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수리산 자락에 북소리가 울렸다. 산 아래 공원은 잠시 일상의 쉼터가 아니라 마을의 안녕을 비는 제의의 자리로 바뀌었다. 봄빛이 짙어진 병목안 시민공원에서 시민들은 굿판을 둘러섰고, 수리산을 향한 오래된 기원은 다시 오늘의 안양 속으로 걸어 나왔다.
안양문화원이 주최하고 수리산산신제보존회가 주관한 ‘제13회 수리산산신제’가 지난 26일 병목안 시민공원에서 열렸다. 시민과 관계자 등 300여 명이 함께한 이날 행사는 안양 지역에 전승돼 온 전통 신앙과 의례문화를 바탕으로 국태민안과 시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례다.
수리산산신제는 2012년 수리산도당굿 재현을 시작으로 이어져 왔다. 수리산을 지역의 진산으로 여기고, 산신에게 마을의 평안과 시민의 무사함을 비는 공동체 의례다. 2023년 6월 안양시 향토유산 제9호로 지정되며 지역 전통문화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올해 산신제는 본 연행 전날인 25일 수리산 최경환 성지 인근 천지신명단에서 수리산당제를 올리며 문을 열었다. 수리산당제는 다음 날 산신제를 천지신명께 알리고, 제의가 무사히 치러지기를 기원하는 사전 의례다. 본행사 하루 전부터 제의의 결을 세운 셈이다.
26일 본 연행은 돌돌이로 시작됐다. 길놀이가 행사장 주변을 깨우자 시민들의 시선이 굿판으로 모였다. 이어 개회식과 표창장 수여, 기념사와 축사가 진행됐고, 이후 부정거리, 산신거리, 불사거리, 대신거리, 장군·별상·신장거리, 대감거리, 창부거리, 계면거리, 시민과의 친교, 뒷전거리 순으로 의례가 이어졌다.
각 굿거리는 제의 공간을 정화하고 신령을 청하는 과정에서 출발해 한 해의 평안과 풍요를 빌고 액운을 막는 의미를 담았다. 산신제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지역민의 마음이 모이는 오래된 방식이다. 특히 계면거리와 시민과의 친교 시간에는 신령께 올린 떡을 나누며 무사안녕과 소원성취를 함께 빌었다.
병목안 시민공원은 수리산 자락에 자리한 안양의 대표 휴식 공간이다. 시민들이 산책하고 숲을 찾는 일상의 장소가 이날만큼은 안양의 기억과 신앙, 공동체 정서가 겹쳐지는 무대가 됐다. 도심 가까이에 남은 산의 기운과 전통 의례가 만났다는 점에서 수리산산신제의 장소성은 더 또렷했다.
한상윤 수리산산신제보존회장은 “수리산산신제는 수리산을 중심으로 이어져 온 지역의 기억과 삶의 염원, 전통 의례의 정신을 되살리는 소중한 전승의 실천”이라며 “앞으로도 향토유산의 올바른 계승을 위해 정성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용곤 안양문화원장은 “수리산산신제는 안양의 역사와 정서가 깃든 향토유산으로, 시민과 함께 지역의 정체성과 전통의 가치를 되새기는 뜻깊은 전통문화”라며 “지역 향토유산의 계승과 확산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수리산산신제는 사라져가는 옛 의례를 무대 위에 다시 세우는 일이다. 북소리와 춤, 떡을 나누는 손길 사이에는 안양 사람들이 오래 품어온 평안의 바람이 남아 있었다. 산은 그 자리에 있고, 사람들은 다시 산 아래 모였다. 전통은 그렇게 한 해를 건너 다음 계절로 이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