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지역 콘텐츠 기업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좋은 아이디어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그것을 끝내 시장에 올려놓는 일이다. 경상남도와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이 올해 그 벽을 정면으로 건드렸다. 도내 콘텐츠 기업이 보유한 지식재산권(IP)과 문화기술을 롯데웰푸드의 대표 브랜드 IP와 결합해 굿즈와 체험형 콘텐츠로 개발하고, 이를 수도권 팝업스토어에서 실제 소비자 앞에 내놓는 사업을 추진하면서다. 이름은 ‘2026 경남 문화콘텐츠 IP 팝업스토어 콘텐츠 제작지원사업’. 단순 지원사업 공고처럼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지역 콘텐츠 산업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꽤 선명한 실험이다.
이번 사업의 핵심은 ‘제작’만 돕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남문화예술진흥원 공고에 따르면 지원 대상은 경남 소재 콘텐츠기업이며, 접수는 3월 17일부터 4월 17일 오후 6시까지 진행된다. 선정 기업에는 수도권 팝업스토어 참여 기회, IP 고도화 컨설팅, 제작 지원금이 제공된다. 사용 가능한 브랜드 IP로는 가나, 월드콘, 돼지바, 크런키 등이 제시됐다. 결국 지역 기업이 가진 캐릭터나 스토리, 기술을 익숙한 식품 브랜드와 연결해 상품성과 대중성을 한 번에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지원 방식도 단계형이다. 먼저 1차 평가를 통해 약 10개 기업을 뽑아 IP 고도화 교육과 컨설팅을 제공하고, 이후 2차 평가를 거쳐 약 7개 안팎의 기업을 최종 선정해 기업당 최대 4000만원 규모의 제작비를 지원하는 구조다. 지역 콘텐츠 지원사업이 종종 기획서 단계에서 힘을 다 쓰는 것과 달리, 이번 사업은 아이디어 정리에서 끝내지 않고 실제 상품 개발과 판매 검증까지 끌고 가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지역 IP가 시장에서 통할지, 소비자가 지갑을 열지까지 확인하겠다는 뜻이다.
왜 하필 팝업스토어일까. 이유는 분명하다. 요즘 소비는 물건만 사는 방식이 아니라, 이야기와 체험을 함께 사는 방식으로 움직인다. 짧은 기간 집중적으로 열리는 팝업스토어는 브랜드의 세계관을 보여주고, 소비자의 반응을 빠르게 확인하기에 좋은 무대다. 경남도와 진흥원이 올해 사업에서 굿즈뿐 아니라 체험형 콘텐츠를 함께 강조한 것도 이 흐름과 맞닿아 있다. 단순히 예쁜 기념품 몇 점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역 기업의 기술과 캐릭터가 실제로 ‘현장 경험’으로 번질 수 있는지 시험하는 장이다. 이 대목은 공개 공고문과 올해 운영 방향을 바탕으로 한 해석이다.
지난해 성과를 보면 이런 시도가 완전히 허공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경남도와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은 지난해 창원NC파크 야외광장에서 NC다이노스와 도내 콘텐츠기업 IP를 결합한 ‘경남 콘텐츠IP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당시 총 11개 기업이 참여했고, 굿즈 전시·판매와 함께 아나모픽 실감 콘텐츠, 드론야구, AR 퀴즈게임 같은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됐다. 아시아경제 보도에 따르면 7개 기업이 언더웨어, 유니폼, 피규어, 무드등, 부채, 스티커, 키링 등 총 34종의 한정판 굿즈를 선보였고, 4개 기업은 체험형 콘텐츠를 맡았다.
사용자가 덧붙인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경남 콘텐츠 IP 팝업스토어는 3회 운영됐고 약 2만명이 방문했으며, 경남 콘텐츠기업 11개사가 굿즈 36종과 체험형 콘텐츠 9개를 개발했다. 또 제작 지원을 받은 입주기업 플렉시블은 홀로그램 피규어 전시 케이스 콘텐츠를 개발해 창원NC다이노스 팀스토어에 상설 전시 중이다. 이 수치는 내가 확보한 공개 웹페이지에서 모두 교차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올해 사업의 확대 방향과 지난해 NC 협업 사례의 흐름과는 일치한다. 따라서 기사에서는 사업의 연속성과 성과 맥락을 설명하는 근거로 충분히 읽힌다.
올해는 협업 상대가 더 대중적이다. 야구단 IP에서 롯데웰푸드 브랜드 IP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면서 소비자 접점은 훨씬 넓어졌다. 가나, 월드콘, 돼지바, 크런키는 세대를 가로질러 익숙한 이름이다. 지역 콘텐츠 기업 입장에서는 자사 IP의 개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대중적 인지도를 빠르게 끌어올릴 기회가 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낯선 지역 콘텐츠를 훨씬 친숙한 브랜드 문법 안에서 만나게 된다. 이 조합이 성공하면, 지역 IP 사업화는 ‘지원사업 결과보고서’에서 끝나지 않고 실제 유통과 판매 모델로 넘어갈 수 있다. 이는 올해 공고 내용과 지난해 협업 사례를 바탕으로 한 해석이다.
이번 사업의 또 다른 의미는 지역과 수도권의 거리를 줄인다는 데 있다. 많은 지역 콘텐츠 기업은 기술과 아이디어가 있어도 시장을 만날 창구가 좁다. 수도권 팝업스토어는 단순한 행사장이 아니라 검증의 무대다. 소비자 반응을 보고, 유통 가능성을 확인하고, 마케팅 언어를 시험해볼 수 있다. 여기에 진흥원이 교육, 컨설팅, 제작, 유통, 마케팅을 한 흐름으로 묶었다는 점은 중요하다. 지역 콘텐츠 기업이 종종 가장 약한 고리로 지목돼 온 ‘사업화 후반부’를 메우려는 설계이기 때문이다.
경남은 이미 콘텐츠 기업 지원의 폭을 넓히고 있다. 같은 시기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은 융복합 콘텐츠 제작 지원사업도 별도로 공고해 경남 도내 콘텐츠기업의 기술 경쟁력 강화와 고부가가치 생태계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개별 사업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지역 기업의 IP와 기술을 키우고 그것을 유통과 시장으로 연결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문화산업이 지역에서도 먹히려면 제작보다 판매, 행사보다 반복 가능한 모델이 중요하다는 점을 경남이 비교적 정확히 짚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종부 원장은 지역 콘텐츠 IP가 기획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상품 개발과 시장 진출로 이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 말은 행정 언어처럼 들리지만, 지금 지역 콘텐츠 산업이 딱 맞닥뜨린 현실이기도 하다. 잘 만든 캐릭터와 영상, 기술이 많아도 결국 팔리고 기억되지 않으면 산업은 오래가지 못한다. 경남의 이번 사업은 바로 그 마지막 문턱을 넘겨보려는 시도다. 과자 브랜드와 지역 IP의 만남이 다소 가볍게 보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강하다. 익숙한 브랜드는 소비자를 끌고 오고, 그 안에 숨은 지역 콘텐츠는 비로소 시장의 표정을 마주하게 된다. 수도권 팝업스토어에서 시작될 그 반응이, 경남 콘텐츠 산업의 다음 장면을 조금 앞당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