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강원 동해시 삼화동, 두타산과 청옥산이 병풍처럼 감싼 깊은 골짜기에 들어서면 풍경의 색부터 달라진다. 회색 절벽 아래로 청옥호와 금곡호가 푸르게 빛나고, 채석장의 거친 길은 열차와 전망대, 라벤더 정원과 하늘 체험시설로 이어진다. 한때 석회석을 캐던 산업 현장이 지금은 여행자와 방송 제작진이 함께 찾는 동해의 가장 이국적인 여행지, 무릉별유천지로 변했다.
무릉별유천지는 이름부터 낯설다. ‘무릉’은 가까운 무릉계곡에서, ‘별유천지’는 세상과 다른 별천지라는 뜻에서 가져왔다. 입구에서 무릉별열차에 오르면 여행은 천천히 속도를 낮춘다. 열차가 완만한 길을 따라 오르자, 창밖으로 깎아 세운 듯한 절벽과 푸른 호수가 번갈아 나타난다. 현장에서 만난 김용운 운영팀장은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산업의 시간을 품은 재생 공간”이라며 “광산의 흔적을 지우기보다 그 위에 새로운 풍경을 얹는 방식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곳의 전신은 1968년부터 석회석을 캐내던 무릉3지구 채석장이다. 시멘트 산업을 떠받치던 현장은 채굴이 멈춘 뒤 거대한 절개지와 웅덩이를 남겼고, 그 웅덩이에 물이 차면서 청옥호와 금곡호가 생겼다. 지금은 그 물빛이 무릉별유천지의 가장 강한 장면이 됐다.
가장 먼저 올라야 할 곳은 두미르전망대다. 전망대에 서면 채석장 특유의 계단식 암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밝은 회색으로 드러난 새 광산의 단면과 달리, 무릉별유천지의 절벽은 세월을 입은 검회색이다. 그 아래 청옥호는 하늘빛을 그대로 머금고 있다. 금곡호는 조금 더 아담하지만 색은 깊다. 물가에 서 있으면 동해 바다와는 전혀 다른 푸른빛이 올라온다. 바다가 넓게 밀려오는 풍경이라면, 이 호수는 돌산 속에 감춰진 비밀처럼 고요하다.
무릉별유천지의 독보적인 풍광은 방송가에서도 먼저 알아봤다. 두미르전망대 일대는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패러글라이딩 장면의 배경으로 알려지며 여행자들의 발길을 끌어당겼다. 절벽 위에서 바람이 몰아치는 순간, 드라마 속 장면이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청옥호와 금곡호 주변도 여러 작품의 촬영지로 이름을 얻었다.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3’와 ‘7인의 탈출’, tvN 예능 ‘바퀴 달린 집3’, 드라마 ‘호텔 델루나’ 등이 이곳의 풍경을 화면에 담아갔다. 그래서 무릉별유천지는 어느 각도에서 찍어도 한 장면이 된다. 카메라를 절벽 쪽으로 돌리면 스릴러가 되고, 호수 쪽으로 낮추면 로맨스가 되며, 라벤더 정원으로 향하면 판타지가 된다.
전망대에서 내려오면 여행의 분위기는 갑자기 빨라진다. 채석장 관리도로였던 거친 길은 오프로드 루지 코스로 바뀌었다. 무동력 카트에 몸을 싣고 경사로를 내려오면 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코스는 길게 휘어지고, 바퀴는 흙길의 결을 그대로 전한다. 안전요원의 안내를 듣고 출발하면 조작은 어렵지 않다. 다만 첫 곡선을 돌 때, 이곳이 평범한 산책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몸이 먼저 알아차린다. 가끔 조작 미숙이나 무리한 가속으로 루지에서 이탈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루지가 지상의 스릴를 만끽할 수 있다면 무릉별유천지의 상징 스카이 글라이더는 하늘에서 스릴을 맛볼 수 있다. 4명이 함께 타는 왕복형 글라이더는 하늘을 향해 거꾸로 올라간 뒤, 금곡호 상공을 가르며 시원하게 내려온다. 출발 전에는 웃던 사람들도 몸이 공중에 들리는 순간 잠시 말이 줄어든다. 발아래 호수와 절벽이 한꺼번에 열리고, 바람은 귓가를 세차게 스친다. 올라갈 때는 긴장이고, 내려올 때는 환호다. 알파인코스터와 롤러코스터형 집라인까지 더하면 이곳은 조용한 호수 여행지라기보다 산악형 액티비티 파크에 가깝다.
