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남태평양의 햇빛은 다르게 번진다. 타히티의 바다는 파랗다기보다 빛에 가까웠고, 섬들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초록 그림자처럼 다가왔다. 비행기로 한 섬씩 건너뛰며 만나는 타히티도 아름답지만, 이곳의 진짜 매력은 물길을 따라 천천히 섬의 결을 읽는 데 있다. 118개의 섬이 다섯 개 군도로 흩어져 있는 프렌치 폴리네시아에서 크루즈가 특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섬과 섬 사이의 이동마저 풍경이 되고, 여정 자체가 목적지가 된다.
그 가운데 ‘르 폴 고갱’ 크루즈는 타히티 여행의 밀도를 바꿔놓는 선택지로 눈길을 끈다. 이 선박은 프렌치 폴리네시아의 얕은 바다와 라군 지형에 맞춰 설계된 소형 럭셔리 크루즈로, 대형 선박이 쉽게 닿지 못하는 친밀한 기항지와 해변 가까이 접근하는 것이 강점이다. 정원도 330명 규모라 거대한 리조트처럼 분주하기보다, 바다를 가까이 느끼며 이동하는 부티크 호텔에 더 가깝다. 갑판에 서면 에메랄드빛 수면 위로 바람이 먼저 닿고, 해가 기울 무렵엔 섬 능선 뒤로 번지는 석양이 배 전체를 천천히 물들인다.
대표 일정은 타히티 여행의 핵심으로 꼽히는 소시에테 제도를 잇는다. 바닐라 향이 감도는 후아히네, 폴리네시아 문화의 깊이를 품은 라이아테아,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보라보라, 초록 화산섬의 실루엣이 인상적인 무레아까지 이어지는 항로다. 어떤 날은 4륜구동 차량을 타고 섬 안쪽으로 들어가고, 어떤 날은 스노클링 마스크를 쓴 채 산호 정원과 열대어 사이를 떠다닌다. 카약과 패들보드, 다이빙, 라군 투어처럼 바다를 직접 통과하는 체험이 이어져 ‘휴양’이라는 단어가 지루할 틈이 없다. 무레아와 보라보라의 산호 정원, 맑은 라군은 타히티가 왜 평생 한 번은 가보고 싶은 여행지로 불리는지 단번에 납득하게 한다.
이 크루즈의 매력은 일정만이 아니다. 전 일정 올 인클루시브 방식으로 운영돼 고급 다이닝, 일부 와인과 주류, 음료, 선내 팁, 객실 미니바까지 한 번에 묶인다. 현지 체류 비용이 만만치 않은 타히티에서 여행자는 계산보다 풍경에 집중하게 된다. 특히 타하아 라군의 전용 아일렛 ‘모투 마하나’, 보라보라의 프라이빗 비치 같은 차별화된 공간은 이 여정을 더 특별하게 만든다. 얕은 물 위에 떠 있는 바, 새하얀 모래사장, 발밑까지 투명하게 보이는 라군은 사진보다 실제가 더 선명하다.
최근에는 허니문뿐 아니라 젊은 가족 여행 수요도 함께 커지고 있다. 선내에는 어린이를 위한 모아나 익스플로러 프로그램이 마련돼 바다 생태와 섬 문화를 체험형으로 익힐 수 있고, 일부 항차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혜택도 운영된다. 그래서 이 배 위의 분위기는 조용한 럭셔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커플은 커플대로, 가족은 가족대로 하루의 속도를 다르게 즐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창밖 풍경이 바뀌어 있고, 오늘은 또 어느 섬의 바다로 내려설지 기대하게 되는 여행. 타히티에서 크루즈가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하나의 완성된 여행으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타히티는 원래도 꿈의 여행지로 불린다. 그러나 바다 위에서 섬을 하나씩 열어가는 방식으로 만나면 그 꿈은 훨씬 입체적이 된다. 리조트 한 곳에 머무는 휴양이 아니라, 매일 새로운 섬과 물빛을 건너며 남태평양의 결을 몸으로 통과하는 여행. 타히티가 오래 남는 이유는 풍경이 아름다워서만이 아니다. 그 풍경 속으로 천천히 들어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