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연천 호로고루성 앞에 섰을 때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성벽이 아니라 의자였다. 낮은 들판 한가운데, 크기도 색도 제각각인 의자들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마치 누군가 먼저 와 앉아 오래된 시간을 기다리다 막 자리를 비운 듯했다. 그 뒤로 흙으로 쌓아 올린 성이 낮고 단단하게 몸을 눕히고 있었다. 하늘은 끝없이 맑고, 땅은 겨울빛으로 마르고, 그 사이의 풍경은 놀랄 만큼 단순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단순함이 오래 마음을 붙든다.
호로고루성은 화려한 궁궐도, 높은 탑도 아니다. 한강과 임진강 물길을 굽어보며 오래도록 자리를 지켜온 고구려의 성이다. 전쟁과 방어, 긴장과 침묵의 시간이 이 낮은 흙성 안에 켜켜이 쌓였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그저 부드러운 곡선의 언덕 같지만, 그 안에는 국경을 지키던 사람들의 숨결과 밤을 밝히던 경계의 눈빛이 숨어 있다. 그래서 이곳의 역사는 거창한 설명보다 오히려 바람 한 줄기, 비탈을 오르는 발걸음 하나로 더 가까이 다가온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것은 성 앞의 의자들이다. 누가 저 자리에 저렇게 색색의 의자를 두었을까. 서로 다른 삶의 모양처럼 보이기도 하고, 시간에게 내어준 자리 같기도 하다. 작은 의자, 키 큰 의자, 붉은 의자와 푸른 의자가 흙성과 마주 선 장면은 조금 엉뚱하면서도 묘하게 따뜻하다. 역사는 늘 어렵고 멀게 느껴지지만, 저 의자들 덕분에 호로고루는 갑자기 친근해진다. 오래된 시간 앞에도 누구나 자기 자리 하나쯤 놓고 앉아 쉴 수 있다는 듯이.
나는 한참 그 앞에 서 있었다. 높은 것보다 오래 버틴 것이 더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너뜨리기보다 지키는 일이 더 큰 힘일 수 있다는 것도. 연천 호로고루성은 말이 없는 유적이지만, 그 침묵은 오히려 많은 것을 들려준다. 살아간다는 것도 어쩌면 저 토성처럼 바람을 맞고 비를 견디며, 제 모양을 아주 조금씩 바꾸어 가면서도 끝내 무너지지 않는 일인지 모른다. 그리고 가끔은, 내 마음 앞에도 저런 의자 하나 놓아두고 오래된 시간과 조용히 마주 앉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최치선의 포토에세이] 연천 호로고루, 의자가 먼저 말을 걸었다](https://hodabgpnhciikfrpzais.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article-photos/40a0b98a-8335-4c3f-9501-c985f81b4556/00-legacy-cover-13758.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