스릴이 지나간 뒤에는 몸과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쇄석장으로 향한다. 석회석 원석을 잘게 부수던 육중한 건물은 지금 갤러
리와 멀티미디어홀, 전망 카페로 쓰인다. 콘크리트 벽과 철제 구조물은 일부러 남겨뒀다. 덕분에 카페에 앉아 있어도 이곳이 처
음부터 예쁘게 지어진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이 선명하다. 특별전 ‘삼화 : 세 개의 빛’은 시멘트 생산 공정과 작업 도구, 오래된 기
록을 통해 광산의 시간을 보여준다. 풍경이 아름다워진 뒤에도 이곳이 누군가의 노동 현장이었다는 기억을 지우지 않는다.
4층 전망 카페에는 여행자들이 오래 머문다. 창밖으로 암벽 절개지가 펼쳐지고, 테이블 위에는 이곳의 대표 메뉴로 알려진 시멘트 아이스크림이 놓인다. 회색빛 아이스크림 위에 마시멜로를 올린 모습은 이름만 들으면 낯설지만, 한입 떠먹으면 달콤하고 고소하다. 무릉별유천지다운 장난기다. 산업시설의 무거운 기억을 너무 가볍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여행자의 입가에는 웃음을 남긴다.
청옥호 주변 산책로는 사진 찍기 좋은 길이다.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폐광의 휴식을 표현한 조형물 ‘거인의 휴식’, 인공 바위로 만든 ‘무릉정령’, 초대형 덤프트럭과 착암기 같은 실제 채석 장비가 곳곳에 놓여 있다. 이 장비들 앞에 서면 채석장의 규모가 피부로 느껴진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바퀴와 거대한 쇳덩이는 과거 이곳에서 돌과 먼지, 기계음이 얼마나 크게 울렸는지 짐작하게 한다.
초여름 무릉별유천지는 보랏빛으로 한 번 더 변한다. 2만㎡ 규모의 라벤더 정원이 향을 품기 시작하면 회색 절벽과 보랏빛 꽃, 옥빛 호수가 한 화면에 들어온다. 올해는 라벤더 축제를 앞두고 시설 정비와 야간 경관 고도화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라벤더 정류장과 호수보라정원을 잇는 65m 길이의 ‘하늘바람 다리’는 새로운 포토존으로 기대를 모은다. 대형 출렁다리처럼 높이와 길이를 과시하기보다, 라벤더 향과 바람, 채광 절벽과 호수 풍경을 천천히 건너는 체험형 동선에 가깝다.
밤의 무릉별유천지도 달라진다. 6월 13일부터 시작되는 라벤더축제 기간에는 야간 개장이 운영되고, 스카이 글라이더와 알파인코스터 등 체험시설에도 경관 조명이 더해진다. 라벤더 정원 주변에는 보랏빛 조명과 레이저, 반딧불 연출이 적용돼 낮과는 다른 표정을 만든다. 낮에는 폐광산의 스케일에 놀라고, 밤에는 호수 위 빛과 정원의 향기에 머무는 체류형 관광지로 진화하는 중이다.
동해시는 추암, 천곡, 묵호, 망상, 무릉으로 이어지는 관광 권역을 함께 키우고 있다. 무릉별유천지는 그 가운데 산과 호수, 산업유산, 체험시설을 동시에 품은 축이다. 앞으로 별빛 캠핑장까지 더해지면 낮에는 액티비티를 즐기고, 밤에는 호수 위 별빛과 라벤더 야경을 보는 체류형 여행지로 한 단계 더 확장된다.
무릉별유천지는 예쁜 풍경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돌을 깨던 산, 먼지를 뒤집어쓴 노동의 공간, 물이 차오른 폐광, 그리고 그 위에 피어난 라벤더와 푸른 호수가 함께 있다. 그래서 이곳의 아름다움은 조금 더 깊다. 드라마와 예능이 먼저 알아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실보다 비현실적인 풍경, 폐광의 거친 기억, 여행자를 흔드는 바람이 한곳에 있기 때문이다. 동해 여행에서 바다만 보고 돌아왔다면, 이제는 산속의 푸른 별천지로 들어가 볼 차례다.
