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서동휘 기자] 올여름 여행의 목적지는 더 이상 북적이는 바다와 계곡에만 머물지 않는다. 강릉의 시원한 풍류, 조선 서원의 고즈넉한 품격, 제주의 신비로운 화산 지형, 그리고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리는 부산의 뜨거운 열기가 마치 한 권의 흥미진진한 이야기책처럼 우리 앞에 펼쳐진다. 6월부터 8월까지 석 달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여름 프로그램, ‘이달의 방문코스’가 길을 나서는 여행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여권 하나 들고 전국 팔도 도장 깨기
올해 캠페인을 관통하는 슬로건은 ‘전 국토가 이야기책이다’로 정해졌다. 이름난 문화재를 그저 눈으로 쓱 훑고 지나가는 겉핥기식 관광에서 벗어나, 그 공간에 오랜 세월 깃든 사람과 마을, 그리고 대자연의 숨은 이야기를 직접 두 발로 걸으며 찾아내는 몰입형 여행으로 알차게 꾸며졌다. 방문자 전용 여권을 손에 쥐고 전국 각지의 지정된 거점을 찾아가는 방식이라, 마치 미션을 수행하며 스탬프를 모으듯 우리나라 국가유산의 아름다운 장면들을 기억 속에 차곡차곡 쌓아갈 수 있다.
이번 여름 코스는 각기 다른 짙은 매력을 품은 네 갈래 길로 나뉜다. 먼저 ‘관동 풍류의 길’은 여름휴가 특유의 청량감이 가장 선명하게 다가오는 코스다. 강릉 경포대와 선교장, 오죽헌을 지나 속초 신흥사, 양양 낙산사, 평창 월정사로 부드럽게 이어진다. 푸른 동해와 짙은 소나무 숲, 고즈넉한 사찰과 고택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특히 6월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자 거대한 난장판이 벌어지는 강릉단오제의 뜨거운 열기까지 한데 느낄 수 있다.
조금 더 차분하고 깊이 있는 휴식을 원한다면 ‘서원의 길’이 제격이다. 경주 옥산서원, 논산 돈암서원, 안동 도산·병산서원, 영주 소수서원 등 조선 지식인들의 치열한 공부방이자 지역 공동체의 구심점이었던 공간들을 차례로 거친다. 매미 소리가 울려 퍼지는 시원한 툇마루에 걸터앉아 산바람을 맞으며, 누각 너머로 흘러가는 물길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복잡했던 일상의 속도는 한결 느려진다. 이 코스는 웹툰 단편집과 영리하게 연계해 젊은 독자들도 우리 유산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문턱을 한껏 낮췄다.
섬 전체가 살아 숨 쉬는 거대한 화산 박물관인 제주를 무대로 한 ‘설화와 자연의 길’은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고스란히 선사한다. 마라도 천연보호구역부터 만장굴, 사계리 용머리해안, 거문오름, 산방산 등 용암이 빚어낸 웅장한 지형과 거친 파도가 깎아낸 기암절벽이 여행객의 시선을 압도한다. ‘2026 제주 국가유산 방문의 해’와 맞물려, 설문대할망 신화 등 척박한 땅을 일궈낸 섬사람들의 흥미로운 전설도 바람을 타고 들려온다.
올해 한정판으로 특별히 기획된 ‘세계유산 특별코스’ 역시 여행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경주 양동마을부터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를 거쳐 부산의 임시수도기념관, 아미동 비석문화마을로 이어지는 이 길은 오는 7월 부산에서 열리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를 기념해 만들어졌다. 한국의 소중하고 아픈 유산을 세계인의 시선으로 함께 바라볼 수 있는 뜻깊은 여정이다.
이제 국가유산 여행은 빛바랜 오래된 건물 앞에서 브이(V) 자를 그리며 사진 한 장을 남기고 쫓기듯 떠나는 일이 아니다. 옛사람들이 왜 이 길을 묵묵히 걸었는지, 어쩌다 이 숲과 바위가 훼손되지 않고 온전히 지켜졌는지, 그리고 어떤 애달픈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는지 찬찬히 귀 기울이는 시간이다. 올여름, 빳빳한 방문자 여권을 챙겨 들고 떠나는 유산 코스는 평범했던 피서를 깊은 배움과 벅찬 감탄의 길로 바꾸어 놓을 것이다. 전 국토가 흥미로운 이야기책이라면, 이제 설레는 첫 장을 넘길 차례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특별 여권 발급: 여행의 재미를 두 배로 늘려줄 세계유산위원회 특별여권은 캠페인 공식 홈페이지를 통한 온라인 선착순 신청이나, 지정된 주요 거점 현장 배포를 통해 획득할 수 있다. 한정 수량이므로 출발 전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이용 팁: 스탬프를 모으며 도장 깨기 하는 재미가 쏠쏠하지만, 한여름 야외 이동이 잦은 만큼 챙이 넓은 모자와 시원한 생수는 필수다. 각 유적지 주변에는 지역 특색을 담은 오래된 찻집과 맛집들이 숨어 있으니 틈틈이 발품을 팔아 여유로운 티타임을 가져보는 것을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