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고창 공음면 들판에 다시 1894년의 함성이 울렸다. 농민군이 포고문을 읽고 세상을 바꾸겠다고 나섰던 자리에서 사람들은 함께 걸었고, 함께 나눠 먹었고, 오래된 혁명의 뜻을 오늘의 말로 되새겼다. 무장기포지는 이제 기억의 현장을 넘어 고창 역사 여행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고창군은 지난 25일 공음면 무장기포지 일원에서 ‘제132주년 동학농민혁명 무장기포기념제’를 열었다. 고창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주관한 이날 행사에는 주요 내빈과 동학 관련 단체, 기관사회단체장, 군민 등 700여 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식전공연으로 문을 열고 기념식, 녹두대상 시상, 무장포고문 낭독, 동학농민군 진격로 걷기, 동학 비빔밥 퍼포먼스로 이어졌다. 의례와 참여 프로그램을 함께 배치해 기념행사의 무게와 현장 체험의 힘을 동시에 살렸다.
무장기포지는 동학농민혁명에서 상징성이 큰 장소다. 1894년 음력 3월 20일, 동학농민군은 이곳에서 봉기의 이유와 목적을 담은 무장포고문을 낭독하고 제1차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을 알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지역적 항쟁은 전국적 농민항쟁으로 번져 나갔다. 고창 무장기포지는 2022년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됐다.
기념식에서 제19회 녹두대상은 동학농민혁명 정신 선양과 계승에 기여한 문병학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가 받았다. 무장포고문 낭독은 행사의 중심을 잡았다. 포고문은 부패한 봉건 질서와 외세의 압박 속에서 민중이 왜 일어섰는지를 보여주는 선언문이다. 고창 관련 기록인 무장포고문은 202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오른 동학농민혁명기록물에 포함돼 있다.
기념식 뒤에는 참석자들이 무장기포지에서 구 신왕초까지 약 5㎞ 구간을 함께 걸었다. ‘진격로 걷기’는 단순한 걷기 행사가 아니었다. 농민군이 향했던 길을 몸으로 따라가며 혁명의 출발과 이동, 그 길 위의 결심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26일에는 모바일 걷기 플랫폼 ‘워크온’을 활용한 진격로 걷기 챌린지도 이어져 전국에서 100여 명이 참여했다.
동학 비빔밥 퍼포먼스는 상생과 화합의 의미를 더했다. 지역 특산물을 한데 넣고 함께 비비는 장면은 동학의 ‘사람이 하늘’이라는 정신과도 닿아 있었다. 다른 재료가 한 그릇에서 어우러지듯, 기념제는 역사와 주민, 여행자와 지역을 한자리에 모았다.
정기백 이사장은 “무장기포는 동학농민혁명의 출발점이자 우리 민주주의의 뿌리”라며 “군민과 함께하는 참여형 기념행사를 통해 그 가치를 널리 확산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고창군은 4월 25일부터 5월 2일까지를 ‘무장기포 기념주간’으로 운영한다. 학술행사와 문화행사, 전시와 공연을 통해 동학농민혁명의 의미를 이어갈 계획이다. 고창 여행은 선운산과 고인돌, 청보리밭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공음면 무장기포지에 서면 이 땅의 봄이 한때 혁명의 계절이었음을 알게 된다.
무장기포지는 조용한 들판이지만, 그곳에서 시작된 함성은 작지 않았다. 132년 전 농민군이 걸었던 길을 오늘의 사람들이 다시 걸었다. 고창의 역사 여행은 그렇게 과거를 추억하는 데 머물지 않고, 지금 우리가 어떤 세상을 바라는지 묻는 길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