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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노고단, 봄은 산 위에서 다시 피었다

지리산 노고단에 봄이 올라왔다

김보라 기자
노고단, 봄은 산 위에서 다시 피었다

[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남쪽 마을에서 먼저 피고 진 꽃들이 산 아래로 흘러가고 난 뒤, 해발 높은 능선 위에서 진달래는 조금 늦게 제 차례를 맞았다. 그래서 노고단의 봄은 서두르지 않는다. 천천히 올라온 사람에게만, 바람을 견딘 꽃의 얼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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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노고단에 핀 진잘래(제공=구례군)

 

 

능선은 온통 분홍빛이다. 바위와 마른 풀, 아직 겨울빛이 남은 관목 사이로 진달래가 번지듯 피어났다. 가까이서 보면 작은 꽃송이들이지만, 멀리서 보면 산 하나가 부드러운 색으로 물든다. 길은 꽃 사이로 이어지고, 사람들은 그 길 위에서 자꾸 걸음을 늦춘다. 사진을 찍으려 멈추고, 바람을 맞으려 멈추고, 아무 말 없이 바라보려 다시 멈춘다.

 

노고단의 진달래는 화려하지만 가볍지 않다. 낮은 곳의 꽃들이 봄의 시작을 알린다면, 이곳의 꽃은 봄의 절정을 조용히 확인시킨다. 겨울을 넘긴 가지에서 피어난 색이라 더 선명하고, 거센 산바람 속에서 흔들리는 모습이라 더 애틋하다. 꽃은 산을 덮었지만 산을 지우지 않는다. 오히려 지리산의 능선과 하늘, 먼 골짜기의 깊이를 더 또렷하게 드러낸다.

 

데크길을 따라 오르면 시야가 넓어진다. 파란 하늘 아래 분홍빛 능선이 펼쳐지고, 길 끝에는 노고단의 둥근 봉우리가 기다린다. 그 길을 걷는 일은 꽃구경이라기보다 계절의 높이를 확인하는 일에 가깝다. 봄이 이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왔다는 사실, 그 봄을 만나기 위해 사람도 조금은 숨을 고르며 올라와야 한다는 사실을 몸으로 알게 된다.

 

지리산의 봄은 한꺼번에 오지 않는다. 마을에서 시작해 계곡을 지나 숲을 건너고, 마지막으로 노고단 능선에 닿는다. 그래서 이 분홍빛은 늦은 봄의 선물이다. 꽃이 지기 전, 바람이 더 세지기 전, 노고단은 지금 가장 환하다. 산 위에서 다시 피어난 봄이 지리산의 능선을 오래도록 물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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