[여행 메모1] 6월 라벤더 축제 앞두고 대변신…‘밤에도 머무는 관광도시’로 진화
동해시는 오는 6월 13일 개최될 ‘무릉별유천지 라벤더 축제’를 한 달 앞두고 대대적인 시설 확충과 야간 경관 고도화 작업을 마무리 중이다. 이번 정비는 단순한 환경 정비를 넘어 방문객들의 편의성과 야간 체류 콘텐츠를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가장 눈길을 끄는 신규 시설은 석회석 채광산 지형과 라벤더 정원을 공중에서 입체적으로 연결하는 65m 길이의 미니 출렁다리인 ‘하늘바람 다리’다. 이 다리는 과거 거친 산업 현장이었던 공간이 향긋한 보랏빛 치유의 정원으로 변화한 정체성을 담아내며, 5월 말 준공과 동시에 새로운 랜드마크 포토존이 될 전망이다.
또한, 축제가 열리는 6월에는 ‘야간 개장’을 본격적으로 운영한다. 스카이 글라이더와 알파인코스터 등 스릴 넘치는 체험시설에 화려한 경관 조명을 설치해 밤하늘을 활강하는 이색적인 경험을 선사할 예정이다. 라벤더 정원 주변 역시 은은한 보랏빛 조명과 레이저, 반딧불 연출 등을 적용해 밤에도 머물고 싶은 로맨틱한 야경을 완성한다.
이 밖에도 축제 공간인 \'바람숨뜰\'에 넓은 잔디광장을 새롭게 조성했으며, 산책로 곳곳에 분무형 냉방시설과 대형 그늘막을 배치해 초여름 더위에도 쾌적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동 약자를 위해 스카이 글라이더 접근로의 경사를 완화하는 등 무장애 열린 관광지 환경 개선도 함께 진행된다.
[여행 메모 2] 스크린 속 그 명장면! 알고 보면 더 재밌는 무릉별유천지 ‘진짜’ 촬영 스폿
무릉별유천지는 특유의 거친 암벽과 비현실적인 옥빛 호수 덕분에 K-콘텐츠의 단골 촬영지로 명성이 자각하다. 화면 속 짜릿함과 몽환적인 분위기를 그대로 품은 진짜 촬영 포인트들을 모았다.
두미르 전망대 조망 │ tvN 〈사랑의 불시착〉
다이너마이트로 깎아지른 듯한 거대한 석회산 절개지와 그 아래로 청옥호·금곡호가 겹쳐 보이는 독보적인 뷰를 자랑한다. 드라마 속에서 스위스 등 이국적인 외국 풍경을 연상케 하는 신비로운 배경으로 등장해 큰 화제를 모았다.
금곡호 상벽 절벽 │ SBS 〈펜트하우스 3〉
극 중 최고의 악녀 천서진(김소연)이 오윤희(유진)를 자동차와 함께 절벽 아래로 밀어버리는 숨 막히는 추락 사건이 촬영된 현장이다. 오윤희가 떨어진 깊고 푸른 호수의 정체가 바로 이곳 금곡호다.
청옥호 일원 │ tvN 〈호텔 델루나〉
현실 세계 같지 않은 몽환적인 아우라를 풍기는 청옥호 주변은 드라마 속 삼도천이나 신비로운 사후 세계의 정원 같은 판타지 공간을 연출하는 배경으로 쓰였다. 날씨와 햇살에 따라 변하는 옥빛 물빛이 신비로움을 더한다.
청옥호숫가 잔디밭 │ tvN 〈바퀴 달린 집 3〉
배우 이하늬 편에서 출연진들이 캠핑카를 세워두고 앞마당으로 삼았던 힐링 명소다.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폐광의 휴식을 형상화한 대형 조형물 ‘거인의 휴식’ 근처에 자리를 잡고 옥빛 호수를 감상하던 평화로운 모습이 이곳에서 촬영됐다.
스카이 글라이더 & 라벤더 정원 │ JTBC 〈소시탐탐〉
데뷔 15주년을 맞은 소녀시대 멤버들이 단체로 찾아와 짜릿한 괴성을 지르며 스릴을 만끽했던 장소다. 시속 80km로 날아오르는 핵심 액티비티인 스카이 글라이더 탑승장과 초여름 보랏빛 꽃물결이 만발하는 라벤더 정원에서 멤버들의 유쾌한 추억이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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