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김제 벽골제 들판에 서면 먼저 바람이 보인다. 끝없이 트인 하늘 아래, 마른 풀빛이 낮은 숨을 고르고, 그 한가운데서 두 마리 용이 서로를 향해 몸을 틀고 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놀라운 것은 크기가 아니라 기세다. 금방이라도 허공을 박차고 오를 듯한 몸짓, 서로를 응시하며 오래된 약속이라도 지키는 듯한 눈빛이 들판의 적막을 단숨에 깨운다.
벽골제는 물을 다스리기 위해 쌓은 땅의 기억이고, 쌍용은 그 시간을 지키기 위해 세워둔 상상의 형상처럼 보였다. 사람은 사라지고 계절은 바뀌어도, 땅은 제 할 말을 잊지 않는다는 듯 두 용은 말없이 그 자리를 감당하고 있었다. 햇빛을 받은 몸체는 거칠고 검어 더 생생했다. 화려하지 않아서 오히려 오래된 전설 같았고, 웅장해서 오히려 쓸쓸했다. 나는 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세월은 흘러가는데 어떤 것들은 왜 저토록 한자리에서 시간을 견디는지, 그 묵묵함이 괜히 마음을 건드렸다.
여행은 때로 풍경을 보는 일이 아니라 그 풍경 앞에서 내 마음의 속도를 늦추는 일인지도 모른다. 김제 벽골제의 쌍용 앞에서 나는 잠시 멈추는 법을 배웠다. 높이 오르는 것보다 오래 지키는 것이 더 큰 힘일 수 있다는 것, 소리쳐 드러내기보다 묵묵히 버티는 시간이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는 것을. 넓은 들판과 푸른 하늘, 그리고 서로를 향해 선 두 마리 용은 그날 내게 말 없는 위로를 건넸다.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저렇게, 바람 많은 자리에서도 끝내 제 형상을 잃지 않는 일일 것이다.

![[최치선의 포토에세이] 벽골제...하늘 아래 마주 선 시간의 두 마리 용](https://hodabgpnhciikfrpzais.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article-photos/0459fe5f-99bf-4269-a63f-edd5627e673b/00-legacy-cover-13755.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