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가파른 언덕을 따라 숨이 차오를 때쯤, 동해의 푸른 바람이 묵호 논골담길 골목길로 불어온다. 논골담길 속 풍경은 과거 거친 바다로 나갔던 이들의 삶의 애환이 녹아있던 자리에, 이제는 화사한 색채의 온기가 가득 채워져 있음을 보여준다.
묵호의 골목은 시간을 품고 있다.
낡은 지붕 아래로 푸른 넝쿨이 천천히 흘러내리고, 그 곁에는 누군가의 손길이 머문 화분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붉은 꽃, 노란 꽃, 이름 모를 작은 잎사귀들이 오래된 담장을 따라 피어나며 골목에 온기를 더한다. 바닷바람과 세월에 빛이 바랜 풍경이지만, 이상하게도 이곳은 낡았다는 말보다 따뜻하다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나포리 다방.\'
빛바랜 간판에 적힌 다섯 글자는 오래전 묵호의 하루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추억을 조용히 불러낸다. 한때는 생계를 위해 바삐 오가던 사람들의 웃음과 한숨이 이 골목 어딘가에 아직 남아 있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이 길을 걷다 보면 관광지를 구경한다기보다 누군가의 기억 속을 천천히 산책하는 기분이 든다.
조금 더 걸음을 옮기면 전혀 다른 풍경이 나타난다. 노란색과 파란색으로 가득 채워진 도넛 벽화가 골목의 분위기를 단숨에 바꿔 놓는다. 마치 흑백사진 위에 누군가가 환한 색연필로 웃음을 그려 넣은 것 같다. 오래된 시간 위에 덧입혀진 유쾌한 상상력은 무거울 수 있는 골목의 기억을 가볍게 감싸 안는다.
그 풍경 앞에 서면 묘한 감정이 스친다. 과거와 현재가 서로 등을 돌리지 않은 채 나란히 기대어 살아가는 모습이다. 사라져 가는 것들과 새롭게 태어나는 것들이 충돌하지 않고 함께 숨 쉬는 공간. 그래서 묵호의 골목은 더욱 특별하다.
길 끝에 보이는 \'말똥도나스\' 간판은 마치 오래된 이야기의 마지막 페이지처럼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다. 그곳까지 이어지는 짧은 거리에는 수십 년의 시간이 층층이 쌓여 있다. 오래된 집과 꽃, 벽화와 웃음, 그리고 바다 냄새가 뒤섞인 골목.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여행은 멀리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잊고 있던 시간의 온도를 다시 만나는 일이라는 것을. 묵호의 골목은 오늘도 그렇게 사람들에게 가장 따뜻한 속도로 시간을 건네고 있다.

![[최치선의 포토에세이] 묵호, 시간의 골목에서 춤추다](https://hodabgpnhciikfrpzais.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article-photos/a5292c44-9935-4ba1-b47a-011b6f39161d/00-legacy-cover-1416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