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경주의 밤은 대개 조용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월정교 앞에 서면 그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조용한데도 화려하고, 환한데도 어딘가 쓸쓸하다. 검은 강물 위에 길게 누운 빛의 다리를 바라보고 있으면, 천년 전의 사람들도 이렇게 강을 건넜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이 먼저 떠오른다. 사랑하는 이를 만나러 가는 발걸음도 있었을 것이고, 급한 소식을 안고 지나던 그림자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 내 앞의 다리는 복원된 것이지만, 다리 위를 건너던 마음들까지 새로 만든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월정교는 더 깊다. 건축물이 아니라 시간의 표정처럼 보인다.
가만히 보면 이 다리는 꽤 근사한 반전도 품고 있다. 낮에는 고운 목조건축의 아름다움이 먼저 보이지만, 밤에는 오히려 물이 주인공이 된다. 다리보다 먼저 강이 빛을 받아들이고, 그다음에서야 건너편 누각이 또렷해진다. 마치 경주가 “서두르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다. 천년고도에서는 화려함도 천천히 와야 한다는 듯이. 여행자는 그 앞에서 괜히 말수가 줄어든다. 대신 오래된 감정들이 조용히 떠오른다. 잊고 지낸 얼굴 하나, 미뤄둔 안부 하나, 지나가 버린 계절 하나. 월정교의 야경은 예쁜 풍경을 보여주는 데서 끝나지 않고, 사람 마음속 오래된 다리 하나까지 슬며시 밝혀준다.
그래서 경주의 밤은 사진으로 다 담기지 않는다. 셔터 안에 남는 것은 빛이지만, 끝내 마음에 남는 것은 건너가지 못한 시간들이다.

![[최치선의 포토에세이] 밤의 경주, 결국 이 다리에서 멈췄다](https://hodabgpnhciikfrpzais.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article-photos/2d51b5e9-c33a-46bc-a6aa-92b5228e0ab1/00-legacy-cover-1379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