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문소지 기자] 봄의 박물관이 꼭 전시실 안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울산에서는 세계유산 곁을 걷고,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고, 물소리와 바람을 따라 마음을 고르는 시간이 주말 프로그램으로 열렸다. 반구천 일대의 자연과 암각화의 시간을 함께 묶은 ‘뮤지엄 테라피’는 보는 관람을 넘어 쉬어가는 관람으로 박물관의 성격을 넓히고 있다.
울산암각화박물관은 오는 11월까지 주말 체험형 휴식 프로그램 ‘세계유산과 함께하는 박물관 치유(뮤지엄 테라피)’를 운영한다. 프로그램은 반구천 암각화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오른 뒤 박물관을 찾는 발길이 꾸준히 늘어난 흐름 속에서 마련됐다. 지난해 7월 세계유산 등재 이후 울산암각화박물관의 월평균 관람객은 전년보다 75% 늘었고, 월 방문객 1만 명을 넘긴 것으로 집계됐다. 세계유산을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 이제는 보는 경험만이 아니라 머무는 경험까지 함께 제안하는 셈이다.
반구천의 암각화는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를 아우르는 단일 유산으로, 한반도 선사인의 삶과 표현 방식을 담아낸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고래와 사냥, 인간과 동물의 형상이 새겨진 바위그림은 오래전 사람들의 생활 감각을 지금의 시간으로 불러낸다. 박물관 주변 자연환경이 이 유산의 가치와 함께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산은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강과 바위, 숲길과 함께 여전히 살아 있는 풍경 속에 놓여 있다.
프로그램은 상·하반기로 나뉘어 진행된다. 상반기인 4월부터 6월까지는 사진 촬영과 스케치 활동이 중심이다. 참가자들은 반구천 일대를 산책하며 풍경과 세계유산을 눈에 담고, 사진과 글, 그림으로 기록하게 된다. 하반기인 9월부터 11월까지는 명상과 요가, 산책을 결합한 치유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빠르게 지나치는 관람이 아니라 천천히 걷고 멈추고 호흡하는 방식으로 세계유산과 만나는 구성이 눈길을 끈다. 운영은 4월부터 11월까지 매월 셋째 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낮 12시까지 총 6회다.
참가 대상은 만 13세 이상이며, 회차별 20명을 온라인 선착순으로 모집한다. 신청은 매월 첫째 주 울산모아 통합예약 시스템을 통해 받는다. 규모를 크게 늘리기보다 적정 인원으로 운영해 현장 집중도와 체험 밀도를 높이겠다는 방식이 읽힌다. 세계유산을 둘러보는 프로그램이 종종 설명 위주에 머무르는 것과 달리, 이번 프로그램은 감상과 참여의 비중을 함께 높였다는 점에서 다르다. 사진 한 장, 짧은 스케치 하나, 조용한 호흡 몇 번이 유산과의 거리를 훨씬 가깝게 만든다.
이런 흐름은 최근 박물관이 단순 전시 공간을 넘어 쉼과 체험이 가능한 복합 문화 공간으로 바뀌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울산암각화박물관 역시 올해 연간 교육 계획에서 유아와 어린이, 청소년, 성인까지 전 연령을 아우르는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어렵고 조용한 공간으로 인식되던 박물관을, 누구나 와서 걷고 쉬고 만들고 느끼는 장소로 바꾸겠다는 방향이다. 반구천이라는 자연의 배경은 이 변화를 더 설득력 있게 만든다. 실내 강의실보다 바람이 먼저 다가오고, 안내문보다 풍경이 먼저 말을 거는 곳이기 때문이다.
박물관 관계자는 “박물관이 어렵고 지루한 공간이 아니라 누구나 편안하게 쉬어가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며 “일상에서 벗어나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이번 프로그램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이 말은 이번 프로그램의 성격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준다. 반구천의 세계유산을 보러 갔다가, 결국 자기 마음의 속도를 조금 늦추고 돌아오는 시간. 울산의 이번 주말 프로그램은 바로 그 지점을 겨냥하고 있다.
세계유산은 멀리 있는 이름이 아니라, 곁에 머물며 천천히 느낄 때 비로소 자기 얼굴을 드러낸다. 울산암각화박물관의 ‘뮤지엄 테라피’는 반구천의 풍경과 암각화의 시간을 한데 묶어, 관람을 휴식으로 바꾸는 드문 시도다. 걷는 일, 바라보는 일, 잠시 멈추는 일이 모두 프로그램이 되는 곳. 올가을까지 반구천의 토요일은 그래서 조금 특별해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