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홍천의 산골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강원도의 깊은 숲과 강으로 기억되던 도시가 이제 항원·항체 소재를 모으고, 신약 후보물질을 실증하며, 바이오 기업을 불러들이는 첨단 산업 거점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여행지가 산업도시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미래를 붙잡기 위한 또 하나의 길이 홍천에서 열리는 셈이다.
홍천군이 ‘중소형 CDMO 육성 항원·항체 소재 뱅크 구축 사업’에 최종 선정됐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추진하는 2026년도 국가 첨단 전략산업 특화단지 연대 협력 지원 사업의 신규 과제다. 강원특별자치도와 강원테크노파크, 스크립스코리아항체연구원, 춘천바이오산업진흥원, 한림대학교 산학협력단이 함께한 원팀 협력이 성과로 이어졌다.
이번 사업의 핵심은 신약 개발 기업들이 자주 부딪히는 소재 수급 문제를 줄이는 데 있다. 항원과 항체 소재를 확보하고 축적한 뒤, 기업들이 연구와 실증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구조다.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중소 바이오 기업도 소재 확보와 검증 단계에서 시간이 길어지면 개발 속도가 떨어진다. 홍천은 그 병목을 줄이는 ‘공급기지’ 역할을 맡게 된다.
사업 무대는 북방면 중화계리 도시첨단산업단지에 조성 중인 홍천 국가 항체 클러스터다. 이곳에는 중화항체 치료제 개발지원센터, 면역항체 치료소재 개발지원센터, 미래감염병 신속대응연구센터가 구축돼 있다. 홍천군청 자료에는 클러스터 1단계 연구기반 구축 완료와 함께 약 4만6139㎡ 규모의 핵심 연구시설 조성 내용이 담겨 있다.
항체 클러스터의 의미는 단순한 연구시설 집적에 그치지 않는다. 감염병 대응, 항체 치료제 개발, 바이오 소재 발굴, 기업 입주와 기술지원이 한 공간에서 이어지는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강원도 투자유치 자료도 항체 개발 지원센터와 BL3 연구소, 기업 입주·지원 시설, 정주환경 조성을 주요 축으로 제시하고 있다.
홍천군은 주민 참여를 통한 유전체 데이터 확보도 추진한다. 혈액 공여에 참여한 주민에게는 개인별 유전체 분석 기반 맞춤형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 대목은 산업 정책이 지역 주민의 생활과 만나는 지점이다. 연구실 안의 바이오 기술이 주민 건강관리 서비스로 이어질 수 있다면, 첨단산업은 낯선 단어가 아니라 지역의 일상이 된다.
기업 유치와 일자리 효과도 기대된다. 소재 발굴과 연구, 실증으로 이어지는 후보물질 공급 체계가 갖춰지면 바이오 기업은 홍천을 단순한 지방 산업단지가 아니라 실제 연구와 사업화를 진행할 수 있는 거점으로 바라보게 된다. 장용기 홍천군 미래성장추진단장은 “이번 사업을 통해 기업 유치가 빨라지고 전문 인력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본다”며 “지역 인재 채용 확대와 경제적 파급 효과를 높이겠다”고 말했다.
홍천은 이미 관광도시의 얼굴을 갖고 있다. 홍천강, 팔봉산, 수타사, 알파카월드, 비발디파크 같은 이름은 여행자에게 익숙하다. 그러나 지역의 내일은 풍경만으로 버티기 어렵다. 청년이 남고, 기업이 들어오고, 연구자가 일할 수 있는 기반이 있어야 도시는 오래 간다. 바이오 클러스터는 홍천이 관광과 산업을 함께 품는 도시로 나아가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홍천의 변화는 조용하지만 크다. 산과 강의 도시가 항체와 바이오 신약의 도시로 확장되고 있다. 항원·항체 소재 뱅크 구축은 연구기관의 성과만이 아니라 지역의 생존 전략에 가깝다. 기업은 소재와 실증 기반을 얻고, 주민은 건강관리 서비스와 새로운 일자리의 가능성을 만난다. 홍천이 그리는 미래는 거창한 구호보다 구체적인 시설과 사람, 기업의 움직임으로 완성된다. 강원 내륙의 작은 도시가 국가 항체산업의 심장으로 뛰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