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간절곶에 내리면 가장 먼저 풍경이 아니라 바람이 몸을 감싼다. 흰 등대 앞으로 바다가 한꺼번에 열리고, 몇 걸음만 옮겨도 거대한 우체통과 끝없는 수평선이 시야를 채운다. 울산 여행의 마지막 장면은 뜻밖에도 이곳에서 가장 또렷해진다.
슬도를 지나 간절곶에 닿으면 울산 바다는 또 한 번 표정을 바꾼다. 방어진항과 슬도가 생활의 바다를 보여줬다면, 간절곶은 바람과 수평선이 주인인 풍경의 바다에 가깝다. 울산 울주군 서생면에 자리한 간절곶은 동해안의 대표 해맞이 명소로 알려져 있고, 울산 관광 공식 안내에서도 지역을 대표하는 핵심 여행지로 소개된다. 이곳에서는 영일만의 호미곶보다 1분, 정동진보다 5분 이르게 해가 뜬다고 알려져 있어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새해 첫 일출을 보기 위해 찾는다.
간절곶에서 가장 먼저 차를 세우게 되는 곳은 역시 등대 앞이다. 간절곶등대는 오랜 세월 이 바다를 드나드는 배들의 길잡이 역할을 해온 상징적인 존재다. 현재 간절곶 등대는 1920년 건립되었으며, 공원과 함께 울산 남부 해안을 대표하는 경관축을 이룬다. 새하얀 등대가 푸른 바다와 맞닿아 서 있는 장면은 단순해서 더 오래 남는다.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보다 바다를 먼저 바라보고 있었던 존재처럼 보여, 풍경에 시간이 덧입혀진다.
등대 앞에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 곧 간절곶의 상징물들이 차례로 시야에 들어온다. 해맞이 명소를 알리는 표지석이 먼저 반기고, 그 옆으로는 간절곶의 명물인 소망우체통이 서 있다. 이 우체통은 세계 최대 크기의 소망우체통이며, 이곳에 넣은 엽서는 실제로 전국으로 배달된다. 엽서는 인근 특산품 판매장에서 무료로 받을 수 있다. 그래서 간절곶은 사진만 찍고 돌아서는 장소가 아니라, 마음 한 줄을 적고 떠나는 장소가 된다. 누군가는 바다를 배경으로 안부를 띄우고, 누군가는 자신에게 보내는 짧은 다짐을 남긴다. 탁 트인 수평선과 붉은 우체통이 한 장면 안에 들어오는 풍경은 관광지의 장식이 아니라, 간절곶만의 감정을 만든다.
이곳의 진짜 매력은 상징물을 지나 바다 옆 길로 들어설 때부터 살아난다. 해안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시선은 자꾸 멀어지고, 마음은 오히려 조용해진다. 파도는 절벽 아래에서 쉼 없이 바위를 두드리고, 난간 너머로는 짠내가 바람에 실려온다. 급히 훑고 지나가면 해맞이 명소 하나로만 기억되겠지만, 걸음을 늦추면 간절곶은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이곳은 일출을 기다리는 장소인 동시에, 한낮의 빛과 해안의 결을 오래 음미하게 하는 산책의 곶이다. 간절곶 일대에 송림과 기암괴석, 인근 진하해수욕장, 서생포왜성, 나사봉수대, 온양옹기마을 같은 주변 명소도 함께 이어진다. 바다를 한 번 보고 끝내기보다, 반나절쯤 머물며 해안의 표정을 따라 걷기 좋은 이유다.
간절곶은 지금도 울산 해양관광의 중요한 축으로 읽힌다. 명선교에서 간절곶으로 이어지는 약 5.2㎞ 구간과, 간절곶에서 평동항과 나사해수욕장 쪽으로 잇는 약 4.8㎞ 구간을 해안 경관축이다. 이는 간절곶이 단지 ‘끝’의 명소가 아니라,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걷기 여행의 중심점라는 뜻이다. 실제로 현장에 서보면 이곳은 사진 한 장 찍고 돌아서는 전망대보다, 바람과 길과 바다가 이어지는 체류형 장소에 가깝다. 여행자가 오래 머물수록 풍경도 더 천천히 열린다.
호텔현대 바이 라한 울산에서 출발해 간절곶에 닿는 길은, 울산 바다가 얼마나 다채로운 표정을 지녔는지 차례로 보여주는 가장 인상적인 해안 드라이브 코스다.
간절곶이 좋은 것은 무엇보다 울산 바다를 단순하게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등대는 시간을, 우체통은 사연을, 산책로는 몸의 속도를 바꿔놓는다. 바다는 그 모든 것의 배경이 아니라 중심이다. 슬도에서 바다의 숨소리를 들었다면, 간절곶에서는 그 바다가 어디까지 열릴 수 있는지를 보게 된다. 여행은 볼거리가 많을수록 풍성해지기도 하지만, 어떤 장소에서는 오히려 단순한 요소들이 더 깊은 인상을 남긴다. 간절곶이 바로 그런 곳이다. 바람, 등대, 우체통, 수평선. 그 네 가지면 충분하다.
간절곶은 울산의 끝이 아니라 울산 바다가 가장 멀리 뻗어 나가는 자리다. 바람 따라 몇 걸음 걷는 동안 풍경이 바뀌고, 풍경이 바뀌는 동안 마음도 조금씩 고요해진다. 울산 여행의 마지막에 이곳을 두면, 바다는 오래도록 뒤를 돌아보게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