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파도가 공중에서 부서진다. 젖은 테트라포드는 햇빛을 받아 짧게 번쩍이고, 물보라는 몸을 세우자마자 다시 바다 쪽으로 무너진다. 강릉 주문진 방파제 끝, 붉은 등대 하나가 그 장면을 오래 붙들고 서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름으로 바다를 기억한다. 누군가에게는 BTS의 흔적이고, 누군가에게는 동해의 거친 숨결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아무 말 없이 마음을 내려놓는 자리다. 그러나 방파제 앞에 서면 이름보다 먼저 파도 소리가 온다. 소금기 어린 바람이 입안으로 밀려들고, 부서진 물빛이 눈앞에서 흩어진다.
파도는 매번 같은 곳에서 꺾인다. 넘을 수 없는 경계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바다는 물러서지 않는다. 부딪히고, 흩어지고, 다시 밀려온다. 그 반복이 이상하게 사람의 생을 닮아 있다. 끝내 닿지 못한 것들, 말하지 못한 문장들, 지나간 뒤에야 선명해지는 얼굴들이 물보라 사이로 잠깐씩 떠오른다.
붉은 등대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넘지 못한 파도의 소리를 바라보며, 저 끝에서 오래 서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풍경은 아름답다기보다 묵직하다. 부서지는 것이 패배가 아니라는 사실을, 바다는 몸으로 보여준다.

![[최치선의 포토에세이] 파도는 끝내 넘지 못했다](https://hodabgpnhciikfrpzais.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article-photos/65c39931-930a-40d0-9be9-f7ad250873a0/00-legacy-cover-1394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