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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최치선의 포토에세이] 구례 산수유, 봄은 이렇게 시작됐다

최치선 기자
[최치선의 포토에세이] 구례 산수유, 봄은 이렇게 시작됐다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구례의 봄은 멀리서 오지 않는다. 아주 작은 꽃망울 하나에서 시작된다. 가지 끝에 맺힌 노란 기척, 막 피어오르기 직전의 산수유는 화려하게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먼저 봄의 소식을 귀띔하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더 마음을 끈다. 활짝 핀 꽃은 누구나 알아보지만, 막 피기 시작한 순간은 천천히 들여다본 사람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속 산수유 가지를 보고 있으면, 봄은 계절이 아니라 결심처럼 온다는 생각이 든다. 망설이던 마음이 조금씩 열리고, 닫혀 있던 시간이 아주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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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산수유 (사진=최치선 기자)

 

구례 산수유의 매력은 노란색 그 자체보다 그 노란빛이 번져가는 방식에 있다. 한 송이가 아니라 수많은 꽃망울이 서로 눈치를 보다가 어느 순간 들판 전체를 물들인다. 가까이서 보면 앙증맞고, 멀리서 보면 산 전체가 환해진다. 그래서 산수유마을에 가면 사람들도 괜히 표정이 밝아진다. 진지하게 사진을 찍다가도 금세 웃게 되고, 꽃길을 걷다가도 어린아이처럼 자꾸만 걸음을 늦추게 된다. 봄꽃은 늘 비슷한 듯하지만, 산수유는 조금 다르다. 벚꽃이 한순간의 환한 폭죽이라면, 산수유는 오래 아껴 읽는 편지 같다. 소란스럽지 않은데 이상하게 깊이 남는다.

 

나뭇가지 위에 솟아오른 작은 꽃송이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인생에도 저런 때가 있지 않을까. 아직 완전히 피어나지 않았지만, 분명히 시작되고 있는 순간. 남들은 몰라도 내 안에서는 이미 계절이 바뀌고 있는 시간. 산수유는 바로 그 장면을 보여주는 꽃인지도 모른다. 다 피고 난 뒤의 환희보다, 피어나는 중의 떨림이 더 오래 마음을 흔든다.

 

구례의 산수유는 그래서 아름답기만 한 풍경이 아니다. 기다림 끝에 도착한 위로이고, 지나간 겨울을 견딘 이들에게 건네는 조용한 격려다. 화려하지 않아 더 따뜻하고, 작아서 더 단단하다. 여행은 멀리 떠나는 일이 아니라, 이렇게 작은 꽃 하나 앞에서 내 마음이 다시 움직이는 순간을 만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구례의 봄은 노랗게 피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사람의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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