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울산 울주 외고산 옹기마을의 밤이 완전히 달라졌다. 낮이면 흙과 불의 시간이 묵직하게 쌓여있던 전통 마을이, 해가 뉘엿뉘엿 저물기 시작하면 빛과 안개, 소리로 물든 몽환적인 미디어아트 숲으로 얼굴을 바꾼다. 옹기의 투박한 숨결 위로 현대적 감각의 빛줄기가 내려앉으며, 고요했던 마을 골목은 지금 세상 어디에도 없는 ‘밤의 화폭’이 되어 관람객을 홀리고 있다.
울주문화재단은 오는 10일까지 울산 울주군 외고산 옹기마을 일대에서 2026 울주 공공미술 프로젝트 ‘야화(夜畵)’ 전시를 진행한다. 말 그대로 ‘밤에 펼쳐지는 그림’이라는 뜻을 담은 이번 행사는 옹기 아카데미관 앞 소나무 숲을 중심으로 꾸며졌다. 레이저와 포그(Fog), LED 구조물, 그리고 공간을 가득 채우는 입체 음향이 한데 어우러진 융복합 미디어 콘텐츠로 구성되어, 숲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으로 탈바꿈했다.
이번 전시는 기존 공공미술의 전형적인 방식에서 과감히 벗어났다. 단순히 광장에 조형물을 세워두고 멀찍이서 바라보게 하는 방식이 아니라, 관람객이 직접 어두운 숲길 안으로 걸어 들어가 빛과 안개를 온몸으로 맞이하는 체험형 전시다. 소나무 사이로 안개가 낮게 깔리고 형형색색의 LED 빛기둥이 어둠을 가르면, 외고산 옹기마을은 순식간에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낯선 풍경으로 변모한다.
행사장 곳곳에는 반딧불이를 연상시키는 조명과 이미지 연출, 그리고 꽃 조형물 ‘루미엘 블룸’이 배치되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빛의 꽃이 개화한다’는 의미를 담은 루미엘 블룸은 옹기마을의 소박한 흙빛 풍경 위에 찬란한 빛의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낮의 마을이 지닌 전통의 가치와 밤의 전시가 보여주는 현대적 미학이 이질감 없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진다.
외고산 옹기마을은 울산을 대표하는 전통문화의 심장부다. 장인의 손끝에서 빚어진 옹기와 거친 가마, 흙길마다 배어 있는 생활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여기에 미디어아트라는 옷을 입히자, 전통 마을은 과거의 유물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의 감각으로 다시 숨 쉬기 시작했다. 흙과 불이 만든 인고의 시간과 빛과 사운드가 그리는 찰나의 시간이 한 공간에서 절묘하게 만나는 셈이다.
전시는 시민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운영 시간은 오후 1시부터 오후 9시까지이지만, ‘야화’의 진면목을 보려면 해가 진 뒤 방문하는 것이 좋다. 밤 시간대에는 빛과 안개가 만드는 시각적 대비가 더욱 선명해져 몰입감을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낮에는 옹기박물관과 마을 골목, 전통 공방을 돌며 울주의 역사에 젖어 들고, 저녁에는 숲속 미디어아트를 즐기는 동선이 여행의 밀도를 높이는 최적의 코스다.
울주문화재단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옹기가 지닌 생명성과 자연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공간과 관람객이 뜨겁게 교감하는 몰입형 예술 경험을 제시하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외고산 옹기마을의 밤은 그리 길지 않다. 빛의 잔치 ‘야화’는 오는 10일까지, 단 며칠 동안만 그 문을 열어둔다. 흙으로 빚은 단단한 마을에 부드러운 빛의 꽃이 피어나는 시간. 울주의 밤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조용하고 선명한 한 폭의 그림으로 익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