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이제 관광은 풍경만 파는 산업이 아니다. 아이와 함께 움직이는 가족의 동선을 계산하고, 외국인 손님에게 30개 언어로 응답하고, 공연을 보러 온 팬을 도시의 체험 상품으로 연결하는 일까지 모두 관광이 됐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22일 발표한 제17회 관광벤처사업 공모전 결과는 그 변화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올해 공모전에는 1500여 건이 몰렸고, 최종 100개 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보다 접수 건수는 35.2% 늘었고 경쟁률은 15대 1에 달했다.
선정 구조도 촘촘하다. 예비관광벤처 20개, 초기관광벤처 40개, 성장관광벤처 40개로 나눠 뽑았고, 초기 부문 최종 결과는 4월 14일, 성장 부문은 4월 16일, 예비 부문은 4월 17일 각각 공개됐다. 오는 4월 30일에는 통합 오리엔테이션도 예정돼 있다. 아이디어만 좋은 단계를 넘어, 실제 사업화와 스케일업까지 염두에 둔 선발이라는 점이 읽힌다.
이번 결과에서 가장 눈에 띄는 흐름은 AI와 디지털 전환이다. 아동 동반 관광객의 이동 경로를 실시간으로 최적화하는 ‘하노라 키즈트립’, 관광사업자를 위한 다국어 고객관리 플랫폼 ‘리플메이트’, 30개 언어로 운영되는 호텔 AI 컨시어지 ‘제로바타’, 숙박시설 공간 운영 자동화 플랫폼 ‘키퍼’ 같은 서비스가 주목받았다. 관광 현장의 불편을 감각적으로 포장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예약과 응대, 운영과 체류 경험을 기술로 다시 설계하는 방향이 뚜렷해진 셈이다. 이 변화는 공모전 초기부터 문체부가 강조한 ‘AI 기반 차세대 관광 서비스’ 기조와도 맞닿아 있다.
방한 관광의 결도 달라졌다. K-컬처 열풍을 등에 업고 외국인을 겨냥한 맞춤형 서비스가 대거 선정됐다. K-팝 아티스트 음성 도슨트로 팬 투어를 설계하는 ‘셀레트립’, 팬의 방한 의향을 체험 상품으로 잇는 ‘팬워크’, 공연장 이동에 초점을 맞춘 ‘핸디버스’, 한옥과 공연·미식을 결합한 ‘고택 라이브 다이닝’이 대표적이다. 한국을 보는 데서 끝나는 여행이 아니라, 좋아하는 문화를 따라 직접 움직이고 머무는 여행으로 시장이 넓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로컬과 라이프스타일 관광도 또렷했다. 절에서 달리기를 결합한 ‘사찰런’, 충청도 보부상 문화와 먹거리를 엮은 ‘충청도 새참한상’, 반려동물 여행 데이터를 활용한 ‘멍콕’, 자연 속 고급 휴양을 앞세운 ‘디어캐빈’이 눈길을 끌었다. 관광의 무게중심이 유명 명소 찍기에서 취향과 체험, 머무는 방식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여행자가 원하는 것은 더 이상 ‘어디를 볼까’만이 아니라 ‘어떻게 보낼까’에 가까워졌다.
선정 기업에는 최대 1억원의 사업화 자금이 차등 지원된다. 여기에 기업 진단, 멘토링, 컨설팅, 투자 유치, 국내외 판로 개척까지 성장 단계별 프로그램이 붙는다. 지원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한국관광공사는 1월부터 글로벌 진출 희망 기업 30개사를 뽑는 ‘관광 글로벌 챌린지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고, 4월 20일에는 추경 기반 해외 진출 지원을 위한 별도 액셀러레이터 공모도 시작했다. 이번 공모전이 단순한 선발이 아니라, 해외 시장까지 내다본 후속 성장 트랙과 연결되고 있다는 얘기다.
관광기업창업팀은 올해는 AI 기술과 한국 문화의 매력을 접목한 아이디어가 두드러졌고, 앞으로도 유망 기업이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성장하도록 돕겠다고 밝혔다. 그 말처럼 올해 관광벤처 100곳은 한국 관광의 미래가 어디로 가는지 먼저 보여준다. 바다와 산, 축제와 미식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시대다. 이제 관광의 경쟁력은 기술과 번역, 팬덤과 이동, 로컬의 이야기를 얼마나 정교하게 묶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이번 선정 결과는 공모전 발표 한 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국 관광이 얼마나 빨리 새 판으로 넘어가고 있는지 보여주는 장면에 가깝다. AI가 길을 짜고, 팬이 도시를 움직이며, 지역의 생활문화가 상품이 되는 시대. 여행의 다음 문장은 이미 스타트업의 손에서 먼저 쓰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