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문소지 기자] 콘텐츠는 이제 아이디어만으로 버티는 산업이 아니다. 만들고, 시험하고, 시장에 내놓고, 바깥으로 내보내는 전 과정이 함께 굴러가야 살아남는다. 경남도가 대학과 기업, 지자체를 한자리에 모아 지역 콘텐츠산업의 판을 다시 짜기 시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남도와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은 지난 3월 26일 경남콘텐츠코리아랩에서 ‘2026 경남콘텐츠산업 협력 플랫폼 1차 회의’를 열었다. 회의의 명분은 분명했다. 창작, 제작, 사업화까지 따로 노는 구조를 줄이고, 대학·기업·지자체가 함께 움직이는 협력 체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행사 안내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서는 협력 플랫폼 운영 방향과 경남콘텐츠코리아랩 주요 사업, 협력사업 추진 의견 수렴이 함께 이뤄졌다.
회의에는 도내 콘텐츠 관련 대학 학과와 콘텐츠 기업, 협회, 지자체가 참여했다. 겉으로 보면 흔한 간담회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번 논의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의제가 비교적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콘텐츠 창작캠프, 청소년 콘텐츠 경진대회, 융복합발전소 운영처럼 기존 협력사업의 참여 대학 확대와 교류 기회 확대가 논의됐고, 초기 콘텐츠 기업을 위한 해외 진출 지원과 학생 해외연수 필요성도 함께 제기됐다. 지역 창작 생태계의 문제를 ‘지원금’이 아니라 ‘연결 구조’로 보겠다는 신호에 가깝다.
사실 경남은 올해 들어 콘텐츠 지원사업의 폭을 눈에 띄게 넓히고 있다. 경남콘텐츠코리아랩은 3월 들어 입주기업 선정, 콘텐츠 시제품 제작 지원, 콘텐츠 마케팅 지원 등을 잇달아 공고했다. 지역 창작자를 발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제품을 만들고 시장 반응을 시험하며 실제 판매와 홍보까지 이어지는 단계를 촘촘히 잇겠다는 뜻이다. 콘텐츠 산업에서 가장 약한 고리가 늘 ‘좋은 아이디어 이후’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흐름은 지역 지원정책으로선 꽤 실무적이다.
이번 플랫폼 논의가 더 의미를 갖는 건, 대학과 현장을 한 테이블에 올려놓았다는 점이다. 지역 콘텐츠산업은 인재는 학교에서 나오고, 사업은 기업이 하고, 제도는 행정이 쥐고 있는데 셋이 각자 움직일 때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학생은 현장을 모르고, 기업은 인력을 못 구하고, 행정은 수요와 어긋난 사업을 내놓는 일이 반복됐다.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이 이번 플랫폼을 통해 대학·기업·지자체가 참여하는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수혜자 맞춤형 정책을 발굴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단절을 줄이려는 의도로 읽힌다.
특히 청소년 콘텐츠 경진대회나 창작캠프 같은 사업은 단발 행사로 끝나면 힘이 약하다. 하지만 입주 지원, 시제품 제작, 마케팅, 네트워킹, 해외 진출 논의까지 한 흐름으로 묶이면 지역 안에서 창작자가 성장할 사다리가 생긴다. 과거 경남콘텐츠코리아랩이 운영했던 콘텐츠 창작캠프 역시 네트워킹과 아이디어 개발, 창작자 육성을 결합한 프로그램으로 소개된 바 있다. 이번 회의는 그런 조각난 사업들을 하나의 생태계 안에서 다시 엮으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경남 입장에서도 콘텐츠산업은 더는 주변 산업이 아니다. 제조와 항공, 조선 같은 전통 산업 기반이 강한 지역일수록, 콘텐츠는 청년 인재 유입과 도시 이미지 개선, 관광과 서비스업 확장까지 함께 노릴 수 있는 분야가 된다. 실제로 경남도는 올해 경남콘텐츠코리아랩 지원사업 규모를 17억원대로 확정하며 창작에서 창업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생태계 조성을 강조했다. 이번 협력 플랫폼 회의는 그 예산이 어디에 쓰일지, 어떤 구조로 굴러갈지를 현장 의견과 맞춰보는 첫 시험대이기도 하다.
물론 과제도 분명하다. 회의가 아무리 활발해도 대학 참여 확대, 기업 교류, 해외 진출 지원이 실제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면 또 하나의 선언으로 끝날 수 있다. 지역 콘텐츠산업은 서울과 수도권에 비해 투자, 유통, 네트워크에서 불리한 편이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건 ‘얼마나 많은 사업을 열었는가’보다 ‘창작자와 기업이 몇 년 뒤에도 남아 있느냐’다. 그런 점에서 이번 플랫폼이 진짜 역할을 하려면 교육·창작·사업화·마케팅·판로를 끊김 없이 잇는 실행력이 따라야 한다.
경남의 이번 움직임은 회의 한 번 열었다는 소식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지역 콘텐츠산업을 행사 중심 지원에서 생태계 중심 지원으로 옮겨가려는 신호에 가깝다. 창작자가 아이디어를 내고, 기업이 키우고, 학교가 인재를 보내고, 행정이 판을 깔아주는 구조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경남 콘텐츠산업은 이제부터가 시작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