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울산의 아침은 생각보다 일찍 술 냄새를 품는다. 북구 효문동 태화루 양조장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막걸리는 더 이상 서민의 익숙한 술만이 아니었다. 물과 쌀, 누룩과 온도, 그리고 한 도시의 역사까지 함께 빚어내는 울산의 맛이었다.
막걸리 양조장이라면 왠지 더 푸근하고 더 어수선한 풍경을 먼저 떠올리기 쉽지만, 울산탁주·태화루는 달랐다. 깨끗했고, 분주했고, 무엇보다 일정했다. 그 일정함의 한가운데서 나는 이범형 생산총괄이사를 만났다. 그는 막걸리 업계에서 흔히 듣는 별칭 그대로 ‘막걸리 박사’였다. 진주곡자 집안의 차남으로 태어나 실제 박사학위 논문도 막걸리를 주제로 썼고, 지금도 양조장 한복판에서 술의 컨디션을 가장 먼저 읽는 사람이다.
이범형 이사는 첫마디부터 핵심을 찔렀다.
“막걸리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아세요? 저는 물이라고 봅니다.”
쌀과 누룩, 효모와 발효를 떠올리고 온 내게 그 말은 조금 의외였다. 그러나 양조장을 한 바퀴 도는 동안 그 말이 왜 태화루의 중심인지 금세 알게 됐다. 태화루는 지하 암반수를 7단계에 걸쳐 정수하고 저장해 모든 공정에 사용한다.
6개월마다 품질검사를 받아야 하는 불편도 감수한다. 그럼에도 지하수를 고집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물맛이 술맛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 총괄이사는 “같은 원료를 써도 물이 다르면 술의 뒷맛과 청량감이 달라진다”고 했다. 태화루의 깨끗한 끝맛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울산탁주·태화루의 시간은 생각보다 길다. 지금의 태화루는 1969년 울산에 있던 12개의 탁주 공장이 힘을 모아 만든 ‘울산탁주공동제조장’에서 출발했다. 처음부터 태화루란 이름을 쓴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울산을 대표하는 강의 이름을 따 ‘태화강’이라 불렀고, 1980년대 들어 지금의 ‘태화루’로 이름을 바꿨다. 태화루로 40년, 태화강까지 합하면 반세기가 훌쩍 넘는다. 태화루가 단순한 지역 막걸리가 아니라 울산 사람들의 생활 속 기억으로 남아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범형 이사는 병 모양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태화루 병을 보면 누군가는 예스럽다고 하고, 누군가는 촌스럽다고도 해요. 그런데 그게 바로 태화루죠. 옛날에 먹던 맛 그대로를 고집스럽게 지켜온 방식이니까요.”
실제로 태화루 병은 세련되게 날렵한 요즘 술병과는 조금 다르다. 그러나 그 투박함이 오히려 정체성이다. 값도 그렇다. 750mL 한 병에 1700~1900원 선. 막걸리는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술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가격에도 그대로 배어 있다. 울산 지역 시장점유율이 약 90%에 이른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화려하게 치장하기보다 오래 곁에 두는 술, 그것이 태화루가 울산에서 살아남은 방식이었다.
맛은 옛것을 지키지만, 제조는 놀라울 만큼 현대적이다. 하루 평균 2만~3만 병이 출고되는 술의 품질을 늘 같은 수준으로 유지하려면 감으로만 될 일이 아니다. 양조장 안에서는 대용량 증자기에 한 번에 2톤의 쌀이 들어가 고두밥으로 쪄지고, 컴퓨터 제어 입국 제조기가 오차를 줄이며 균일한 제조를 맡는다. 사입실 자동 온도 제어 시스템은 발효에 좋은 최적의 온도를 사계절 일정하게 유지하고, 마지막으로는 상자 세척, 병 세척, 자동 주입, 자동 병입, 출고까지 이어지는 첨단 자동 포장 시스템이 쉼 없이 돌아간다. 이 총괄이사가 한 말이 오래 남았다.
“작업장에서 오늘 술이 좋다는 말이 들리면 바로 말합니다. 오늘 술이 좋아서는 안 돼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늘 똑같이 좋아야죠.”
그 말 한마디에 대형 양조장의 철학이 다 들어 있었다.
