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암 앞에 서면, 먼저 바위가 보이는 것이 아니다. 바다와 바위 사이에 오래 묻힌 침묵이 먼저 다가온다. 파도는 붉은 암벽을 때리고, 다시 물러서고, 끝내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누군가를 잊지 않으려는 몸짓처럼 보인다.
울산 동해 끝, 이곳에는 한 왕의 이야기가 잠겨 있다. 신라 태종무열왕의 맏아들 문무왕. 그는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고 싶어 했고, 사람들은 그 마음이 바다에 남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전설은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금 숨겨둘 때 더 오래 마음에 닿는다.
바위 능선은 용의 등처럼 이어지고, 물빛은 흐린 하늘 아래 낮게 가라앉는다. 가까이서 보면 거칠고, 멀리서 보면 장엄하다. 사람의 생도 그런 것일까. 상처는 가까이 있을 때 아프지만, 시간이 지나 물러서서 보면 하나의 형상이 된다.
나는 한참 동안 말을 잃었다. 왕의 무덤을 보았는지, 바다가 간직한 약속을 보았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파도 소리 사이로 이런 생각이 스쳤다. 끝내 지키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은 사라진 뒤에도 숨을 쉰다고...
대왕암의 바다는 대답 대신 오래 출렁인다. 그래서 더 깊이 남는지도 모른다.

![[최치선의 포토에세이] 바다에는 아직 왕의 숨이 남아 있고](https://hodabgpnhciikfrpzais.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article-photos/9290fc81-1b58-4332-829d-1935f0d60745/00-legacy-cover-1393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