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이제 여행은 어디로 갈지만 묻지 않는다. 언제 가야 덜 덥고, 덜 붐비며, 머문 자리에도 부담을 덜 남길 수 있는지까지 함께 따진다. 4월 22일 지구의 날을 맞아 읽히는 올해 여행 흐름은 분명하다. 지속가능성은 더 이상 캠페인 문구가 아니라 여행의 기준이 됐다. 올해 지구의 날 표어가 ‘Our Power, Our Planet’인 것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전 세계 35개 국가·지역, 3만25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이번 조사에는 한국인 1000명도 포함됐다. 한국 여행객의 84%는 지속가능한 여행이 중요하다고 답했고, 세계 평균 역시 85%로 높게 나타났다. 환경을 덜 해치는 방식으로 떠나는 일이 낯선 선택이 아니라 여행의 상식으로 번지고 있다는 뜻이다. 여행이 남기는 흔적을 고민하는 시선도 한층 또렷해졌다. 방문한 곳을 왔을 때보다 더 나은 상태로 남기고 싶다는 인식 역시 글로벌 여행자들 사이에서 넓게 퍼져 있다.
흥미로운 건 세대별 온도 차다. 앞으로 1년 안에 더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여행하겠다는 의향은 Z세대 75%, 밀레니얼 71%, X세대 60%, 베이비붐 세대 47% 순으로 젊은 층에서 높았다. 하지만 실제 행동은 달랐다. 여행 중 쓰레기를 줄이겠다는 응답은 베이비붐 세대가 67%로 가장 높았고, 에너지 절약 60%, 현지 독립상점 이용 59%, 비수기 여행 63%도 모두 윗세대가 앞섰다. 반대로 젊은 세대는 현지 문화와 원주민 공동체를 만나는 체험, 생태계·야생동물 보전 활동에 더 적극적이었다. 마음은 젊은 층이 먼저 움직였고, 습관은 기성세대가 더 단단했다.
올해 보고서에서 더 크게 다가오는 대목은 기후다. 악천후는 이제 여행 뉴스의 배경이 아니라 예약 단계의 핵심 변수다. 전 세계 여행객의 74%가 여행지와 여행 시기를 정할 때 극한 날씨 위험을 함께 고려한다고 답했고, 31%는 지난 1년 사이 악천후나 자연재해 때문에 여행 계획을 바꾸거나 접은 적이 있다고 했다. 한국 여행객 역시 이런 흐름을 더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쪽에 가까웠다. 날씨가 불안하면 여행지를 미루고, 아예 후보지에서 지워버리는 일도 더 이상 드문 풍경이 아니다.
그래서 지속가능성의 뜻도 넓어졌다. 텀블러를 챙기고 수건 교체를 줄이는 수준을 넘어, 여행의 시간표와 동선 자체를 다시 짜는 방식으로 번지고 있다. 전 세계 여행객의 43%는 인파를 피하려고 목적지를 고르겠다고 했고, 42%는 성수기를 비켜 가겠다고 답했다. 44%는 오버투어리즘을 피하려고 덜 붐비는 곳을 찾겠다고 했으며, 37%는 지역사회와 환경에 가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 비수기를 선택하겠다고 밝혔다. 이제 지속가능한 여행은 ‘무엇을 안 할까’보다 ‘언제, 어디로 갈까’를 다시 묻는 일에 가깝다.
숙소 선택도 달라지고 있다. 지속가능성 인증 숙소에 머물 계획이라는 응답은 전 세대에서 30%를 넘겼고, 실제 예약 데이터도 움직였다. 지난해 부킹닷컴에서 제3자 지속가능성 인증을 받은 숙소에 예약된 객실박 수는 1억을 넘어섰다. 친환경이 이미지나 구호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결제로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플랫폼 역시 인증의 신뢰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숙소 파트너 지원을 넓히고 있다.
그래서 올해 지구의 날이 여행자에게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떠날 것이냐, 말 것이냐가 아니다. 어떻게 떠날 것이냐는 것이다. 덜 붐비는 계절을 고르고, 현지 가게 문을 열고, 인증 숙소를 찾고, 한 여행지에 조금 더 오래 머무는 선택. 여행의 미래는 거창한 선언보다 그런 작은 실천에서 먼저 시작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