삶의 끝자락에 선 전쟁 세대가 \'평화\'라는 하나의 가치 아래 온전히 마음을 나누는 순간이었다.
김문화 참전유공자회 안양시지회장은 기념사를 통해 "오늘날 후손들이 마음껏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화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며, 수많은 전우의 피와 눈물 위에 세워진 값진 결과물"이라며 "참혹했던 역사의 교훈을 가슴 깊이 새기고 평화를 지키기 위한 의지를 다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현재 안양시에 적을 두고 생존해 있는 6·25 참전 유공자는 단 229명에 불과하다. 해가 갈수록 생존 유공자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만큼, 이들에 대한 실질적인 예우와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발맞춰 안양시는 국가유공자들의 처우 개선에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해부터 지방재정의 어려움 속에서도 참전 유공자와 보훈 가족을 위한 보훈 명예 수당을 분기별 기존 30만 원에서 36만 원으로 전격 인상해 지급하고 있다.
최대호 안양시장은 격려사에서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켜낸 영웅들과 그 유가족들이 지역 사회에서 마땅히 존중받으며 명예로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예우를 다하는 것은 후대의 당연한 의무"라며 "단순히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이분들의 고귀한 보훈 정신이 미래 세대의 가슴속에 깊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교육과 지원 사업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공식 행사가 끝난 뒤에도 추모와 기억의 시간은 계속 이어졌다. 오랜만에 만난 전우들은 오찬 테이블에 둘러앉아 서로의 건강을 묻고 빛바랜 군 시절 이야기를 나누며 회포를 풀었다. 아울러 무공수훈자회 안양시지회는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호국보훈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특별한 자리를 마련했다. 관내 보훈회관 인근 산책로를 따라 당시의 긴박했던 전장 상황과 민초들의 아픔을 생생하게 담아낸 ‘6·25 전쟁 사진 전시회’를 개최해 주말을 맞아 산책을 나온 시민들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길가에 멈춰 서서 흑백사진을 유심히 바라보던 한 시민은 평화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달았다며 숙연해진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