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구례의 봄은 꽃으로만 오지 않는다. 지리산 자락에서는 오래된 제례가 다시 시작되고, 운동장과 사찰 앞마당에는 군민과 여행객이 함께 어울리는 소리가 번진다. 오는 18일부터 20일까지 열리는 지리산남악제와 군민의 날 행사는 구례의 시간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봄의 무대가 될 전망이다.
전남 구례군은 4월 18일부터 20일까지 3일간 남악사와 화엄사 시설지구, 공설운동장 일원에서 ‘제82회 지리산남악제 및 제45회 군민의 날 행사’를 연다. 올해 주제는 ‘천년의 역사 속으로 떠나는 여행’이다. 행사는 제례와 공연, 체험, 경연 등 4개 마당 32개 프로그램으로 꾸려진다. 올해는 안전성과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전반적인 구성을 손봤고,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재정비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변화는 군민 참여 방식의 조정이다. 기존 시가행진은 참여자 고령화에 따른 안전 문제를 고려해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군민체육대회는 참여형 종목 중심으로 바뀌었다. 큰공굴리기와 만보기 댄스가 새로 들어가고, 축구·족구·씨름·계주 등 일부 종목은 참가 규모를 조정해 더 간결하게 운영된다. 한궁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고, 읍면 주민대표 장기자랑도 새롭게 마련돼 마을별 개성과 흥을 보여줄 자리가 넓어졌다.
행사 일정도 날마다 색깔이 다르다. 첫날인 18일에는 군민의 날 기념식과 군민체육대회, 군민노래자랑이 진행된다. 19일에는 길거리 씨름대회와 읍면 윷놀이 대회, 주민 장기자랑이 이어지고 ‘추억의 동춘서커스’ 공연이 분위기를 달군다. 마지막 날인 20일에는 남악제례와 헌공다례, 읍면 농악경연대회, 백두한라예술단 초청공연으로 축제가 마무리된다. 여기에 남악서예백일장과 글짓기, 내고장 문화재 그리기 대회, 전국 정가 시조경창대회까지 더해져 구례의 전통성과 생활문화가 한자리에서 펼쳐진다.
지리산남악제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한 지역 봄축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남악제는 신라시대부터 지리산 노고단 일대에서 이어져온 국가 제례의 맥을 품고 있다. 제례는 시대를 거치며 장소를 옮겼고, 일제강점기 중단되기도 했지만 광복 이후 다시 복원됐다. 1969년 화엄사 일주문 가까이에 남악사가 세워진 뒤 지금의 형식이 자리 잡았고, 1980년대부터는 군민의 날 행사와 결합해 구례를 대표하는 통합 축제로 이어지고 있다. 구례에서 남악제는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지역 정체성을 지금의 생활 속에서 다시 살려내는 방식에 가깝다.
행사 공간이 남악사와 화엄사 시설지구를 아우른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화엄사는 지리산 자락을 대표하는 천년 고찰로, 각황전과 사사자삼층석탑, 봄철 홍매화 풍경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최근에도 화엄사 일대에서는 문화와 생태를 결합한 걷기 프로그램이 이어지며 봄 여행객의 발길을 모았다. 이번 축제는 이런 화엄사의 깊은 분위기와 남악사의 제례성, 공설운동장의 공동체성이 한 축 안에서 만나는 자리다. 사찰의 고요와 운동장의 활기, 마을의 흥겨움이 하나의 축제로 연결된다는 점이 구례만의 결을 만든다.
구례는 이미 봄이면 산수유와 화엄사 홍매화, 섬진강변 풍경으로 많은 이들이 찾는 여행지다. 그 가운데 지리산남악제는 꽃놀이를 넘어 구례의 시간과 사람을 함께 만나는 행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더 크다. 관광객에게는 지역의 깊이를 읽는 기회가 되고, 군민에게는 공동체의 결속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 된다. 특히 올해처럼 참여형 프로그램을 늘리고 안전성을 다듬은 구성은 세대가 함께 어울리는 축제의 방향을 더 뚜렷하게 보여준다.
지리산남악제 및 군민의 날 행사 추진위원장 김종근은 “이번 행사가 군민 모두가 함께 어울리며 소통하고 화합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구례군도 오랜 전통을 지닌 대표 행사를 통해 군민의 자긍심을 높이고 지역의 봄을 더 풍성하게 만들겠다는 뜻을 밝혔다. 축제의 핵심은 결국 화려함보다도 함께 어울리는 힘에 있다. 구례는 이번 3일 동안 그 가장 단단한 장면을 보여줄 준비를 마쳤다.
마무리
봄 축제는 많지만, 시간을 불러내는 축제는 흔치 않다. 구례의 지리산남악제는 꽃이 피는 계절에 제례와 놀이, 경기와 공연을 함께 올리며 그 드문 장면을 만든다. 지리산이 내려다보는 마을에서 천년의 시간이 다시 움직이는 순간, 구례의 봄은 단순한 계절이 아니라 한 편의 오래된 이야기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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