태화루의 깔끔한 맛은 물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이범형 이사는 ‘도정’을 중요한 비밀로 꼽았다. 태화루는 울산·울주 지역 햅쌀을 들여온 뒤 한 번 더 도정해 쌀알의 단백질과 지방을 줄인다. 그는 청주 이야기를 꺼내며 설명했다. 술맛을 맑게 만들려면 전분을 감싸고 있는 단백질을 얼마나 덜어내느냐가 중요하고, 그래야 불필요하게 복잡한 맛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 깎인 햅쌀이라도 한 번 더 손을 본다. 밥을 위한 쌀이 아니라 술을 위한 쌀로 다시 다듬는 셈이다. 태화루의 단순하지만 맑은 맛은 그 한 번 더 깎은 정성에서 나온다.
그의 연구실에서 그 설명은 더 구체적인 장면으로 이어졌다. 책상 위에는 비이커 두 개가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이날 막 나온 막걸리가 담겨 있었다. 하나는 흰색 뚜껑의 국산 쌀 막걸리, 다른 하나는 초록색 뚜껑의 외국산 쌀 막걸리였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막걸리 속 미세한 술입자와 발효 성분이 얼마나 빨리, 혹은 얼마나 천천히 가라앉는지를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침전물이 너무 빨리 가라앉지 않고, 마실 때 질감과 탄산감이 자연스럽게 살아 있는 막걸리를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막걸리는 흔드는 술이지만, 그 안에서는 늘 가라앉음의 속도가 품질을 말해준다. 침전이 너무 빠르면 맛의 균형도 달라질 수 있고, 병 속 표정 역시 달라진다. 그 작은 비이커 두 개는 옛 술을 지키는 일이 결국 얼마나 과학적인 관찰 위에 서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탄산을 살리면서도 유통기한이 긴 탁주를 만드는 일이 아직 쉽지 않다고 했다. 탄산 없는 탁주는 만들 수 있지만, 막걸리 특유의 살아 있는 청량감을 유지하면서 안정적으로 오래 가는 술은 여전히 숙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붙든 것은 효모다. 연구실에서는 복숭아, 녹차, 미나리 등을 활용한 효모 배양 연구가 한창이라고 했다. 일본은 특정 효모 하나로 술의 향과 색을 바꾸는 수준까지 연구를 이어가는데, 한국도 이미 가진 효모를 더 깊이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태화루는 옛맛을 지키는 술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막걸리를 준비하는 양조장이기도 했다.
태화루라는 이름은 울산의 역사와도 맞닿아 있다. 울산 중구 태화강변의 태화루는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태화사를 세우며 함께 지은 누각으로 전해진다. 조선시대에는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영남 3루로 불렸고, 임진왜란 전후 소실됐다가 2014년 복원돼 시민 품으로 돌아왔다. 그러니 태화루 막걸리는 단순히 예쁜 이름을 빌려온 것이 아니다. 울산의 강과 누각, 도시의 오래된 자존심을 술 이름으로 옮겨온 것이다. 병을 들이켜는 순간 태화강 바람과 누각의 그림자가 함께 겹쳐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태화루는 2009년 울산세계옹기문화엑스포 공식 건배주로도 선정됐다. 옹기와 발효, 울산의 생활문화가 한 병 안에서 만난 순간이었다. 안주 궁합을 묻자 이범형 이사는 주저하지 않았다. 두부김치, 황태, 부추, 홍어, 고래고기, 애호박, 도토리묵, 더덕, 녹두전, 돼지고기, 파전. 듣기만 해도 장터와 부엌, 선술집과 저녁상이 함께 떠오르는 조합이다. 막걸리는 원래 그런 술이다. 화려하게 혼자 빛나는 술이 아니라 음식과 사람 사이를 부드럽게 이어주는 술이다.
돌아 나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막걸리는 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사랑받아온 술이지만, 결코 단순한 술은 아니다. 역사와 기술, 지역과 사람의 감각이 함께 들어가야 제대로 완성된다. 울산 태화루는 바로 그 점을 보여준다. 옛맛을 지키면서도 설비는 첨단으로 가고, 지역의 이름을 품으면서도 미래의 효모를 연구한다. 태화루의 전통은 과거에 머무는 전통이 아니라, 오늘도 살아서 익어가는 전통이었다.
울산탁주·태화루는 반세기 넘게 울산 사람들 곁을 지켜온 막걸리다. 태화강에서 태화루로 이어진 이름의 역사, 영남 3루의 상징성, 최첨단 설비와 효모 연구까지 겹쳐지며 이 술은 단순한 지역 막걸리를 넘어 울산의 시간을 빚는 술이 됐다. 양조장에서 만난 이범형 생산총괄이사의 말처럼, 좋은 막걸리는 늘 같은 맛으로 사람 곁에 남는다. 태화루가 오래 사랑받는 이유도 결국 그 한 잔의 꾸준함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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