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서동휘 기자] 5월 한국 여행의 표정이 달라졌다. 외국인 관광객의 카드 소비액이 처음으로 2조 원을 넘어섰다. 단순히 많이 쓰고 간 것이 아니다. 약국에서 재생크림을 사고, 성수동 골목에서 옷을 고르고, 청담동 매장에서 고가 시계를 결제하고, 제주 풀빌라에서 머무는 식의 소비가 한꺼번에 커졌다.
한국관광공사가 한국관광 데이터랩 외국인 카드 소비 빅데이터를 살핀 결과, 2026년 5월 외국인 관광객의 국내 카드 소비 지출액은 2조1222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달 1조2702억 원보다 67.1% 늘어난 규모다. 올해 1월 1조1306억 원, 2월 1조278억 원, 3월 1조7115억 원, 4월 1조9924억 원에 이어 5월에는 2조 원 선을 넘어섰다.
성장의 중심에는 중국 관광객이 있었다. 중국 관광객의 5월 카드 소비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214.0% 늘었다. 1월부터 증가세를 이어오던 소비가 봄 여행 성수기와 맞물리며 폭발적으로 커졌다. 한동안 움츠러들었던 중국 고소비층의 한국 쇼핑 수요가 다시 움직였다는 점에서 업계의 시선도 쏠리고 있다.
업종별로는 쇼핑업 77.8%, 운송업 70.6%, 의료웰니스업 65.8%, 식음료업 64.9% 순으로 증가 폭이 컸다. 세부 업종에서는 약국이 206.1% 뛰었고, 장난감·오락기기 191.4%, 피부관리·마사지 153.9%, 백화점 89.2%, 면세점 87.6%, 액세서리 87.0%, 피부과 85.5%, 스포츠용품·의류 84.5%가 뒤따랐다.
눈에 띄는 변화는 외국인 관광 소비가 두 갈래로 나뉘고 있다는 점이다. 한쪽에서는 한국인의 일상을 따라 걷는 라이프스타일형 소비가 자리 잡았다. 명동에서는 한정판 커스텀 의류와 스포츠 브랜드가 체험형 쇼핑 코스로 떠올랐다. 성수동에서는 고프코어 패션과 프리미엄 약국 소비가 함께 커졌다. 피부 시술을 받은 뒤 약국에서 재생크림과 관리 제품을 구매하는 동선도 자연스러운 여행 코스가 됐다.
또 다른 흐름은 초고가 럭셔리 소비다. 명품 매장이 몰린 서울 청담동에서는 시계·귀금속과 액세서리 소비가 크게 늘었다. 시계·귀금속 업종의 건당 평균 결제액은 1215만 원에 달했다. 제주에서도 고급 체류형 소비가 두드러졌다. 서귀포시 대륜동은 독채 풀빌라와 럭셔리 타운하우스 수요를 흡수하며 콘도미니엄 매출이 193.1% 늘었다. 예래동에서는 액세서리 소비가 589.2% 증가했고, 중국인 평균 결제 단가는 632만 원까지 올라갔다.
캐릭터 굿즈 소비도 여행 동선의 한 축이 됐다. 라인프렌즈, BT21, 포켓몬 카드, 피규어 등 글로벌 캐릭터 IP 상품을 찾는 발길이 팝업스토어로 몰렸다. 한정판 굿즈를 사기 위해 한국을 찾고, 현장에서 줄을 서고, 구매 경험 자체를 여행의 일부로 남기는 방식이다.
외국인 관광객의 소비는 이제 면세점과 유명 관광지에만 머물지 않는다. 약국, 피부과, 편집숍, 팝업스토어, 철도, 콘도미니엄까지 한국 여행의 지갑이 촘촘하게 흩어지고 있다. 이미숙 한국관광공사 관광데이터허브팀장은 “외국인 관광 소비가 단순 회복 국면을 넘어 상권·업종·국가별로 세분화되고 있다”며 “지자체와 업계가 변화를 조기에 포착할 수 있도록 데이터 기반 인사이트를 계속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외국인 관광객의 2조 원 소비는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한국 여행은 이제 보는 여행에서 사는 여행, 체험하는 여행, 관리받는 여행으로 넓어지고 있다. 명동의 운동화, 성수동의 약국, 청담동의 시계, 제주 풀빌라가 한 장의 새 관광지도를 그리고 있다. 다음 경쟁은 더 많은 관광객을 부르는 일이 아니라, 그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경험하게 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