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서동휘 기자] 도심 속 생태 하천인 안양천변이 싱그러운 황금빛 보리마당으로 변신했다. 스마트폰 화면에만 익숙하던 아이들이 난생처음 가벼운 낫을 손에 쥐었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들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보릿단을 묶으며 왕년의 실력을 과시했다.
안양시는 지난 13일 오전 안양천생태이야기관 인근 화창습지 둔치에 넓게 조성된 보리밭에서 시민들과 함께하는 ‘오늘은 안양천 보리 수확하는 날’ 행사를 성황리에 마쳤다. 이번 행사는 단순한 농촌 체험을 넘어 콘크리트 빌딩 숲 사이에서 계절의 변화와 자연의 생명력을 온몸으로 느끼는 도심 속 생태 여행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이다.
이날 황금빛으로 잘 익은 보리밭에 모여든 이들은 사전 신청을 통해 행운을 잡은 가족 단위 관람객 18팀을 비롯해 안양실버포럼 회원, 지역 시민단체 관계자, 안양천생태이야기관 직원과 자원봉사자 등 총 110여 명에 달했다. 이들은 이른 아침부터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전통적인 보리베기 작업에 동참했다. 시원하게 뻗은 안양천의 물줄기를 배경으로 도심 한복판에서 낫질 소리가 서정적으로 울려 퍼지는 이색적인 풍경이 연출됐다.
이번 행사는 시민들이 직접 땀 흘려 작물을 수확하는 과정을 통해 안양천이 가진 생태계의 소중함을 깨닫고, 잊혀가는 전통 농경 문화를 되살려 세대 간의 따뜻한 정을 나누기 위해 마련됐다. 참가자들은 현대식 기계 대신 손수 낫을 이용해 보리를 베어 넘기고 발로 밟아가며 보릿단을 묶는 전통 방식을 그대로 재현했다.
특히 과거 농촌에서 보리를 베고 타작하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안양실버포럼 회원들의 활약이 단연 돋보였다. 어르신들은 서툰 가위질과 낫질에 쩔쩔매는 젊은 부모들과 아이들 곁에서 보리 밑동을 안전하게 베는 법, 짚풀로 보릿단을 단단하게 묶는 요령 등을 세심하게 지도하며 든든한 길잡이 역할을 했다. 할아버지의 시범을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아이들은 이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보리이삭을 주워 담으며 까르르 웃음꽃을 피웠다.
가족들의 협동심도 빛을 발했다. 뜨거운 볏볕 아래서 아빠가 땀을 흘리며 앞에서 보리를 베어 나가면, 엄마는 뒤따라가며 흩어진 보릿단을 가지런히 묶었고, 아이들은 작은 자루를 들고 다니며 잘려 나간 보리이삭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꼼꼼히 담았다. 이처럼 온 가족이 역할을 분담해 구슬땀을 흘린 결과, 약 1,000㎡(약 300평) 규모에 달하던 화창습지 보리밭은 순식간에 말끔하게 수확됐다. 이날 시민들의 손으로 정성껏 거둬들인 보리이삭은 커다란 포대로 무려 50여 자루에 달하는 풍성한 결실을 보았다.
보리베기 체험이 끝난 후에는 보릿대를 재활용하는 친환경 공예 프로그램도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쓰레기로 버려질 수 있는 보릿대를 엮어 일상에서 쓸 수 있는 컵받침을 직접 만들어 보며 자원의 순환과 새활용(업사이클링)의 가치를 몸소 체험했다. 이날 수확한 보리는 앞으로 따뜻한 햇볕 아래 건조와 선별 과정을 거쳐 저장고에 보관된다. 이후 다가오는 혹독한 겨울철, 먹이를 찾기 위해 안양천을 다시 찾아오는 청청한 철새들의 소중한 겨울 양식으로 아낌없이 활용될 계획이다.
행사에 동행한 한 시민은 “주말을 맞아 아이들에게 책에서만 보던 보리밭을 보여주고 싶어 참여했는데,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땀 흘리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기대 이상으로 뜻깊었다”며 “어른들에게는 아련한 고향의 향수를 자극하고, 스마트폰만 보던 요즘 아이들에게는 생생한 자연의 생명력을 선물해 준 최고의 주말 여행이었다”고 환하게 웃었다.
안양시 관계자는 “안양천을 사랑하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덕분에 도심 속 습지가 사람과 자연, 그리고 세대가 함께 어우러지는 화합의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라며 “공들여 수확한 보리가 겨울철 안양천을 찾는 철새들에게 따뜻한 선물이 되는 것처럼, 앞으로도 안양천의 생태적 가치를 높이고 시민들에게 차별화된 휴식과 체험을 제공하는 다채로운 계절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