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경남이 콘텐츠 산업의 다음 장을 꺼내 들었다. 익숙한 제조업의 땅이 아니라 AI와 실감기술, 교육 플랫폼과 전시 콘텐츠가 뒤섞이는 실험장으로 한 발 더 들어서는 모양새다. 이번에 이름을 올린 과제들을 보면 방향이 또렷하다. 한국 요괴를 소재로 한 AI 단편 애니메이션, 도깨비를 앞세운 실감형 미디어아트, 공간 맞춤 몰입형 가상 실습 솔루션, 초개인화 디지털 입시 매거진까지. 경남은 지금 ‘만드는 산업’에서 ‘보여주고 체험하게 하는 산업’으로 외연을 넓히기 시작했다.
경상남도와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이 운영하는 경남콘텐츠기업지원센터는 2026 융복합 콘텐츠 제작 지원사업 최종 과제를 확정하고 본격 추진에 들어간다. 이 사업은 기술·장르·산업·디바이스를 엮은 융합형 콘텐츠 제작을 지원해 지역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공모는 경남 소재 창업 3년 초과 콘텐츠기업을 대상으로 진행됐고, 총 4개 과제가 선정된다. 과제당 최대 4000만원 규모로 지원하는 구조다.
이번 선정 결과가 눈길을 끄는 까닭은 사업 목록의 결이 꽤 넓기 때문이다. 한쪽에는 한국형 상상력과 전통 서사를 건드리는 AI 애니메이션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관람형을 넘어 체험형으로 확장되는 미디어아트가 있다. 여기에 교육 현장과 바로 맞닿는 실습형 솔루션, 학생 개개인에 맞춰 정보를 재구성하는 입시 매거진까지 더해졌다. 서로 다른 분야를 한 줄로 꿰어낸 핵심은 분명하다. 콘텐츠를 이야기로만 보지 않고, 서비스와 공간, 디바이스, 데이터가 함께 움직이는 산업으로 보겠다는 뜻이다.
실제 경남콘텐츠기업지원센터는 김해시 관동로 14에 자리하고 있으며, 진흥원 안에서 콘텐츠기업 지원과 사업화 전환, 지역 특화 콘텐츠 육성 기능을 맡고 있다. 경남도의회 공개 회의록에는 진흥원이 파악한 지역 콘텐츠 기업이 100여 곳 규모로 언급돼 있다. 올해는 선도기업 육성과 융복합 콘텐츠 제작 등을 포함한 맞춤형 지원 사업 7개에 약 16억4500만원이 편성돼 있다. 이번 4개 과제 선정이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지역 콘텐츠 생태계를 키우기 위한 흐름 위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더 눈에 띄는 건 속도다. 진흥원은 이번 사업을 4월 말부터 제작 단계로 넘기고, 공모 단계부터 신규 인력 채용 요건도 걸어뒀다. 아이디어만 뽑아놓고 끝내는 지원이 아니라 실제 제작과 시장 진입 쪽으로 무게를 옮기겠다는 계산이 읽힌다. 김종부 원장이 기술과 콘텐츠의 결합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키우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남의 이번 선택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남는다. 지역 콘텐츠가 더 이상 주변의 실험이 아니라, 지역 산업의 미래가 될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이번 4개 과제는 그 답을 먼저 시험하는 첫 장면에 가깝다.
요괴와 도깨비, 가상실습과 입시 플랫폼이 한자리에서 출발하는 풍경은 낯설지만 그래서 더 지금의 경남답다. 오래된 산업의 땅이 새로운 콘텐츠의 무대를 깔기 시작했다. 이번 지원사업의 성패는 몇 편의 결과물로 끝나지 않는다. 지역에서 기획하고 제작하고 사업화하는 힘이 실제로 자라나는지, 그 가능성을 보여줄 시험대가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