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봄은 먼저 오는 곳보다 늦게 남는 곳에서 더 또렷해질 때가 있다. 청양의 4월이 그렇다. 벚꽃은 한발 늦게 절정을 향하고, 그 아래 장승들은 오래된 표정으로 길목을 지킨다. 청양군의 대표 전통문화 축제인 제27회 칠갑산 장승축제가 4월 11일부터 12일까지 이틀간 칠갑산 장승공원 일원에서 열린다. 축제장은 청양군 대치면 장곡길 119-17 일대이며, 올해도 4월 중순의 봄 기운과 전통 민속의 결이 한자리에서 맞물린다.
칠갑산 장승공원은 이름부터 강하다. 이곳은 1999년 장승축제를 계기로 조성된 테마공원으로, 높이 11.5m의 칠갑산 대장군과 여장군을 비롯해 전국 각지의 장승 형상이 재현돼 있다. 공원 안에는 350여 개 장승이 서 있어 걷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민속 답사처럼 느껴진다. 장승이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마을의 안녕과 경계를 상징해온 존재였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 축제는 봄꽃 구경에 전통의 숨을 깊게 얹는 자리다.
첫날인 11일에는 장승제례를 시작으로 풍물놀이와 남사당놀이가 이어지고, 장승명문식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공연도 무대에 오른다. 둘째 날인 12일에는 전국의 장승 조각가들이 참여하는 초청 시연과 청양전통 혼례식이 펼쳐진다. 축제의 중심은 단순한 관람에 머물지 않는다. 나무를 깎아 장승을 만들어보는 체험, 장승 캘리 엽서 만들기, 장승 9행시 쓰기, 전통 민속놀이 체험이 행사 기간 내내 이어져 아이부터 어른까지 손으로 만지고 몸으로 익히는 시간이 된다.
올해 축제가 더 눈길을 끄는 이유는 벚꽃이다. 청양은 지형 특성상 주변보다 꽃이 늦게 오르는 편인데, 올해는 그 늦은 만개 시기와 축제 일정이 절묘하게 포개졌다. 축제장으로 향하는 길목의 벚꽃 터널은 드라이브 코스가 되고, 장승공원의 묵직한 나무결은 화사한 꽃빛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다른 지역의 봄이 서둘러 지나간 자리에, 청양의 봄은 오히려 한 박자 늦게 깊어진다. 그래서 이번 축제는 단순한 지역 행사라기보다 ‘엔딩 벚꽃’과 전통문화를 함께 만나는 드문 장면에 가깝다.
요즘 지역 축제가 살아남으려면 한 가지 얼굴만으로는 부족하다. 청양은 장승이라는 선명한 상징을 붙들고, 여기에 체험과 공연, 전통의식, 늦봄의 풍경을 겹쳐 자신만의 리듬을 만들고 있다. 칠갑산 자락에서 만나는 장승축제는 화려함보다 오래 남는 쪽에 가깝다. 시끄럽게 소비되는 축제라기보다, 한 바퀴 걷고 나면 이상하게 기억에 오래 박히는 축제다. 청양의 봄이 유난히 정겹고 깊게 느껴지는 이유도 아마 거기에 있을 것이다.
벚꽃은 곧 지고, 축제도 이틀이면 끝난다. 그런데 장승은 제자리에 남아 다시 사람을 맞는다. 청양의 4월은 바로 그 느린 시간의 힘을 보여준다. 가장 늦게 피는 봄꽃 아래서 가장 오래된 얼굴을 만나는 일. 이번 주말 칠갑산 장승공원은 청양이라는 지역의 깊이를 가장 또렷하게 보여주는 무대가 될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