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2025년 겨울, 가수 김기태는 일본 나고야로 향했다. 바쁘게 달려온 시간을 잠시 내려놓고,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누군가와 함께 웃고 떠드는 여행도 좋지만, 이번만큼은 조금 달랐다. 하얀 눈을 바라보며 지나온 시간과 지금의 행복, 그리고 앞으로 지켜야 할 가족을 천천히 생각해보고 싶었다. 노래를 부르며 살아온 시간,
무대 위에서 견뎌온 날들, 그리고 이제는 어떤 가수가 되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여행이기도 했다.
눈은 이상하게 사람을 솔직하게 만든다. 가수 김기태도 그랬다. 2025년 겨울 일본 나고야에서 출발해 다카야마와 시라카와로 향한 길, 그는 끝없이 쌓인 눈 앞에서 오래 멈춰 섰다. 하얗게 잠긴 마을과 말없이 내려앉는 눈발을 바라보며 지나온 시간과 지금의 행복, 그리고 끝내 지켜야 할 가족을 다시 생각했다. 이번 여행은 쉬는 시간이 아니라, 자신을 다시 들여다보는 시간이 됐다.
김기태는 이번 여행을 떠올리며 가장 먼저 “고요”라는 말을 꺼냈다. 사진 속 그는 검은 비니에 검은 재킷, 어깨에는 짐가방을 걸친 채 눈 내리는 마을 한복판에 서 있다. 고개를 조금 숙인 모습은 여행자의 차림이라기보다, 오래 달려온 사람이 잠시 자기 마음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장면처럼 보인다. 그는 “이번 여행은 뭔가를 많이 보기 위해 떠난 게 아니었다”며 “오히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하얀 풍경 안에 오래 서 있고 싶었다”고 했다. 누군가와 함께 웃고 떠드는 여행도 좋지만, 그때의 자신에게는 혼자 있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는 것이다.
나고야에서 출발해 다카야마로 향하는 길은 점점 겨울의 표정을 짙게 드러냈다. 중간에 들른 휴게소 표지판 위에도 두껍게 눈이 쌓여 있었고, 산은 온통 흰빛으로 잠겨 있었다. 일본에서 가장 하늘에 가까운 휴게소라는 문구마저 그날은 눈 속에 절반쯤 묻혀 있었다. 김기태는 그 장면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사람은 아주 작은 표지판 하나 앞에서도 멈춰 생각하게 될 때가 있는데, 그날이 그랬다고. 어디쯤 와 있는지, 얼마나 지나왔는지,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여행길 위에서 새삼 묻게 됐다는 것이다.
다카야마에 들어서자 여행의 속도는 더 느려졌다. 화려하게 빛나는 관광지가 아니라, 눈 덮인 지붕과 오래된 목조 건물이 먼저 마음을 붙잡았다. 길은 조용했고, 공기는 차가웠지만 이상하게 따뜻한 느낌도 함께 있었다. 그는 “시골의 한적한 풍경이 낯설지 않았다”고 했다. 오히려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어느 겨울 풍경처럼 마음에 스며들었다는 말이었다. 사람을 다그치지 않는 거리, 지나치게 깨끗해서 마음까지 정리되는 골목, 그리고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가 좋았다고 했다. 여행지의 매력은 늘 유명한 명소보다 공기와 결에서 먼저 오는데, 다카야마가 꼭 그런 곳이었다는 것이다.
이번 여행의 중심에는 시라카와고가 있었다. 사진 속 합장지붕 마을은 온통 눈에 덮여 있었다. 지붕은 무겁게 눈을 이고 있었고, 집들은 흰 세상 속에서 더 또렷한 윤곽으로 서 있었다. 넓은 설원 너머로 보이는 마을은 화려하지 않은데도 오래 시선을 붙들었다.
김기태 가수는 “처음 그 풍경을 봤을 때 예쁘다기보다 마음이 조용해진다는 느낌이 먼저 왔다”고 말했다. 사진으로 볼 때와 실제로 서서 볼 때는 전혀 다르다고도 했다. 눈은 풍경을 덮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본질만 남겨두는 것 같았다고. 군더더기가 사라진 마을에서 그는 자신의 삶도 그렇게 한번 바라보게 됐다고 했다.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 무엇을 놓치면 안 되는지, 이제는 어떤 마음으로 노래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시라카와고에서는 작은 재미도 오래 남았다. 눈사람 하나마저 그 마을에서는 풍경의 일부처럼 보였다. 빨간 장갑을 낀 채 두 팔을 벌리고 선 눈사람은 겨울이 가진 장난기와 따뜻함을 함께 보여줬다. 거대한 설경이 주는 압도감 속에서도 그런 소박한 장면이 사람을 웃게 만들었다. 김기태는 “좋은 여행은 꼭 거창한 데서 오는 게 아니더라”며 “이렇게 작은 표정 하나에도 마음이 풀리는 게 여행의 힘인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웅장한 풍경과 소박한 장면이 함께 남은 시간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이 여행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풍경보다 생각이었다. 그는 눈을 바라보며 가족을 많이 떠올렸다고 했다. 지금의 행복이 그냥 온 것이 아니라는 것, 지켜야 할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인지 다시 알게 됐다고 했다. 혼자 떠났지만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결국 가족이었다. 여행은 멀리 가는 일이지만, 어떤 순간에는 가장 소중한 자리로 다시 돌아가게 만드는 힘도 있다는 말이었다. 그는 “앞으로 내가 어떤 가수가 되어야 하는가를 많이 생각했다”며 “노래를 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내 삶의 중심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김기태는 나고야를 간다면 다카야마와 시라카와고는 꼭 한번 가보라고 권한다. 빠르고 자극적인 여행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조금 심심할 수 있다. 하지만 복잡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싶을 때, 바쁘게 달려온 자신을 잠깐 멈춰 세우고 싶을 때, 조용한 풍경 앞에서 삶을 다시 바라보고 싶을 때는 이만한 겨울 여행도 드물다. 눈 덮인 마을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대신 오래 본다. 오래 머물게 한다. 그리고 끝내 자기 마음을 돌아보게 만든다.
가수 김기태에게 이번 여행은 그런 시간이었다. 하얀 눈 속에 서니 오히려 삶의 윤곽은 더 선명해졌다. 지나온 시간도, 지금의 행복도, 지켜야 할 가족도, 앞으로 불러야 할 노래도 그 설경 속에서 더 또렷해졌다. 그래서 그의 겨울 여행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다시 살아갈 힘을 채우는 시간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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