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봄은 왔는데 마음은 따라오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 고흥은 꽃보다 먼저 길을 내민다. 숲의 숨결을 따라 걷는 길, 바다가 붉어지는 시간을 품은 길, 전설 같은 바위 곁을 스치는 해안길이 봄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다.
전남 고흥군이 완연한 봄기운 속에서 일상의 피로를 덜어낼 수 있는 대표 트레킹 코스 3선을 추천했다. 이번에 이름을 올린 곳은 팔영산 편백치유의 숲, 고흥만 수변노을공원, 미르마루길이다. 세 곳은 모두 걷는 맛이 뚜렷하지만 분위기는 서로 다르다. 한 곳은 숲이 깊고, 한 곳은 노을이 길며, 또 한 곳은 바다와 바위가 풍경의 중심에 선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곳은 팔영산 편백치유의 숲이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한 팔영산 서쪽 자락에 자리한 이 숲은 416헥타르 규모로 조성돼 있으며, 고흥을 대표하는 산림 치유 공간으로 소개된다. 고흥군 자료에는 완만한 길과 쉼터, 치유 프로그램 기반이 갖춰진 공간으로 제시돼 있어, 무리한 산행보다 천천히 호흡을 고르며 걷는 데 잘 어울린다. 촘촘히 들어선 편백림 사이로 들어서면 향이 먼저 몸을 감싸고, 그다음에야 생각이 조금씩 느려진다. 봄날의 고흥이 가장 조용하게 말을 거는 장소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바다 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고흥만 수변노을공원이 있다. 고흥군은 이곳을 용동리 일원 26만㎡ 규모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소개하고 있다. 해변캠핑장, 물놀이장, 야외공연장, 미로공원, 오감 체험숲 같은 시설을 갖추고 있어 단순 산책지보다 체류형 공간에 가깝다. 이름 그대로 노을이 가장 큰 매력이다. 군 자료에서도 이 일대의 붉게 물드는 저녁 풍경을 강점으로 들고 있고, 고흥만권역에는 야간경관 조명 사업도 추진·준공돼 밤 산책의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리고 있다. 낮에는 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걷고, 해가 기울면 붉은 수평선을 따라 걸음을 늦추게 되는 길이다. 봄철에는 유채꽃 군락과 4km 구간 벚꽃 터널도 함께 즐길 수 있어 계절감도 또렷하다.
조금 더 역동적인 풍경을 원한다면 미르마루길이 제격이다. 고흥군 주요업무 계획에 따르면 미르마루길은 우주발사전망대에서 용바위까지 이어지는 약 3km 구간으로, 올해는 길 주변에 맥문동·작약·수국 등 계절꽃을 심는 사업도 새로 추진된다. 군은 영남면 일대를 고흥 관광의 잠재력이 큰 권역으로 보고 있으며, 우주발사전망대 인근의 미르마루길과 용바위를 핵심 자원으로 꼽고 있다. 실제로 이 길은 다도해를 굽어보며 걷는 해안산책로의 매력이 뚜렷하다. 바람이 세게 부는 날엔 바다가 먼저 말을 걸고, 날이 맑은 날엔 기암괴석과 해안선이 한꺼번에 시야에 들어온다. 전망대와 해안길, 용바위가 하나의 동선으로 이어져 고흥 바다의 입체감을 보여주는 코스다.
이 세 길이 좋은 이유는 저마다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팔영산 편백치유의 숲은 천천히 숨을 고르게 하고, 고흥만 수변노을공원은 머물게 하며, 미르마루길은 걸을수록 시야를 넓혀준다. 숲과 바다, 절벽과 노을을 한 군데서 다 볼 수는 없지만, 고흥에서는 하루 이틀 사이에도 서로 다른 봄의 결을 충분히 만날 수 있다. 최근 고흥군이 철도 연계 관광상품과 야간 관광명소 육성, 권역별 관광 인프라 확충에 힘을 쏟고 있는 점도 이런 체류형 여행 흐름과 맞닿아 있다.
고흥의 봄은 화려하게만 피지 않는다. 어떤 길은 숲 향으로, 어떤 길은 붉은 노을로, 어떤 길은 바다 절벽의 바람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이곳의 트레킹은 운동보다 기분에 가깝다. 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껴질 때, 고흥에서는 잠시 걸음을 늦춰도 된다. 길이 먼저 사람을 쉬게 하는 곳, 지금의 고흥이 그렇다.

