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서동휘 기자] 여권 한 장이 특권이던 시대, 김찬삼은 길 위에서 세계를 배웠다. 낡은 배낭과 카메라를 들고 160여개국을 누빈 그의 발자취가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인천 영종도에서 다시 펼쳐진다.
김찬삼세계여행문화협회는 오는 20일 인천 중구 영종도 영종역사관 뒤뜰에서 대한민국 세계여행 선구자 김찬삼 선생의 탄생 100주년 기념식을 연다. 이번 행사는 한 개인의 여행 이력을 기리는 자리를 넘어, 한국 사회가 세계를 바라보기 시작한 시절의 기억을 되살리는 문화 행사로 마련됐다.
김찬삼 선생은 1958년부터 40여년 동안 세 차례 세계 일주와 20여 차례 세계 테마 기행을 이어갔다. 그가 밟은 나라는 160여개국, 도시는 1000여곳에 이른다. 여행가이면서 지리학자였고, 교육자이자 작가였던 그는 낯선 땅의 풍경을 단순한 구경거리로 소비하지 않았다. 사람의 삶, 도시의 표정, 자연의 질서, 문화의 차이를 기록해 한국 독자에게 전했다.
그의 대표 저서 ‘김찬삼의 세계여행’은 1980년대 100만부 이상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 많은 이들이 그의 책을 통해 비로소 세계의 지도를 상상했다. 비행기를 타지 못해도, 여권을 손에 쥐지 못해도, 책장 속 사진과 문장은 독자들을 아프리카의 초원과 유럽의 거리, 남미의 마을로 데려갔다.
기념식이 열리는 영종도도 상징적이다. 오늘의 영종은 인천국제공항을 품은 하늘길의 관문이다. 김찬삼 선생에게 영종은 세계여행의 기억이 머무는 장소이기도 하다. 영종역사관은 올해 ‘한국 최초의 세계 여행가 김찬삼’ 공동기획전을 열고 그의 여행 자료와 기록을 소개하고 있다. 낡은 사진, 여권, 지도, 여행의 흔적은 한 사람이 어떻게 한국인의 시야를 넓혔는지 보여준다.
이번 기념식에서는 한동안 중단됐던 ‘김찬삼 여행상’도 다시 시작된다. 100주년 기념 특별상과 미래인재상 시상식이 함께 열려, 김찬삼 선생의 도전 정신을 오늘의 여행문화와 다음 세대로 잇는다. 여행이 소비와 인증의 언어로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에, 그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상은 다시 묻는다. 우리는 왜 떠나는가. 길 위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협회는 이번 행사를 통해 김찬삼 선생의 세계여행 문화 확산과 민간 외교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할 계획이다. 국경을 넘는 일이 쉽지 않았던 시절, 그는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고 기록을 남겼다. 그 발걸음은 한국이 세계와 대화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었다.
김찬삼의 여행은 먼 나라를 다녀온 무용담이 아니었다. 닫힌 시대에 세계를 향해 낸 창문이었다. 탄생 100주년을 맞은 영종도의 하루는 그의 이름을 추억하는 자리이자, 여행의 본뜻을 다시 묻는 시간이다. 길은 여전히 우리 앞에 있고, 김찬삼이 남긴 질문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