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서울 한복판에서 글자만으로 전국 팔도를 유랑하는 이색적인 여행지가 문을 열었다. 빌딩 숲 사이, 종이 위에 내려앉은 강원 속초의 파도 소리와 경북 안동의 고즈넉한 달빛이 관람객들의 펜촉을 유혹한다. 단순히 보는 전시를 넘어 손끝으로 지역의 숨결을 옮겨 적는 이 특별한 여정은 도심 속 새로운 \'아지트\'로 급부상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는 4월 21일부터 6월 21일까지 서울 중구에 위치한 실감형 관광 홍보관 하이커그라운드 4층에서 지역 서체와 관광을 결합한 기획전시 ‘텍스트힙(Text-Hip) X 로컬여행’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활자를 읽고 쓰는 행위를 멋스럽게 여기는 문화 현상인 \'텍스트힙\'과 필사 트렌드를 지역 관광과 조화롭게 버무려낸 것이 특징이다.
전시장은 각 지역의 풍경과 사람, 특산물의 이야기를 녹여낸 7개의 구역으로 정교하게 짜였다. 관람객들은 입구에서부터 스탬프와 엽서, 필사 체험을 통해 자신만의 \'수집 노트\'를 완성해가는 탐험가가 된다. 전시의 주인공은 글자다. 강원 속초의 푸른 바다를 닮은 ‘바다 바탕체’부터 안동 월영교의 정취를 담은 ‘월영교체’까지, 전국 지자체가 개발한 109종의 지역 서체가 한자리에 모였다.
단순히 글꼴을 구경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지역의 풍경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진하게 배어 있는 문장들을 직접 읽고 원고지에 옮겨 적으며 해당 지역의 매력을 간접적으로 체험한다. 이하정 펜화 일러스트 작가와 협업한 정교한 드로잉 엽서에 직접 편지를 쓰거나, 여러 모양의 멀티스탬프를 찍으며 아날로그 감성에 젖어들 수 있다. 또한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 지역 서체로 한글 타투를 새겨보는 등 현대적 감각의 프로그램도 준비되어 전 세대를 아우르는 재미를 선사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 관광의 감성을 담아 새롭게 개발된 전용 서체 \'하이커 폰트\'가 최초로 공개되어 눈길을 끈다. 하이커그라운드의 역동적인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반영한 이 서체는 전시장에서 직접 필사해볼 수 있으며, 전시된 모든 지역 서체와 함께 QR코드를 통해 누구나 무료로 내려받아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했다.
현장에서 만난 관람객들은 "내 고향의 이름이 이렇게 예쁜 글씨체로 표현된 것이 신기하다"며 "직접 문장을 써보니 이번 주말에는 그 글씨가 태어난 곳으로 진짜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고 입을 모았다. 텍스트라는 매개체가 차가운 활자에 머물지 않고 지역과 사람을 잇는 따뜻한 고리가 되고 있는 셈이다.
윤성욱 한국관광공사 관광홍보관운영팀장은 “관람객들이 활자를 통해 전국의 숨은 매력을 새롭게 발견하고, 종이 위에서 시작된 호기심이 실제 로컬 여행으로 이어지는 특별한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하이커그라운드를 통해 한국 관광의 다채로운 모습을 감각적으로 전하겠다”고 밝혔다.
화려한 영상과 자극적인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에, 하이커그라운드가 제안하는 ‘서체 여행’은 느림의 미학을 일깨운다. 사각거리는 펜 소리와 함께 안동의 월영교를 거닐고 속초의 바다를 받아쓰는 시간은 그 자체로 오롯한 휴식이 된다. 이번 주말, 스마트폰 대신 펜을 들고 글자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당신이 정성스레 옮겨 적은 그 문장이 다음 여행지의 초대장이 될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