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독일 베를린 중심부, 유서 깊은 박물관 섬 맞은편에 서면 시선을 압도하는 거대한 건축물과 마주하게 된다. 약 3만 제곱미터의 광활한 부지 위에 세워진 \'훔볼트 포럼\'이다. 이곳은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예술과 문화, 과학이 역동적으로 소용돌이치는 개방형 복합 문화 공간이다.
멀리서 보면 빛바랜 모과색의 웅장한 바로크 양식 궁전 외관이 눈길을 사로잡지만, 고개를 돌려 슈프레 강변을 바라보면 완전히 현대적이고 매끄러운 콘크리트 외벽이 펼쳐진다. 이 대담한 건축적 대조를 완성한 이탈리아 출신 건축가 프랑코 스텔라는 과거의 유산과 초현대적 감각을 하나의 공간에 완벽하게 녹여냈다. 강둑을 따라 조성된 \'슈프레 발코니\' 테라스에 서면 역사와 미래가 교차하는 베를린의 독특한 공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거대한 성문을 통과해 내부로 들어서면 도시의 활기로 가득 찬 두 개의 대형 광장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비스트로와 체험 공간, 관광 안내소가 자리한 슐뤼터호프 광장과 건물을 관통하는 웅장한 열주 회랑 \'파사주\'는 문턱을 낮춘 열린 문화 공간의 진수를 보여준다.
특히 1층 로비에 들어서면 17미터 높이의 거대한 미디어 타워 \'코스모그래프\'가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낸다. 실시간으로 정보를 발산하다가도 어느 순간 거대한 빛의 예술 설치 작품으로 변신하는 이 타워는 훔볼트 포럼이 지향하는 상호작용의 가치를 대변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 테라스에 오르면 박물관 섬과 알렉산더 광장 등 베를린 시내가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지며, 고급 레스토랑 \'바레트\'에서 풍경과 함께 미식을 즐기는 호사도 누릴 수 있다.
건물 2층과 3층에 자리한 민족학 박물관과 아시아 미술관은 기원전 5천년부터 현재를 아우르는 2만여 점의 뛰어난 유물을 선보인다. 오세아니아의 화려한 아웃리거 보트, 카메룬 왕국의 왕좌, 중국 신장의 키질 석굴 등 세계적인 희귀 유물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이곳의 진정한 가치는 큐레이션의 깊이에 있다. 단순히 타 문화의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과거 식민주의 시절 원주민 공동체로부터 유물이 약탈당했던 어두운 역사와 유럽의 과오를 정면으로 조명한다. 기존 박물관의 일방적인 전시 틀을 깨고 현대 예술가들의 비판적 작품이나 민족음악학 연구를 바탕으로 한 청음실 사운드 설치 작품을 결합해 관람객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동시에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가 운영하는 \'훔볼트 연구소\'는 기후 변화, 환경 파괴, 종의 멸종 등 인류가 당면한 지구적 과제를 탐구하는 살아있는 실험실이다. 입구에 설치된 거대한 물고기 떼 모형은 인류의 \'집단 지성\'을 상징하며, 관람객들이 직접 과학 연구 과정에 참여하고 토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훔볼트 포럼이 들어선 이 부지는 베를린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고스란히 비추는 거울이다. 13세기 중세 주택가에서 출발해 도미니크 수도원이 들어섰던 이곳은 15세기 호엔촐레른 왕조가 시민들의 거센 저항을 누르고 첫 궁전을 지으며 권력의 중심지가 되었다. 1448년 분노한 베를린 시민들이 궁전 건설에 반대하며 슈프레 강 댐을 도끼로 부수어 공사장을 물바다로 만들었던 \'베를린의 불의\' 사건은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처절한 역사의 한 페이지다.
이후 500년간 프로이센의 왕과 독일 황제의 거처로 확장되던 궁전은 1918년 군주제 몰락과 함께 카를 리프크네히트가 사회주의 공화국 수립을 선포하는 혁명의 중심지로 변모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폭격으로 만신창이가 된 궁전은 동독 정권에 의해 흔적도 없이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는 사회주의의 상징인 \'공화국 궁전\'이 들어섰다. 하지만 통일 이후 이 건물 역시 방치되다 철거되는 비운을 맞이했다.
훔볼트 포럼의 현장 관계자는 "포럼 지하 저장고에 내려가면 중세 수도원의 유적과 옛 바로크 궁전의 기초가 나란히 보존되어 있다"라며, "이곳은 수 세기 동안 이어진 권력의 무침과 격변의 흔적을 온전히 품고 있는 베를린 역사 그 자체"라고 설명했다.
베를린 웰컴 카드를 이용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 유서 깊은 문화의 심장부에 쉽게 닿을 수 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화요일 휴무)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문을 여는 훔볼트 포럼은 단순히 유물을 관람하는 박물관을 넘어섰다. 파란만장했던 역사의 상처를 보듬고, 전 세계의 다양한 문화와 목소리가 평등하게 교류하는 국제적인 토론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베를린의 가장 뜨거운 심장부에서 인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직접 경험해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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